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讀(“나는 이렇게 읽었다”의 뜻)
『3월에 읽은 책들』
강남국 읽음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법정 잠언집 류시화 엮음 조화로운 삶 刊
얼마 전 샘터사에서 더 이상 판매할 수 없는 법정 스님의 책 열 한권을 보내왔다. 다른 출판사에서도 한권을 보내주셨고. 개인적으로는 다 읽었던 책들이지만 잠언 집에 눈길이 갔고 3일에 걸쳐 그 책을 천천히 재음미하며 읽었다. 잠언집이란 말 그대로 도덕에 대한 성찰뿐만 아니라 개인의 일생의 사상이 집결된 에센셜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이면서 생의 좌표와 같았던 사유의 언저리의 표출이 아닌가 싶다. 평생을 한국을 대표하는 학승(學僧)으로 살았던 분의 책들이 이제는 서점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아쉬움 속에 읽는 맛은 또 달랐다. 스님의 책을 평생 읽어왔고 평생 아끼고 좋아한 책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잠언집은 특별히 애착이 간다. 솔직히 빈말이 어디 있을까. 하나같이 다 보석 같은 생철학의 면면들이 가슴을 떨리게 하거늘. 영혼을 울리는 한편의 시(詩)가 그렇듯이 좋은 책은 영혼의 떨림을 너머 휘어잡는 것 같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 좋은 책이란 그렇게 생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고 그 참 맛은 나눌수록 더 진가가 발휘되지 않을까 싶어 권유할 지인들의 이름을 나열해 보며 행복해 한다.
≪책을 읽을 자유≫
이현우 지음 현암사 刊
이현우라는 이름보다는 ‘로쟈’라는 ID 혹은 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저자의 책을 읽는 맛은 참으로 맛깔스럽기까지 하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그 나라의 문학 연구에도 시간이 없을 텐데 신문에서 서평을 읽을 때마다 실로 대단한 견식(見識)의 소유자라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그는 인터넷서점에 <로쟈의 저공비행>이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꾸리고 있고, 이른바 ‘인터넷 서평꾼’으로 유명하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사람이야 많지만 저자는 특히 인기가 많은 것 같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란 책이 지난 2009년 나왔을 때부터 회자되기 시작한 저자는 이 책(총 602쪽)에서도 유감없이 역량을 발휘하는데 때로는 혀를 내두르게 하기도 한다. 내가 짚을 수 없었던 것들을 신들린 무당처럼 짚어낼 때면 나는 내 작은 그릇에 아픔을 느끼기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모두 덮기로 한다. 한권의 책을 읽고도 의식의 수준만큼 짚어낼 수 있는 법이라면 어찌하겠는가. 좋은 책을 선택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키워드를 만나는 기쁨을 전해준 저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세상엔 책이 너무 많지 않은가. 어찌 그 책을 다 읽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유의 책들이 있어 책을 선택하는 안목은 물론 헤맴 없이 양서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저자의 건투를 빌며!!!
≪클래식 시대를 듣다≫
정윤수 지음 너머북스 刊
지루하지 않고 모처럼만에 잘 읽었다.
나는 솔직히 고전음악을 잘 알지 못한다.
