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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해남 달마산(489m) 종주기
달마산은 어떤 산인가?
해발 489m인 달마산은 남도의 금강산답게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한 암봉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능선은 단조로운 산 타기와는 달리 계속해 정상으로만 이어지는 등반으로 멀리 해안경관을 보는 즐거움이 함께 해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곳이다.
특히 바위 능선과 함께 억새풀과 상록수가 어루러져 장관을 이루는 것이 이 산의 특징이다. 산을 오르는 도중 돌 더미가 흘러내리는 너덜지대를 통과하기 때문에 산행이 쉽지만은 않으며 곳곳에 단절된 바위 암벽이 있어 보기보다 체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곳이다.
기기묘묘한 갖가지의 절경을 사방에 펼쳐지는가 하면 발길 머무는 곳마다 형태를 달리하는 입석들이 군상(群像)을 이루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과 위치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한 향토사학자에 의하면 달마산은 옛날의 송양현(松陽縣)에 속해 있었는데 지금은 해남군 현산, 북평, 송지등 3개면에 접하고 해남읍으로부터 약28km 떨어져 있다. 이처럼 삼면에 위치하면서 두륜산과 대둔산의 맥을 이어 현산이 머리라면 북평은 등에 또 송지는 가슴에 해당한 형상이다. 또 사구, 통호, 송호 등의 산맥을 지맥으로 이루면서 한반도 최남단 땅 끝 사자봉에 멈춘 듯 하지만 바다로 맥을 끌고 나가 멀리 제주 한라산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명산(名山)이다.
향토사학자의 세세한 설명이 따로 없더라도 달마산을 맞대하는 사람이라면 그 묘한 매력에 빠져들듯 오르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달마산이 갖는 영험이다.
이렇듯 수려한 산세가 유서깊은 천년 고찰(古刹) 미황사를 있게한 것이다.
미황사(美黃寺)는 신라시대 의조화상(義照和尙)이 창건했으며 우리나라 불교 해로유입설을 뒷받침하는 고찰로서 옛날에는 크고 작은 가람이 20여 동이나 있었던 거찰(巨刹)이거니와 대웅전은 보물 제947호로서 그 규모나 정교함에 있어서 매우 훌륭한 건물이다.
미황사가 있는 서정리는 1789년에 간행된 호구총수에 의하면 영암군 송지종명의 지역으로서 우분리(牛糞里)라고 불리었다. 우분리라는 지명은 미황사 창건설화와 연결되고 있는데 불경을 짊어지고 쓰러져 죽은 소를 이 마을에 묻어 황소가 죽은 곳이라 하여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산행요약
토요일 오후 2시에 대구를 출발하여 일요일날 산행을 하는 1박 2일 산행 일정이다.
중간에 남강휴게소에서 부산에서 오는 2명과 합류를 하고 그리고 광양톨게이트에서 또 한 명의 일행을 태우고 땅끝마을로 향한다. 자동차로 무려 5시간 30분을 달려와 오후 8시가 가까워 민박집에 도착, 매식을 하지 않고 저녁과 다음날 아침 그리고 산행 때 점심까지도 일체이 준비를 하여 한꺼번에 해결한다.
아침 땅끝에서의 일출은 보지를 못하고 산행들머리로 이동, 송촌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길 없는 능선을 한시간여 더 산행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잡목과 가시나무에 부댔기는 등, 초장부터 고생을 하였으나 이후 주 능선을 붙으면서 산행은 극히 순조로와 진다.
산행의 난이도는 봉수대가 있는 정상 불썬봉까지 거의 격렬한 바위지대를 오르내리고 불썬봉 이후 문바위지대가 가장 굴곡도심하고 힘겨운 곳, 바윗길은 떡봉까지 이어지다 기세를 낮춘다.
도솔봉직전 도솔암터까지는 산행의 여유로움과 경관을 마음껏 즐기며 걸을 수 있는 곳이다.
도솔봉 일대에서 또 한번의 환상적인 경관을 감상하며 산행을 마무리하게 된다.
10명의 일행이라 개인적인 능력차이가 있음에도 불구 모두들 계획에 차질 없이 잘 해주었고 한시간이나 시간이 더 늘어났는데도 전체의 운행시간을 오히려 한시간 가량 줄여서 끝냈다.
