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존 칼빈, 복음전도의 교사와 실천가
우리는 먼저 칼빈이 이 주제에 어떻게 말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주석, 설교, 서한들 속에서 복음 전도에 대해 수 없이 많은 언급을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칼빈, 복음 전도의 교사
다른 종교개혁자들과 같이 칼빈도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성경의 요청에 따라 교회를 개혁함으로써, 전반적으로 복음전도 사상을 가르쳤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칼빈은 그리스도의 나라의 보편성과 그 나라의 확장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에 초점을 맞춤으로 복음전도 사상을 가르쳤다.
칼빈은 삼위일체의 각 위격이 천국확장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삼위 하나님은 세상 전역에 자신의 나라를 어떻게 임하게 하실까? 칼빈의 대답은 하나님의 주권과 우리의 책임을 강조한다. 칼빈은 복음전도 사역은 우리의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으로서 하나님이 우리를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여 이루실 것이라고 말한다.
칼빈은 그리스도가 모든 곳에 생명의 씨를 뿌리고(마 13:24-30), 인간적 수단이 아니라 하늘의 권능으로 교회를 모으신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복음은 “비처럼 구름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손을 통해 하나님이 복음을 보내 주심으로써 주어지게 된다.” 구원의 능력은 하나님께 있으나 복음 전파를 통해 그것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의 복음전도가 우리의 복음 전도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 세상에 대한 자신의 아들의 통치에 참여할 영예”를 베푸신다. 칼빈은 “교회를 모으는” 통상적인 방법이 사람들의 외적 외침에 있다고 가르쳤다.
칼빈에 따르면 복음전도는 신적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이처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1. 개혁파 복음전도자로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 땅 모든 지역에서 교회들을 자기에게 모으고, 교회의 수를 늘리고, 그들의 은사 를 더 풍성하게 하고, 그들 가운데 적법한 질서를 세우는 것을 우리 일상의 소원의 핵심 목표 로 삼아야 한다.
2. 우리는 복음전도에 힘쓴 결과가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해야 한다
3. 우리는 우리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리스도 나라의 확장에 힘써 야 한다.
칼빈은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시기 때문이다.
* 하나님이 본보기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 즉 복음전파를 감당해야할 참된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동료 죄인들에 대한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외치는 사자가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선지자),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제사장), 다른 사 람들을 제자로 삼는 것(왕의 직분)은 신자들에게 세상 끝 날까지 위임된 것이다.
칼빈, 복음 전도의 실천가
교인 속에서의 복음 전도
복음 전도는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사역과 죄인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결과를 넘어서 종교개혁의 다섯 가지 핵심요소 곧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교리에 따라 신자들을 가장 경건한 신앙 속에 세우는 것을 필요로 한다. 칼빈은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의 회중 속에서 이러한 개념의 복음전도를 적용한 탁월한 실천가였다.
칼빈은 설교를 복음전도와 교화를 목적으로 했다. 그는 대체로 구약 성경은 4-5절 정도, 신약은 2-3 구절 정도로 본문을 설교했다. 이렇게 하면서 그 내용을 회중의 삶에 적용시켰다. 칼빈은 회중에게 설교 듣는 법을 자주 가르치면서 설교를 어떤 정신과 자세로 들어야 하는지 가르쳤는데, 칼빈의 목표는 사람들이 설교에 참여하여 설교를 먹고 그들의 영혼이 자라도록 돕는데 있었다. 칼빈은 설교를 들으러 나아올 때 “온전히 그리고 지체없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칼빈에게 복음 전도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하나님의 자녀를 가장 경건한 신앙 안에 세우는 것과 비신자들에게 죄의 가증함을 일깨워 그들을 유일한 구속주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이끄는 것이었다.
제네바에서의 복음 전도
칼빈의 제네바는 피난처와 학교 이상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곳은 복음에 있어 다른 곳의 필 요에 대한 책임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을 위해서만 살았던 신학의 상아탑이 아니었다. 인간적 그릇들이 이 피난처에서 구비되고 재정비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주변 세상의 필요의 바다 속으 로 뛰어 들어가 자기들이 원래 그랬던 것처럼 무지와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의 빚을 전할 때 그들에게 기다리고 있던 모든 폭풍과 위험에 용감하게 맞섰다. 그들은 이 학교에서 자기들을 해방했던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도록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다.
