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철민님. 정말 반갑습니다. 참으로 오랜 만인데 그동안 주님 안에서 잘 지내셨는지요?
님의 질문 잘 보았습니다.
님은 "예배에서 <혼인예배>라는 말이 올바른가요?"라고 질문하면서 "제 견해로는 결혼식은 신랑신부가 주체가 되어 하나님께 약속하는 의미로 본다면, 혼인예배라는 용어보다는 '혼인예식' 이라는 말이 더 맞는 표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라고 자신의 견해를 밝혀주셨습니다.
과연 님이 알고 있는 대로 그렇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혼인을 함에 있어서 예법에 따라 갖는 의식(儀式)이기에 '혼인예식'(또는 혼례예식, 결혼예식)이라고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혼인식'(또는 혼례식, 결혼식)이라고도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나라 교회적 실정에서는 이 '혼인예식'을 '혼인예배'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사실 개혁교회를 이루는 분들 중에서도 혼인예식은 예배로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기까지 하는 실정입니다. 그것은 혼인예식은 신랑 신부 두 사람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로부터 짝지어 주심을 받는 사실에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그 신랑 신부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서약을 해야 하는데, 이 서약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서약으로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르러서 첫째로 하는 일은 경배, 곧 절하는 것인 까닭에 예배로서 심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예배'란 말을 사용할 때는 '공예배'(公禮拜)의 개념에서 인데, 이는 온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여 그의 한몸을 이루고서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것에서입니다. 그러니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신랑 신부의 신분과 위치에서 하나님 앞에서 서약을 하고자 하는 의식(儀式)을 치름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께 경배의 행위를 갖는다고 하여서 '예배'의 성격을 띨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 혼인예식에 참여하는 성도들의 모습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서의 신분이 아닌 서약의 의식을 치르는 신랑 신부 두 사람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하객'의 신분입니다. 하객들이 비록 혼인예식에 의해서 찬송을 부를지라도 그 찬송은 예배 찬송이 아니며, 또한 목사가 성경을 낭독하고 신랑 신부를 위해서 그리고 하객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할지라도 이는 혼인과 관련한 교훈적인 권면인 것이지 교중(敎衆, 또는 會衆) 설교는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이 혼인예식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기념하고 교회원의 가입을 받아들이는 성례전이 집행되고 있지도 않습니다. 예배 의식에 있어서 다른 것은 차치하고 이 몇 가지만 생각할지라도 분명 혼인예식은 공중적(公衆的)인 교회 예배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를 않습니다. 사실 공예배 분위기와 혼인예식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결코 혼인예식에서 예배 분위기를 내거나 느낄 수는 없습니다.
과거 카톨릭은 혼인을 '혼배성사'(婚拜聖事)라고 해서 예배적 개념을 가졌었습니다. 그리고는 성례전의 하나로 다루었었습니다. 그렇지만 개혁교회는 혼인을 치르는 예식을 교회의 형제와 자매 곧 믿음의 가족이 교회 안에서 갖는 일이기에 거룩한 예식으로 생각을 합니다만 예배로 다루지 않으며 또한 성례전으로 다루지도 않습니다.
님이여!, 지금 우리네 교회적 실태는 믿는 자의 혼인에 관해서만 예배란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무분별하게 예배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책을 내면서도 '출판 기념 예배'를 드리고, 사람의 장례(葬禮)를 치르면서도 '장례예배'(임종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를 드리고, 교회의 직분을 임명받는 예식을 치르면서도 '임직예배'를 드리고, 한 교단의 총회장이나 교단협의회 등과 같은 단체에서 회장으로 선출되었다고 해서 '(총)회장 당선 축하예배'를 드리고,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해서 '박사 학위 취득 감사예배'를 드리고, 가게를 내어 개업을 하면서도 '개업예배'를 드리고, 집을 이사하고서도 '이사예배'를 드리고 이런 저런 감사할 일이 있어서 '감사예배'를 드리는 등 등 참으로 온갖 것에 '예배'란 말을 갖다 붙여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고인(故人)을 추도(追悼)하는 자리에서까지 '추도예배'라고 말하고 있으니 마냥 할 말을 잃습니다.성도들이 몇 사람이든 모임을 갖고 찬송하고 성경을 낭독하고 그 뜻을 알게 해 주고 권면하면 어떤 모임의 성격이든지간에 무조건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성도가 교회로서의 한몸을 이루어서 그 몸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면 '예배'란 말을 사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행위를 가지며 그 모습으로 있는 것은 한 개인이든, 또는 두 세 사람이나 몇 사람으로서 이든, 그 이상의 사람에게서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는 자세와 태도를 갖는 것으로서 말입니다. 이런 자신에 대하여 '하나님을 예배(경배)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예배(경배)는 공예배로서의 예배(경배)와는 분명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자들이 교회를 이루고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교회적으로 치러야 할 어떤 예식이 있어서 그 예식을 예배시에 가질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 예식이 예배는 아니며, 예식은 예배와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예식으로서는 성찬식과 세례식의 성례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교회 직분의 임직식(또는 취임식)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교회 직분의 임직식(또는 취임식)을 교회 예배시에 가질 수 있는 것은, 임직(또는 취임)을 받는 분과 교회의 상호 관계에 대한 이해 때문입니다. 직분자는 교회의 부름을 받고 그 교회를 받들어 섬기는 봉사자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들이 다 모여 연합할 수 있는 날은 주일입니다. 교회의 성도들은 주일에 다 함께 모여 연합하게 되고 그래서 그리스도[교회]의 몸된 것을 가시적으로 나타내어서 예배하는 때에 교회의 부름을 받은 자에 대한 임직식(또는 취임식)을 갖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주일이 아닌 주중의 어느 한 날에 임직식(또는 취임식)을 갖게 되면 상당수의 성도들이 불가피하게 참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온전한 그리스도[교회]의 몸의 상태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참조; 허순길, 개혁교회의 목회와 생활, p.39). 그러나 교회 직분의 임직식(또는 취임식)일지라도 현재의 우리네 교회적 상황에서는 주일 예배시에 가질 수도 없는 실정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네 교회가 임직식(또는 취임식)에 갖는 분위기는 자신과 관련 있는 모든 자들을 초청하여서 축하를 받고 축하를 하는 자들을 잘 대접하고자 하는 것이기에 여기에는 믿는 자들만이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도 참석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교회가 그렇지 않고 교회 직분의 임직식(또는 취임식)을 교회의 속성과 정체성 속에서 치른다고 하면 사실 주중의 어느 한 날 보다는 주일이 가장 합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예식으로서는 주일 예배시에 가질만한 것이 없습니다. 믿는 자의 혼인예식이나 장례예식조차 주일 예배시에 가질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가족이 갖는 교회적인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것은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아닌 믿지 않는 자도 다 함께 초청을 받아서 참석하기 때문에 교회의 속성을 띠고 교회의 정체성을 보여나갈 수 없는 사실 하나만 놓고 생각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님이여!, 이제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겠습니다. "예배(禮拜)와 예식(禮式)은 다르며, 따라서 그 용어에 맞게 말하고 또한 그 용어에 맞게 사용해야 합니다. 예배에서 '혼인예배'는 올바르지 않습니다. 혼인과 관련하여서는 '혼인예식', '혼인식'이라고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