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을 극복하는 길(케네스 코플랜드)
그 양상은 다르지만 싸움은 끝이 없다. 다툼은 나라와 나라를 분열시키고, 형제와 자매, 남편과 아내를 갈라놓는다. 갈등의 정도는 다양하다.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의견 차이를 비롯하여 국가 간의 경계선 문제로 폭탄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하다. 만일 당신이 이 세상에서 살아나가려면, 다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거듭난 신자로서 당신은 그것을 심각하게 해결해야 다루어야 할 것이다.
다툼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죽음을 가져오는 적이다. 하나님 말씀에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야고보서 3: 16에 보면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다툼을 억제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거나 그것에 말려들면, 모든 악한 일이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신약 성경을 자세히 연구해보면 다툼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막아야 하는 치명적인 적이다.
사실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신은 다툼을 초월하여 살아야 할 뿐 아니라 “평화를 가져오는 자”가 되어야 한다.(마태복음 5:9) 그러나 이렇게 다툼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당신 자신이 충돌함이 없이 사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나는 내 스스로 이 질문을 여러 번 해보았다. 나의 삶은 혼란과 다툼으로 가득했었다. 심지어 내가 어릴 때에도 나는 내 자전거, 내 옷 등 무엇이든 놓고 싸움을 했다. 나는 항상 싸우며 사는 것 같았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다른 남자아이들은 청바지를 입고 다닐 때 나는 코르덴으로 만든 니커보커(길이가 짧은 구닥다리 스타일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이들은 내가 걸을 때 코르덴이 “삭삭” 스치는 소리를 흉내내며 나를 놀렸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나를 보고 웃었다. 그 결과 예외 없이 싸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조금만 자극을 받아도 쉽게 누군가와 다툼에 빠졌다. 심지어 어른이 된 후에도, 나는 싸울 기회를 엿보았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같이 탄 여자들이 귀가 번쩍 뜨이는 저속한 말을 했다. 그리고 남자들 중 누군가가 그것에 대해 말하기를 기다렸다가 그를 때려줄 생각을 했다! 나는 예수님을 내 삶에 주님으로 영접하기 전에는 극히 비열한 사람이었다.
내가 거듭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비열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내 주먹으로 싸우는 대신 나의 혀로 싸움을 하였다. 나는 칼로 찌르는 듯한 말을 하였다. 그것은 주먹으로 치는 것 보다 더 강력하였다. 주먹으로 남의 얼굴을 때리는 대신에 나는 그의 마음을 공격하였다. 그것은 주먹보다 더 파괴적인 것이었다. 멍든 눈 자국은 며칠이 지나면 회복되지만, 상처받은 영은 누군가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것을 치유하도록 도와주기 전에는 점점 더 괴로워할 것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왜 나는 그 누구보다 내 가족에게 더 가혹한 말을 하는가였다. 나는 아무리 애쓰고 노력하여도 친절한 말을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아내가 운전하는 것을 너무나 핀잔을 준 나머지, 내가 같이 탈 때에 아내는 아예 운전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아내가 운전하는 것을 너무나 비판한 나머지, 마침내 아내는 잠을 자기로 결정하고 “더러운” 입을 가진 내가 조종을 다 하도록 맡겨놓았다. 나의 아이들에게 하는 말도 더 나을 것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으나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내게는 거칠게 말하는 습관이 너무나 발달이 되었기 때문에 어떻게 그것을 바꾸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나는 내가 언제 아이들에게 친절한 말을 한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다. 그때서야 나는 무언가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어떻게?
나는 주님께 여쭈었다. “제가 그렇게 오랫동안 저의 일부분이었던 행동 양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습니까?” 나는 에베소서 4:29의 말씀을 알고 있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물론 거친 말과 비판의 말은 사람을 세우거나 덕이 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습관을 바꾸기를 원하였다. 나는 내가 오랫동안 익숙해진 말을 버리고, 다툼이나 비판의 말보다 더 강한 말로 대치해야 되었다.
