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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학>, 2009년 7월호.
문학상의 빛과 그림자
맹문재
1. 문학상의 상황
문학상의 유형은 크게 문학잡지나 신문 또는 문학 관련 단체 등에서 공모해 표창하는 것과 그와 같은 매체에 발표된 작품을 평가해서 표창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문학상은 또한 시문학상, 소설문학상, 비평문학상, 아동문학상 등 장르별로도 구분 지을 수 있는데, 두 부문 이상을 운영하는 종합문학상도 상당하므로 구체적으로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기성 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문학상을 염두에 두면서 문학상의 전반을 다루고자 한다. 문제점의 차원에서 보면 신인문학상의 경우에도 만만하지 않겠지만 기성 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상의 문제가 보다 심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문학상만을 살펴보는 것보다 문학상의 전반을 함께 다루는 것이 문제점을 좀 더 파악하고, 그에 따른 개선안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008년 현재 시행되고 있는 문학상 수는 200여개에 이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발간한 각 『문예연감』에 따르면 문학상 수는 2004년 167개, 2005년 146개, 2006년 166개, 2007년 190개 등이다. 집필자에 따라 수집 방식에 차이가 있어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문학상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시문학상이 2004년 65개(종합문학상 15개, 시조문학상 10개 제외), 2005년 52개(종합문학상 28개, 시조문학상 7개 제외), 2006년 37개(종합문학상 63개, 시조문학상 11개 제외), 2007년 41개(종합문학상 70개, 시조문학상 11개 제외) 등으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문학상이 난립하는 이유로는 우선 문학잡지가 증가함에 따라 문학상도 비례해서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와 마찬가지로 각 『문예연감』에 따르면 문학잡지는 2004년 204종(시 43종, 종합 116종), 2005년 228종(시 50종, 종합 135종), 2007년 271종(2006년은 집계가 없음)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새로운 문학잡지들은 자신들의 약한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으로, 그리고 상징적 권력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로 문학상을 제정해오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 단체들이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문학상을 제정한 면도 한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지방자치 단체들은 자신들의 지역을 전국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물론 향후 관광 수입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지역 출신 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을 제정하고 나서는 것이다. 이외에 언론사들이나 각종 단체들이 상업적인 이익이나 홍보 효과 등을 위해 문학상을 제정한 면도 들 수 있다.
문학상은 작가의 작품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 이상으로 창작자에게는 물론이고 독자들에게 그리고 문학사에 영향을 주는 제도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문학잡지나 신문사 또는 각종 단체에서 문학상을 시행하고 있지만 문인들이나 독자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안타깝게도 각종 추문에 종종 휩싸이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문학상들이 왜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자격을 갖추지 못한 문학상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문단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문인들은 각종 문학상이 발표되어도 박수를 치지 않는다. 오히려 문학상 운영 측이 자신들과 관계된 문인들을 밀어주거나 나눠먹기 식으로 결정되었다고 냉소를 보인다. 전통이 있는 문학상들도 심사 과정에 대한 공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실제로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는 문인들은 제한되어 있고 심사위원들 역시 중복되어 공정성을 담보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와 같은 면은 163명의 비평가를 상대로 국내 문학상의 심사 기준에 대한 질문에서 ‘공정하다’고 대답한 경우는 2명(1.4%)에 불과하고, ‘계열별, 유파별로 상을 준다’(106명, 73.1%)거나 ‘상업적 의도가 강하다’(30명, 20.7%)고 대답한 경우가 압도적인 데서 여실히 확인된다.1) 문학상이 공정하게 선정된다기보다 문단의 친밀관계나 작가의 위치나 출판사의 상업적 목적 등에 의해 다분히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2. 문학상에 대한 비판들
그동안 문학상에 대한 진단 혹은 비판은 문제의식을 가진 몇몇 비평가들에 의해 간간이 시도되었을 뿐 본격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현재에도 마찬가지인데, 그만큼 문인들에게 문학상은 비판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다시 말해 문학상을 비판하는 것은 곧 자기 스스로 상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을 정도로 문인들은 문학상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세상의 일이 다 그렇지 않느냐는 식의 패배주의가 만연한다. 또 문학상이 다소 문제점이 있다고 할지라도 긍정적인 면이 많은데 굳이 비판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타협주의도 팽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4년 상반기에 창간된 ‘작가와 비평’에서 이루어진 비판들은 환기력을 준다.2) 주요 문학상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집중적인 공격이기에 주목할 면이 있는 것이다.
