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밥상
문 남선
시골 밥상’ 듣기만 하여도 정겨움이 가슴 속 깊이 파고드는 단어다. 요즘 서울 근교에서 시골 밥상이라는 상호를 자주 보게 된다. 이 상호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 정확하진 않지만 한 삼년 정도는 되지 않았나싶다.
처음 시골 밥상과 마주한 건 약 2년 전 행신지구에 사는 친구와 함께한 점심때였다. 일 년 남짓한 기간에 친정 부모님 두 분을 모두 여윈 나는 고향을 잃은 듯한 허전함에 자주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그날도 내 허전함을 달래주려던 친구와 문산의 자운서원(율곡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을 들러 귀갓길에 시골 밥상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차창을 통해 논밭 저 멀리 뵈던시골밥상이란 상호만으로도 정겨웠던 기억이 있다.
화려하지 않아도 고향 냄새 가득한 음식들. 한국사람 이라면 누구나 즐겨 먹는 구수한 된장이 상의 중앙을 차지했고, 시골의 5일장을 연상케 하는 장떡도 나왔다. 된장독에서 막 퍼 담은 듯한 누런 막장이 풋고추 두세 개와 조화를 이룬다.
우리집 까페에도 봄이 왔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창박의 햇살 한번 바라보고 화초한번 처다보고...
옆의 독수리는 20여년 전에 간 남동생이 박제해서 만든 겁니다. 동생 생각에 버리지도 못하고
늘 이집 저집 가지고 다닙니다. 아버지 닮아 예술적인 끼가 다분 하던 그 녀석은 손재주가 참 좋았어요.
시골을 고향으로 둔 사람이라면 집 앞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금방 퍼 올린 물이 마치 얼음물처럼 이가 시렸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깊은 땅 기운이 배어있는 우물물에 말은 밥과, 텃밭에서 막 따온 고추를 막장에쿡찍어먹던 시절은 언제 생각해도 정겹고 그립기만하다.
우리의 가난했던 시절 보릿고개를 연상케 하는 꽁보리밥도 나왔다. 강산이 세월 따라 변하듯 먹거리라고 예외일순 없다. 지금은 보리쌀이 쌀보다 훨씬 비싸지만 그 시절의 꽁보리밥은 깊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먼 친척 중 한 분은 쌀밥 먹고 싶은 소망에 돈을 벌기 시작해서 지금은 이름만 대면 다 알 수 있을 정도의 거부가 되신 분도 있다.
일산의 호수공원을 산책하던 어느 날. 남편은<민속촌>이란 한식집을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민속촌으로 가는 도중 시골 밥상이란 상호가 자동차의 핸들을 돌려 버렸다. 남편은 모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듯 불만스런 표정이다. 허나 함께 한 세월이 20년인지라 속내에 변화의 바람이 일거란 것까지 현미경 들여다보듯 꿰뚫고 있는 나다.
고향집을 떠오르게 하는 나물로 가득한 음식 앞에서 남편 표정이 금세 환해진다. 연이어 각종 나물이 조금씩 담긴 그릇들을 하나씩 비워가기 시작했다. 비벼진 내 밥의 반을 남편에게 들어줬지만 그것도 금세 뚝딱이다. 남편은 음식을 먹는다기보다 마치 풀 향기 가득한 추억을 먹고 있는 듯했다.
오른쪽 머리숱이 많은 화초는 재작년 저의 수술과 함께 거의 죽어가던 거였어요.
버리려다가 저게 꼭 내 모습인 것만 같아 기를 쓰고 정성을 드렸어요.
지금의 저처럼 참 싱싱합니다. ^ .^
남편은 호박잎을 무척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자주 해주지 못했다. 먹을 것이 늘 부족했던 시절. 집 앞의 호박 넝쿨에서 뚝뚝 잘라온 호박잎을 쪄서 먹던 추억을 더 즐기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날 이후 남편은 외출 시 식사 때면 언제나 시골 밥상만 찾았다.
어떤 땐 시골 밥상이라는 팻말만보고 막상 들어가면 전혀 새로운 상호의 음식점일 경우도 많았다. 가촌(街村), 고촌(孤村 )……등. 이런 걸보면 시골 밥상이 성업 중인 체인점이란 걸 잘 알 수 있다.
가끔씩 외식을 할 때면 식성과 기호가 다른 아이들과 남편의 의견차로 피곤할 때가 많다. 피자나 샌드위치 햄버거 등에 익숙해진 아이들의 식성은 참 묘하다. 일부러 덜 익힌 듯 피가 뚝뚝 흐를 듯한 스테이크도 곧잘 먹는다. 그걸 먹고 한 번도 배탈이 난 적이 없었지만 늘 남편은 아이들이 탈이라도 날까봐 고기를 뒤적이며 잔소리 반 걱정 반으로 중얼거리곤 했다. 허나 둘이서 음식점을 찾을 때면 우린 거의 의견 일치를 본다. 이런걸 보면 남편이나 나나 토종 냄새 짙은 순 한국 사람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나이 40인 불혹(不惑)에 접어들면서 십년이 주는 세월의 변화를 실감 할 때가 많다. 소위 잘 나가던 기업도 십년동안 계속 성장하기가 어렵고, 개인의 부(富)와 권세(權勢) 또한 십년동안 지속되기 힘듦을 많이 보아 온 터다. 변화의 흐름에 빠르게 편승하려는 기업이 업종전환을 하듯, 개인 역시 심신전환(心身轉換)을 게을리 하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아마 시골 밥상도 음식 기호가 다른 아들의 세대가 경제의 주축이 될 무렵 이면 추억의 음식점이 되지 않을까? 향수 짙은 이곳도 그 때쯤이면 또 다른 향수로 다가올 것 같다. 남편의 식성은 그 때도 변함없을 텐데 말이다. 그 때쯤이면 나는 일부러 재래식 시장을 찾으며 남편이 좋아하는 호박잎을 한 움큼 사서 식탁에 올리며 오늘을 그리워하겠지?
