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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리투아니아
발트3개국중에서 1개 나라만 보기로 했다.
발트 3국 (Baltic states, Baltic countries)은 발트 해 동쪽의 3국을 지칭한다. 발트 해 연안국
이라는 명칭이 좁은 의미에서 발트 3국에 한해 쓰이기도 한다. 발트 3국은 다음과 같다.
• 에스토니아
• 라트비아
• 리투아니아
이들은 오늘날 독립국이지만 소련의 지배하에 있는 공화국이었던 시절에는 발트 해 연안의 공화국(Baltic Republics)으로 불리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핀란드도 때로 "발트 4국"의 일원으로 포함되었다(특히 소련의 입장에서). 예를 들어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에서 나치 독일은 핀란드를 발트 해 연안국으로 거론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이후, 핀란드는 발트 해 연안국이 아니라 북유럽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핀란드의 입장이 점차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보통 발트 3국은 한데 묶여 거론되지만 이들이 한 집단으로 보기에는 공통점이 적다는 것이 지적되기도 한다. 에스토니아는 역시 북유럽 국가가 되고 싶어하며 리투아니아는 폴란드와 동부 유럽과의 관계에 중점을 둔다.
발트3국의 문화
발트 3국은 문화·역사적으로 공통점도 많지만 그들의 언어는 두개의 전혀 다른 어족에 속한다.
• 라트비아어와 리투아니아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한 발트어군을 이룬다.
• 에스토니아어는 우랄어족의 어파인 핀우고르어군에 속한다. 계통적으로 핀란드어와 깊은 관련이 있다.
또 기독교의 서로 다른 교파에 속해있다.
•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는 개신교의 일파인 루터교 국가이다. 또 이들 국가에서 소수집단을 이루는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정교 신자이다.
• 리투아니아는 가톨릭 신자들이 주를 이룬다.
중세 때부터 시작되어 오랫동안 계속된 독일계와 19세기 이후의 러시아계에 의한 지배의 영향으로 나이든 세대의 많은 수가 아직도 제2언어로 독일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또 역사적으로 스웨덴, 폴란드, 러시아의 영향권에 들어 있었다. 또 소련에 병합된 이후로 이들 국가, 그 중에서도 특히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에는 러시아인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러시아인이 중요한 소수민족 집단이 되었다. 소련 지배의 이러한 유산으로 독립 후 민감한 민족문제의 불씨를 남겨두고 있다.
1992년에 발트 3국은 음악 문화 발전을 위한 국제 협력적 지원의 일환으로 폴라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리투아니아(Lietuva)
유럽 북동부에 있는 공화국이다.
공식 명칭은 리투아니아 공화국(리투아니아어: Lietuvos Respublika)이며 수도는 빌뉴스(과거에는 카우나스)이다.
동쪽과 남쪽은 벨라루스, 서쪽은 발트 해, 남서쪽은 러시아연방 및 폴란드, 북쪽은 라트비아에 닿아 있다. 발트 3국 국가 중에서는 인구와 영토가 가장 많다. 18세기 말 폴란드 분할 때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립했으나 1940년 다시 소련에 강제 합병되었다. 1991년 8월 구 소련 쿠데타 실패 후 독립을 선언, 9월 독립을 인정받았으며, 독립국가연합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발트 3국의 최남부에 있다. 민족구성은 리투아니아인이 83%이다. 전체산업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식품 및 담배가 29.6%, 기계장비가 18.3%, 섬유의복·가죽제품이 17%이다. 6세부터 11년간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1990년 종교교육을 도입하는 등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1,역사
리투아니아라는 이름은 1009년의 라틴 연대기 Annales Quedinburgenses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1253년 7월 6일 민다우가스(Mindaugas)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처음으로 통일 국가를 수립하였다.
1386년 요가일라(Jogaila)가 폴란드의 여왕 야드비가와 결혼하면서 리투아니아와 폴란드는 동군연합(同君聯合)을 형성하게 된다. 리투아니아-폴란드 연합군은 1410년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튜튼기사단을 무찌름으로써 독일인들의 동방 팽창을 저지하였고, 리투아니아는 이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동일한 운명을 걷게 되어(→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폴란드 분할 결과 1795년 리투아니아 지역은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고 말았다. 리투아니아인들은 1795년, 1830년, 1863년 등 세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봉기를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리투아니아는 1918년 2월 독립을 선언하였다. 원래는 군주제로 독립할 것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러시아 혁명과 독일 제국의 패망으로 독립되어, 공화국으로 출발한 것이다. 리투아니아는 1918년 독립선언한 이후, 공산당세력, 보수세력, 농민세력 등 복잡한 이념세력들의 정권 쟁탈 투쟁으로 국내사정은 극히 혼란하여 정권교체가 잦은 불안이 계속되어왔었다.