먼저 최강민은 가장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현대문학상을 비판했다. 현대문학상은 1955년 현대문학사에 의해 제정되어 종합문학상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열었다고 볼 수 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시행되어 2008년 현재 53회나 되는 실로 놀라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80년부터는 그동안 신인들을 대상으로 하던 현대문학신인상 제도를 등단한 지 10년 이상 된 문인을 대상으로 하는 현대문학상으로 바꾸었다. 1990년부터는 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발간하기 시작했는데, 문학사상사에서 운영하는 이상문학상이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최강민은 오랜 역사를 가진 현대문학상에 대해서 공정하지 못한 심사 과정은 물론이고 변화보다 안정에 포박되어 수구적 기득권의 유지 및 확장으로 귀착되었다고 진단했다. 문학상의 기치로 내세운 순수성과 보수성이 혁신적인 실험이나 시대의 변혁을 요구하는 민중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하상일은 조선일보가 시행하는 동인문학상을 비판했다. 동인문학상은 1955년 사상계사에서 제정한 것으로 현대문학상과 더불어 문학상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그렇지만 1967년 중단되었고, 1979년부터 동서문화사가 운영하다가 1986년 다시 중단되어, 1987년부터 조선일보사가 주관해오고 있다. 2000년부터는 4명의 소설가와 3명의 평론가를 종신 심사위원을 위촉하고 상금도 5천만원으로 인상했다. 하상일은 조선일보사의 그와 같은 의도가 안티조선 운동의 확산을 막기 위한 전략이라고 보았다. 문단의 권위 있는 심사위원을 조선일보의 원군으로 내세움으로써 안티조선 운동에 방어막을 형성하려는 전략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하여 친일문학상이라는 본질적인 문제점뿐만 아니라 거대한 자본과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무기로 문인들을 줄 세운다고 비판했다.
친일문학상에 대해서는 오창은이 비교적 설득력 있게 비판했다.3) 친일문학상은 1955년에 제정된 동인문학상, 1982년에 제정된 조연현문학상, 1985년에 제정된 육당시조문학상, 1989년에 제정된 소천비평문학상, 1990년에 제정된 팔봉비평문학상, 2000년에 제정된 이무영문학상, 2001년에 제정된 미당문학상, 2006년에 주요한의 호를 따서 제정된 송아문학상, 2002년 채만식의 호를 따서 제정된 백릉문학상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오창은은 친일 청산이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문학 분야에서 그 당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직접적으로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분야가 아니라 비가시적인 이데올로기의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또한 문단 내부의 인적 관계가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가령 동인문학상의 제1회 심사위원은 9명이었는데, 그 중에서 김팔봉, 백철, 최정희, 이무영, 정비석, 이헌구 등 6명이 친일작가로 구성된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서로 공모관계를 형성해 반성 없이 시행되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고봉준은 이상문학상을 비판했는데, 심사 과정에 문제 제기를 한 것이 눈에 띈다. 평론가 3인과 작가 2인으로 구성되는 심사위원 중에서 평론가가 대부분 특정 대학 국문과 출신이어서 심사 과정에 공정성을 갖기가 힘들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상문학상은 그동안 문학상에 대한 비판들 중 주로 타깃이 되어 왔다.4) 이상문학상이 대중성을 가장 크게 획득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논란과 비판도 지속되어온 것이다. 가령 전정구는 <이상문학상은, 요즈음 작품/상품을 공급/생산하여 소비/수요를 부채질하는 상업주의의 理想文學喪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이 상은 본격문학의 발전이나 공헌이라는 본래의 목적보다는, 구매력을 창출하는 유명메이커의 상표에 불과한 異常文學賞으로 전락했다. (중략) 이 잡지사는 어느 작가의 작품이 우수한가보다는, 어느 작가의 작품이 출판시장에서 구매력이 있는가를 수상 기준으로 삼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253쪽)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박기수도 <1회부터 24회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작품집을 발간하고, 수상작가의 대표작 모음집도 출간하고 있는 문학사상사의 기획 의도는 명백하다. 문학상 수상작품집 발간을 통한 수익 증대가 그것이다.>(193쪽)라고 상업주의를 비판했다. 