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정권을 전복시키고자 했던 이 국제적인 공작은 삼 사리(Sam Sary)와 손 웟 탄(Son Ngoc Thanh) 같은 캄보디아의 우파 정치인 및 지역 군벌이자 도지사였던 덥 추온(Dap Chhuon), 그리고 태국과 남-베트남 정부가 개입했다. 또한 "미국 중앙정보부"(CIA)도 개입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주1)
훗날 시하누크 공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이 쿠데타 모의는 손 웟 탄이 이끌던 "크메르세레이"(Khmer Serai) 반군이 주도했는데, 이 반군의 주력은 현재의 베트남 남부지방의 소수 크메르인들인 "크메르 끄롬"(Khmer Krom) 출신이었다. "크메르세레이" 반군이 캄보디아 동남부 국경지역으로 집결하고 있을 때, 시엠립 도지사였던 덥 추온(그는 지난 몇년간 시하누크에 충성했었다)은 북부와 동부에서 봉기를 시작하려 했다. 1959년 2월 초에 미국의 해리 펠트(Harry Felt) 해군제독과 로우톤 콜린스(Lawton Collins) 육군대장, 그리고 에드워드 란스데일(Edward Lansdale) 공군대령이 시엠립에 있던 덥 추온의 사령부를 방문한 바 있다.(주2)
시하누크의 정보당국은 1959년 2월 21일 이 음모의 전모를 파악했고, 1개 대대 병력을 급파해 덥 추온을 체포했다.(주3) 덥 추온은 피신했지만, 미국인인 CIA 무선통신요원 빅터 마츠이(Victor Matsui)가 체포되었다. 얼마 후 추온의 위치가 파악되어 체포된 후 심문을 받았는데, 정식 수사를 받기 전에 무언가 석연찮은 분위기에서 "부상"을 당해 숨졌다. 뒤에 시하누크는 이 사망에 대해 진술하기를, 자신의 국방부장관이었던 론 놀(Lon Nol)이 덥 추온이 쿱테타에 가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살했다고 하였다.(주2)
시하누크는 덥 추온의 시신을 사진으로 찍어 프놈펜 대로변에 내걸도록 했다. 그 외의 주요 모의자들 중 삼 사리는 1962년에 실종되었고, 손 웟 탄은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까지 1970년 이후의 론 놀 정부에 잠시 가담한다. 덥 추온의 형제이자 CIA 요원 빅터 마츠이의 친구였던 슬랏 뻬오우(Slat Peou)는 당시 주 UN 대표부의 시하누크 파견 대표였는데,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예민한 아마추어 영화감독이기도 했던 시하누크 전임국왕은, 이 사건을 자신의 영화 <앙코르에 드리워진 그림자>(Shadow over Angkor)의 소재로 삼기도 했다.(주4) 시하누크는 이 사건을 미국이 자신의 정권을 전복시키려 한 결정적 증거로 여겼고, 이후 공산주의인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덥 추온 음모"(Dap Chhuon Plot)라고도 불린다.
(주1) Prados, J. Lost crusader: the secret wars of CIA director William Colby,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p.67.
(주2) Norodom Sihanouk, My War with the CIA, Pelican, p.108.
(주3) Prados, p.68.
(주4) Sihanouk, p.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