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단식 중단, 마음이 허락 안한다"
YTN동영상 | 임승환 | 입력
한미 FTA 협상 무효를 주장하며 19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민생정치모임의 천정배 의원은 아직 힘이 남아있고 마음도 허락하지 않는다며 단식 농성을 계속할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천정배 의원은 오늘 국회 본청 앞 단식 농성장을 찾은 도올 김용옥 교수로부터 단식을 중단할 것을 권유받은 뒤 한미 FTA는 고민해 볼 수록 국익과 민생에 큰 상처를 내는 조공협상으로 잘못된 일이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또 참여정부 탄생에 앞장섰고 한미 FTA 추진 과정에서 책임있는 위치에 있던 사람으로서 자신부터 반성하고 사죄한다면서 앞으로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 만큼 스스로 좀 더 결의를 다지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도울 김용옥 교수는 천정배 의원을 진맥한 뒤 건강이 너무 악화됐다며 즉각 단식을 중단하라고 권유한 뒤 반대를 위한 반대보다는 구체적인 득실을 국민들에게 알려줘 국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줄 시기라고 말했습니다.
도올 특강 - 역사를 말한다 (1~9부작.광주MBC.2006년)
도올 특강 - 역사를 말한다 (1부) 동학에서 광주민중항쟁까지.20060106
도올 특강 - 역사를 말한다 (2부) 동아시아 30년 전쟁.20060113
도올 특강 - 역사를 말한다 (3부) 한국민중의 사상기층 1편.20060217
도올 특강 - 역사를 말한다 (4부) 한국민중의 사상기층 2편.20060224
도올 특강 - 역사를 말한다 (5부) 조국과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1편.20060407
도올 특강 - 역사를 말한다 (6부) 조국과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2편.20060414
도올 특강 - 역사를 말한다 (7부) 한대수 도올 콘서트 - 행복의 나라로 1편.20060421
도올 특강 - 역사를 말한다 (8부) 한대수 도올 콘서트 - 행복의 나라로 2편.20060422
도올 특강 - 역사를 말한다 (9부) 5월항쟁 관련 버시바우 미대사 인터뷰.20060505
아래는 故 리영희 선생님의 저서에서 옮겨 온 글 입니다.
저도 그 동안 읽은 책중에서 열손가락 안에 님 웨일즈(Nym Wales)의 '아리랑'을 꼽습니다.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전환시대의 논리' 그후)] 중에서 '나의 독서편력 #5' 발췌.
이상주의적 삶의 표본 '김산' (과의 노래)를 읽는 감동 자기의 이념에 충실하게, 그리고 이상을 향해서 자신을 불태워 살다 간 인생은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숭고할까? 그러나 현실의 역사는 어차피 이상주의와 낭만주의를 배반하게 마련이기에 그의 인생은 또 얼마나 고독하고 처절할까? 그런 착잡한 인생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아리랑의 노래'는 님 웨일즈(Nym Wales)라는 미국인 여류작가가 1920--30년대의 한 조선인 사상가, 독립운동가, 혁명가의 생애를 그린 감동적인 소설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김산'이라는 가명으로 되어 있지만, 최근에야 그 저자에 의해서 '장지락'이라는 본명이 밝혀진 인물의 삶의 발자취이다. 이 책이 어째서 나를 그렇게 감동시켰는가? 어떤 서평이 바로 나의 말을 대신했기에 그것을 옮기면 이렇다. "'아리랑의 노래'는 중국혁명사의 고전인 기록문학으로서의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과 아그네스, 스메들리의 '위대한 길'(The Great Road)에 버금가지만, 실은 그보다도 더 위대한 가치를 지닌다. '아리랑의 노래'는 앙드레 말로가 하나의 픽션으로 시도한 '인간의 조건'에 등장하는 동양의 유일한 공산주의자의 인생과 궤도를 같이하고 있다." 소설을 별로 읽지 않는 사회과학도인 내가 '아리랑의 노래'를 감히 나의 '독서편력' 속에 넣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한 지식인이 '얼마나' 순수하게 그리고 도덕적으로 살 수 있을까? 