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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공인회계사 부부 사시도 합격
"아내의 합격에 제 외조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웃음)
"글쎄요….기억이 없는데…. 내년 2월 태어날 아기에게 좋은 선물을 한 것 같아 기쁩니다."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2년의 차이를 두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박성훈(朴晟燻.30.(左)).심현지(沈賢芝.30)씨 부부. 남편 朴씨는 1999년에, 아내
沈씨는 올해 합격했다.
沈씨는 로펌(법무법인)인 김&장에서 회계 업무를 담당하다 법률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사법시험에 도전,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沈씨의 합격으로 공인회계사 출신의 첫 여성 법조인이 탄생하게 됐다. 아내의 합격에
화답이라도 하듯 다음달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는 朴씨가 검찰을 지원한 연수원생 가운데 1등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91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두 사람은 공인회계사 시험준비를 하면서 교제를 시작, 대학 4학년 때인 94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나란히 합격했으며 97년 결혼했다.
입덧에 시달리면서 지난 6월에 치른 사법시험 2차 시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沈씨는 "출산 예정일이 사법연수원 입소일(내년 3월) 전후여서 걱정된다"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朴씨는 95년 서울대 경영학과 가을학기 졸업생 중 수석을 차지했으며 이후 서울대 법대에 편입, 대학원에 진학했다. 沈씨는 경영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법대에 편입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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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재 일 : 2001년 12월 08일 중앙일보
[사람 사람] 해사·공사, 여학생이 수석
내년도 해군사관학교와 공군사관학교의 신입생
합격자 발표 결과 여학생이 처음으로 나란히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
7일 발표된 2002년도 해사 60기 신입생 합격자 2백명 중 강경(姜景.19.충남 용남고3.왼쪽)양이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
姜양의 아버지는 해군본부 인사참모부에 근무 중인 강희각(姜熙珏.43.해사 36기)중령. 이에 따라
첫 해사 부녀(父女) 동문이 탄생하게 됐다.
姜양은 "바다를 지키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기 좋아 해사에 지원했다"며 "자원의 보고인
바다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버지 직업 때문에 20여차례나 이사를 다녀야 했다는 姜양은 "21세기는 해양의 시대"라며 "전투함장이 돼 바다를 누비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함께 입학한 동기생과 함께 내년 1월 12일부터 5주간 가입교, 혹독한 기초 군사훈련을 받는다.
한편 이날 공군사관학교 입시에서도 황은정(黃垠晶.18.울산 현대청운고3.오른쪽)양이
여학생 20명을 포함한 합격생 2백30명 중 전체 수석을 차지해 `여성파워`를 실감케 했다.
김민석 기자 <kim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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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재 일 : 2001년 12월 07일 중앙일보
변리사 합격자 발표…
수석·최연소 모두 여성
특허청(http://www.kipo.go.kr)은 7일 제38회 변리사시험 최종 합격자 2백명을 발표했다. 이번 시험에서 장수영(25.이화여대 제약학과 졸)씨가 72.38점으로 수석 합격했으며, 나은설(22.연세대 영문과4)씨가 최연소 합격했다. 최고령 합격자는 이원수(45.서울대 경제과 졸)씨다.
올해 변리사 시험에는 8천7백51명이 응시했다. 경쟁률 44대1.
합격자 중 여성은 25%(49명), 이공계 대학 출신은 95%다. 이들은 1년간 실습과정을
거쳐 변리사로 활동한다. 042-481-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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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재 일 : 2001년 11월 13일 중앙일보
환경미화원 아들이 지방고시 수석 합격
올해 제7회 지방고등고시(행정직)에서 구청 환경미화원의
아들이 수석합격을 차지했다.
대구 중구청 환경미화원 박장식(55.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씨의 장남 희준(28)씨. 朴씨는 전국의 최종합격자 23명 중
최고점(59.66점)을 얻었다. 대구 지역에서 유일하게 합격한 그는 1999년 9월 경북대 무역학과를 3학년으로 중퇴한
뒤 지난해 지방고등고시에 처음 도전, 0.2점 차이로 낙방했다.
朴씨는 "더욱 노력해 모범 공무원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기환 기자 <einba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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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재 일 : 2001년 11월 02일 중앙일보
64세 만학도 대학 수석합격 화제
“항상 공부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는데 이제 한번 해봐야죠.”