두번째 칸의 6개 화분은 얼마전 남편의 은행에서 가져온 향짙은 허브입니다.
좋은 향을 여러분께 선사할게요. 함 맡아 보세요.
우리들의 추억과 아들의 추억은 판이하다. 롯데월드나 에버랜드 등에서 고속 주행으로 360도 회전하는 청룡열차의 쾌감을 즐기는 것과, 밧줄에 몸을 매단 체 허공에 내동댕이쳐지는 번지 점프의 아찔함을 몇 번이고 느끼고 싶어 했던 일들이 아들의 추억 일 것 이다. 두려움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할 모험들이 그들에겐 추억이겠지만, 우리의 추억처럼 깊고 정겨운 맛이 있을까?
오늘은 10월3일 개천절이다. 일산의 호수 공원을 산책하며 깊은 가을의 정취를 느껴 봐야겠다. 그리고시골 밥상에서 오늘 저녁을 해결해야겠다.
2002년10월3일 새벽
첫댓글 우리집 댄디 까페(앞베란다를 댄디 까페라 부름)의 봄 정경입니다. 햇살이 너무 고와 화초 한번 처다보고 햇살한번 처다보고하다가 이봄을 어떻게 까페에 전할까??? .... 생각하다가 고향 냄새 가득한 시골밥상과 함께 봄을 전합니다. 많이 즐기시고 맛있게 시골 밥상 드셔보세요. 난 지금 무쟈게 즐거워요. ^.^
간판은 자주 보았지만 한번도 들어가 보지는 못했는데, 다음번에는 일부러라도 들려봐야 겠네요...사진 설명이 본문과 혼란을 줍니다.
이선생님 집이 그 쪽과 가깝지 않습니까? 일산의 애니골에 있는 민속집 맞은 편 집입니다. 그 집이 좀 좋더라구요. 요즘은 이 선생님 집 바로 옆에 산이화 있는 쪽, 배밭이 많은 보리밥 집이 훨 나을겁니다. 흐드러진 배꽃의 광경을 황홀하게 즐기며 6000 원의 행복이 얼마나 큰가를 아실수 있을겁니다. 한번 가보세요.
오래전의 글이네요. 6년 세월에 시골 밥상의 메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다음편도 부탁합니다. 찬웅님 말씀처럼 글과 그림이 따로 놀아서 헷갈리기는 하네요. 하지만 슬픈 박제도 느끼고 허브향도 맡았습니다. 발코니를 참 여성스럽게 가꾸었네요. 아쿠아님이, 퍽 사랑스럽습니다.
봄비님! 사랑스럽지요? 저가? 저도 봄비님 사랑스러워요. 진짜에요. 이글을 묻어두고 있다가 베란다의 녹색에 취해 뭘 하나 올릴까하고 생각하다가 글따로 그림따로... 따로국밥 올렸습니다.
시골밥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어릴 때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이 바로 웰빙식단이고 시골밥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도심에서 먹어보는 시골밥상, 꽁보리밥으로 그 시절을 맛 볼 수 있다니... . 두 분의 나들이가 부럽습니다.
저가 보는 회장님도 부러울때가 많습니다. 아직도 정정하게 일하시고 좋아하는 글도 쓰시고 또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낳지 못할 예쁜 따님도 두시고...저와 남편이 이세상에 서로으니 존재를 알앗던 건 제 나이 8살 남편나이 7살때(남편은 7살때 입학했으니가요) 였습니다. 초등 동기동창이 어쩌다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처럼 애인처럼 누나처럼 어떤땐 제 망나니같은 기질탓에 제자처럼... 그렇게 토닥토닥 싸우며 살고 있습니다.
금방 따온 풋고추와 호박잎 쌈이 구수한 된장 맛과 잘 어울리는 시골 밥상 침이 넘어갑니다.
아파트 베란다의 화초들이 너무 예뻐서 한동안 바라보다가 오래 전에 써둔 글을 올리고 싶어졌습니다. 오랫만에 저도 읽고보니 호박잎도 생각나고 풋고추도 생각나고 ..... 다시 한번 그 집을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올 여름에는 저도 시골 밥상을 차려보렵니다. 호박잎. 풋고추, 상추, 쑥갓, 씀바귀 잎, 미나리, 질경이, 곰취 등등. 맛있게 익은 묵은 된장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아쿠아님을 유혹할 수 있겠지요?
가고싶어! 들미골.... 곰취! 얼마나 맛있을까? 질경이는 또 어떻고... 들미골 햇살담은 된장은 또 어떻고.. 먹고 싶어! 풍실이도 그 맛난 된장 먹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겟네요? 들미소님! 우리 풍실이 많이많이 이뻐해 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