이상에 대한 헌신은 한 인간의 행동을 어느 정도까지 숭고하게 할 수 있을까? 또 그런 삶은 어느 만큼 낭만주의적이며 동시에 영웅주의적일 수 있을까? 이런 나의 물음에 대해서 이 소설이 해답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웅주의는 비극으로 끝나야 더욱 장엄하다. 바로 이 주인공이 그렇다. 우리는 주인공 '김산'을 따라서, 1920--30년대의 동양에서 전개된 대변혁을 간접체험하는 스릴을 만끽한다. 저자 님 웨일즈는 '중국의 붉은 별'을 쓴 에드가 스노우의 부인이었다. 전 세계에 큰 충격파를 던진 남편의 '중국의 붉은 별'이 중국혁명의 중국인 지도자들만을 역사에 등장시킨 것과는 달리, 그는 같은 '인류사적 대실험장'의 현장에서 이름없는 한 조선인 혁명가를 세계사에 등장시켰다. 우리는 이 작품 속에서 에드가 스노우가 발견한 어떤 중국인 혁명가보다도 위대한 정신인 조선인 '김산'을 만난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던 주인공은 조국에서의 3, 1독립운동의 실패를 경험하고 중국으로 간다. 무력혁명의 현장에 뛰어든 것이다. 조선민족의 해방은 중국공산당에 의한 일본의 타도를 전제로 한다는 상황판단에서였다. 1925년에 25세의 나이로 중국공산당의 최초의 농촌, 농민혁명(봉기)인 "해륙풍 꼬윈" 무력봉기를 최선두에서 지휘한다. 우리 민족이 낳은 또 하나의 혁 명가인 무정부주의자 김성숙을 비롯한 200명의 조선인 혁명가들이 중국공산당의 선두에 선 피어린 투쟁을 여기서 목격하게 된다. 그중 많은 조선 인 투사들이 중국혁명의 승리를 위해서 중국의 흙에 조선의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장면에서 나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순수한 낭만적 이상주의자들의 삶과 죽음! 세계의 혁명의 선두에 서 있는 자랑스러운 조선인 청년들의 영웅주의! 한 권의 소설이 '아리랑의 노래'처럼 광대한 대륙 전체를 무대로 하기도 어렵다. 평안남도의 농촌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당시의 조선과 일본을 넘어서 만주, 중국대륙의 판도도 좁다 하여 러시아, 동남아를 넘나든다. '장지락'이라는 실재한 주인공 혁명가의 '크기'이다. 이 소설의 인물과 무대의 크기가 우리나라 대하소설의 대표작인 박경리의 '토지'로 재현된 에피소드는 덮어둘 수 없다. 1960년대에 남의 손에서 돌고 있던 나의 '아리랑과 노래'가 우연히 박경리 씨에게까지 돌아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었다. 그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나는 '토지'를 처음에 단권 장편소설로 구상했던 저자가 생각을 바꾸어서 사건과 배경, 판도를 대하 형식으로 고치는데 '아리랑의 노래'가 중요한 동기가 됐다는 말을 박경리씨에게서 직접 들었다. 또 한 가지 에피소드를 아울러 독자들과 나누어야겠다. 1942년 겨울, 일본의 진주만공격으로 일본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의 로즈벨트 대통령(대통령 이름의 정확한 발음은 '루-'가 아닌 '로-'임 -필자주)은 일본의 식민지 조선(인, 문화)에 관해서 아무런 지식도 이해도 없었다. 전쟁정책수립을 위한 대통령의 지식의 자료로 몇권 안 되는 책이 선정되었다. '아리랑의 노래'가 그 귀중한 자료 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전쟁발생 전해에 미국에서 출간되었던 것이다. 로즈벨트와 'Song of Arirang'! 조선, 조선인, 조선민족, 그리고 조 선의 정신을 대표한 '김산'으로서의 혁명가 장지락과 로즈벨트 대통령이 어떤 대화를 했는지에 관해서는 나도 소상히 알지 못한다.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아마도 미국 대통령은 작가 님 웨일즈 자신이 이 조선인을 평한대로 다음과 같은 '김산'과 대면했을 것이다. "나는 '김산'을 한 마디로 '참된 도덕'을 갖춘 사람이라고 그때에 생각했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그는 거짓이나 꾸밈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거짓말 같은 것은 아예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와 '아리랑의 노래'와의 만남은 1960년 봄이었다. 합동통신사 국제관계 담당기자로서 미국의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몇 달간의 연수과정을 마치고 돌아오던 일본 동경, 어느 서점에서 책을 사던 나의 시선이 '??'