각 개인의 점심도시락을 일일이 준비하지 못해 턱없이 적은 식사 량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행동식과 막걸리 그리고 간식 등으로 잘 극복을 했으며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 산행일자 : 2002년 03월 16일~17일(토, 일, 1박2일), -날씨 ; 맑음
▶ 산행코스 : 송촌마을~아랫임도~무명봉~윗임도~관음봉~작은바람재~세번째무명봉~불썬봉~문바위앞봉~동부도삼거리~하숙골재~떡봉~웃골재~도솔암터~도솔봉(임도)
◎ 산행거리 : 약 13Km,(도상거리 기준) ◎ 산행시간 : 약 7시간 40븐(식사, 휴식포함)
※ 산행참가자 : 이한성, 최인숙, 전아짐, 호연지기, 공산, 레인, 호야, 갈매기, 수니, 김재열(총 10명)
※ 구간대별 소요시간은 산행기 본문 내용을 참조.
≪산행기≫
- 05시, 새벽기상
누군가의 폰에서 흘러나오는 앙증맞은 알람소리에 눈을 뜬다.
아름다운 멜로디로의 애교스런 기상나팔소리, 수니낭자의 모닝콜음악이 퍽 재미있다.
모두들 일정을 숙지하고 있는 터라 각자 할 일들을 일사천리로 해 나간다.
엊저녁 미리 해둔 밥에다 물을 부어 끓인 뒤, 김치와 마른 멸치를 곁들여 간단한 요기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06시 10분, 모든 마무리 끝냄과 동시 각자 배낭을 지고 민박집을 나온다.
날은 다 샜으나 하늘은 잔뜩 흐리고..., 바닷가마을 상쾌한 새벽공기가 코끝에 전해온다
땅끝마을 일대에는 요 몇 년 사이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다
그중 해맞이 봉우리에 전망대 건물이 지어졌다는 것이 나에겐 가장 큰 변화로 다가온다.
차를 가지고 전망대 주차장까지 올린 뒤 일출전망대에 올라간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즐기려 올라와 있고 전망대건물은 이곳 명물로 자리잡은 듯했다.
현재시각 06시 32분, 지금쯤 동녘이 벌겋게 물들어야 했으나 구름이 가려 깜깜 무소식이다.
아무래도 해보기는 틀린 것 같고..., 일출시각(6시 44분)을 넘겨 07시 넘어 이곳을 내려온다.
뭔가 한 작품 기대했던 호연지기는 일출 탑 앞에서 단체사진 한 장만 달랑 찍고 내려왔다.
- 07시 50분, 증촌마을 들머리
땅끝마을, 즉 토말(土末)을 뜻하며 하며 송지면 송호리 '갈두마을'이라고도 한다는 곳,
우리국토의 최남단이 된다는 상징적인 이곳을 떠나 이제 오늘의 산행지인 달마산을 향한다.
차량으로 약 30분 달려오면 송지면 월송리 '송촌마을', 이곳이 들머리가 되는곳이다.
송촌 버스승강장을 지나 좁은 마을 안 길로 들어서면 시멘트포장길이 끝나고 비 포장길을 만난다. 마치 경운기 길 같은 좁은 이 길이 저수지 지나 8부 능선 임도까지 연결된다했다.
그러나 마을 주민 안내로 마을 끝 작은 공터에 차 두 대를 세워두고 모두 차에서 내린다.
산길안내, 주차공간배려 등 촌부의 자상한 정에 인사를 뒤로하고 산행 시작한다.
- 08시 14분, 아래임도 만남
농로를 따라 조금가면 길이 두 갈래로 갈린다.
직진하는 큰길을 외면하고 뚝을 왼쪽으로 돌아 산자락으로 오른다.
얼마안가 잡목이 우거져있는 산언덕을 오르니 우측 저수지를 내려다보는 능선을 타고 간다.
초장부터 주 등산로를 벗어난 능선길 진행, 비록 길은 없었지만 그리고 얼마 더 돌아가게 되었어도 오히려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신선한 느낌이 좋다며 모두들 즐거운 표정들이다
약 20여분 길같이 않은 영 시원찮은 산길을 진행하니 느닷없이 임도를 맞닥뜨린다.
지도상엔 안 잡히는 임도, 우측을 가야했었는데 좌측 리본을 보고 진행하다 고생 시작한다.