그 틈새를 타서 군부 세력들이 점점 세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하게되었는데, 1930년대즈음 들어오면서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발트 3국 국가들은 군부 세력들이 쿠테타로 집권하여 반소, 반공, 친독 독재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 이후, 1940년 리투아니아는 히틀러-스탈린간의 조약에 의거하여 소비에트 연방(소련)에 편입되어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가, 1941년 독-소 개전 이후 독일군에 점령되기도 하였다. 1944년 나치 독일이 패퇴하면서 다시 리투아니아를 점령한 소련군은 독일에 협조하였다는 이유로 리투아니아인들을 박해하여 3만 가구가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되었고, 12만 명이 국외 추방되거나 북유럽, 미국 등지로 망명하였다.
1990년 3월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1991년 1월 소련군이 리투아니아를 침공하여 13명이 사망하고 700여명이 부상하였으나, 리투아니아는 소련군을 물리쳤고 같은 해 9월 17일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함께 유엔에 가입하였다.
현재 리투아니아는 소비에트 연방(소련) 당시의 리투아니아 SSR을 괴뢰 국가로 호칭하고 있으며 반러시아적인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 2008년 11월 27일에 리투아니아는 신임 총리로 안드류스 쿠빌류스가 새총리로 당선되었다.[2] 2009년 5월 17일에 대선에서 리투아니아는 첫 여성대통령이 탄생되었다.[3]
2,지 리
리투아니아는 발트 3국 가운데 가장 영토가 넓고, 인구도 많다. 북유럽에 위치하는 리투아니아는 99km 정도의 모래 해안선이 있으며 이 중 38km만이 발트 해와 접한다. 나머지는 쿠로니안 반도와 맞닿고 있다. 리투아니아의 가장 중요한 부동항인 클라페다(Klaipėda)는 쿠로니안 반도와 아주 가까우며 남쪽으로는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 주와 접한다. 네만 강이 가장 중요한 강이며 강의 지류가 국제 선박의 이송로로 쓰인다.
리투아니아는 빙하로 조각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높은 곳은 서부와 동부의 고지대인대 300m 이상인 곳은 없어서 가장 높은 아우토자스(Aukštojas Hill) 언덕으로 294m 정도이다. 많은 습지와 호수가 있어서 삼림을 포함하여 전체 국토의 30%가 숲이다.
3,주 민
83.5%가 리투아니아인이며, 리투아니아어를 사용한다. 러시아인, 폴란드인,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 유대인, 기타도 거주한다.
인구:약 350만명이며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은 2004년 현재 (Eurostat 추정) 1.26명이다. 합계출산율은 1994년 이래 계속 줄어들기만 하다가 2002년의 1.24를 기점으로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추세이다. 2005년 현재 천명당출산율은 8.9명, 천명당사망율은 12.9명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4,언어
리투아니아에서는 공용어인 리투아니아어외에도 러시아어, 폴란드어, 영어, 벨라루스어도 사용된다.
리투아니아는 프랑스어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참관국이기도 하다.
5,종교
리투아니아인의 전통적인 종교는 로마 가톨릭이다. 소련 통치와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가톨릭 세력이 많이 위축되기도 했으나, 소련 시절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가톨릭은 소련에서 독립할 때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소련에 속했던 나라 중 유일하게 국민 중 다수가 가톨릭 신도인 가톨릭 국가로 빌뉴스와 카우나스 관구를 중심으로 전국은 8개의 교구로 나누어진다. 다음으로 러시아 정교회와 루터교 신도가 많으며, 기타 개신교 교파와 유대교, 이슬람교 등의 신도도 소수 있다.
5,문 화
전통옷을 많이 입으며, 엄격한 문화가 발달하였다. 올림픽에서는 농구와 투원반이 강세한 편이다.
6,외교관계
한국과의 관계
리투아니아는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게 된 1991년에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1993년 투자 상호증진을 위한 협정을 체결하였다. 북조선과는 1991년에 수교하였다.
14일만에 러시아의 뻬제르브르그를 출발(20:03분)하여 발트3국(에스토니아, 리트비아, 리투아니아)중 하나인 에스토니아 옆을 지나 리트비아를 경유하여 리투아니아 수도인 빌리우스까지 12시간에 거쳐 야간열차로 이동을 한다.
발트 3국은 모두 무비자로 국경을 통과할수있다는 것을 사전에 파악하고 왔는데 그래서 순조롭게 통과 할것으로 알았으나 러시아 체류기간이 너무 길었기에(러시아에서는 3일간만 체류를 해도 체류확인서가 있어야 되기때문에 우리는 한 도시에 2일씩밖에 않있었음,그러나 토탈체류가 문제가 된다는 이유가 성립) 체류확인서에 문제가 된다면 패널티챠지를 물게 된다. 벌금을 물게될 경우 100$이란다.러시아 민박집 주인이 우리가 무사통과가 않될수도 있다는 얘기가 해 주어서 약간 불안은 했으나 나는 조금도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난 믿는 분이 계시기에)친구는 신경이 많이 쓰인단다.