올해 계명대 수시모집에서 경영학부에 합격한 황보노(皇甫魯)씨는 여러모로 주변을 놀라게 했다.
4년 전액장학금이 주어지는 인문계열 수석합격자.재수생이나 고3쯤이겠거니 싶지만 놀랍게도 64세로 이 학교 합격자
중 최고령이다.그것도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현역 건설업체(신태양종합건설) 사장이다.
고령자 특별전형에 응시한 수험생이 면접·검정고시 성적
등을 총평가한 결과 인문계열 수석으로 확인되자 학교측도
놀라워했다.
“시간 나는 대로 책과 씨름했을 뿐 수석은 꿈도 못 꿨어요.” 그의 소감을 들으면 ‘아하,내 이웃이었구나’싶은 마음이 느껴진다.
皇甫씨는 지난해까지도 최종학력이 ‘1950년 대구시 동구
해안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다.초등학교 졸업하던 해 경북중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포기했다.4남1녀중 막내이던 皇甫씨는 2명의 형과 1명의 누나가 일찍 세상을
떴고,둘째형은 군복무를 하고 있어 사실상 가장 노릇을 해야했던 것.
“언젠가는 나도 학교에 갈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하면서도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13세 때부터 70대에 접어든 부모를 모식기 위해 날품팔이 ·산나물캐기 등 안해본 게
없었다.공사판 등을 쫓아다니며 도장공사 등을 배우다 1970년에는 건축시공 자격증을
땄고 지난 92년에는 자신의 건설회사인 신태양종합건설㈜을 차렸다.
皇甫씨가 공부를 시작한 것은 지난 1월10일.
皇甫씨는 “1남3녀의 자식들도 다 컸고 이제는 한맺힌 공부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7명의 손자 ·손녀를 둔 할아버지 수험생인 그는 시간나는 틈틈이 책을 들여다보고 학원수강도 했다.그로부터 불과 석달만에 중졸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지난 8월에는 고졸
검정고시까지 합격했다.이어 불과 또 두달만에 이번에 대학 장학생이 된 것.
“그동안 건설현장만 뛰어다니다 보니 한계를 느낄 때가 많았어요.대학에서 이론을 다져 훌륭한 경영인이 되겠습니다.”
대구=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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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재 일 : 2001년 08월 28일 중앙일보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수석졸업
`나이지리아 아줌마`
"한국인 동료들과 교수님들의 은혜를 수석졸업으로 갚고 싶었습니다. "
지난 25일 이화여대 후기 졸업식에서 국제대학원 졸업생 대표로 졸업장을 받은 나이지리아의
그레이스 아파비오(37.사진). 개발협력 분야를
전공, 평점 4.13(만점 4.30)으로 수석졸업을 한
네아이의 엄마다.
정부의 여성 관련 기관에서 일하다 1999년 월드뱅크 장학금 프로그램에 응모해 한국유학을 왔다.
두고온 아이들 생각에 처음 몇달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는 적극적인 연구활동으로 한국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따뜻한 사람들` 이라는 한국민에 대한 생각이 고마움으로 바뀐 건 지난해 10월. 갑자기 모국의 친동생이 사고로 숨지면서다. 귀국할 여비가 없어 발을 구르던 그에게 한국의 스승과 친구들이 모금운동을 해 2백여만원을 마련해줬다. "덕분에 고국에 돌아가
조카들에게 생활비까지 보태줄 수 있었다" 고 그는 말했다.
`여성이 정치 결정의 위치에 올라가기까지 장애요인에 대한 연구` 란 석사논문을 쓴 그는 "귀국하면 한국과 관련된 일을 맡아 한국민에게 보답하고 싶다" 고 말했다.
홍주연 기자 <jdre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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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재 일 : 2001년 05월 08일 중앙일보
재소자들이 고입검정고시 수석 휩쓸어
대전 ·충남지역의 올해 고입 검정고시 수석은 재소자들이 휩쓸었다.