- 09시 12분, 무명봉 정상
좌측으로 갔다가 되돌아오는 도중에 왼쪽 편 산길이 보인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산길로 들어서 버린다. 사실 여기서도 그냥 무시하고 임도 길로 가야했었는데 산행심리상 빨리 산에 붙으려는 욕망 때문에 대충 능선으로 연결되겠지 하는 마음 에서이다.
조금 가다 산길은 끊어지고 내친김에 봉우리를 향해 직접 치고 올라야하는 형편에 놓인다.
조금만 쳐 올리면 되겠지 했던 것이 갈수록 태산이다.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고나할까...? 지독한 잡목 숲을 치고 오른 것이 아까워 이제는 꼭대기까지 오를 도리 밖에 없다.
마치 성벽 같은 바위봉우리, 이곳만 오르면 상황 끝이겠지 생각했지만 그 기대는 또 물거품,
길이 얼마간 있는 듯 하다가 또다시 오늘의 보너스구간(?) 가시밭길지대를 통과하게 된다.
남방과 바지들이 뜯기는가하면 손등과 팔뚝 장딴지까지 파고드는 가시나무들, 요리 저리 페인트모션을 써보지만 역부족, 광양의 재열씨는 반소매 팔뚝에다 벌써 계급장을 그려놓았다.
에고! 이 참한 총각, 대장 잘못 만나 이게 웬 영광의 계급장이란 말인가...? 쯧...
그러나 인적 드문 이곳,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있기에 그나마 위안된다 고나할까....
막 새순이 머리 내미는 두릅나무가 지천이고 아름다운 풍란이 발길 가는 곳마다 널려있다.
자연공부와 왕짜증을 뒤로하고 억지로 올라선 곳이 무명봉정상, 비로써 숨통이 터진다.
발아래 임도가 보이고 건너편 기암괴봉의 신비스런 달마산 본체가 드러난다.
제대로 올랐다면 벌써 저 관음봉에 올랐을걸..., 대략 한시간 남짓 시간 빵구가 난 셈이다.
무명봉에서의 첫 휴식, 조금전 왕짜증은 간데 없고 화사하고 행복한 표정들뿐이다.
칼칼하게 목을 적시는 막걸리한잔, 막걸리의 진정한 맛은 이럴 때 마시는 한잔 맛이 아닐까
너도 한잔 나도 한잔..., 십 년 지기가 따로 없는 듯, 모두들 즐거운 시간을 만끽한다.
- 10시 10분, 3번째 무명봉
약 15분의 휴식을 끝내고 아래로 내려서자 곧바로 임도에 내려선다.
임도를 잠시 따르다 우측 산길로 들어서고 숲길을 벗어나면 앞이 시원한 바위지대 안부다.
큰 바위들을 코앞에 두고 오르막길 한번 치고 오르면 관음봉 바위 능선에 다다른다.
양 사방 온통 바위투성이다. 봉우리는 위험해서 오를 수 없고, 발 딛은 흔적과 리본이 안내하는 데로 그저 꾸역꾸역 날 등을 향해 오른다. 우측 커다란 바위벽을 눈부시게 아름답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 큰바람재 안부인 듯 좌우 너덜경 쪽으로 산길이 열려있다.
우측이 송촌마을(저수지) 쪽, 우측이 '이진리'쪽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일대의 바위들은 사람의 마음을 압도하듯 솟아있고 산길은 요리조리 돌길을 따라 오른다.
모처럼 바위한곳에 올라서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본다.
넓게 펼쳐진 논밭들과 평화스런 마을전경, 너덜경과 임도, 그리고 바다..., 모두가 그림이다.
결렬했든 바위지대를 잠시 뒤로하고 어느 무명봉 정점에 오른다.
큰 봉우리 기준으로 세 번째 되는 봉우리다. 저만치 봉수대 돌탑과 함께 불썬봉정상이 보이고 그 위에 사람도 보인다. 눈대중으로 보아 정상까지는 대략 40분 정도이면 될 것 같다.
세 번째 무명봉 에서는 약 13분 휴식한 후 (10시 23분), 출발한다.
- 10시 56분, 달마산(489m, 불썬봉) 정상
봉우리를 쪼르르 내려오자 모처럼 억새가 있는 넓은 지대를 만난다.
