38년만에 뵙는 6학년 1반 노연수 담임 선생님은 예상보다 젊어 보이셨다.
강산이 네번씩이나 변하고 만난 초등학교 동무들은 저마다 얼굴에 새긴 주름으로
기나긴 세월의 깊이를 말해 주고 있었다.
"어이! 오랫만이네. 태진이야?"
"아! 오랫만입니다, 선생님! 참 젊어 보이시네요."
인사는 오히려 덤덤했다. 마치 자주 만났던 친구 사이처럼..
노 선생님은 당시 사범학교를 갓 졸업하고 부임하신 새내기 총각 선생님이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 코흘리개였지만 지금 선생님과의 나이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올해 65세라고 하셨다. 그런데도 외모는 아직 청년같이 젊어 보였고, 우리와 같이
어울린 걸 누가 본다면 친구나 형님 정도로 봐 줌직 하리라.
그리고, 그리웠던 우리반 동무들..
만석이, 희철이, 진식이, 휘보, 필순이, 정희, 옥녀, ....
여생도들도 4명이 나왔다. 아니, 나중에 대구에서 늦게 도착한 정희까지 5명이 나왔다.
이 모임을 주선한 만석이의 말에 의하면, 정희는 '오늘 태진이가 나온다고 하니까 멀리
대구에서 천리길을 머다 않고 오랫만에 태진이 보러 오겠다'고 했단다.
( 아니, 내가 아직도 그렇게 인기가..?? 으쓱.. 으쓱.. ^-^ )
수십년만에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만석이와 진식이는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어릴적 모습에 살이 좀 찌거나 얼굴에 주름이 진 장년의 신사가 되어 있을 뿐..
그러나, 희철이와 여생도들 몇은 길거리에서 만나면 얼굴을 못알아 볼 정도였다.
'여기 필순이, 여기 옥녀' 해서야 비로소 '아! 맞다 맞아!' 하며 어릴적 모습을 떠 올릴 수가
있었다. 그녀들의 얼굴과 눈매 속에 잠시 나의 어릴적 추억이 아련히 오버랩되어 흑백
필름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희철이는 승가로 출가한지 20년이나 된다고.. 놀랍게도 스님이 되어 있었다.
세속을 떠난지 20년! 그동안 속세를 버려야 했던 연유가 무엇이었을까?
승복을 입고 그림같이 앉아 있는 혜담스님의 온화한 모습에서 어릴적 소년 희철이의
붉은 동안(童顔)을 어렵지 않게 끌어 낼 수가 있었다.
만석이의 제의로 우리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각자 걸어온 길을 돌아가며 얘기하였다.
선생님은 문경초등학교를 비롯한 경북, 대구 지역 학교에서 근 40년간 교직 생활을 하시다
몇년 전에 퇴직하시어, 지금은 인도 등지로 해외 여행을 하거나 (인도 예찬론자이시다),
학교관련 업무를 하는 일에 관여하고 계신다.
만석이는 주한 네델란드 대사관에 근무하고, 진식이는 농협에, 휘보는 모닝 글로리에 다니다
퇴직하여 그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내 역정 소개와 함께 24년간 몸담아 온 대한항공의 비행기 모델 ( A/C Model )을
선생님께 선물로 드렸다. ( 만석이는 네델란드의 명물, 소형 나무 나막신과 튜립
열쇄고리를 모든 동무들에게 선물했다.)
동무들의 재촉으로 우리 마누라도 자기 소개를 했는데, 다행히 내 얘기를 좋게 해주어
오랫만에 보는 동무들한테 면목이 섰다. ^-^
( ** 대전에서 서울 올라 갈 때 볼일도 볼겸 마누라와 같이 갔었는데, 저녁에 우리 반창회
에도 함께 참석했다. 선생님과 동무들이 우리 마누라의 참석을 의미있는 일이라며
기꺼이 환영하였다. )
그날 나는 나중에 도착한 정희로부터 38년만의 사랑 고백(?)을 들어야 했다. 그것도 우리
마누라가 보는 앞에서.. ( Oh, my God !! ) ^--^
대구에서 기차를 타고 왔다는 정희는 자기 소개를 하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 초등학교 때 포크 댄스를 배웠잖아? 남녀 생도들이 손 붙잡고.... "
"응, 그때 남학생, 여학생이 서로 손을 안잡으려고 손과 손 사이에 나무가지를 잡고 댄스를
추는 학생도 있었지."
선생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네, 그때 난 태진이와 손을 잡고 댄스를 춰 봤으면.. 하고 속으로 엄청 기대를 했지요.
아마, 태진이는 몰랐을 거야."