이상이 남긴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매년 가장 탁월한 작품을 발표한 작가를 표창해 한국 문학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문학상의 취지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이상문학상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선정 과정의 불공정성 문제인데, 이명원은 『파문』에서 2000년 제24회 수상작인 이인화의 「시인의 별」을 예로 들면서 문학상의 운영이나 심사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정혜경은 오늘의작가상을 진단했다. 1976년 민음사가 『세계의 문학』을 창간하면서 역랑 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제정했는데, 성찰의 깊이를 가지지 못한 것은 물론 감각적인 문체로 지탱되는 서사의 통속성을 가진 작품들을 선정한다고 비판했다. 이와 같은 진단은 전정구가 이전에 한 것과 상통한다. 전정구는 <아직 그 성가가 밝혀지지 않은 신인의 작품을 가지고 이 출판사는 장사에 놀랄 만한 흥행을 거두고 있다. 오늘날의 소비자/독자가 제품/작품의 질보다는 작품/상품의 상표를 선호한다는 현실을 출판사는 날카롭게 이용하고 있다.>(251쪽)고 비판한 것이다. 이성욱도 ‘이벤트 마인드’라는 표현으로써 오늘의작가상이 상업성을 추구한다고 비판했다.5)
고명철은 비평문학상을 살폈다. 1990년부터 한국일보사가 주관하고 있는 팔봉비평문학상과 1989년부터 이헌구의 호를 따서 시행되고 있는 소천비평문학상은 친일문학상이라는 점에서, 김환태평론문학상은 문학사상사가 공들이는 이상문학상을 빛내기 위해 동원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주관하고 있는 젊은평론가상은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각각 비판한 것이다.
한편 이경수는 김수영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을 살폈다. 김수영문학상은 1981년 민음사가 제정해 시행해오고 있는데 문학상의 기준이나 원칙이 분명하지 않은 점과 수상 시집이 문학과지성사나 민음사에서 출간한 것에 한정하는 폐쇄성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월시문학상도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아 작품보다는 공로를 감안한 시인 위주로 선정되고 있고, 수상자도 사회 참여의식이 약한 서정시 계열의 시인들이라고 비판했다.
3. 문학상의 지향
문학상은 작가의 업적을 단순히 인정하는 차원을 넘어 권위를 낳는 제도이기에 중요하다. 운영 주체나 심사위원이나 수상자만을 위한 축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상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문학상 자체가 우선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그저 막연한 기준으로 좋은 작품을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 문학상의 취지에 맞는 기준과 색깔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문학상의 차별성이나 다양성 그리고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문학상이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수상자뿐만 아니라 문학상을 수여하는 작고 문인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문학사의 평가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친일 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은 재고되어야 한다. 친일 문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문학상을 제정하고 시행하는 것은 일종의 반역사적인 행위이다. 철저하게 경계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심사위원으로 또는 수상자로 또는 독자로 친일 문인의 행적을 지우는 데 일조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한번 제정된 문학상은 제도나 전통으로 고착되어 문인들에게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경계해야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심사 과정을 포함해 문학상의 운영이 투명해야 된다. 그동안 심사위원들의 심사 과정은 지극히 형식적이어서 문학상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기준을 내세워 주장하거나 대립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문학상을 운영하는 측이 심사위원을 위촉할 때 무난하게 심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인맥으로써 구성하기 때문이고, 심사위원들도 자신의 문단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적당하게 타협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심사평을 보면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수상작을 결정했다고 하는데, 이는 심사 과정이 엄격하지 않음을 오히려 보여주는 면이라고 볼 수 있다.