산길은 좌측 봉우리를 살짝 비켜 우측 아래로 이어가더니 완만한 고개 하나를 슬쩍 넘는다.
잠시 수월했던 길은 다시 경사도를 높이고 돌길을 따라 숨을 헐떡이면 고개마루턱에 선다.
바로 눈앞에 정상을 바라보며 몇 걸음 더가면 첫 이정표 만나고 봉수대 위로 올라선다.
산에 오르기 전 저 아래 마을 촌부께서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시던 "불을 썼다는 봉" 바로 그 '불썬봉'에 올라선 것이다. 그쪽을 바라보자 마치 그 촌부께서 이곳을 바라보는 듯하다.
까만 정상석이 있는 정상,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정상에서 여러 산객들을 만나게된다.
정상 바로 아래 미황사 절 집 전경이 잘 보이고 마침 그곳서 올라오시는 몇 분도 만난다.
여기서 잠시 달마산을 묘사한 설화하나를 들어보기로 하자
달마산은 옛날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완도의 숙승봉과 북일 좌일산에서 서로 주고받던 잔허가 남은 곳으로 극심한 가뭄이 오래 계속되면 489m의 이 높은 봉에 기우제를 지내 비를 내리게 했다 한다. 고려시대 고승인 무애는 또 달마산 형상을 살펴 이렇게 표현했다.
북으로 두륜산 접해있고 삼면은 모두 바다와 닿아있는 산. 산호리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무성하여 모두 백여 척이나 되는 것들이 치마를 두른 듯 서있다. 그 위에 마주한 기암괴석들이 우뚝 솟은 깃발과도 같다. 혹 사자가 찡그리고 하품하는 것 같고 또는 용과 범이 발톱과 이빨을 벌리고있는 것 같기도 하며 멀리서 바라보면 하얗게 쌓인 눈이 공중에 한 발짝 다가서 서있는 듯하다.
산꼭대기 고개 동쪽에는 천 길이나 되는 벽 아래 '미타혈'이라는 구멍이 있는데 대패로 민 듯, 칼로 깎은 듯한 것이 두세 사람은 앉을만하다. 그리고 앞에는 층대가 있어 창망(蒼茫)한 바다와 산들이 서로 가까이 있는 듯하다.-[이상 해남군청 자료실에서 발췌]
봉수대를 배경으로 하여 일행들 단체사진 한 장 찍고 11시 14분, 정상을 떠난다.
- 12시 02분, 문바위 앞 봉
정상을 떠난 산길에는 간간이 서있는 이정표와 많은 산객들을 마주친다.
이 일대의 암릉들은 유달리 험하다. 그래서 주로 돌아서 우회하는 곳들이 많다.
문바위 일대가 특히 심한 곳이다. 미황사 내려가는 사거리안부를 지나면 문바위로 오른다.
딱히 지명표시도 없지만 제법 반반한 쉼터공간도 있고 한눈에 봐도 문바위임을 알 수 있다.
바위밑에 빈 안내판(아무 글도 없음) 앞으로 미황사가는 길이 있고 건너편 바위로 가려면 바위좌측 아래로 한참을 내려갔다 올라야한다. 이곳 통과지점에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한다.
트래버스하는 길이 싫어서 바위를 타고 건너가보기로 한 것이다.
약간의 길 흔적이 있어 바위 턱을 두 번 오르니 거대한 직벽 우측으로 길이 가까스로 연결된다. 얼마안가 땅에 내려서자 헉! 앞에는 암벽이요 우측은 절벽, 더 이상 진행불가 같다.
암벽을 살펴보니 이쪽으로 올라간다. 막상 올라붙으니 쉽지 않은 길, 에구, 도둑 피하다가 강도 만났다고 나할까... 완전 프로페셔널 한 바위하나를 지랄발광을 해가며 겨우 올라선다.
일반산길로 돌아간 아내와 일부 일행들은 벌써 저만치 300여 미터 앞서가고 있었다.
- 12시 30분, 東부도 삼거리안부
이제 슬슬 허기가 진다. 아침에 죽 먹고 나와서 그런가....? 하기야 시간도 됐다.
앞서간 일행을 따라잡으려 부지런히 걷지만 젠장, 발동을 달았는지? 영 보이지를 않는다.
