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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성공 스토리) 스크랩 그레이스 호퍼
푸른여운 추천 0 조회 2,118 09.09.14 21: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그동안 우리에게 가장 큰 피해를 끼친 말은 바로

"지금껏 항상 그렇게 해왔어."라는 말이다.

-그레이스 호퍼-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 (Grace Murray Hopper, 1906 ~ 1992)

 

IT 업게의 전설적인 우먼파워

세계 최초로 컴퓨터 컴파일러을 만들었으며
비지니스 프로그래밍 언어인 "COBOL"의 어머니 이며..
2차대전 함정의 함포 탄도계산을 맡아 혁신적인 초탄명중률을 기록했으며
세계 최초로 컴퓨터 프로그램에 BUG란 단어를 썼으며..
미 해군 최초의 여성 해군 제독이며..
미해군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함정에 붙인 여성이다. 

 

 

[1952년 컴파일러(complier)의 탄생,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 현대 소프트웨어 산업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프로그래머, 컴퓨터 기술을 통한 변혁을 위해 평생을 바침.]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가 컴파일러(compiler)의 개념을 최초로 정의한 "컴퓨터의 교육(The Education of a Computer)"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함. 이 보고서에서 호퍼는 고급 프로그래밍 언어로 작성된 코드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이진(binary) 코드로 만들어 주는 기술을 소개해, 오늘날 컴파일러의 개념과 프로그래밍 코드 해석 방법을 정의했음. 호퍼는 자신이 A-0이라는 컴파일러를 직접 개발하기도 했음.

 

그레이스 호퍼는 이후 약 40여년 동안 컴퓨터 프로그래밍 작업을 더 쉽고 효율적으로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끼칩니다. "자동화 프로그래밍(automatic programming)"이란 개념도 바로 이 호퍼라는 여성 프로그래머에 의해 탄생했던 것이죠. 그녀는 또한 후에 비즈니스 데이터 처리를 위한 프로그래밍 언어, COBOL의 탄생과 보급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컴퓨터 역사에서 그레이스 호퍼는 '버그'란 단어를 처음 만들어 낸 사람으로 기록된다.
1945년 여름 내내  마크 I의 대를 이어 받은 마크 II 컴퓨터는 동작하면서 몇 가지 틀린 정보를 계속해서 출력했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나방이 릴레이에 끼어서 죽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그 나방을 릴레이에서 꺼내 공책의 한 페이지에 스카치 테이프로 붙여놓고 나서 그 밑에
이렇게 적었다. "최초로 실제의 버그가 발견되었다. (First actual case of bug being found)
 
 
최초의 원시적인 인터프린터 쇼토코드를 개발한 호퍼!!
 
현대적 의미의 프로그래밍 언어의 기초는 2차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의 공학자인 콘라드 추제(Konrad Zuse)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 발상은 획기적인 것이었지만 무려 30여년이 지난 1972년에 가서야 빛을 보게 된다.
추제는 이미 1935년에서 1938년 사이에 Z-1, Z-2라는 Computer를 개발하면서,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개념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승전국 미국과 영국에서도 국수주의적인 프로그래밍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는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Grace Murray? Hopper)라는 여성 과학자가 있었다.
호퍼는 유니백에서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했다.
그녀의 방식은 추제의 방식과 동일하게 대수학에 쓰이는 용어를 이용해 기계에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수학에 익숙한 사람들은 복잡한 이진법이나 8진법대신 자신들이 흔히 보아 온 수학기호를 쓰게 되었다.
1949년 호퍼에 의해 최초의 원시적인 인터프리터인 쇼트코드(Short Code)가 개발되었다.
쇼트코드는 이후 윌크스에 의해서 확장, 정리되어 어셈블러(Assembler)로 나타난다.
어셈블러는 간단한 표현의 기호를 하나씩 기계 명령으로 바꾸어 주는 번역기였다.
1952년 영국 출신의 애릭 글레니에 의해서 오토코드(Auto Code)라는 고급 언어 번역기가 발표됐다.
오토코드는 마크Ⅰ컴퓨터에서 사용됐으며, 최초의 컴파일러가 된다.

 

 

2006년 그레이스 호퍼 탄생 100주년

 

IT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프로그래밍 언어 코볼(COBOL)은 멸종된 도도새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코볼을 비즈니스 언어로 확립한 것으로 인정받는 사람인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는 자신이 태어난 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언어가 현대 기업계를 움직이는 많은 응용 프로그램을 든든하게 받쳐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뻐할 것이다.