시 ·도교육청이 8일 일제히 검정고시 합격자를 발표한 가운데 총 응시자 3백35명 중
2백32명이 합격한 대전의 경우 대전교도소 재소자 閔모(24)씨가 8개 과목 모두 1백점으로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
중학교 2학년을 중퇴,21살 때 살인 미수죄를 저질러 7년형을 선고받고 3년째 복역중인
그는 “지난 1년간 매일 4시간만 잠자고 공부했다”며 “앞으로 고졸고시및 학사고시(전산학)를 끝내고 출소하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재소자 89명 등 총 2백2명이 합격한 충남의 경우 대전교도소 논산지소 재소자 崔모(26) ·李모(35) ·金모(34)씨가 각각 평균점수 99.5점으로 공동 수석의 영예를 안았다.
대전=최준호 기자 <choi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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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재 일 : 2001년 02월 27일 중앙일보
서울대 졸업식 여인천하?…수석·차석 싹쓸이
올해 서울대 졸업식에서 공동수석, 공동차석을
모두 여학생이 차지했다. 사범대 이진주(23.여.국어교육)씨와 생활과학대 최새은(26.여.소비자아동)씨가 평점 4.3점 만점에 각각 4.21점을 받아 공동으로 수석졸업의 영광을 누렸다.
각각 4.20점을 받은 인문대 김의영(22.여.영어영문)씨와 자연대 윤하얀(23.여.분자생물)씨는
공동차석을 차지했다.
이와 함께 16개 단과 대학중 11개에서 여학생들이 수석으로 졸업했다. 서울대는 26일 오후 제55회 학위수여식을 열어 학사 3천2백17명, 석사
2천1백63명, 박사 4백53명을 배출했다. 1987년
경찰의 물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당시 언어학과
3년)씨에게도 명예졸업장이 수여됐다.
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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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재 일 : 2001년 02월 19일 중앙일보
공무원이 4년제 대학학부 `수석차지` 화제
공무원이 4년제 대학 학부의 수석을 차지,화제가 되고있다.
경북 포항시 재무과 직원 편도창(片度昌 ·39 ·세무 7급)씨는 경주대 경영학부(세무회계학과)졸업생 90명 중 영예의 수석을 차지,지난 15일 열린 학위수여식에서 대학설립자 상을 받았다.
1981년 6월 행정직 9급으로 공직을 시작한 그는 93년 세무직으로 직렬을 바꿨으며 97년 세무실무와 이론을 겸비하기 위해 선린대 세무회계학과(야간)에 입학했다.
99년 선린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다시 경주대
세무회계학과(야간)3학년에 편입했다.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직장생활을 하면서 공부할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실무를 터득한 것이 이론 공부에 큰 힘이 됐다.
그의 향학열은 여기서 식지 않았다.그는 세무회계 분야를 더욱 심도있게 연구하기로
작정,이번에 위덕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는 99년 경북도가 주관한 지방세 업무 연찬회에서 ‘과점 주주의 간주 취득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 방안’이라는 연구논문을 발표,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片씨는 “올해 초등학교 2학년과 유치원생이 되는 두 딸에게 항상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을 뿐”이라며 쑥스러워 했다.
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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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재 일 : 2001년 01월 04일 중앙일보
[사람사람] 구두 닦으며 특차 합격한 주승용군
"평범한 가정을 가진 친구들보다 조금 더 부지런했을 뿐이예요. "
전남 나주시 동신대 한의예과에 특차 합격한 소년가장 주승용(朱承龍.19.광주 석산고3년)군은 "친구들에게 비밀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다" 고 말했다.
朱군은 청소년 보호시설인 광주직업소년원에서 방학 때면
구두를 닦으면서 틈틈이 공부를 해왔다.
초등학교 5년 때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여읜 朱군은 이후
개인이 운영하는 보호시설에 떠맡겨졌다. 유일한 혈육인
세살 아래 여동생도 고아원으로 옮겨갔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朱군은 방학 때마다 매일 함께 생활하는 형들을 따라 구두통을 메고 거리로 나섰다.
어린 마음에도 하루빨리 일을 배워 책값이라도 보태야 겠다는 욕심에서였다.
청소.빨래뿐 아니라 설겆이도 스스로 해야 해 늘 시간이 부족했지만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었다.
학원 한 번 가보지 못했지만 중.고교 시절 내내 반에서 10등 안에 드는 실력을 유지했다.