봉우리 한군데를 열심히 올라서자 그때 사 아내 뒷모습이 보인다. "식사장소에서 대기!!"
잽싸게 소리지르자 "오케이!"란 대답..., 알아먹었다는 야그이다.
마땅한 장소가 없었는지 10여분을 더 가서야 삼거리안부 한쪽 공터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은 고스락이 있는 곳, 이곳에서 우측으로 하산하면 미황사 동쪽 부도 밭으로 내려간다.
밥이 넉넉하지 못해 라면 몇 개를 끓이려했으나 막걸리와 삼겹살, 그리고 있는 밥 대충해서 나눠먹으니 그럭저럭 점심이 해결된다. (갈매기와 몇몇은 사실상 양이 모자랐을 걸로 생각됨)
다행히 나는 때마침 옆에서 식사하고 계시는 팀(광주에서 오신 일행 3명)에 끼여서 식사를 해결한다. 아마 이분들 우리가 점심이 모자라는걸 알고 배려한 것 같고,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다.
산에서만 볼 수 있는 따뜻한 온정, 그날 광주의 일행 분께 이 지면을 빌어 "감사드립니다!"
식사를 끝내고 13시 12분, 이곳을 떠난다. (호연지기와 이곳에서 헤어짐)
- 13시 55분, 하숙골재 사거리
"금샘을 찾아라!" 오늘의 과제였다.
그러나 결국은 등산로 상에서 금샘을 발견 못하고 끝나버린다.
언젠가 우연히 달마산 금샘을 찾은 적이 있지만 그것을 의도적으로 찾으려니 쉽지 않다.
문바위근처 금샘이 있다고 하지만 무속인들 땜에 폐쇄하여 찾을 길 없고 도솔봉 방향표시판과 함께 '큰금샘' 글귀가 표지판에 적혀있지만 이곳 또한 언제 지났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샘을 찾으려 여기저기 뒤져 볼 수도 없고 그저 오다보니 하숙골재까지 와버렸다.
식사후의 산길은 역시 바위길을 오르락내리락 하였지만 결렬한 암릉길은 잦아든 듯 아기자기한 리치길이 가미되어 재미가 있으며 이곳까지는 약 40분 남짓 걸리는 거리이다.
하숙골재는 풀밭사이 작은 안부이고 좌우로 산길이 열려있다.
좌측이 하숙골, 평암리가는 길이고 우측이 미황사 또는 장춘마을 내려서는 길이다.
(표지판 : 도솔봉 3Km, 미황사 2,5Km)
- 14시 06분, 떡봉(421m)
하숙골재에서 떡봉까지는 빤히 보이는 오르막이다.
바위군들이 떡을 쳐놓은 듯이 울퉁불퉁한 봉우리라서 인지...? 떡봉이란 이름이 재미있다.
그러나 막상 떡봉정상은 떡 같은 바위봉이 아니고 조금 더가서 서있는 얌전한 육산 봉이다.
표지판에 도솔봉 2Km 적혀있다. 이곳까지 꼭11분 왔는데 1Km가 줄다니, 뭔가 잘못되었다.
안부에서 300m정도 왔을까? 도솔봉까지 2Km는 맞는 것 같고... 아마 앞에 것이 오류 같다.
주위에 있는 바위한곳에 올라 도솔봉을 바라보니 가고자하는 산 봉들이 한눈에 다 보이고 뒤돌아보면 저기 점심 먹었던 봉우리..., 그리고 우리가 지나온 하얀 바위봉들이 너무나 눈부시다.
- 14시 30분, 웃골재 안부
떡봉을 뒤로하자 돌길은 잠시 물러가고 소나무 숲길이 산객을 맞이한다.
모처럼 걸어보는 흙 길이라 이 또한 새롭고 신선하다.
내리막길 한번 빠지고는 살짝 올라간다. 산길은 고만고만하게 별 어려움 없는 진행이다.
떡봉을 내려온 지 약 20분 남짓 진행한곳에 '웃골재'라고 적힌 수더분한 안부를 만난다.
작은 안내판에는 "미황사 3.5Km, 도솔봉 1.5Km" 지점이라고 되어있다.
좌우로 오솔길 흔적이 있는 걸로 보아 우측은 마봉리, 우측은 금산마을 하산 길로 추정된다.