심사 과정의 공정성 문제는 자본의 논리가 침투되고 있기에 특히 중요하다. 문학상이 상업화되면서 문학 자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으로 변질되고 만 상황을 부인하기 어렵다. 실제로 오늘날의 문학상 권위는 작품 자체나 전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금 액수나 홍보력에 의해 세워지고 있다. 문학상의 상업화는 유명 작가에 의존하는 또 다른 문제를 가져오고 있다. 하나의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다른 문학상을 수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그 여실한 증거이다. 이는 유명 작가를 이용해 문학상의 권위와 상업성을 동시에 획득하려는 운영 주체의 불순한 전략이다. 그에 따라 문학상 본연의 의의가 왜곡되고 마는 것이다. 독자들이 문학상에 기대감을 갖는 이유는 운영 주체나 심사위원들이 인기 있는 작가의 작품을 골라주는 것이 아니라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닌 작품을 발굴해줄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일본의 H氏賞은 좋은 본보기가 된다.
문학상의 심사는 먼저 일본현대시인회의 회원들이 하는데, 전년도에 출판된 시집들을 대상으로 투표해 상위 8위까지를 후보 시집으로 정한다. 심사위원으로 위임된 7인은 회원들의 투표 결과에 포함되지 않은 시집을 한 권씩 더 추천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심사위원들이 모두 추천하는 경우는 없으므로 대개 12권 전후가 심사 대상이 된다. 심사위원들은 후보 시집을 한 달 정도 검토한 뒤 심사위원회를 열어 각자의 의견을 타진하면서 투표를 거듭한다. 수상작을 결정하기까지 총 4회에 걸쳐 투표를 한다. 심사에서 떨어진 시집을 제외시켜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최종 2권을 남겨놓는다. 두 시집에 대해 다시 심층적인 의견을 나누면서 협의를 한 뒤 투표로써 결정한다. 심사위원은 일본현대시인회의 이사회에서 회의를 거쳐 위촉하는데 H氏賞을 수상한 경력이 있거나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시인이어야 한다. 심사위원은 연임이 허용되지 않고 매년 바뀐다.6)
요약된 위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195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H氏賞은 엄격한 심사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 결과 소설 부문의 아쿠다가와상에 비견할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H氏賞이란 명칭 자체가 그와 같은 정신을 담고 있다. H氏賞을 처음 기획하고 기금을 출연한 히라자와 테이지로(平澤 貞二郞)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그리하여 일본현대시인회가 그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히라자와 자신도 시인이었지만 개인의 명예보다 일본 시문학의 명예를 우선 생각한 것이다.
한국의 문학상도 H氏賞과 같은 심사 과정이 필요하다. 두세 명의 예심위원들이 대상을 검토한 뒤 후보 작품들을 본심에 올리면 심사위원들이 정한 날짜에 모여 한두 시간 논의한 후 수상작을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심사 방식이다. 그렇지만 심사 시간이 짧기도 하지만 연장자를 우대하는 관습이 강한 사회에서 마주보고 심사를 하면서 엄정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문학상에 대한 역사성을 인식하고 보다 공정성을 갖도록 노력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1년 내내 문학상을 심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수상작을 결정하기까지 여러 단계로 후보작을 검증해 나가면서 공정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으로 심사가 진행될 때 동료 문인들은 물론 독자들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셋째는 문인들이 지식인다운 신념을 가져야 한다. 문학상의 가장 큰 수혜자는 아무래도 수상자일 것이다. 따라서 수상자는 작가적 혹은 문학적 신념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격을 갖추지 못하거나 자신의 문학세계에 부합하지 않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문인들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 이문구는 타계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건 문학상을 절대로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동인문학상을 받은 것에 대한 일종의 반성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문학관에 부합하지 않는 문학상을 거부하는 것이 작가다운 행동이다. 양심과 용기로써 문학상이란 허명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상을 미끼로 불순한 대가를 요구하거나, 짜고 치는 화투판처럼 정실에 얽힌 문학상 들은 마땅히 거부해야 한다. 문학상의 운영 주체도 수상작을 낼만한 작품이 없다면 타협하거나 왜곡시키지 말고 사실대로 발표해야 된다. 그와 같은 풍토가 마련될 때 각성과 격려와 박수가 넘치는 문학상이 제도로서 정착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팔봉비평문학상의 수상을 거부한 백락청이나 최원식, 동인문학상의 후보를 거절한 공선옥 등이 돋보인다. 권정생의 사례도 귀감이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반달의 윤석중 옹이 여든의 노구를 이끌고
