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3일.. 진주에 아는 단체에서 정기모임이 있다기에 모처럼 바람이나 쐴 겸
사람들도 만나기 위해 아침에 교회가서 예배드리고 오전 10시에 동서울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진주행 일반 고속버스를 타려고 몇 일 전부터 마음 먹었습니다.
새로 생긴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도 체험해 보며 싼 가격으로 가기 위해서...
그러나, 바로 전 날 오후 7시. 마음이 변하기 시작 했습니다.
바로타에 접속하여 우연히 #489열차로 진주까지 자리가 있나 조회를 해봤는데
여전히 좌석은 없었고 6번여 시도만에 누가 취소했는지 1장을 간신히 예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려면 야간에 가야 하는데 열차나 심야우등버스나
가격은 비슷하니 #490은 예전에 끊어 놨지만~
그렇게 예약해 놓고 집에서 왕건 보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표 취소하고 예정대로 내일 버스로 갈까, 아니면 걍 예약한거 타고 갈까...'
고민과 고민끝에 나는 왕건 끝나자 마자 잠옷이 아닌 외출복으로 입고 컴퓨터가
아닌 가방을 들고 침실이 아닌 밖으로 나갔습니다. 부모님은 일찍 주무시길래
몰래 나갔습니다.
'하긴, 일부러 그 좋은 버스 놔두고 기차타고 강릉가는 사람도 많은데 나라고
이렇게 기차타지 말라는법 있으랴?'
지금시각, 10시 50분, 기차 출발시각은 11시 50분.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 앞에 도착하니 한 20여분 남았고... 카드로 기차표를
결제 하고 저는 열차에 탑승 했습니다. 그런데 열차는 의외로 빨리 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아저씨가 와서 말하기를
어떤 아저씨.. "그 자리 제 자리인데요."
나.. "네? 그래요?"
저는 자리와 차표를 확인 했는데 저도 자리가 맞는 것이었습니다.
'음.. 좌석이 중복됐나? 돈벌게 생겼네' 생각하고 역무원 아저씨를 찾으니..
'이 열차 목포행인데요'
"허거걱.... 목포행? 어쩐지 열차가 빨리 출발하더라..."
(여기서 나의 두가지 실수. 첫째, 열차를 잘못 탄것과 10분이나 일찍 출발하고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
매표소에서 개표하고 내려갈 때 열차가 두 대였는데 오른쪽에 있는 차를 타야
할 것을 왼쪽에 있는 차를 탄 것이었습니다. 영등포역에 도착하자 마자 얼른
내리고 정확히 10분 후에 오는 진주행 열차로 무사히 갈아 탔습니다.
(내 차가 10분 후에 출발하는 것이니 망정이지 10분 전에 출발하는거였다면~~)
역시 언제나 그랬듯이 영등포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탔습니다.
내 옆에는 왠 애띤 여고생이 앉아 있었습니다. 먼저 그쪽에서 내게 말을 걸기를...
그녀.. "혹시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나.. "저요? 일곱이요."
그녀.. "네? 열일곱이요?"
나.. "제가 그렇게 보이나요?"
그녀.. "스물 일곱이군요. 저와 동갑이네요"
나.. "(나이 되게 어려 보이는데, 역시 얼굴로만 사람 볼게 아니겠구나)
아 그래요?"
그녀.. "네. 15살이에요. 띠동갑이요"
나.. "허걱!! 그럼 고교생이겠군요"
그녀.. "네. 어디까지 가세요?"
나.. "저요? 진주요. 댁은요?"
그녀.. "저는 구례구까지 가요."
나.. "긴장 하면서 잘 자야 겠네요. 자칫 잘못하다 운좋으면 순천, 아니면
진주까지 눈감은 채로 갈 수 있으니까요.(실제로 내가 이전에 그런적이
더러 있었다.)"
그녀.. "네~~"
그렇게 간단히 대화를 하고 나는 책을 계속 읽었습니다. 그녀는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나는 잠이 잘 오지 않았죠. 마침 내 자리가 그 객차중 가장
앞자리인지라 내 앞에는 열차 노선지도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시간을 나름대로 때웠죠. 그리고 느낀것...
