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버스 기사의 이야기
1막
(배경음악이 흐른다.)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평화로운 분위기)
할아버지와 할머니 등장. 신기자 멀리서 따라온다.
모두들: 안녕하세요? (포옹하며) 건강하셨죠? (할아버지와 할머니 무덤에서 잠시 기도한다.)
할아버지: 모두들 잘 지내셨죠?
남자: 멀리서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겠어요.. (뛰어가는 아이를 붙잡으며) 미진아 할아버지
아이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그래그래.. 너두 일년새에 많이 컸구나
할머니: 너무나 예쁜 애들이야
할아버지: 얘들 크는 거 보며 정말 우린 늙는것두 아냐
남자: 두분 다 아직 젊으세요7
여자2: 그럼요
할아버지: 아 참 소개하지 지난번 얘기했던 내 막내딸 친구 신문기자 아가씨
신기자: 안녕하세요 대한일보 신기자예요..
모두들: 안녕하세요..
신기자: 오늘 이 추모예배를 취재하기 위해 아버님께 부탁드려 이렇게 왔습니다.
모두들: 잘 오셨어요
신기자: 아버님께서 대략 말씀 해 주셨지만 그날의 사고와 10년 동안 계속 되어 온 이 추모예배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할아버지: 여러분들이 말씀해 주셔요
남자: (앞을 보며) 바로 10년 전 오늘. 그날도 오늘처럼 아주 무더운 날이었습니다.
2막
남자: 그 날이 마침 장날이어서 마을버스 안엔 많은 사람들이 탔었어요
할머니: 아이들도 있었구요
여자: 15인승 마을버스가 꽉 차 통로에 서있는 사람만 해도 여럿이었죠
남자: 구암리 버스 정류장에서 몇 사람을 더 태우고 읍내로 가는 고개 내리막길로
버스가 막 들어섰을 때였어요
갑자기 버스 안에서 퍽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순간버스가 휘청하는 거에요
여자: 나중에 알고 보니 브레이크 파열이었어요
남자: 그 내리막고개가 좀 가파릅니까? 버스가 비탈 아래로 미친 듯 내달리기 시작 했지요
(오른쪽을 보면서)길 오른편은 뾰족한 바위산이고, (왼쪽을 보면서)왼쪽은 바 로 시퍼런 강물과 맞닿은 절벽이었지요 도저히 어떻게 멈출 수가 없는 상황이 었어요 가속이 붙어 점점 더 빨라졌지요
할아버지: 이제 죽는구나 했어요
여자: 너무 무서웠어요
여자2: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고 버스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어요
남자: 저 앞에서 마주 오는 차 한 대와 스치듯 아슬아슬하게 피했습니다
그 버스기사는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매우 침착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데 모퉁이를 돌자 저기 저 앞으로 한 아이가 막 길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다 건넜구나 싶었던 그 아이가 신발 한 짝이 벗겨져서 길 한복판에 떨어지자 그걸 주우러 다시 되돌아가는 거였어요
여자: 한쪽발로 애써 깡총거리며 뛰어가는걸 저두 봤어요
남자: 버스는 여전히 그 아이쪽을 향해 미친 소 마냥 내달릴 뿐이었지요
도저히 멈출수도 피할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운전석옆자리에 앉아있던 저도
“아이에요”라고 소리쳤지만 만약 그 아이를 피한다면 버스는 어쩔 수 없이
낭떨어지 아래 강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여자: 저 아이를 피해야 할텐데...순간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자: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데 버스는 낭떨어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발 한 짝을 막 주어들고 몸을 일으켜 달려오던 버스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그 아이를.(꺄악)치고 말았어요 (잠깐의 적막이 흐른 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오르막길로 접어든 버스가 가까스로 멈춰 섰습니다.
모두들: 휴
남자: 사람들의 비명이 멈추고 대신 터져 나오던 한숨도 잦아들던 일순간 버스엔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이었죠.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누군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이가 죽었어요”하고 외쳤고 모두들 멍하게 굳어버린 버스기사를 앞세워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피로 얼룩진 아이는 이미 숨져있었습니다.