오랫동안 들어왔고 서가에 클래식을 설명하는 <명곡해설>서가 열권도 넘지만 진작 음악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귀는 조금 열린 듯 하지만 특정한 음악가나 음악에 대해서는 단 몇 분도 설명하기가 쉽지 않으니 참 대책 없는 고전음악 애호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미클래식은 그래도 어지간히 들어서 귀에 익지만 아직도 정통 클래식하면 그냥 캄캄한 수준이니 말해 뭣하랴.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은 이렇게 잘 알지도 못하는데 훌훌 털고 일어서지도 못한다는 데 내 음악적 심각성이 있다. 참 대책이 없다고나 할까. 그렇기에 이런 책이 나에겐 여전히 아주 제격인 셈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클래식의 역사에 관하여 관심을 기울인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때론 흥미진진한 얘기도 없지 않았는데 구미가 당기는 음악가들의 예가 아주 재미도 있고 읽는 맛이 쏠쏠하기도 했다. 작곡가들도 인간이었으니 왜 애증의 역사가 없었으랴. 바흐는 1천곡이 넘는 방대한 작품을 남긴 것 외에도 스무 명이나 되는 자식을 낳았다지 않는가. 또 베토벤이 사랑했던 여인들의 명단은 어떻고. 백작부인 남작부인 등등 말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브람스, 그렇다고 이 책이 그런 시시콜콜한 사생활에 초점을 맞췄다는 뜻은 아니다. 이 책은 저자의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300여 년 전의 비발디로 시작하여 고전과 낭만을 거쳐 현대음악, 곧 윤이상까지 폭넓게 다룬 역작이라 할 수 있다. 음악가 치고 이름이 생소한 사람이 클래식 애호가라면 누가 있을까. 이 책은 아주 쉽게 읽을 수 있어 우선 좋았다. 옛날에 나온 일명 <명곡해설>서 들은 얼마나 딱딱했던가. 음악은 만국의 언어라는 말이 실감난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연이 가깝다는 뜻도 될 터이니 이 도회의 회색빛 하늘아래 오늘도 음악이 있어 행복하다. 아주 비싼 오디오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하루를 시작하면서 음악을 틀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여간 좋지 않다. 나는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고 싶다. 좋은 음악을 듣고 또 지인들에게 내가 듣고 감동 먹은 음악들을 소개 또는 선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이 책은 모두 14장으로 구성돼 있다. 비발디부터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바그너, 차이콥스키, 시벨리우스, 뒤뷔시, 말러, 쇼스타코비치, 야만의 시대, 에필로그가 바로 그것이다. 뒤에 나온 음악 용어 해설도 귀한 자료다. 끝으로 소개한 <음반>은 특히 아주 유용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전면이 칼라여서 값이 좀 비싼 것(2만 6천)이 흠이긴 하지만 가까이 두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좋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 통신≫
최재봉 지음 새움 刊
기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기자하면 부러움의 대상이 기도 한데 그만큼 부딪침의 매력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어서다. 현장의 취재를 위해 발로 뛰는 기자들의 날렵한 몸놀림이 우선 떠오름은 나만일까. 저자는 현역 기자이다. 그것도 신문사의 문학담장.
평생을 문청(文靑)으로 살고 있는 나로서는 문학담당 기자가 부러운 것은 한국의 문인들을 거의 다 만나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싶어서이다. 평생을 만나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문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작품 속에 흠뻑 젖어 현실과 혼동을 일으킬 만큼의 몰입의 책 읽기가 얼마나 그들을 그리워하게 하는지 작가와 기자는 알까. 이 책의 편집은 참 독특하다. 죠르쥬 바따이유의 『에로티즘』이란 책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그 책은 책의 속지 겉까지 표면이 완전 까맣다)한 면이 그렇게 편집돼 있다. 모처럼만에 이런 책을 접하게 되니 새롭기도 했다. 책의 편집이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 느꼈다고나 할까. 이 책은 참 재밌다. 문단의 이 모양 저 모양을 풀어낸 것이기 때문이리라. 한편의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숱한 에피소드들도 좋고 작가나 시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면의 내용도 독자의 한사람으로 읽는 맛을 더했다. 여전히 최기자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좋기만 하다.
≪한시(漢詩)의 세계≫
심경호 지음 문학동네 刊
<활짝웃는 독서회>의 회지에 한시(漢詩)한편씩을 싣느라 이 책을 꼼꼼히 재독했다. 한시를 읽는 맛은 여전히 깊고 깊었지만 한자음에서 우러나오는 그 맛을 온전히 다 해독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이번에도 컸다. 어쩔 수 없이 저자가 번역해 놓은 해설을 참고하고서야 대충의 내용을 파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여간 서운했다. 우리민족은 일찍부터 시를 가까이 했던 나라였다. 기생도 시를 읊을 줄 알았고 선비하면 시는 당연히 시를 짓고 읊을 수 있어야 했으니 요즘하고는 차원이 달랐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감성이 풍부한 민족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의 음은 기본이고 그 음이 내포하고 있는 속뜻을 헤집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어떤 한문은 읽기에도 벅찬 것들이 많았는데 이래가지고 어찌 한시를 읽겠나 하고 장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시를 읽으며 편안해 지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으니 책값이 아깝지 않다 하겠다. 정통 시인들의 시집과 평론가(식자)들의 글을 읽어보라. 얼마나 독자를 절망하게 하는 시들이 많은가를!!! 그들만의 잔치에 독자는 낄 틈을 주지 않는 시도 많은 판에 이렇게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한시가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더 많은 한시를 찾아 읽을 참이다.
2011. 3. 29
청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