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기도
다니엘 6:10(1-28)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는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성도에게는 지상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불신자들도 기도를 한다고 하지만 무능력한 존재에게 기도하기 때문에 헛된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만군의 여호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도를 복이라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많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으로서 기도하는 것 때문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기도로 모든 어려움을 다 이겨내고 축복받았습니다.
오늘의 많은 성도들도 기도하는 특권을 귀하게 여기고 기도하여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좋은 것은 알면서 기도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해서 기도를 못한다고 합니다. 사업이 바쁘고, 일이 너무 힘들고, 몸이 아프고, 시간이 없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기도를 못한다고 합니다. 다니엘은 기도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았던 것만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기도할 수 있는 여건이 아주 나빴습니다.
다니엘은 유다 사람으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치고 백성들을 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갈 때 어린 소년으로 포로가 되었습니다. 포로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한다는 것은 기도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어려서는 부모님과 함께 집에서 기도하였으며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생사를 알 수 없고 집도, 성전도 없는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되어 기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한가해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총리로서 한가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 자신의 잘못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유다 왕들의 잘못에 의해서 고아가 되고 포로가 된 것입니다. 그래도 다니엘은 자신의 불행을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조건이든지 주어진 환경에서 하나님을 향하는 기도생활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어떤 일이 닥쳐도 뜻을 정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에게 명철과 지혜를 주심으로 바벨론에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총리가 된 것은 순전히 기도로 축복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기 때문에 형통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하므로 더 많은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기도하기 때문에 시험이 오고, 손해를 볼 때도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도 기도하므로 문제가 되는 것도 있습니다.
당시 바벨론은 최강국으로 고관이 120명, 총리가 세 명이였습니다. 그 중에 다니엘은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전국을 다스리는 최고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사로 잡혀 온 포로가 왕 다음으로 총리가 되었으니 다른 총리와 고관들이 시기 질투는 대단하였습니다. 고발할 근거를 찾고, 허물을 찾고, 무엇이든지 잘못하는 것이 있는가를 찾아도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잘못이나 허물이 없어야 합니다. 잘못이나 허물이 있다면 하나님께 욕돌리는 것이 되며 기도의 효력이 없습니다. 기도하는 것만 큼 정직해야 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거짓말하고, 속이고, 잘못을 하는 것은 기도를 가면으로 쓰는 기도 사기꾼입니다. 기도의 사람 다니엘에게는 어떤 잘못이나 허물이 없었습니다.
다니엘에게 잘못이나 허물이 없으니까 다니엘을 고발하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하다가 한 가지 생각을 하였습니다. 두 명의 총리와 고관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 “다리오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라고 크게 높여 절하고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7)라고 하며 왕에게 한 금령을 세울 것을 구하였습니다. 다리오 왕은 자신을 높여 주는 것에 마음을 만족하게 여기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온 나라에 금령이 내려졌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다니엘 한 사람을 잡기 위한 법령이였습니다. 이제 다니엘은 올무에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는 것 때문에 올무에 걸렸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총리의 도덕적인 문제가 천하에 들어나 곤혹을 치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총리가 이런저런 변명을 하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만 더욱 성도로서 정직하지 못한 것에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처럼 성도이기 때문에 당하는 시련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요즘 역경지수라고 하는 GQ가 얼마냐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얼마나 잘 이겨내느냐 하는 치수라고 합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 본색이 드러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역경이 닥쳤을 때 심사가 나타납니다. 역경을 대하는 정도에 따라 감추어진 인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도 역경을 당했을 때 믿음이 좋은가 나쁜 가 신앙치수가 나타납니다.