지각 한 번 하지 않고 애써 밝은 모습을 보여 같은 반 친구들도 朱군의 어려운 환경을
짐작조차 못했다.
朱군은 "부모없는 아이라는 말을 들을까봐 나 자신과 동생에게 엄격할 수 밖에 없었다"
며 "동생이 전화로 보고 싶다고 울 때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고 말했다.
한의사가 돼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고 싶어 한의예과를 선택했지만 막상 3백여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마련하기가 막막해 진로를 놓고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구두를 닦느라 6년째 드나들었던 광주지방국세청 직원들이 이같은 소식을 접하고 2백55만원을 모아 줘 결심을 굳히게 됐다.
朱군은 "따뜻하고 밝은 세상을 보여준 주변 분들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더욱 열심히 공부하겠다" 고 다짐했다.
광주=천창환 기자 <chunc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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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재 일 : 2000년 12월 19일 중앙일보
수능 충남수석 문미정양 학자금 '고민'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충남지역 수석을 차지,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태안고교 문미정(文美貞.17.태안군 남면 신장리)양이 학비가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이번 수능에서 3백98.5점을 얻어 충남 수석의 영예를 안은 文양은 지난 10월 학교장
추천 수시입학전형으로 서울대학교 인문학부에 지원했다. 文양은 수능 전체 성적 상위
10%에 들어 수능 발표일인 지난 12일 합격이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재산 한푼 없는 생활보호대상자인 文양의 아버지 제부(65)씨는 노동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오다 고혈압과 당뇨로 2년전부터 집안에 몸져 누웠다.
이 때문에 어머니 이윤래(58)씨가 지난해부터 공공근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文양가족은 친척 소유의 허름한 슬레트 집(20여평)에서 살고 있다.
1남3녀중 셋째인 文양의 큰 언니(25)는 2년전 결혼했고 둘째 언니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남동생 막내는 태안 서남중 중학교 1학년에 재학중이다.
文양은 어머니가 공공근로활동으로 모은 돈 50여만원과 나머지는 친척들로부터 빌려
대학등록금(1백20여만원)은 간신히 납부했다. 하지만 대학재학중 필요한 나머지 학비를 마련할 대책이 없어 밤잠을 설치고 있다.
지난해 한 중앙일간지 추최의 독후감 공모에서 동상을 수상할 정도로 글솜씨가 뛰어난
文양은 고고미술사를 전공해 학자가 되는 게 꿈이다.
文양은 "가정형편은 어렵지만 학비를 벌어서라도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 고 말했다. 태안고교 041-675-8183~5.
태안=김방현 기자 <kbh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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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재 일 : 2000년 11월 18일 중앙일보
[사람사람] 박부리씨 한국전통문화학교 수석
"10여년이 지나 다시 수험공부를 하려니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려는 의지로 버텼죠."
올해 두번째로 신입생을 뽑은 충남 부여 소재 한국전통문화학교(4년제.총장 金秉模)입시에서 수석을 차지한 박부리(朴富利.31.대전 서구 탄방동)씨.
그녀는 13년전 공주사대에 수석 입학했던 전직 여교사로,
현재는 대전에서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영어 개인교습을
하고 있다.
모두 1천2백명이 응시(모집 1백명)한 가운데 올해 신설된
전통건축.조경학과군을 지원한 朴씨는 1천1백점(필기 8백.내신 3백점)만점에 1천31.2점을 얻었다.
1987년 충남여고를 수석 졸업한 그는 성적으로는 서울에 있는 일류대에 충분히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4남매 집안의 맏딸로서 넉넉치 못한 가정형편을 감안, 평소 꿈꿔온 시골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공주사대 영어교육과에 진학했다.
92년 3월 논산 노성중 교사로 첫 교편을 잡은 朴씨는 하지만 동료 교사와 학생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 3개월만에 사표를 냈다. 특별한 생계대책도 없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스스로 그만 둔 것이다.
"몸이 약해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었는데다 교사라는 직업이 당초 생각했던 것처럼 보람을 느끼기가 어려워 결단을 내렸던 거죠. "
과외강사로 생계를 꾸리던 朴씨는 우연히 전통문화학교가 생겼다는 신문 보도를 본 뒤
문화재 전문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중학교 교사' 에서 '고교 수험생' 신분으로 돌아간 그녀는 지난 두달간은 과외교습도
그만둔 채 교과서와 씨름해 영광을 차지했다.
