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똥나무 울타리
시인 이 은 봉
쥐똥나무 울타리를 만들자
가시철망 촘촘히 두르고 서 있는, 시멘트 벽돌로 만든 담장, 이젠 다 허물어버리고,
쥐똥나무 울타리를 만들자
쥐똥나무 울타리에선,
아침 햇살 환하게 피어오른다 집안 가득 참새 떼 날아오른다
느릿느릿 시궁쥐며 두더지도 드나들고, 굼실굼실 도둑고양이며 족제비도 드나드는 곳,
쥐똥나무 울타리를 만들자
쥐똥나무 울타리 아래엔
봉숭아꽃, 맨드라미꽃 심어보자
채송화꽃, 앵초꽃 심어보자
해거름의 나조볕 환하게 내려오기 시작하면, 손나팔을 불며 저녁때를 알리는
분꽃도 심어보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는, 시멘트 벽돌로 만든 담장, 이젠 다 허물어버리고
쥐똥나무 울타리를 만들자
쥐똥나무 울타리 안에선
오늘도 옥수수 삶는 냄새 구수하게 들려온다
식구들 모여 도란도란 옛 이야기 나눈다.
―《시작》2009년 봄호
쥐똥나무 울타리
시인 하 종 오
사내가 들깨마져 베어 거두자 빈 채마밭, 낡은 축사 지
붕에는 호박들만 말라 비틀어진 넌출에 달려 있었다, 아직
덜 여문 피마자가 한두 그루 채마밭에 그림자 길게 늘어뜨
리고 흔들리고, 바람은 까맣게 익은 쥐똥나무 열매를 떨어
뜨렸다. 시월이었다.
그이 아내가 딸을 안아 축사 지붕 위에 올려놓고는 늙은
호박 따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서산으로 내리는 해
등지고 계집아이는 꼭지 비틀어 따고는 깔깔거렸다. 그때
쥐똥나무 가지에 앉아 있던 참새떼가 푸드륵 날아올라 논
으로 흩어져갔다. 시월이었다.
쥐똥나무 둘러싸인 농가에서 살면서 사내는 밭일이 어려
워 처마 끝에 앉아 쥐똥나무 울타리 너머 고압전신주 세워
진 능선 바라보며 고민하였고, 그이 아내는 쥐똥나무에 움
트고 잎 마를 때까지 철 바꾸어 채소 뿌리고 잡초 거두었
다. 딸아이는 코 싸쥐고 쥐똥나무 아래서 오줌누며 인기척
살폈고, 국민학생 아들은 자전거 타고 쥐똥나무 옆댕이 돌
아서 학교 다녔다. 사내는 그러구러 한 해 내내 지내면서
쥐똥나무 울타리 언저리를 서성이며 살아갈 날을 걱정하
였다. 벌써 시월이었다.
빨간 고추잠자리가 공중 돌다 스르르 땅에 떨어지듯 앉
듯 죽고, 밤낚시 채비하여 집 나선 사내 뒷모습이 쥐똥나
무 울타리 새로 언뜻 뵈다가 사라지자, 그이 아내는 들깨
를 털기 시작했다. 사내 뒷모습이 지나간 쥐똥나무 울타리
위로는 먼 데 노을 젖은 구름이 흩어지고 있었다. 사내는
덧없이 사색도 하였지만 그이 아내는 일손 쉬지 않았다.
시월이었다. 시월이었다.
문학동네 6집 [쥐똥나무 울타리] 시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