리투니아는 발트3국중 볼거리가 가장 많은 나라라고 우리는 알고 왔다. 우리지도에서도 역사지역으로 명기되어 있다.러시아 인종과는 문화도, 인종도,언어도 다르다. 지형은 우리나라 서울근교와 같이 지형이 낮고 나무가 많으며 특이한 것은 적송이 아주 빼곡히 울창하여 산림정책을 잘 추진하는 것 같이보인다. 부럽기 조차하다. 수종과 잘 자란 나무들이 참으로 아름답다 간혹 자작나무들도 보인다.
적송은 대부분 꼿꼿하지만 간혹 굽은나무도 보인다. 30~40년생 이상 된것 같아 재목에 쓸만한 좋은 나무들이다.
현재 우리가 지나고 있는 곳의 위도는 덴마크와 비슷하다. 우리나라 평양쯤돼 보인다.
시골마을의 집들은 15~20평정도 쯤 되어보이며 작아보이는 건물들이 더 많다. 집을 지은지는 200년이상 되어보이는 듯하다. 나무집은 200년 이상 간다고 하니 아직 쓸만한것 같은데 지붕이 거의 뾰족한 것으로보아 눈이 많이 내림을 알 수 있다. 러시아의 건축양식도 지붕이 대개는 뾰족하고 큰 건물은 양파모양의 지붕이 되어 있음도 눈에 잘 견디기 위한 건축공법임을 알았다.
이곳도 러시아의 다차와 같은 작은 집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구 소련의 지배를 받은 것이 틀림없으렸다. 기찻길옆의 토질은 주로 마사토로서 배수가 잘 되어 보인다. 산과 구릉이 이어지고 있지만 산은 50~60m정도의 낮은 산으로 우리나라의 경기 서남부지방과 같입 보인다. 산림이 드넓은 수림으로 덮혀있어 대단히 아름다운 나라임을 느끼게 한다.
빌리우스에 열차가 거의 당도하고 있다. 지금시간은 09시 20분(모스크바시간)이니까 13시간이 소요되었다. 빌리우스에 와 보니 차량이 모두 왼쪽으로 통행을 한다. 일본에 이어 러시아와 이곳 빌리우스에서도 차량통행이 좌측임을 보니 생소한 느낌이 들어 보인다....
내용은 계속 이어집니다......
빌리우수의 기차역에 도착하여, 역사는 그리 크지 않다.
개찰을 하고 역 구내를 나오면서 보니 가게가 4귀틍이에 15평정도의 가게가 한개씩이 있는데 그중에 한곳은 꽃가게이다. 이곳 국민들도 꽃을 사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묵은 민박집으로 선교사님 자택이자 상층의 2개층은 교회건물로도 활용하는 건물
선교사님은 40대 중반으로 약 10년전에 이곳에 정착, 선교활동을 하신다. 이곳 선교사 1호인셈이시다.
교인수는 30~40명정도 이며 젊은 청년이 주로 교인이며 지난주엔 젊은 커플이 이곳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단다.
선교사님은 이곳 직장에 나아가시며 근무하시면서 주일날만 집례하신다.
사모님은 인천의 모 여중의 영어선생님으로 계시던 분이셨으며 우리가 인천에서 왔다는 것 때문이 아니더라도 천사와 같은 분이시고 우리에게 무지 잘 해주셨다.차비를 제외하고 남는 돈이 조금 모자랐지만 기꺼히 괜찮다고 여비를
다 받지 않는 분이 어디 그리 흔할까....
그 분은 마치천상에서나 보는 분으로 보였다.
이 나라는 카톨릭국가기때문에 기독교 개척이 어려워보이나 대기만성이라지 않는가?
하나님의 일이 어디 그리쉬운게 있나?
나는 종교에 관심이 많은데 종교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룬다.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리우스 시내를 흐르고 있는 샛강정도의 강물이 흐르고 양 옆은 신시가지로 발전하고 있다.
국가 인구가 350만정도로 산림이 우거져있고 공기가 좋으며 동구권으로서는 (과거)꽤나 살기 좋은 나라인 것으로
느껴진다. 카톨릭을 열심히 믿는 나라! 역시 조물주의 축복이 넘쳐남을 느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나라라고
단정짓고 싶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도 값도 우리보다 싸고 물건도 좋고, 우리는 4Kg하난 수박을 사서 목사님과 함께
먹으며 밤이 늦은시간까지 많은 대화를 나눌수 있었다. 발트3국중 1개국을 참 잘 보러 왔다고 생각된다.
교량의 구조물이 최신식 구조물로 되어있으며 교통량도 제법 많은 편이다.
시내 중심가의 거리로 건물들이 중세 도시의 아름다운 석축건축물들로 되어있다.
한가롭게 길거리 상점에서 다과나 음료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 도로를 오래된 돌로 수 작업을 하여 깔끔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배수가 잘 되도록 되어있고 특히 겨울철에는 눈길에 미끄럼 방지 효과가 있을듯 하다.
카톨릭이 가장 많고 다음이 러시아 정교회, 개신교, 이슬람교 성전이 혼재되어 있다. 성당건물을 많이 볼수 있다.
고대 중세도시로 관광객이 많은 편이며 단체로 다니며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다.
빌리우스의 기차역의 전면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