'창원-부산간 직선 선로 생기면 정말 황금 노선일텐데, 경부선 여기서 보니
굴곡이 너무 많이졌군.' 등등 별의별 잡다한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때웠죠.
열차는 지나고 지나 어느덧 익산역에 도착.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가락국수를 팔지
않더군요. 좀 출출했는데.. 익산역을 출발하여 전라선에 다다르니 열차는 이전보다
다소 천천히 운행 되었습니다. 복선에서 단선으로 바뀌어서 그런지~
계획적으로 속력이 느린것 빼고는 시간은 잘 지켜서 운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밤이라 그런지 창밖에는 아무것도 구경할 게 없었고, 잠도 잘 오지 않았죠.
옆에있는 여고생은 여전히 잠을 잘 자고 있었고... 전주를 지나 남원을 지나고..
저는 콜라를 하나 시켜 먹었죠. 500원짜리면 딱 좋은데 애석하게도 700원짜리 밖에
안 팔더군요.
열차는 지나고 지나~~ 안내방송 왈~
"잠시후 이 열차는 구례구역에 도착되겠습니다. 구례구역에~~~~"
구례구역에서 내리겠다는 옆에 있는 여고생은 세상 모르고 지금껏 자고
있더랍니다. 안깨우면 정말로 순천까지 갈 정도로 잘도 자더군요. 저는 그녀를
깨우고... 구례구역에서 헤어졌어요.
전라선을 접하고 나니 사람들은 내리는 점차 사람이 많았어요.
어느덧 순천역에 다다르니 동심의 생각에 젖어 든게...
내가 한때 이 역을 자주 드나들고 또 나에게 무척이나 낮익던 그 배경.
언제나 전라선 열차를 타면 순천에서 내리거나 '이제 여수도 얼마 안남았구나'
하고 꼭 생각하던 그 곳.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 해져왔습니다.
그러나 그 열차는 더이상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예정대로 진주 방향으로
갔었습니다. 그리고 열차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지, 역시 진주가려고 이 열차 탈사람은 없지.'
순천을 지나니 대망의(?) 경전선. 창밖을 바라보니 내가 다니던 한려대의 배경이
어둡게나마 보이더군요. 학창시절을 얼떨결에 생각하고 있으니 어느덧 광양역.
내리는 사람이나 몇명 있었지 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렇게 하동역 등을 지나고 나니 정확히 6시 50분경에 종착역이자 목적지인
진주역에 도착.
차에서 내리니 맞은 편에는 진주발 서울행 열차가 서있더군요. 그것은 물론 마산과
대구를 거쳐가는 경부선 경유 열차겠죠.
역을 나오니 어떤 아저씨들이 "시내 가요? 사천 가요?" 하고 내리는 사람들을
유혹(?) 하더군요.
'아직 버스 다닐시간이 안되었나보군'
택시를 타는 대신 나는 그냥 정처없이 이곳 저곳을 누비다가 우연~~히 어떤 호프집
간판을 보게 됐는데, 맥주값은 여느곳하고 다를게 없지만 안주값이 엄청 싼거였다.
난 생각하기로 '이렇게 싼데도 있구나..' 막연히 생각하고 정처없이 걷다가 어느
목욕탕에 들러서 시원~하게 때를 벗기고 2시간여동안 푹 쉬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오전 9시 반.
마땅히 할 일은 없었고 근처 피시방에 가서 인터넷을 즐기고 오락도 하면서 또
시간을 그렇게 때웠죠. 10시 30분. 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근처 교회를 찾아서
들어가고 예배를 드렸죠. 교회를 나오니 12시.
약속시간; 오후4시.
현재시간; 오후12시.
시간은 여전히 많고.. 목적지(한국통신 진주 지점)까지는 버스타야 할 거리.
그냥 시간 때울겸 거기까지 걸어 갔죠. 목적지까지 길을 잘 모르는지라 물어
물어서 진주 시내를 거쳐 목적지에 도착하니 오후 2시쯤 됐죠.
예정대로 버스 탔다면 그때쯤 진주 고속터미날에 도착했을 때.
역시 시간은 남아 있었고.. 근방 피시방에 가서 시간을 때우니 졸음이 슬슬..
