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錢魚)의 계절, 가을이 돌아왔다. 어슷어슷 두툼하게 썰어 담은 전어회 한 접시 놓고 소주 한잔 생각나는 계절이다. ‘가을전어 머리에는 참깨가 서말’이라느니, ‘전어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느니, 고약한 집안에선 ‘며느리 친정 간 사이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느니 하던, 온갖 과장과 해학의 주인공이던 바로 그 전어다. 전어는 다 자라도 고작 25㎝인데 그 머리에 참깨 서말이 당키나 할까만 서유구(1764~1845) 같은 음전한 선비조차 ‘기름지고 맛이 좋아 사는 이가 값을 따지지 않으니 돈고기(錢魚)라 한다’(임원경제지)고 짐짓 풍을 쳤을 정도이니 지금 옛 속담의 사실성을 놓고 왈가왈부할 일은 아닐 것이다.
|
▲ 다양한 전어 요리. 전어에는 두뇌활동을 촉진하고 체지방을 줄여주는 DNA, EPA, 타우린이 풍부하다. |
가을맞이로 전어를 꼭 먹어줘야 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전어는 보기드문 자연산 활어다. 요즘 횟집에 자연산 바닷고기라곤 전어 외에 오징어, 붕장어(일본말로 아나고)밖에 없다. 우럭, 농어, 넙치, 점성어는 말할 것도 없고 참돔, 돌돔, 다금바리, 복어까지 양식산인 데다 ‘잡어 뼈회’가 인기를 끈 뒤로는 도다리, 가자미, 볼락까지 양식하는 세상이다.(노래미는 중국에서 수입해온다.) 전어도 양식이 가능하지만 자연산이 워낙 싸서 채산성이 없다.
둘째, 9~10월은 전어가 가장 맛있는 철이다. 5~7월에 산란을 마친 전어는 월동에 대비해 9월부터 오동통 살이 오른다. 횟집 주방장들은 “7~8월 전어는 기름기가 적고, 11월 이후엔 뼈가 억세진다”고 한다. 국립수산과학원의 성분조사에 따르면 ‘가을전어에는 봄 여름보다 3배나 많은 불포화지방산이 들어 있다’고 한다.
셋째, 전어는 뛰어난 보양식이다. 전어에는 뇌 기억과 학습능력을 향상시키는 DHA, 뇌혈관질환을 예방하는 EPA가 다른 물고기에 비해 월등히 많다. 가을전어 100g에는 DHA가 607㎎, EPA가 119㎎이나 들어 있다. 또한 인체에서 생성되지 않는 필수아미노산이 8종류(이소류신, 류신, 라이신, 메티오닌, 페닐알라닌, 트레오닌, 트립토판, 발린, 히스티딘)나 있고, 콜레스테롤과 체지방을 분해하는 타우린이 풍부하다. 한방에서도 ‘전어는 방광기능을 돕고 장을 깨끗하게 한다’고 했다. DHA와 EPA, 타우린은 열을 가하면 손상된다. 소금구이를 즐기는 이라면 서운하겠으나 어차피 전어는 회와 구이를 함께 즐기므로 상관없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 극동아시아 연안에만 서식하는 청어과 물고기인 전어는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초식어다. 성질이 급해 빨리 죽기 때문에 해안지방이 아니고선 회를 먹기 어려웠다. 그런데 활어 수송차량의 발달로 전어의 장거리 수송이 가능해졌고 3~4년 전부터 서울 사람들이 전어회 맛을 알게 되면서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났다.
서울로 들어오는 전어는 주로 서해산이다. 서천, 군산, 격포항의 어선이 7월 말부터 전어잡이에 나선다. 원래 ‘전어잡이는 처서부터 시작한다’고 했으나 요즘은 더 빨리 조업에 나서는 것이다. 남해산 전어는 국내 제1의 전어시장인 부산, 마산, 울산으로 수송된다. 매년 이맘때면 전어를 가득 실은 활어차들이 고속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어물쩡거리다 전어가 죽으면 제값을 못받기 때문에 과속단속카메라에 찍히든 말든 폭주를 일삼는다. 전어잡이 배와 활어차의 거래는 도박에 가깝다. 수협의 위판을 거친 정식 절차보다 어선과 직접 선불계약하는 탈세 ‘배떼기’가 성행한다. 한 배에 5000만원을 걸면 1억원어치를 잡을 수도 있고 훨씬 적게 잡을 수도 있다.
서해 사람은 서해 전어가, 남해 사람은 남해 전어가 맛있다고 우긴다. 전문가들은 “남해산이 더 맛있고 값도 비싸다”고 한다. 체형이 둥글고 비린내가 없으며 썰었을 때 살이 여물고 불그스름한 전어가 상품이다. ‘삼천포·남해도 전어’를 최상품으로 치는데 유통망이 전국화한 지금 삼천포의 횟집이라도 삼천포 전어가 있다는 보장은 없다.
전어회는 뼈회다. 20㎝ 미만의 작은 전어는 등뼈째로 어슷어슷 썰어서 담는다. 고소한 맛이 뼈에 배어 있기 때문에 전어 애호가는 ‘등뼈썰기’를 선호한다. 20㎝ 이상의 큰 전어는 등뼈와 수평으로 길게 ‘채썰기’를 한다. 배부터 등까지 썰어낸 다음 등뼈는 버린다. ‘전어 초보자’가 주고객인 대도시 횟집에선 거의 채썰기를 한다.
전어회를 맛있게 먹는 비결은 ‘나만의 양념장 만들기’. 된장, 초고추장, 고추냉이(와사비), 참기름, 마늘 다대기를 적절히 섞어 각자 입맛에 맞는 황금비율을 찾으면 된다. 된장이 넉넉히 들어가야 맛있다. 전어회는 싼 만큼 푸지게 먹어야 한다. 한 점씩 오물오물 음미하는 게 아니라 야채에 싸서 털어넣고 크게 씹는 맛이다. 상추보다는 깻잎이 어울리며 얇게 벗긴 양파에 싸서 먹어도 별미다.
그러나 전어 하면 역시 소금구이를 빼놓을 수 없다. 보따리 싼 며느리가 충분히 심란할 만한 요란한 그 향기는 불포화지방산의 연소에서 나온다. 노란 기름이 자글자글 타면서 내장 속까지 파고 든다. 굵은 소금과 양념간장을 적당히 뿌린 다음 숯불이나 연탄불에 천천히 구워야 제맛이다. 오븐에 구우면 맛이 없다. 차라리 프라이팬에 튀기는 게 낫다. 전어는 충분히 익혀서 머리와 내장까지 다 먹는다. 머리가 가장 맛있고 내장이 두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