미혼인 朴씨는 "결혼보다도 공부를 계속해 문화재 전문가가 되고 싶다" 고 포부를 밝혔다.
대전=최준호 기자 <choi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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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12월 28일 한겨레신문
사시 최고령합격 송병춘씨 굴절많은 인생역정
2번의 옥살이와 2년의 수배생활, 신문보급소장과 노동자신문 편집국장, 그리고 사법고시 최고령 합격.
27일 발표된 사법시험 최고령 합격자 송병춘(46)씨의 굴절많은 인생 역정이다.
서울대 교육학과 73학번인 송씨는 대학 2학년 때 유신철폐 운동을 하다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첫 옥살이를 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노동운동에 투신해 노동자로 변신했다. 1981년에는 `민주노동자연맹 사건'에 연루돼 다시 2년여동안 옥살이를 했고, 86년에는 민주헌법쟁취투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2년 남짓 수배되기도 했다.
이후 88년에 창간된 <한겨레신문> 신림동 보급소장을 하기도 한 그는 92년까지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등에서 활동하다 전업운동가로서의 생활을 접고 <주간 노동자신문> 편집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다시 공부에 뜻을 두고 97년 서울대에 복학한 그는 남들이 퇴직 이후를 걱정할 `불혹'을 훨씬 넘긴 나이에 법률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는 “공부가 감옥살이 보다 더 힘들었다”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송씨는 내년 3월부터 시작되는 연수원 생활에 대비해 벌써부터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학회나 자치 모임을 만들 구상에 바쁘다. 변호사가 되면 지역사회에서 주민들을 위해 무료 변론활동을 하겠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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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재 일 : 2000년 08월 12일 중앙일보
[사람사람] 교육에세이 '희망은…' 출간한 서진규씨
"미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자기 엄마를 닮겠다며
굳이 장교의 길을 선택한 제 딸 성아는 제 삶의
첫번째 증거였습니다. 동시에 가슴벅찬 감동인
것도 분명합니다. 어렵게 성아를 키운 얘기를 정리한 이번 교육 에세이가 우리 모녀를 자화자찬하려는 것일 순 없습니다. 한국의 많은 부모님들을 위해 제 경험이 도움이 될까 싶은 마음, 그런
것이죠."
꼭 1년 전인 지난해 여름 서점가에서 25만부가
팔렸던 자전 에세이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의 억척 주인공 서진규(52.여.미 하버드대
대학원 박사과정)씨가 다시 신간을 내놓았다.
모녀 사이의 '릴레이 인간승리' 를 담은 '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 (푸른숲). 원고 정리와
편집과정을 지켜보기 위해 지난 6월부터 서울
강남의 올케 집에 묵어왔던 그는 걸걸한 목소리에 에너지 넘치는 표정이었다.
실제로 이번 책은 '잘나가는 모녀의 성공담' 이상의 감동을 준다.
미국 예비역 소령인 徐씨는 본래 경남 동래 출신의 엿장수 딸. 부모 따라 이사한 충북
제천에서는 '술집 딸' 소리를 듣기 싫어 서울에 올라와 가발공장 여공생활을 했다.
다시 19세때 미국에 식모살이하러 건너가 식당 웨이트레스 생활까지 거쳤다.
그의 딸 성아씨는 두 번의 이혼을 했던 徐씨의 품에서 어렵게 자란 결손가정의 자녀였던 셈이다.
이번 신간에서는 초등학생 성아가 심각한 언어장애에 꼴찌를 도맡았던 문제아였음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다.
"저는 형편없는 성적표를 들고 온 딸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도 없었죠. 제 고민은 부모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고 '너의 목표에서 눈을 떼지
말라' 고 기회가 날 때마다 일러줬을 뿐입니다."
책에서 그려지는 자녀교육의 메세지를 '는 설득력이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아이는 부모의 작품' 이라는 것. 徐씨는 30년 가까운 외국생활이
믿어지지 않는 매끄러운 문장으로 딸 아이가 문제아에서 '반듯한 인성구조를 가진 책임질 줄 아는 성인' 으로 자라는 과정을 차분하게 펼쳐놓고 있다.
