訪美 탁신총리는 비상사태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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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신 총리는 이날 ‘채널 9’ TV를 통해 “내각의 승인하에 총리가 방콕에 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밝혔다. 그는 육군 최고 사령관의 권한 정지를 명령하고, 총리실이 권한을 대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AFP 통신은 최근 자리에서 물러난 손티 분야랏클린 육군참모 총장 측근 장교들이 총리 관저를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친(親)탁신 총리 계열의 군 간부들을 전보 조치하는 등 탁신 총리와 대립해 온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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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군부가 19일밤 전격적으로 쿠데타를 단행, 외유 중인 탁신 치나왓 총리 정부를 몰아내고 국정을 장악했다.
쿠데타 과정에서 저항과 충돌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으며 쿠데타 세력은 새 정부 구성에 대한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추인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 총사령관인 손티 분야랏글린 중장이 이끈 이번 쿠데타 주역들은 자신을 푸미폰 국왕에게 충성하는 ’민주 개혁 평의회’라고 지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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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티 장군이 이끈 쿠데타 세력은 해가 진 직후인 이날 밤 8시경 전격적으로 쿠데타를 단행, 방콕 인근 칸차나부리주에 주둔하고 있던 기갑사단의 탱크 14대로 총리 관저가 있는 정부청사 주변 도로를 봉쇄했다.
앞서 3군과 4군 사령부 소속의 4개 사단의 부대를 이동시키면서 방콕시내에 쿠데타 설이 확산됐다.
태국 영자 일간 네이션은 인터넷판을 통해 밤 10시를 기해 군부가 중대발표를 하기 위해 국영 TV 방송국인 ’채널 5’가 정규방송을 중단한 채 대기중이라고 보도했다.
밤 10시 30분께(현지시간) ’채널 3, 5, 7’ 3개 민영 및 국영 방송국은 일제히 “탁신 총리가 국민들의 분열을 초래하고 부정을 저질렀기 때문에 군이 나섰다. 군은 경찰과 협력하여 정권을 완전히 접수했다”면서 “국민들은 동요하지 말고 질서를 유지해달라. 국회의사당과 군 시설 등에는 접근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는 내용의 자막 방송을 국왕 찬가를 배경으로 장시간 방영했다.
쿠데타를 이끈 손티 장군은 불교국가인 태국에서 이례적으로 이슬람 교도로서 군수뇌부에 오른 인물이다. 손티 장군은 푸미폰 국왕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어 일각에서는 이번 쿠데타가 사전에 국왕의 허락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 국정 장악
손티 장군이 이끄는 쿠데타 세력은 신속하게 국정을 장악해나갔다.
손티 장군은 전국 일원에 계엄령을 내리고 역 쿠데타를 막기위해 전군에 주둔지에서 이동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이어 쿠데타 주동세력인 자칭 ’민주 개혁 평의회’는 상.하원과 정부, 헌법재판소의 해산과 함께 헌법 중지를 발표했다.
’민주 개혁 평의회’는 군정(軍政) 고문관인 수라윳 출라농 장군이 새총리에 임명됐다고 발표했다가 뒤이어 이를 번복하고, 새총리가 선출될 때까지 평의회 지도자 중 한명이 총리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수정 발표했다.
’민주 개혁 평의회’는 국영 및 민영 TV와 라디오를 장악,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발표하는 한편 쿠데타 소식을 실시간으로 방영하던 CNN과 BBC 방송의 송출을 중단시켰다.
◇ 탁신 총리의 저항
군 쿠데타가 고국에서 발생할 때 탁신 총리는 장기간 외유 중이어서 군부에 자신의 지지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탁신 총리는 지난 8일 출국해 핀란드 헬싱키에서 10~11일 이틀 일정으로 개최된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 참석한 뒤 귀국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정을 변경해 딸이 있는 영국에 체류하다가 쿠바를 거쳐 유엔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 중이었다.
탁신 총리는 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받은 뒤 19일밤 9시 15분께 ’채널 9’에 녹음된 목소리로 출연,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그는 불법적인 군의 이동을 중지하고 손티 장군은 국방장관에게 출두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미 이때는 쿠데타 세력이 탁신 총리의 최측근인 치타이 와나사팃 부총리와 탐마락 이사라구라 나 아유타야 국방장관 등 2명을 체포한 후였다. 한때 방콕에서는 탁신을 지지하는 군부세력이 역 쿠데타를 단행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으나 무위로 그쳤다.
탁신은 뉴욕 맨해튼 42번가의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TV를 통해 자신이 이끄는 정부가 군부에 의해 전복되는 모습을 앉아서 지켜봐야만 했다.
◇ 거리 표정
쿠데타가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방콕시민들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수백명의 시민들은 카메라를 들고 나와 정부청사 인근에 배치된 탱크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정부청사 주변의 상가와 술집들도 쿠데타 소식을 모른 채 여느때와 같이 관광객으로 붐볐다. 탱크 진입후 노점상을 통해 빠르게 쿠데타 소식이 번져나갔으며 일부 시민들은 구경삼아 정부청사에 몰려왔다. 대다수 시민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TV 방송을 통해 쿠데타 소식을 접했다.
대학생인 차나칸(18)은 “정국불안으로 경제 기반이 흔들릴 것이 우려된다”며 “빠른 시일 내에 정국이 수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 개혁 평의회’는 20일을 공휴일로 지정, 모든 관공서와 학교 문을 닫게 했다. 또한 소요 사태를 우려해서 학생들은 집에서 머물 것을 종용했다.
이번 쿠데타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하지 않아 한국교민들의 피해는 없다. 단지 교민들은 정국의 불안정으로 경제 위기가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 정치혼란과 쿠데타 악순환
태국은 1932년 이후 지금까지 19차례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었다. 가장 최근의 군 쿠데타는 1992년에 발생했다. 당시 군출신의 수친다 크라프라윤 총리가 권력 유지를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군중들의 시위에 밀려 실패한 후 군은 정치 불간여를 선언해왔다.
이번 군 쿠데타설은 금년초부터 계속돼 왔다.
지난 13일에도 쿠데타설이 번져나가자 이번 쿠데타의 주역인 손티 장군은 “군 쿠데타설은 군과 정부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보인다”며 쿠데타설을 일축했다. 그는 “군과 정부는 서로를 의심하지 않고 신뢰하고 있다”며 “국가의 안정과 군-정부의 단합을 해치는 쿠데타설에 귀기울이지 말라”고 말했었다.
태국의 정치적 혼란은 지난 1월 탁신 치나왓 총리 가족이 통신주 매각으로 19억 달러의 이득을 보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방콕의 중산층들이 탁신 총리의 부정을 규탄하고, 그의 사임을 촉구하면서 거리로 뛰쳐나왔다. 탁신 총리는 정치적 혼란을 끝내기 위해 야당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4월 2일 조기총선을 실시해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 선거에 대해 무효를 선언하고 재선거를 실시하도록 판결을 내렸다. 재선거는 10월 15일로 예정돼 있지만 선관위원 5명의 선출이 늦어지면서 일정상 총선실시가 불투명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