나는 에베소서 5:3-4에서 대치할 말을 발견하였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추한 말을 하던 자리에 들어올 말은 감사하는 말이다. 다른 번역에는 이렇게 표현하였다. “모든 조잡하고 어리석고 경박한 말은 당신에게 적합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The New English Bible) 나는 거친 말을 함과 동시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비판의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즉시 이 원리를 내 삶에서 실행하기로 결정했다. 어느 날 나는 그가 한 일에 대하여 비난하기 위하여 내 아들의 방에 들어갔다. 그 때 나는 나의 옛 습관을 깨달았다. 나는 곧 멈추고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러한 행동은 적합하지 않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멈추고 하나님께 감사드리겠다.” 그리고 몇 분간 주님께 내 아들에 관하여 찬양과 감사를 드리고 나니 화난 마음이 거의 사라졌다.
우리는 자녀들을 화가 난 상태에서 징계해서는 안된다. 에베소서 6:4말씀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자극하여 노엽게 하지 말고(그들이 격분하여 원망을 갖지 않도록)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부드럽게 양육하라.”(Amplified Bible) 5장 1절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처럼 하나님을 본받으라고 말씀하신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아이들이 부모를 본받듯이 하나님을 본받아야 한다.
우리가 잘못 실수를 저지르면 하나님께서는 언어 폭력으로 우리에게 연발사격을 가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는 부드러운 훈계로 우리의 잘못을 고쳐주신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이와 같이 훈계해야 한다. 우리가 화가 났을 때 단 몇 분만 멈추어 하나님께 감사드리면, 우리가 그들을 징계하는 방법을 바꿀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 잔인하고 몰인정한 말을 하려는 유혹이 올 때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면 모든 상황에서 효과를 볼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직장이나, 학교, 또는 어느 곳에서나 당신에게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그에게 언어로 공격하는 대신 당신의 입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로 가득 채워라. 그는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지를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에 대하여 그렇게 나쁜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믿는 자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으나, 예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르라고 하신 말씀의 뜻이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서 십자가가 무엇인지에 관하여 별의별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질병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가난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 안 듣는 십대 자녀들이 그들이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라고 한다. 그러나 당신이 이 세상에서 피할 수 없는, 당신이 반드시 지고 가야할 십자가는 불친절하고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당신을 자극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어디가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툼을 막기 위하여 당신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
예수님은 어떻게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반응하셨는가? 그는 하나님 아버지를 본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하셨다.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내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말씀이다.“(요한복음 8:20을 보라) 그리고 요한복음 3:34에는 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하시므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셨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자신의 똑똑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상황에서 예수님을 변호하셨다. 그는 어떤 경솔한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는 단지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말씀만 하셨다.
에베소서 4:29-32에서 우리는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말씀을 찾을 수 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하나님이 .....하심과 같이“라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라. 우리는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을 본받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그의 일을 행하여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의 일을 하기에 분주하면, 우리 자신의 것을 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너무나 가득하여 우리 안에 다툼이 들어올 자리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의 삶에서 나타나신 것처럼 바로 그것이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는 열쇠이다.
스미스 위글워즈(Smith Wigglesworth)에게서 뛰어난 예를 볼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일에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더 이상 수도배관공으로 일할 시간이 없어졌다. 그리하여 그는 사역자가 되었다. 그는 너무나 성령 충만하여 만나는 사람마다 설교하기에 바빠져서 결국 설교를 전업으로 해야만 했다.
어느날 위글워즈 형제는 어떤 사람의 마차에 올라타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예수님에 관하여 말하도록 허락할 때까지 나는 여기에서 내리지 않겠습니다.” 그를 제거할 목적으로 그 사람은 허락해주었다. 위글워즈 형제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를 사랑하시고 그의 죄를 정죄하지 않으시는 지를 설명했다. 잠시 후 그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면서 그는 주님을 영접하였다. 그는 두 주일 후에 죽었다. 만일 누군가가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행동으로 나타난 모습이다. 사람은 그 자신으로서는 전혀 상관없는 타인에게 그와 같이 진지한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을 찾아가는 데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다.