20년 군생활을 마치고 1996년 전역한 徐씨는 현재 국제외교사를 공부하고 있다.
조우석 기자 <wow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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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재 일 : 2000년 08월 05일 중앙일보
[사람사람] 민족사관고 졸업 후 MIT 진학 허동성씨
"7년 전 MIT 앞에서 찍은 사진은 반드시 이 대학에 들어가겠다는 저 자신과의 약속이었습니다."
지난 2월 민족사관고교를 졸업한 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입학하기 위해
18일 출국하는 허동성(許東星.20)씨. 許씨의 책상머리엔 늘 초등학교 6학년 때 MIT 캠퍼스에서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달 뒤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미국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하고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한 어머니의 결정이었죠. "
그 때가 초등학교 3학년인 1990년. 하지만 어머니가 생계를 맡은 탓에 늘 혼자였던 그의 생활은 점차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성적도 떨어졌다. 3년 뒤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다시 미국여행에 나섰고, MIT에 다녀온 뒤 그의 목표는 결정됐다.
"어머니는 과학고에 가길 원했지만 결국 제 뜻을 꺾지 못하셨죠. 미국 대학 준비반인
'아이비 클라스' 가 있는 민족사관고에 들어가 제 꿈을 향해 한발짝씩 다가갔어요. "
미국 대입시험인 SAT 준비는 물론 미 고교와 대학 교재로 공부해 온 그에게 '한국에
있다' 는 점은 별 제약이 되지 못했다.
그가 지난해 국제 물리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받은 것도 MIT행에 한 몫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생각도 호기심도 많았어요. 세숫대야에 물을 채운 뒤 거울을 가지고 무지개를 만들려고 애도 써봤고, 소설 '개미' 를 읽은 뒤에는 뒷동산에서 개미집만 파고 다녔죠. 그렇게 혼자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이 창의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
벌써부터 대학교 친구들과 e - 메일을 교환하는 데 여념이 없는 許씨는 집에 컴퓨터가
없어 PC방에서 살다시피 한다.
그는 "이달 중순에 시작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 중 '리더십 코스' 가 가장
흥미로울 것 같다" 며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
순수과학이 너무 좋아 서울대 의대 특별전형에 합격했음에도 결국 당초 소망대로 과학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 許씨. 그는 "대학에서 응용과학까지 폭넓게 공부해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가 되겠다" 며 "민족사관고에 있는 '노벨상 좌대' 의 주인공이 되는 게 꿈"
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글〓하현옥, 사진〓조용철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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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재 일 : 1999년 08월 27일 중앙일보
[서울대 후기졸업] 17살 입학…수석졸업 이윤조씨
중학교 졸업 때부터 줄곧 수석을 차지했던 한 여학생이 이번엔 서울대 단과대 수석졸업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 92년 17세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이윤조 (李侖祚.24.여.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마두1동) 씨. 오는 30일 서울대 법대를 수석졸업하는 李씨의 '수석 행진' 이 시작된 것은 89년부터.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대치중 1학년에 편입한 뒤 부족한 한국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3년간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전교생 8백72명 중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李씨는 같은 해 경기여고 입학 배치고사에서도 8백55명 중 수석을 차지한 데 이어 92년 졸업식에서도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대입에서도 3백20점 만점에 3백12점을
받아 서울대 법대에 인문계 수석으로 합격했다.
대학생활에서도 李씨는 공부에 남다른 소질을 발휘했다.
아버지 이재석 (李載錫.56) 씨가 캐나다로 부임함에 따라 1학년 2학기에 휴학계를 낸
뒤 92년 9월 토론토대에 성적우수 장학생으로 입학한 李씨는 95년 정치학 학사로 조기졸업을 하면서 '최우등 졸업자' 상을 받았다.
토론토대 재학 3년간은 물론 95년 서울대에 복학한 뒤 졸업할 때까지 줄곧 성적우수자로 장학금을 받아 李씨는 7년간 돈 한푼 내지 않고 대학생활을 마치는 진기록을 세웠다.
사법시험 2차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李씨는 "앞으로 한국에서 변호사 경력을 쌓은 뒤
유엔.IMF.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에 취업, 국익을 대변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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