라는 표지에서 멈췄다. "일본에는 재미있는 책도 있군. 중얼거리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은 활자로 부제가 있었다. "어느 조선인 혁명가의 생애"눈에 띄었다. 나는 그 당시, 국내에서 절대적 금기로 되어 있던 현대 중국혁명에 대해서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미국대학에서의 자유로운 견문과 독서는 나에게 한국에서의 중국혁명 연구가가 될 어떤 사명감 같은 자각의 동기가 되었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가시밭길을 혜치는"삶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후 20여년의 나의 중국혁명 연구생활은 불행하게도 그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음을 입증하였다.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서 몇 차례의 감옥행을 해야 하리라고까지는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김산'의 고행에 비하면야 아무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처음에 일본어판으로, 그 뒤에 곧 영어 원판으로 읽은 감동은 더욱 컸다. 1985년, 아직 그 암흑같은 시기에 '동녘'출판사가 용케 번역, 출판한 우리말본은 더욱 좋다. 어느 것을 언제 읽으나 30년 전과 다를 것이 없는 가슴의 설렘을 느낀다. (1992년 7월)
리영희
출생 1929년 12월 2일
일제강점기 조선
평안북도 운산군 북진면
사망 2010년 12월 5일 (81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 녹색병원
사인 간경화
국적 대한민국
학력 한국해양대학교
직업 언론인
배우자 윤영자
자녀 딸 이미정, 아들 이건석
부모 아버지 이근국, 어머니 최희저
리영희 1929년 12월 2일 ~ 2010년 12월 5일
복무 대한민국 육군
복무 기간 1950년 ~ 1957년
최종 계급 소령
근무 대한민국 육군
주요 참전 한국 전쟁
리영희(李泳禧, 1929년 12월 2일 ~ 2010년 12월 5일[1])은 대한민국의 진보적 언론인, 언론학자, 사회민주주의적인 사회운동가이다.
1950년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한 뒤 경북 안동에서 영어교사로 근무 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해 1950년 대한민국 국군 육군 장교로 자원입대 한 뒤 7년간 복무했다. 제대 후에는 언론인으로 활동한다. 1957년부터 1964년까지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각각 연임했다.
196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신문대학원을 연수, 1972년부터 한양대 문리대학교 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한양대 문리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6년 해직되어 1980년 3월 복직됐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됐다가 1984년에 복직. 군사정권 기간동안 4번 해직•5차례 구속 당했다. 1987년 미국 버클리대학교의 정식 부교수로 초빙되어 '평화와 갈등' 특별강좌를 강의하였고, 1995년 한양대학교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간경화로 투병, 2010년 12월 5일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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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동영상 9개인데요 , 내일 교회도 가야하고 , 자정이 넘었으니 , 한 숨 자고 , 글고 이시간 동영상 테스트해보니 , 잘 됩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 시간 되실 때 , 한 번 볼 수 있는 자료들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아이고 넘 수고많습니다. 시간되는 쪽쪽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