새싹문학상을 주시겠다고
안동 조탑리 권정생 선생 댁을 방문했다
수녀님 몇 분과 함께,
두 평 좁은 방안에서 상패와 상금을 권 선생께 전달하셨다
상패를 한동안 물끄러니 바라보시던
권 선생님 왈
“아이고 선생님요, 뭐 하려고 이 먼 데까지 오셨니껴?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한 게
뭐 있다고 이런 상을 만들어
어른들끼리 주고 받니껴?
내사 이 상 안 받을라니더……”
윤석중 선생과 수녀님들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서울로 되돌아갔다
다음날 이른 오전
안동시 일직면 우체국 소인이 찍힌 소포로
상패와 상금을 원래 주인에게 부쳤다
그 사실을 늦게 알게 된
봉화서 농사짓는 정호경 신부님
“영감쟁이, 성질도 빌나다 상패는 돌려주더라도
상금은 우리끼리 나눠 쓰면 될 텐데……”
―김용락,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6」 전문
위의 작품에서 보듯이 1995년 권정생은 장편동화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로 제22회 새싹문학상 수장자로 결정되었는데,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한 게/뭐 있다고 이런 상을 만들어/어른들끼리 주고 받니껴?>라며 거절했다. 작가가 문학상에 대해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권정생은 1973년 「무명저고리와 엄마」로 등단한 뒤 1975년 한국아동문학가협회에서 제정한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수상했지만, 그 이후 모든 문학상의 수상을 거부했다. 한국아동문학상을 수상한 것도 등단 무렵이어서 아직 작가의 세계관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권정생은 시상식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소감으로 이야기하다가 울었을 뿐만 아니라, 며칠 묵으며 서울 구경을 하고 가라는 지인의 말도 1에서부터 10까지의 숫자 쓰기와 이름 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정신박약아인 칠복이가 기다린다며 물리쳤을 정도로 순박했다. 또한 1980년,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월보가 부끄러운 휴지조각이라며 무사안일하고 비겁한 문인들에게 분노하는 편지를 이오덕에게 보냈을 정도로 강직했다. 그와 같은 양심과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에 2005년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는 어린이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미리 쓴 유고에서 밝혔다. 그리고 2007년 3월 31일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라는 편지를 정호경 신부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뒤 5월 17일 향년 70세의 나이로 타계했다.7)
문학의 본질에 비추어보면 문학상은 무의미하거나 모순적인 제도일 수 있다. 등수를 매기는 것 자체가 서열화를 조장하는 일로 문학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문학이란 고정화되거나 서열화된 질서를 반성시키는 역할을 하는 데 의의가 있다. 따라서 문학 작품을 임의적인 기준으로 등수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렇지만 문학상은 작가의 업적에 대해 격려하고 보상하는 제도로서 사회적으로 필요하다. 인간들이 지혜를 발휘해 만들어낸 문화유산의 한 가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상 자체를 거부하기보다는 제대로 시행해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그리고 인류문화사에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맹문재
시론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지식인 시의 대상애』『현대시의 성숙과 지향』『시학의 변주』, 편저로 『박인환 전집』『김명순 전집』 등이 있다. 현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
첫댓글 교수님, 안녕하셔요? 소중한 자료, 제 카페로 옮겨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