9일은 1906년 이날에 태어난 그레이스 호퍼의 탄생 100주년이다.「코볼의 어머니」라고도 불리는 그레이스가 프로그래밍 이론 및 방법에 기여한 것은 대단한 업적으로 인정받는다. 그는 무엇보다도 컴퓨터가 한 번에 한 줄씩밖에 해석 못하던 시절에 컴파일된 프로그램을 개발한 최초의 사람이다.

 

 

 


호퍼는 예일대학교에서 수학 및 물리학 학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바사르칼리지(Vassar College)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43년 미 연방 해군 예비군(Naval Reserve)에 합류, 오래된 전자계산기인 하바드 마크(Harvard Mark) 1을 사용했다. 그는 세계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들 중 하나로 일하면서 매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자세한 약력은 위키디피아에서 호퍼(Hopper) 항목 참조).

그레이스는 하바드 마크 1과 마크 2을 사용하다가 1949년 다른 회사로 옮겨서 유니백(Univac) 1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컴파일러를 개발했다.

해군으로 돌아간 후에는 새 언어인 코볼로 만든 소프트웨어를 검증하는 일을 했으며, 코볼은 그레이스의 이름과 지울 수 없는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소프트웨어가 수학 함수와 표기법으로 이루어진 긴 문자열이 아니라 사용하기 쉬운 형태가 되어야 한다는 개념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컴퓨팅 부문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뒀다.

바로 그 지점에서 프로그램은 사무원들이 쉽게 사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나오게 된다. 원칙적으로, 코볼은 과학자가 아니라 사무원들을 위한 것이다.

마이크로 포커스(Micro Focus)의 제품 관리 담당 이사인 줄리앙 도빈스(Julian Dobbins)는 “코볼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으며 기업을 운영하는 프로그램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마이크로 포커스는 아직도 코볼에 맞게 개발하고 있는 회사들 중 하나다. 도빈스는 “(정보 분석 회사인) 가트너(Gartner)는 비즈니스 거래의 75%가 아직도 코볼로 이루어진다고 추정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코볼 사용 비율이 높은 것은 은행 및 기타 금융 기관 때문이다. ATM 사용과 같은 금융 거래를 실행하는 시스템은 대체로 수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가동되고 있다. 이 시스템들은 경제적이며 효율적이다. 그리고 코볼 코드는 문제가 잘못 되었을 때 수정하기 쉽다. 그래서 왜 바꿔야 하나?라는 주장이 나오게 된다.

새로운 응용 프로그램의 경우는 C++과 같은 최신 언어가 코볼을 대치하면서 아직도 코볼로 수행되는 작업은 거의 없다.

그러면 지금도 코볼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빈스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코볼은 건전한 원칙을 토대로 설계됐다”라며 “웹 서비스나 서비스 중심 아키텍처(SOA)와 같은 최신 원칙을 적용해 보면 구현하기가 정말 쉽다는 것을 알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학시절부터 코볼을 사용한 그조차도 코볼은 형편없는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을 인정한다. 그는 “한 컨퍼런스에서 프로그래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객체 지향 응용프로그램에서 코볼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라며 “그 프로그래머는「코볼을 사용해야 할 이유가 뭔가? 달구지(우차)에 터보 기능을 달아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 말했다. 나는 달구지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고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털어놓았다.

도빈스는 아직도 세상이 코볼에 의존하고 있다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그는 코볼을 지금까지도 건전한 언어로 만들어주는 원칙은 그레이스 호퍼가 제일 처음 세운 것이며 그레이스가 태어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그 원칙들을 여전히 고마워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호퍼는 1992년 1월 1일에 사망했다.

 


Grace Murray Hopper. 1906년 생.


컴퓨팅 역사상 가장 지대한 업적을 남긴 여성이자,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해군제독. 상업적으로 가장 거대한 성공을 거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코볼(COBOL)을 탄생시키고 보급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컴퓨터 버그"의 단어를 만든 장본인.