그리고 억누를 수 없었던 슬픔과 분노에 휩싸였던 우리는 그 버스기사를 향해 외쳤습니다.
여자: 말도 안돼요.
여자2: 왜 이 아기가 죽어야 해요
할아버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할머니: 왜 버스를 멈추지 못한 거예요
할아버지: 바로 당신, 당신이 이 아이를 죽였어.
(잠깐 적막이 흐르고)
남자: 만약 그 아이를 피했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랬다면 우리 모두 그 사실을 마음 속으로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입으로 꺼낼 수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대신 그 아이가 죽었다라는 마 음 깊은 곳에서부터 오는 죄책감으로 분노가 더 거세었는지도 모릅니다.
할아버지: 살인자
할머니: 왜 죽였어요?
여자2: 당신이 죽였어요!
할아버지 :당신은 살인자요
할머니 : 당신이 이 아이를 죽였어..
남자: 그때 누군가가 울음을 터뜨리며 외쳤습니다.
여자: 어.. 아니..이 아는 바로 저 사람의 아들이예요. (소리내어 운다)
남자: 우리는 멍하니 할말을 잃었지요.
아이가 바로 버스기사의 아들이었던 거지요.
그는 천천히 몸을 굽혀 무릎을 꿇어 아들을 안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깨가 조용히 떨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오랬동안 숨막힐듯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3막
신기자: 그럼 그 마을 버스기사는 그 아이가 자기아들인 줄을 알았다는 건가요?
여러분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했단 거예요?
남자: 그렇습니다.
여자: 그때 전 지금 저기 뛰어 놀고 있는 미연이를 갖고 있었어요
그때 그 아이가 제 대신 죽지 않았더라면 지금 저기 있는 미연이도 없었겠지요 아이를 낳고 또 키워가며 점점 생각하지만 그때 그 아이가 우리 대신 죽지 않았다면… 내가 과연 그 때 그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과연 내 자식의 생명을 남모르는 사람들의 생명과 바꿀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그럴 수 있을 꺼라는 생각이 안들더라구요…
신기자: 누구에게라도 어려운 거겠지요.
여자: 하지만 그는 그렇게 했어요. 분명히 자기의 목숨보다도 더 귀한 생명일 텐데 그걸 희생해 우리에게 준 거예요
남자: 그때 전 부임한지 얼마 안된 햇병아리 선생이었었지요.
언제라도 내던지고픈 사직서 한 장을 늘 마음에 품고 살았었지요. 가르치는 것으로서의 선생이 아니라 직업인으로서의 선생이었습니다. 더 좋은 직장을 쫒아 뛰쳐나갈 욕구로 가득 찼었죠 자연 그 모든 욕구에 대한 불만이 아이들 에게로 돌아갔고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 그런 메마른 선생이었습니다.
(여자 2와 손을 잡으며)
그러나 그 날 이후 전 제가 그 아이를 대신하여 살아가는 것과 또 그들 부자에 대한 사랑의 빚진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 생명을 댓가로 한 사랑의 빚진자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유일 한 길은 오로지 저의 생명과 받았던 그 사랑을 나눠주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 그래요 그 사고로 말미암아 우리의 인생은 바뀌었습니다. 여기계신 젊은 분들도 또 나같은 늙은 이 조차도 그 죽음의 순간에서 다시 새롭게 태어 날 수 있었던 겁니다.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거지요
신기자: 그래서 아버님께서 은퇴하시고도 순회 무료진료를 다시 시작하신 거군요
할아버지: 하하하. 이 늙은이한테 평생하던 그것 말고 또 뭐가 있겠소?
(무덤으로 걸어가면서. 나같은 죄인 살리신 음악이 흐른다 )
할아버지: 나도 언젠가 이 아이처럼 이렇게 잠들겠지만 세상사람들 그 누군가에게라도 사랑 한점은 되돌려 주고 싶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