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계란 옛 벼슬아치들의 지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각 품을 정과 종으로 나누어
정1품에서 종9품까지 18품으로 하여 관리들 뿐 아니라
내명부와 외명부에 속한 여인들과 궁에서 일하는 나인들,
내관들에게도 모두 적용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나인이란 궁중에서 왕과 왕비의 시중을 드는 종5품 이하의 궁인직 여인을 말합니다.
궁인직 여인은 보통 7세이 입궁하게 되는데 어릴 때에는 '애기 나인'으로 불리다가
18세 이상 성인이 되서 관례를 치르고 나면 비로소 나인이 됩니다.
나인은 직책에 따라 지밀나인, 침방나인, 수방나인, 세수간나인, 생과방나인, 소주방나인, 세답방나인의 7개 분야로 나누어
독립적으로 궁중 안살림을 분담하였습니다.
입궁 후 대체로 35∼36년이 되면 정5품의 상궁 봉첩을 제수받게 되며 이 때 부터는 상궁이라 불리며 정4품 이상으로는 승급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7세에 입궁한 애기나인이 상궁이 되려면 빨라도 40세 이상이 되어야 하지만 한다. 상궁은 그 직책에 따라 다음과 같이 이름이 붙고 등급이 나뉩니다.
① 제조상궁: 상궁 중 가장 지위가 높습니다. 그 직책은 내전의 어명을 받들며, 대궐 안살림을 관장하므로 권세를 쥔 상궁도 많았다고 합니다.
② 부제조 상궁: 제조상궁의 버금가는 위치이며 대궐 안살림의 장부와 곳간 관리의 실무를 관장하였습니다.
③ 대령상궁: 지밀상궁이라고도 하며, 대전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고 왕과 왕비를 모시는 상궁입니다.
④ 보모상궁: 왕자나 왕녀의 양육을 도맡은 나인들의 총책임자로서 동궁(東宮)을 비롯하여 각 왕자녀궁에 1명씩 있었습니다.
⑤ 시녀상궁: 왕이나 왕비 곁에서 왕가에서 관리하는 책들을 관장하고 글을 읽거나 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하였으며 왕실의 잔치 때 시중을 들거나 왕실 대소사를 현장에서 관리하고 내외명부 부녀자들에 대한 감사도 하는 등 현장에서 실무를 직접 담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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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궁(尙宮) - 정5품 - 왕비를 인도하며, 상기와 전언을 통솔..
상의(尙儀) - 정5품 - 일상생활의 모든 예의와 절차를 맡았으며, 전빈과 전찬을 통솔
상복(尙服) - 정5품 - 의복과 수로 무늬놓은 채장을 공급하고, 전의와 전식을 통솔.
상식(尙食) - 음식과 반찬을 준비하였으며, 사선과 전약을 통솔.
상침(尙寢) - 왕을 일상으로 뵐 때와 왕이 옷을 입고 먹는 일을 진행하는 순서를 맡았으며, 사설과 전등을 통솔.
상공(尙功) - 정6품 - 여공의 과정을 맡았고, 사제와 전채를 통솔.
상정(尙正) - 궁녀의 품행과 직무단속 및 죄를 다스림.
상기(尙記) - 종6품 - 궁내의 문서와 장부의 출입을 담당.
전빈(典賓) - 정7품 - 손님 접대, 신하가 왕을 뵐 때 접대, 잔치 관장, 왕이 상을 주는 일 등을 맡음.
전의(典衣) - 정7품 - 의복과 머리에 꽂는 장식품의 수식을 맡음.
전선(典膳) - 정7품 - 음식을 삶고 졸여 간에 맞는 반찬을 만듦.
전설(典設) - 정7품 - 장막을 치고 돗자리를 준비하며 청소하는 일과 물건을 베풀어 놓은 일을 담당.
전제(典製) - 종7품 - 의복 제작.
전언(典言) - 종7품 - 백성에게 널리 알리고 왕에게 아뢰는 중계구실 담당.
전찬(典贊) - 정8품 - 전빈과 같음.
전식(典飾) - 정8품 - 머리를 감고 화장하는 일과 세수하고 머리빗는 일을 담당.
전약(典藥) - 정8품 - 처방에 따라 약을 달임.
전등(典燈) - 등불과 촛불을 맡음.
전채(典彩) - 종8품 - 비단과 모시 등 직물을 맡음.
전정(典正) - 종8품 - 궁관의 질서를 바르게 하는 일을 도움.
주궁(奏宮) - 정9품 - 음악에 관한 일을 맡음.
주상(奏商) - 정9품 - 음악에 관한 일을 맡음.
주각(奏角) - 정9품 - 음악에 관한 일을 맡음.
주변치(奏變徵) - 종9품 - 음악에 관한 일을 맡음.
주치(奏徵) - 종9품 - 음악에 관한 일을 맡음.
주우(奏羽) - 종9품 - 음악에 관한 일을 맡음.
주변궁(奏變宮) - 종9품 - 음악에 관한 일을 맡음.
[추가①]
지금으로 치면 검찰의 일을 맡은 상정과 기록을 맡은 상기의 휘하에는 소속 궁관이 따로 없었다.
[추가②]
정7품에서 종8품까지의 궁관은 12명으로 모두 '전'자가 붙는데..
상궁 이하 상공까지 6명의 고위 궁관의 지휘를 받으면서 맡은 바 실무를 처리하였다.
또 궁관의 가장 말단에는 음악 연주를 맡는 관원 7명(정9품과 종9품)이 자리잡고 있었다.
궁중에서 창기를 뽑아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법을 가르친 것은 태종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세종 때까지만 해도 이들이 궁관에 들어 있지 않았는데..
후에 남녀 구별이 더 엄격해지면서 궁궐 내 여인들의 사회에..
남자 악공이 들어가 연주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여악이 생기면서 궁관의 일부가 되었다.
[추가③]
궁궐 안에는 내관과 궁관 외에도 또 잡다한 일을 맡아 처리하는 여인들이 많이 있었다.
흔히 이들을 무수리라고 하지만..
본래는 무수리, 파지, 수모, 방자, 여령 등의 구별이 있어 맡는 일도 각기 달랐던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인 내용은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상궁 등의 명을 받들어 궁녀 전반이 여러 잡무를 담당하는 가운데..
수모는 물을 긷는 일, 방자는 전각을 청소하는 일, 여령은 노래하고 춤추는 일을 하는 따위의..
구별이 있었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당초에 궁녀는 관원들의 첩의 딸이나 양가의 딸들 가운데 뽑아 쓰는 것이 원칙이었다.
조선 초엽까지만 해도 천첩의 딸, 즉 천민 출신은 궁녀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원칙은 태종 때 어린 창기 6명을 궁녀로 삼은 이후 차츰 무너졌고..
오히려 천첩의 딸이나 관가에 소속된 천민의 딸들로 채워졌다.
나라에서 양가의 딸들 가운데 궁녀를 뽑으려고 하면 딸이 있는 집마다 일찍 혼사를 서둘러..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이에 따라 17세기 이후로는..
아예 관가 소속 천민 출신에서 궁녀를 뽑는 것이 제도로 굳어졌다.
이들은 사춘기 이전에 궁에 들어온 뒤 20세 전후 성년식인 계례를 치러 정식 '나인'이 되며..
다시 15년쯤 지나면 '상'자가 붙는 고위 궁관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