프랑스에서의 복음 전도 효과
프랑스에서 개혁파 신자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제네바로 망명했다. 제네바에서 많은 신자들이 신학을 공부했다. 이후에 그들은 개혁파 복음전도자와 목사로서 조국의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충동을 느꼈다. 목사로서 고국으로 돌아간 프랑스 출신 망명자들은 결국 순교를 당했으나 그들의 열정은 교구민들에게 소망을 불러 일으켰다. ‘프랑스에서 우리 주님의 명령대로 복음에 대한 지식을 전파하는데’ 힘쓴 그들의 선교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개혁파 복음전도 설교는 괄목할 만한 부흥을 일으켰다. 1555년에는 프랑스에서 개혁파 교회의 완전한 조직체가 출범했다. 7년 뒤에는 거의 2,000개의 교회에 육박했다. 1560년대에는 프랑스 인구의 10% 이상 300만명이 개혁파 교회에 속해 있었다. 1572년, 성바돌로뮤의 날 대량학살 사건 동안에는 70,000명의 개신교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파 교회는 존속했다.
칼빈의 선교 정신과 선택교리
존 칼빈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땅 끝까지 확장할 복음전도에 대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은 참으로 분명하다. ‘그리스도의 나라가 모든 곳에서 번성하도록 하는 것’이 칼빈의 소원이었다. 땅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확립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그 통치가 우리의 관심 속에서 주된 대상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사고를 흡수할 정도”라고 칼빈은 말했다.
선택 교리는 복음 전도 활동을 자극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은혜의 수단과 연계시키기 때문이다(행 13:44-49). 선택 교리는 복을 받기 위해 겸손하게 하나님께 의존하는 사상이기 때문에 선교활동을 불러 일으킨다. 값없는 은혜 교리는 하나님 중심적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음 전도의 장애물이 아니다. 선택 교리는 인본주의적인 복음 전도의 업무와 방법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따라서 선택 교리는 개혁파 복음 전도의 성공의 원동력이요 보증인이다. 이에 대해 이사야 55장 11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격려의 말
칼빈의 사상은 복음 전도를 위해 수고하도록 도전을 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우리는 간단히 말해 이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고, 오히려 그의 사상은 우리에게 힘을 준다. 한 예로서, 칼빈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하든 신경 쓰지 말고 복음 전도에 정진하라고 말한다. 만약 칼빈이 하루에 20시간에 걸쳐 설교하고 가르치고 저술할 정도로 수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판가들로부터 비판을 면할 수 없었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까? 만약 칼빈이 복음 전도자가 아니라면, 누가 복음 전도자일까? 우리가 죄인들의 영혼을 위해 수고하면서, “내 몸이 녹스는 것 보다는 닳아 없어지는 것이 낫다”고 말한 윌리엄 케리처럼 기꺼이 고백하고 있는가?
주일 저녁이면 완전히 녹초가 되면서도 책임을 다할 수 없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가족과 같이 보내는 시간도 부족하고,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도 부족함을 느끼며,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에서 사역의 압박을 느낄 때, 우리는 스펄전이 “목회자의 기절”로 부른 현상을 경험한다. 이럴 때 우리는 칼빈의 본보기를 따라 다음의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다.
* 그리스도를 더욱 주목하라. 그리스도의 인내를 더욱 의지하고 그 인내를 본받는 은혜를 구하라.
* 멀리 보라. 영원의 관점에 따라 삶을 추구하라(4년 땅속-60일 만에 90피트 는 중국 대나무).
* 낙심의 때가 지나면 종종 부흥의 때가 이어진다는 것을 잊지 마라.
* 하나님을 의지하라. 친구는 실망을 시켜도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 성령은 의지할 만하다.
청교도인 존 플라벨의 권면을 주목해 보자. 그는 “교회가 죽기 전에는 교회를 매장하지 마라!” 고 말했다. 더 열렬히 기도하고 상황은 그리 두렵게 보지 마라. 여러분 앞에 가시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갑절의 열심으로 계속 주님을 섬겨라. 그리스도의 선한 군사로 고통을 감수하라.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바보 취급을 받으라.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계심을 확신할 수 있으니, 여러분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확신하라.
마지막으로 “열린 문”에 대한 칼빈의 접근법을 배우자(계 3:20). 우리는 하나님이 닫아버린 문을 열려고 힘을 낭비하지 말고 우리 사역을 위해 새로운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복음 전도를 위해 수고할 때 하나님 앞에서 행하지 않고 하나님 뒤에서 따르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개혁파 복음 전도의 참된 핵심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뒤따르는 데 있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이름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우리 앞에 열어놓으신 문을 주목하는 자가 되도록 그리고 칼빈처럼 다음과 같이 기도하는 자가 되도록 도우시기를! “우리가 날마다 기도로 당신께 간청하는 자가 되게 하시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과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자기에게 주어진 권능을 행사하실 때---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온 세상을 하나로 모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의심하지 말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