피시방에서 하는 일 없이 졸다가 눈 떠보니 3시 30분~허걱!
얼른 요금내고 한통으로 달려 가니 아무도 없더군요. 정문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낮설은 두명의 청년이 와서 제가 묻기를.. "혹시 XX모임 오셨어요?
(그냥 모임 명칭은 생략할랍니다.)" , "네, 그런데요." , "제가 이정필 이라고
합니다." , "아, 그러세요? 저는 누구누구입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수위실에서
확인 절차를 거쳐 2층 회의실에서 남은 회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첨 본 사람들도 있었고 오랫만에 보던 사람들도 있어서 참 반가웠습니다.
누군가가 가져온 귤을 까먹으면서 이런저런 노가리를 까고... 5시 반쯤 되어서야
밖을 나가서 근방 분식집에서 순대와, 떡볶이, 라면, 김밥 그리고 소주 한병을
시켜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참 특이한게 서울에서는 순대에 고추까루 섞인 소금을 찍어 먹는데
진주에서는 소금이 아닌 된장을 주더군요. 된장은 별로 안좋아 하지만 여하튼
맛있게 잘 찍어 먹고 촉석루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촉석루에 다다른 시간은 오후 7시. 원래 1인당 천원을 받던 곳인데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무료더군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가고.. 쭉 올라가서 그 곳에서 본 진주교
저녁 풍경은 정말 멋있었습니다. 가로등이 쫙 비쳐있는 진주교의 그 풍경.
그쪽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한장 찍고, 계속 걸어가서 매점에 들러 커피 한잔씩
마시려 했으나.. 매점은..Close! 이런.. 어쩔수 없이 누군가가 챙긴 껌 한장씩을
돌려서 커피 대신 씹었죠. 그렇게 한바퀴 삥~~ 돌고나서..
촉석 대문을 다시 나와서..
"이제 우리 어디갈까?"
"당구나 한게임 칠까?"
"아니다 맥주나 가볍게 한잔 마시자"
여러 궁리끝에 결국 우리는 마침 진주역 근처에 있는 어떤 맥주집(여기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먹거리 게시판에 꼭!! 올리겠습니다.)에 들렀는데.. 허걱.. 이게
어디냐?
제가 위에서 가격 싸다고 생각한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거기에 올라가서 맥주 1,700CC에 오징어 볶음을 안주로 시켜 먹었죠. 술을 안먹는
몇명의 사람들은 콜라나 쥬스로 대신 하기도 했고요. 열심히 먹고 마시면서 나는
한편으로 시계도 열심히 봤습니다. 열차 시각 늦지 않을까 하고요.
재밌게 얘기하면서 친목을 나누고 나니.. 오후 9시5분. 열차 출발시각 13분전.
저는 대학생 친구 덕분에 진주->서울행은 20% 할인된 요금으로 탈 수 있었고
그들과 작별의 악수를 나누고 저는 집을 향하여 열차에 올랐습니다.
서울역으로 향하는 열차에서는 어제와는 달리 자리에 앉자 마자 눈이 감기기
시작 했죠. 역시 출발 할때는 사람이 별로 없다가 순천역에 서니 우루루 몰리는거~
오매..
'역시 경전선이 적자긴 적자인가벼~'
여하튼 눈은 감기고 우리집 침대보다는 좀 불편하지만 여하튼 단 잠을 깨고 보니
어느덧 영등포역.
'아웅~~잘 잤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새벽 4시 30분정도 되었습니다.
역시 역을 나오니 택시기사 아저씨들이 대기중.
저는 서울역 대합실에서 서성거리다가 38번 첫차를 타고 총알같이 집에 도착하여
그대로 뻗었습니다. 이상 여행기 끝~
후기 :
아무쪼록 정말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계획 변경으로 제가 좋아하는
#489를 가까스로 타게 되었고, 목적없는 기차여행이 아닌 모임 정모에 참석해서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사람을 알게 되는 소중한 추억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서울 올라올때도 그 반대열차인 #490을 타고 그대로 올라오기도
했고요. 한편으로는 열차를 잘못타서 때 아닌 목포까지 갈 뻔한 헤프닝도
있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