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전주입니다.
서진원군 축하연 참석겸 어머님댁 문안인사겸 해서 지난 금요일 밤
심야버스를 이용해 내려와 이틀째 전주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지난 대천 한화콘도 회동 이후 2주만에 많은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축하연의 주인공인 서진원군
(서울보다는 가깝지만) 멀리 광주에서 올라온
임덕니, 김오이, 윤자, 권병엽, 김종섭, 김창해,
광주생활을 정리하고 이제 막 서울에서 새로운 사업을 준비중인 신광수,
전주지역 파수꾼 노정환, 임선택, 최영순, 김승곤, 황종기, 이강열, 김성기,
강태원, 박기철, 박상만, 김미자, 정분이,
수도권 축하사절단 정동일, 김운석, 그리고 나
(혹시 기억력의 한계로 나열하지 못한 친구들이 있거들랑 이해를...)
진원군의 축하연은 정확히 12시에 시작되었습니다.
축하선물을 마련하느라 동일·운석과 나는 조금 늦은 12시 10분경에 도착했습니다.
식장 입구에는 '구삼회' 명의의 축하 화환과 동일군이 보내온 화환 외 몇개의 축하화환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고 작은 테이블위에는 하객들의 축하메시지가 담겨진 낙서판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식장에 들어서니 승곤군의 사회로 축하연은 이미 시작되고.....
1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연회석은 우리 친구들이 1/3의 좌석을 차지한 가운데
매우 즐겁고 흥미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본행사 후 기념사진과 식사를 마친 하객들은 즐거운 여흥시간에 돌입하게 되고.....
그동안 수차례 만남의 기회를 통해 이미 노래방기기에 익숙한 친구들은
전체 분위기를 압도하면서 제2의 '대천파티장' 분위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오후 4시에 이르러 연회장소를 대여한 사장님의 간곡한 요청으로
아쉬운 연회장소를 빠져나온 우리 일행은 김창해 목사님이 운전하는
광주팀을 보내기 위해 주차장에 모였습니다.
이미 한무리(금창초등출신 일행)는 초등학교 은사님을 모시고 제2의 장소로
먼저 빠져나갔고.....
제2 광란의 파티를 의식한 '잔류파'와
원만한 가정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回家派'로 나뉘어
심각한 내분이 발생한 광주팀을 아쉬운 마음으로 돌려보낸 서울팀 일행은
4시간 가까이 쏟아버린 양기를 보충하기 위해 근처의 남원추어탕으로 향했습니다.
추어탕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 동일군의 핸드폰이 울리는데......
심각한 내분에 휩싸였던 광주팀이 고속도로 입구에 이르러서도
원만히 수습되지 못한 내분은
결국 그 작은 내분이 심화되어 4/6가 되돌아오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남원추어탕에서 재 합류한 서울ㆍ광주 연합팀은 추어탕 한그릇으로 영양을 보충한
뒤 다시 또 노래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앞서 떠났던 전주팀(금천초등 팀)의 합류로 다시 또 20여명의 일행이 한데 엉키어
다시 또 광란의 마이크, 광란의 춤사위 속에 행복한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저녁 9시쯤에 이르러 동일군의 강력한 주장으로 서울·광주팀과 노정환군 등 9명의 일행은 익산에 있는 동일군 부모님 댁으로.....
익산 동일군 댁에선 생선회를 안주로 젓가락 장단속에 12시까지
맥주와 양주파티가 이어지고......
다시 또 익산 최고의 노래방 '보석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제 4의 파티가 시작.......
제4의 파티가 끝날 무렵인 새벽 1시경엔 9명 모두 목이 잠겨 이비인후과의
신세를 져야 할판이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정환군과 나는 택시 타고 무사히 전주에 도착 했건만,
광주팀은 어떻게 집에들 잘 도착했는지......
아니면 지금쯤 금남로 어디에선가 제5의 파티가 계속되고 있는건 아닌지........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즐거움이 배가됩니다.
다시한번 서진원군의 앞날에 행운과 행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면서....
멀리서 찾아온 친구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준 전주지역 친구들에게도 다시한번
감사을 말을 전합니다.
(강태원군이 참석한 친구들에게 하나씩 건네준 선물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