"하하하.. TV는 사랑을 싣고 아냐, 이거.."
누군가 한마디 했다.
사실 나는 몰랐었다. 정희가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 어휴~ 진작 얘기하지
않구.. TT TT )
어쨌든 지금은 모든 것이 그립고 아련한 어릴적 추억이 되어 있었다. 마치 책갈피에
넣어둔 빛바랜 나뭇잎처럼..
동무들은 오랫만에 선생님과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38년 전으로 돌아가 동심의 세계를 마음껏
헤매고 다녔다.
그리고 동무들은 선생님이 가지고 오신 초등학교 졸업 앨범을 돌려 보며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낡은 흑백 사진.. 그 얼굴들 속에는 촌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눈매가 날카로운
한 소년도 거짓말 같이 거기에 들어 있었다. 바로 나...소년 김태진이 아닌가?
38년의 세월!
참으로 짧은 세월이구나!
벌써 38년이 흘러 갔다구? 그새 강산이 네번이나 변했다구?
일제 강점기 36년 보다 더 긴 세월이 지났다구?
우리가 지금 38년만에 처음 본다구?
그럼, 앞으로 그 긴.. 아니, 그 짧은 38년의 세월이 또 지나면.. 우리의 나이는 과연
얼마인가?
이것이 정녕 인생이런가?
우리는 통과 의례로 가까운 노래방에 가서, 40년전 동요를 부르던 이후 노래 실력들이
얼마나 늘었는지 서로 확인을 했다. 그리곤,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매년 3월 1일을 '6학년 1반 반창회의 날'로 약속을 하고..
선생님 안녕! 동무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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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 보 )
3월1일 인사동 한 한식집에 모인 6학년1반 문동(文童)들..
담임 노연수 선생님
모임을 주선한 김만석군 .. 영어에 능통하고 등산을 좋아한다.
20년전 출가한 홍희철 스님 ..
농협 성남유통센터 김진식군 ..
모닝글로리 신설동점 정휘보 사장 ..
자! 오랫만에 한잔하시게.. 정휘보군에게 술권하는
나이들어도 애교는 만점! 김필순 ..
노래방에서 김태진군과 38년만에 부르스 추었던 이정희 ..
( 임상희 여사에게 허락 받았슈~ ) '소원풀고 내려간다'고 했다.
책보 허리에 메고 각서리에서 학교까지 30리길을 뛰어서
통학하였던 전옥녀 .. ( 학교다닐 땐 더 예뻤었다.)
공사중 ..
공사중 ..
옵서버 임상희 여사 .. 6학년2반?? 어? 우리학교 학생이 아니네..!?
열변하는 선생님과 얌전히 경청하는 김필순 ..
노래방에서 .. 모두 가수들이두만..
총각 선생님 시절 가르쳤던 제자들과 오랫만에 만나 파안대소하시는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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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지하철 희생자를 추모합니다!
첫댓글 정말 그리운 옛시절의 동무들이네요. 우린 충청도 공주 산골짝에서 고무줄을 할 때마다 일부러 면도칼로 들고 끊으러 다니는 남학생들 땜에 전전긍긍 했었는데. 하지만 이제까지 초등학교 동창회는 한번도 못했지요. 그나마 학교도 분교였다가 지금은 해체되고... 넘 부러운 동창회네요. 그리고 넘넘 따뜻해 보이구...
와~ 정말 많이 반가우셨겠네요. 부럽습니다. 모두 넉넉해 보이시는 웃음, 몸집(? ^^). 무슨 이야기꽃을 피우셨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요즘들어 초등학교 동창회 하는 분들 많더라구요. 그런데 사진은 어디에 올려 퍼오신건가요? 원두막 아무리 사진 뒤져도 없어 궁금해서리. 사진주소는 분명 카페로 되었는디.알려주세요.
하하.. 채운씨가 인터넷관련해서 나에게 질문을 다 하다니..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인터넷 사진인화 사이트에 들어가서 올려보니 사진이 너무 작아지더라구요. 그렇다고 우리 '원두막' 자료실에 올리려니 건수가 너무 많아 금방 용량 촤과될 것 같고..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사진 올리는 전용 카페를.. (계속)
별도로 하나 만들었지요. '원두막 카페'에 한번 들어가 보세요. 내가 작업한 사진 엄청 많아요. 작업용 카페를 만들어 놓고 오래 안 들어가면 혹시 폐지될까싶어 가끔 한번씩 가 봅니다. 궁즉통이더라구요.. ** 봄냄새 물씬 나는 채운씨의 원두막 대문 새 단장에 다시 한번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