- 14시 50분, 도솔암 터
결렬했던 바위들의 기세가 언제 있었냐는 듯 순탄한 산길은 계속된다.
솔잎이 뺨을 때리는가하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능선 길은 발걸음도 가볍다.
멀어만 보이던 도솔봉 암릉들이 서서히 입체화 되어갈 때쯤이다. 저만치 바위아래 파란색 천막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저게 뭘까하고 부지런히 다가가 보니 누가 움막을 지어놓았다.
거대한 암봉들이 둘러쳐 있고 뭔가 분위기가 심상찮은 곳, 여기가 바로 '도솔암터' 이다.
지리산을 비유한다면 마치 '영신대'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여기서 잠시 도솔암터의 관한 해남군의 기록을 빌자면 다음과 같이 요약이 된다.
미황사의 한 부속 암자인 도솔암은 달마산의 도솔봉이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한다.
하지만 『이곳에 암자가 언제 생겼다가 없어졌는지는 알기 힘들며 지금은 암자터 위에 움막만 지어져 있고 희미한 독경(讀經)소리가 가끔 새어나올 뿐이다』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그 위치와 형국을 이렇게 적고 있다.
『도솔봉 통신중계소를 향해 발길을 재촉하다 보면 도솔암이라는 조그만 암자터가 오른쪽에 있다. 길쭉한 돌에 둘러싸여 길에서는 보이지 않고 그곳으로 올라가는 이십 개 가량의 돌계단이 없다면 암자터의 존재를 눈치채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되어있고,
그리고 『촘촘히 박힌 돌과 사방을 둘러쌓인 바위암벽. 아래에서 보면 마치 견고한 요새(要塞)와도 같은 도솔암은 정진(精進)하는 수도승들의 은둔처로 삼기에 적당한 듯, 벼랑 끝 비바람을 맞으며 도(道)를 닦는 선인(仙人)이 있었으리란 생각을 하게 된다.』라고 쓰여있다.
도솔암터의 움막아래 빈터에는 또 다른 작은 움막이 있고 거기엔 보살 한 분이 계셨다.
이곳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두 마리 용이 승천을 하였다는 용담굴과 용담샘이 있다한다.
여기에 관한 설화 또한 재미있지만 약간 황당하기도 하고, 이만 생략키로 한다.
앞서 가던 갈매기가 훨훨 날아 이곳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모두합류 하여 20분 정도 구경하고 휴식하고 15시 10분, 이곳을 떠난다.
- 15시 25분, 통신중계소 도로
도솔암터와 도솔봉 일대의 암릉들은 또 한번 달마산에다 아름다운 바위장식을 해놓았다.
좌우로 솟은 바위꽃을 보면서 언덕을 올라서면 능선은 통신중계소 쪽으로 연결되고 산길은 우측 사면으로 길이 나있다. 아마 중계소 쪽의 봉우리는 출입통제로 못 가고 이쪽으로 길이 난 모양이다.
사면 길로 5분 정도 가자 통신중계소 올라가는 도로를 만나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일행들에게 일일이 손바닥을 부딪치며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넨다.
부산에서 온 자칭 초보라 일컫는 무서운 초보 '호야님',
역시 부산의 나르는 제설차 또는 움직이는 창고 '갈매기님',
광양에서 온 황야의 장고, 반 팔뚝에 새긴 달마의 징표 "계급장을 내 팔뚝에..." '재열님',
청주에서 온 와일드켓츠, 나의 무대는 전국구 "달마도 내 가슴에" 의 '수니님',
현풍 논공에서 온 저격수, 10년만에 달마를 쏘았다는 '레인님',
대구의 초특급 종군기자, 그대의 추억은 내 손에... 의 '호연지기님',
역시 대구의 떠오르는 공산 광의 사나이, 움직이는 물탱크 '공산님',
역시 대구의 백전노장 여군장교, '전아짐님' 그리고 천천후 여전사 '최인숙님'
모두들 무사히 예정시간 안에 산행을 마쳐 줘서 정말 잘된 산행이라 하겠다.
호출한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길옆에 있는 봉우리에 올라가니 거기에 산불감시초소와 도솔봉(416.8m) 정상석이 서있었다. 통신중계소 시설물이 있는 저곳이 더 높지만, 정상석은 이곳에 있다.
-- 끝 --
작성일자 : 2002년 03월 22일,
작성자 : 이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