위글워즈 형제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입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당신의 마음에 말씀이 충만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그 사랑에 대하여 당신의 생각을 새롭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나의 생각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나는 고린도전서 13:4-8을 공부하고 묵상하였다. 나는 일인칭을 사용하여 이렇게 읽었다. “나는 오래 참으며 나는 친절하다. 나는 투기하지 않으며 나는 자랑하지 않는다. 나는 교만하지 않는다. 나는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나의 유익을 구치 않는다. 나는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나는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 나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당신의 입술에 있는 하나님의 찬양은 패배시킬 수 없는 팀이다.
불쾌한 사람이 당신을 자극하여 다툼에 몰고가려고 하면, 당신은 “나는 성내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복수를 하는 대신 하나님의 찬양이 입에서 흘러나오게 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라는 뜻이 아니다. 찬양을 하면 그 상황에 하나님의 임재를 불러오며 영의 세계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시편 8:2를 보라.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하심이니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마태복음에서 인용하실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예수님은 찬양을 능력으로 비유하셨다.
무엇에 대적하는 능력인가? 우리의 유일한 적 사탄이다.
찬양은 마귀를 막는다.
시편 9:2-4를 보라.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의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찬양은 원수를 잠잠케 한다. 찬양은 다툼을 막아버린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툼의 근원, 곧 사탄을 막기 때문이다. 찬양과 사랑은 강력한 좌우연타이다. 찬양은 하나님의 임재를 불러오므로 마귀가 뒤로 넘어져 사라지게 하며, 사랑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신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당신의 입에 있는 하나님의 찬양은 실패하지 않는 팀이다. 사랑과 찬양은 다툼에 대하여 방어할 뿐 아니라 동시에 그것을 공격하는 것이다!
에이미 맥피어슨(Aimee Semple McPherson)의 사역 중에 어떻게 찬양이 사탄을 넘어뜨리는가에 관한 훌륭한 예가 있다. 그녀는 대형 천막을 치고 집회를 하고 있었는데 마을의 어떤 사람들이 텐트에 석유를 부어 “그 종교적 광신자 무리들”을 마을에서 쫓아내려고 계획하였다. 그들은 텐트 밖에서 너무나 큰 소음을 내어 아무도 설교를 들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에이미 맥피어슨은 하나님을 찬양함으로써 그 상황을 다스렸다.
주님은 에이미의 눈을 열어 영의 세계를 보게 하셨다. 그녀는 “하나님 찬양”이라고 말할 때마다 악한 귀신들이 공포에 질려 물러가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들은 결국 잠잠해지고 그들의 악행에 대하여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 그 사람들 중 반 이상이 집회가 끝나기전 주님께 그들의 삶을 드렸다. 집회도 구제 받았고 그 사람들도 구제 받았다!
당신이 다툼 가운데서 보복하는 대신 하나님을 찬양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실 뿐 아니라 상대방의 의와 송사도 변호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패배할 염려가 없는 방법을 보여주실 것이다. 사탄이 패배하면 모두가 이길 것이다!
오늘부터 당신은 다툼을 정복할 수 있다.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겠다고 결심하라. “사랑장”을 묵상하라.(고린도전서 13장) 일인칭으로 날마다 몇 번씩 고백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성나게 할 때 보복하지 말아라. 그 대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감사드리고 그의 임재가 나타나시는 것을 지켜보아라. 그리고 다툼을 그 본거지, 곧 당신의 발 밑으로 돌려 보내고 승리하기 바란다!
출처: 사랑의 메세지 |
첫댓글 다투지말고 서로 사랑만해요~
다툼을 정복해요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