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원을 송축하라(시96:1-6)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1-2절)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늘 감사하면서, 그의 은택을 찬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는 은혜받은 성도의 마땅한 도리이며,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의 실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희로애락의 모든 순간에도 성도로서의 인격과 품위를 지키며, 영적인 승리에 대한 성숙의 과정을 이어가게 됩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의 일상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2절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본 문은 새 노래로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전파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이는 시편 기자들의 신앙고백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시95:1)라고 하였고,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시98:1)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계시는 분인 동시에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능력으로 구원하셨습니다.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사망에서 영생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로 성취되었습니다. 6.25전쟁에서 우리나라를 구해주신 것도 은총의 선물입니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일어설 힘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구원하시고 기억하시고 언제까지나 그를 송축해야 합니다.
둘째, 구원의 감격이 식으면 안됩니다.
1절,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성도는 날마다 새 노래로 구원의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다. 여기서 새 노래는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감사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뜻합니다. 요한계시록에 “그들이 보좌 앞에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14:3)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감격은 식고 형식적인 찬양과 경배만 남은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기서 ‘새 노래’는 부르는 사람의 심령을 새롭게 합니다. 형식적인 찬양과 경배로는 자신의 심령을 새롭게 하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못합니다. 구원의 감격이 식으면 쉽게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됩니다. 광야 마라의 우물에서 있었던 원망사건을 우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은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서 향유를 부으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녀의 행동은 구원의 감격을 드러낸 모델입니다. 주님은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그녀가 한 일이 전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입니다.
셋째, 구원의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3절, “그의 영광을 백성가운데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가운데에 선포할지어다”
구원받은 성도는 새 노래로 하나님을 송축할 뿐만 아니라 그의 위대하심을 백성들 가운데에 선포해야 합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덕’은 하나님의 신적 권능과 탁월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선포하다’는 ‘돌 위에 글씨를 새기다’라는 뜻으로,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된 증인은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삶의 행동으로 보여주어 이방인들로 하여금 그에게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려면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들보다 더 위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른 신들은 우상에 불과합니다. 또 세상의 어떤 학문적 지식과 물질이나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더 훌륭한 삶을 살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여주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을 높이면 영광을 얻습니다,
6절,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그의 앞에는 존귀와 위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성소에는 능력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여기서 ‘존귀’는 탁월함을 ‘위엄’은 ‘영예’를 ‘능력’은 ‘강함’을 그리고 ‘아름다움’은 ‘화려함’을 말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이것들이 하나님의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에 좋았더라’하신 진선미의 근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몸소 드러내면 자신이 하나님의 탁월함, 영예, 강함, 그리고 화려함을 입게됩니다. 하나님의 증인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상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사성어에 ‘근묵자흑,근주자적’(近墨者黑 近珠者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누구를, 또는 무엇을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그의 성품에 참여하고, 그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는 증인이 되면 자연히 높임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아삽은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시73:28)하였습니다.
이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성도들도 하나님의 구원을 송축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사람과 은혜와 축복을 풍성하게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예수사랑선교회 임 웅 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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