 


아버지는 병 때문에 다리를 모두 잘라낸 장애인이었음. 그러나 진취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던 아버지는 여성도 남자 못지않게 교육을 받아야 하며 수동적인 삶을 사는 구식 여성이 아닌 진취적 여성이 되야 한다고 가르침

 

17살의 나이에 대학에 진학. (당시엔 여자가 대학을 가는 일조차 흔치 않았음.)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이후 예일대 대학원에 진학해 수학 박사학위까지 취득

 

23살에 교육자인 빈센트 호퍼(Vincent Foster Hopper)와 결혼을 하고 대학 강사로 취업. 그러나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고, 2차세계 대전에 발발하기 전 둘은 이혼. 자식을 두지 않았던 그레이스 호퍼는 이후 재혼하지 않았고, 전 남편이 사망한 뒤에도 계속 호퍼라는 성을 유지

 

대학 강사로 일하던 호퍼는 2차 대전 일본의 진주만 폭격이 있은 후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해군에 자원 입대. 당시 호퍼의 나이는 34이었고, 몸무게는 50kg도 나가지 않는 매우 왜소한 체격이었음. 해군에서는 체중 미달을 이유로 입대를 거부했지만, 호퍼는 포기하지 않고 정부 측에 소송까지 내며 입대를 위한 몸무게 제한 취소판정을 받음. 그리하여 1943년 마침내 해군 소위로 임관

 

수학자였던 호퍼는 곧바로 미 해군 산하의 연구소에 배치 받음. 이곳에서 컴퓨터를 처음 접하고 프로그래밍에 눈뜨게 됨. 미 해군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연구소 직원들은 하버드 마크(Harvard Mark) I이라는 컴퓨터를 제작

 

이후 연구진들은 컴퓨터의 성능을 개량해 하버드 마크 II를 제작. 마크 II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버그"를 탄생시킨 기계였음. 1945년 어느날 저녁, 그레이스 호퍼가 마크 II에서 프로그래밍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계의 작동이 멈추었다고 함. 문제의 원인은 컴퓨터 기기 내부로 날아든 나방이었음. 창문 밖에서 날아든 나방은 마크 II의 시스템 안으로 들어와 컴퓨터에 고장을 일으켰고, 호퍼는 이 나방을 수거해 기록에 남기고 이 나방을 최초의 "컴퓨터 버그(bug: 벌레)," 그리고 나방을 제거한 것을 "디버깅(debugging)" 작업이라고 보고함. ("버그"와 "디버깅"이란 말은 이미 에디슨 시절부터 기계의 사소한 고장과 수리를 가리켜 쓰이던 단어였지만, 컴퓨터에 쓰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음.)

 

 

하버드 연구소에서 최첨단 컴퓨팅 기술과 프로그래밍 지식을 쌓은 호퍼는 사실상 업계 최초의 직업 여성 프로그래머가 됨

 

 

1952년, 컴파일러(compiler)의 개념을 최초로 정의한 "컴퓨터의 교육(The Education of a Computer)"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 이후 약 40여년 동안 컴퓨터 프로그래밍 작업을 더 쉽고 효율적으로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함

 

1959년, 펜타곤과 다수의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비즈니스용 프로그래밍 언어, COBOL(Common Business Oriented Language: 코볼)을 완성. 컴퓨터의 상업적인 이용도를 높이기 위해 개발된 코볼은 누구나 쉽게 배우고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컴파일러를 통해) 어떤 종류의 컴퓨터 하드웨어에서도 작동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프로그래밍 언어였음

 

코볼은 그 후 20년간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정착돼,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소프트웨어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게 됨. 코볼이 이런 성공을 거둔 데에는 호퍼의 노력이 컸음. 호퍼는 기업과 정부 기관을 직접 찾아 다니며 코볼의 효율성을 알렸고, 그들이 코볼을 "표준" 프로그래밍 언어로 사용하도록 설득함

 

미 해군의 컴퓨터 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와 변함없는 군에 대한 충성에 감복한 미 해군과 정부는 1983년 대통령 특별지시로 호퍼를 해군제독으로 특진 시킴. 호퍼의 특진은 미 해군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해군제독의 탄생을 의미함. 또한 호퍼는 1986년 80세까지 군에 복무함으로써 미 해군 역사상 가장 많은 나이에 전역한 사람으로 기록됨

 

 

호퍼는 (당시 선거권도 주어지지 않았던) 여성이었던 데다, 대단한 집안 내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출중한 외모를 타고난 것도 아니던 데다, 비범한 천재성을 보인 인물도 아니었음. 이 왜소한 체격의, 그저 그런 배경의 여성이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순전히 본인의 의지와 노력 때문이었음

 
 
 
 
 
그레이스 호퍼의 명언들...
 
 
“그간 우리에게 가장 큰 피해를 끼친 말은
바로 ‘지금껏 항상 그렇게 해왔어’라는 말이다.”
("The most damaging phrase in the language is: 'It's always been done that way.'")
-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

 
모든 게 우리 마음에 달려 있다.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없을 거라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기억하라.
 
-그레이스 호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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