역경을 당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포기형 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하던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만 두고 손대지 않습니다. 할 것 없다는 포기를 합니다. 두 번째로 현상유지형 입니다. 때를 기다리며 억지로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현상유지형이 60-70%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바람이 잘 때까지 유지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기어 올라가는 형입니다. 역경을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면 내려 올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되는 것은 더 하는 것입니다. 요즘 소 값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송아지가 천대 받았습니다. 송아지 한 마리가 쇠고기 한 근 값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그때 송아지를 사 모운 사람은 지금 큰 돈을 버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꼼짝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앞뒤가 보이지 않습니다. 다니엘에게 왜 이런 어려움이 닥쳤습니까? 기도한 죄밖에 없습니다. 기도한다고 해서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오히려 기도하였기 때문에 위기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하였기 때문에 올무에 걸린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만사형통하다고 믿는 것은 잘못입니다. 기도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기 때문에 손해도 볼 수 있습니다. 기도하기 때문에 시기 질투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왕의 금령이 내린 조서를 알았습니다. 금령을 보고 알았으면 기도를 하지 않아야 지혜롭지 않겠습니까? 불신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 식사기도를 하면 놀리기 때문에 기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닌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는 것처럼 해서 눈을 잠깐 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니엘도 왕의 조서를 보았으면 아무도 보지 않게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였다면 지혜롭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 위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기도의 사람 다니엘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습니다. 왕의 금령이 내린 것을 알았지만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다니엘의 모습입니다. 왕의 금령은 변치 못한다는 것도 알고, 금령을 어겼을 때 어떻게 되는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바닷가에 촛대바위처럼, 마치 태풍이 불어 닥쳐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다니엘입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태풍도 흔들림이 없는 촛대바위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태풍이 아니라 약간의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는 성도는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다니엘은 “전에 하던 대로”기도하였습니다. ‘전에 하든대로’란 어려서부터 몸에 익힌 대로 기도하였다는 말씀입니다. 다니엘에게는 기도가 생명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전에 하던 대로 기도하는 다니엘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기도 생활은 어떻습니까? 전에 기도하지 않은 대로 기도하지 않는 것은 기도에 대한 맛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기도의 맛을 알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기도만큼은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도는 성도에게 무기요, 능력이요, 축복입니다.
왕의 금령을 보았을 때 왕으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기 때문에 왕에게 찾아가서 ‘왕이 속았다’고 말하고 금령을 취소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금령을 보았음에도 전과 같이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때 다니엘의 기도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중요한 것은 위기를 앞에 두고 어떠한 기도를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10). 이것이 다니엘의 기도였습니다. 기도하는 것 때문에 사자굴에 던져질 위기를 당했음에도 하나님께 감사를 하였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어떤 기도를 합니까?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할 것입니다. 왕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돌이켜 주시고 자신을 미워하는 총리와 고관들을 하나님께 고발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무죄함을 말하며 도와달라고 하는 기도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전혀 자신의 억울함이나 어려움을 어떻게 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사자굴에 던져짐을 당하게 되는 위기를 앞에 두고 감사하였습니다. 위대한 기도입니다. 감사하였다는 말씀은 찬양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면 잡혀가 사자굴에 던져지게 되었는데도 감사 찬양을 하였습니다. 욥이 망하고 병들었을 때 하나님을 찬양한 것처럼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한 것입니다. 위대한 기도입니다.
이렇게 다니엘이 ‘아멘’ 믿고 기도했으면 서광이 비쳐지는 낌새가 보이든지 응답이 서서히 나타나야 하지 않습니까? 기도했으면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괴롭히는 한 사람이라도 사고로 다치든지 병들어 죽든지 해서 다니엘을 고발한 것을 취소하도록 해야 기도한 응답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고발당해도 사자굴에 던져지지 않도록 해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자굴에 던져지면 끝나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희망도 없는 것입니다. 기도하였음에도 다니엘을 죽이려고 하던 사람들이 계획한 대로 고발당하고 사자굴에 던져지기까지 기도의 반응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기도가 죄가 되는 세상입니다. 다니엘은 기도하였기 때문에 죄인이 되었습니다. 사업이 어렵고 부도가 날 것 같아서 하나님께 밤새도록 기도하고 ‘아멘’하고 일어서면 누군가가 돈을 가져와 문밖에 기다리고 있다면 기도한 응답이 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이런 간증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부도가 났습니다. 기도했음에도 사업이 망했습니다. 그러면 기도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한 다니엘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천사를 보내어 사자의 입을 막아 주셨습니다.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급히 사자굴로 가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였느냐”(20)라고 외쳤습니다. 다니엘은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였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사자굴에서 나왔습니다.
다니엘이 살아나오는 것을 보고 왕은 기뻐하였으며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다 사자굴에 던져 죽게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역경에서 기도하여 역경을 이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기도한 성도에게는 사업이 망하지 않아야 되는 것이 응답이 아닙니다. 망해도 다른 방법으로 더 크게, 더 많은 복을 주십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지지 않아야 기도의 응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던져짐으로 더 큰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다리오 왕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23). 다니엘을 고발한 원수들을 사자굴에 던져 죽였습니다(24).
바벨론의 왕들(느부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고레스)은 바뀌어도 다니엘은 총리로 계속할 수 있었고 더 이상 괴롭히는 어려움도 없는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다(28). 기도의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망했을지라도 더 큰 복을 주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성도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괴롭히는 존재들을 다 제거하시고 형통의 복을 주십니다.
기도는 성도에게 주어진 특권이요 축복의 열쇠입니다. 기도하므로 위기, 역경을 이기고 형통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 기도로 축복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