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사리는 어린순이 고부라져서 생겨난 이름이지 싶다. 땅을 밀치고 나오는 끝이 돌돌 말리며 오므라진 상태가 그렇다. 게다가 모양새가 마치 애기가 주먹을 쥔 것 같아, 애기들 손을 고사리 손이라고 일컫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고사리순은 빼놓을 수 없는 봄나물 중의 하나이다. 얼마 전에 제주지역에서 고사리축제를 열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해마다 축제까지 열리는 것을 보면 그만큼 고사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는 모양이다.
내 고향 산언저리에도 고사리가 많이 난다. 봄이 되면 고사리를 꺾으려고 고향엘 가는데, 올해에는 예전과 달리 아내가 먼저 나선다. 아마 연하고 통통한 고사리를 뚝뚝 끊어내어 바구니에 담는 재미를 잊지 못하는 것 같다. 게다가 남달리 제사가 많은 집안이라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고사리나물을 미리 장만해두려는 마음가짐도 있지 싶다.
집을 나설 때는 망설여지지만 고향땅을 밟으면 모처럼 부모님 묘소를 찾아 효도도하고 주변산야에서 고사리와 봄나물을 뜯을 수 있으니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숲 사이 응달에서 연하고 튼실한 고사리를 꺾는 손맛은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손끝에 닿는 쏠쏠한 재미를 느끼면서도 이제 막 움을 틔우고 올라오는 새싹을 송두리째 꺾는 것에 대한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속담에 ‘고사리도 꺾을 때 꺾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세상만사는 무엇 하나 시기가 중요하지 않은 게 없듯이 때를 놓치지 말라는 경구이다. 고사리 잎이 아직 오므라져 있을 때 꺾어야하는데, 하루만 지나도 활짝 피어나므로 적기를 놓치기 십상이다. 가장 효용가치가 있는 상태의 기간은 극히 짧으니 말이다. 사실 고사리도 현지에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적당히 꺾을 때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산에 간다고 다 호랑이를 잡는 것이 아니듯이 고사리 꺾으러 나섰다고 다 바구니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마침 날씨의 변화를 잘 맞추었던지 산야를 헤매는 만큼의 기대치를 한껏 채웠다. 가득한 바구니에는 고사리뿐만이 아니었다. 흐뭇하고 넉넉한 봄을 듬뿍 담아온 기분이다.
고사리는 여러해살이 양치식물로 피를 맑게 하고 머리를 깨끗하게 해주며 칼슘과 같은 무기질 성분이 풍부하다고 한다. 그래서 건조시켜서 두고두고 나물이나 음식첨가재료로 활용을 한다. 무엇보다도 고사리는 명성이 대단하다. 나물치고 고사리만큼 세상에 잘 알려진 게 있을까. 고금을 통하여 인구에 회자되는 고사리의 명성은 사마천이 쓴 사기열전 때문이다. 그 책의 첫 장, 백이열전(伯夷列傳)이 그것이다. 백이. 숙제가 의롭게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에 은둔하여 고사리를 캐먹고 살다가 굶어죽었다는 이야기, 즉『義不食周粟, 隱於首陽山, 采薇而食之. 及餓且死』이라는 표기이다.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고사이지만 고사리를 꺾으며 곰곰이 생각하니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하나는 ‘고사리를 캐먹었다(采薇而食之)’는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고사리의 한자표기에 고사리 궐(蕨,)자가 있음에도 굳이 고비 미(薇,)자로 표기한 점이다.
먼저 고사리는 캐는 게 아니라 꺾는 것, 또는 뜯는다고 해야 옳은 표현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고사리를 꺾거나 끊거나 뜯기는 했어도 캐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사리는 뿌리와 줄기도 이용 가능한 약용식물이라니 ‘캐먹었다’는 말이 틀린 것이 아님을 알 것 같다. 잠시나마 몰이해하고 의문을 품은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의문의 또 다른 하나는 궐(蕨)과 미(薇), 즉 고사리와 고비의 차이이다. 알고 보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사리(蕨)가 있고, 고사리와 유사하지만 습지에 나며 털이 많은 고비(薇)가 있는 것이었다. 엄밀히 구분되는 식물이지만 시대적인 관습과 문화의 변화에 따른 기록과 해석에서 혼용해서 사용했음직하다.
그런데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 들어가 죽을 때까지는 수많은 산채를 먹으며 지냈을 터인데도 유독 고사리가 언급되어 명성을 얻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백이열전에서 사마천의 주장을 살펴본다. 사마천은 양보와 절의에 있어서 백이.숙제보다 ‘허유’와 ‘무광’이 더 높고 깊다고 보았다. 그런데 공자는 어질고 현명한 사람의 대열에 허유와 무광을 제쳐놓고 백이.숙제를 열거하여 적은 놓은 것이다.
여기서 시사하는 바는 백이.숙제가 비록 어질기는 하지마는 공자의 칭송이 없었으면 역사에 이름이 빛날 수 없다는 말이다. 나아가 백이열전의 마지막 대목은 ‘골목 안의 사람이 이름을 떨치고자 해도 지체 높은 선비에 붙지 않고는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없다’고 설파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수양산의 산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많았어도, 유명한 선비 사마천의 붓 끝에선 미(薇)자만이 택발된 까닭에 고사리가 여타 산채식물을 제치고 지금껏 명성을 지니는 게 아닐까.
백이와 숙제 두 형제는 어질고 곧은 행동의 실천자인데, 왜 하필이면 고부라진 고사리를 먹으며 살았을까. 두 사람은 물성(物性)이 굽은 것을 싫어하는 성미여서 굽은 물성을 없애려고 고사리만 모조리 캐먹었을 수도 있을 테고, 곧은 마음과 굽은 사물이 화해하는 상호작용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고사리를 꺾으면서 가당치 않은 상상의 나래를 펴는 사이 봄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신다. 창밖의 비가 그치면 온 산야에 해맑은 고사리가 쏙쏙 다시 돋아날 것 같다.
‘07.04.30
첫댓글 많은 선인들이 고사리를 먹고 살았지요. 이황도 마찬가지구요^^..근데 요즘은 고사리 보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라던데요^^..그래서 정책적으로 고사리를 꺾지 못하게 되어있대요...잘 읽고 갑니다..추억의 고사리에 대한 소고....^^
고사리에 대한 소고 잘읽었습니다. ^^
곧은마음과 화해하는 모습의,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엿보셨네요. 덕분에 잠시 단상에 잠겨봅니다. 상생하는 것들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곧은 마음과 굽은 사물이 화해하는 상호작용... 일상에서 사물을 통찰하고 ...사물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그 역사적 의미는 님의 섬세한 감성에서 늘 강한 생명력을 얻습니다.
쥬노의 사유의 폭은 점점 깊어만 가고...닮고 싶다는^^
고사리가 정력을 약하게 한다는 속설이 있던데...음 보통 정력은 욕망을 뜻하고 욕망은 바르지 않은 그 무엇을 하게 하니까 그래서 그런 그런 근거로 인해서 저런 속설이 생겼나???? 고사리에 대한 소고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