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시설보다도 역사의 현장으로서 많이 기억되는 곳,
한 철도 굴다리이지만 역사의 현장이 되어 문화재가 된 철도 굴다리,
노근리 쌍굴다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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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30일에 방문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서 대검찰청에서 저녁 조사를 받고 계셨던 시간에 나는 역사의 현장인 노근리 쌍굴다리를 찾았다.
영동역에서 황간방면 시내버스를 타고 15분여 정도 걸려 노근리 정류장에 내려서, 정류장이 노근리 쌍굴다리보다 황간 방향으로 더 나와 위치해 있어 다시 영동방향으로 갔던 길을 다시 걸어가서 노근리 쌍굴다리 입구에 닿았다.
입구에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노근리사건 현장입니다' 한글과 영어 표지판이 있었고, 쌍굴다리 옆 축대에는 영동군에서 설치한 '이곳은 노근리사건 현장입니다' 한글과 영어 표지판이 있었다.
입구의 노근리사건 표지판 뒤로 노근리사건의 과정을 정리한 벽화가 있었다. 노근리사건의 발단부터 결말까지의 과정을 그림을 통해 생생하게 정리해주었다.
그림 벽화 왼쪽으로 게시판과 쉼터, 간이화장실이 있고 작은 마당이 있었으며 쌍굴다리 입구 오른쪽으로 흐르는 하천 앞에는 노근리사건의 개요와 그림 설명도 안내판, 주의사항 안내판이 있었다. 개요 안내판의 경우 왼쪽에 한글 개요, 중간에 한글 그림 설명도, 오른쪽에 영어 개요가 있었다.
그러면 노근리사건, 미군에 의해 피난을 가던 주변 지역 민간인이 학살을 당했던 노근리 학살 사건의 개요를 쌍굴다리 앞에 있던 안내 표지판 개요를 통해 정리하고자 한다.
사 건 개 요
발생기간 : 1950.7.26 ~ 7.29 (4일간)
발생장소 :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철로 일대
(서울기점 225km지점)
피해인원(추정) : 250명~300명
경 위:
1950. 7. 23 정 오 : 영동읍 주곡리 마을 소개명령
(영동읍 주곡리 주민→임계리로 피난)
1950. 7. 25 저 녁 : 영동읍 임계리에 모인 피난민(임계리, 주곡리, 타지역주민 500~600명을 미군이 남쪽(후방)으로 피난 유도
1950. 7. 25 야 간 : 영동읍 하가리 하천에서 미군에 의해 피난민 노숙
1950. 7. 26 정오경: 4번국도를 이용 황간면 서송원리 부근에 도착한 피난민 -미군의 유도에 따라 국도에서 철로로 행로 변경
1950. 7. 26 정오경: 미국 비행기 폭격 및 기총 소사로 철로위 피난민 다수 사망
1950. 7. 26 오 후 ~ 7. 29 오 전 : 노근리 개근철교(쌍굴)에 피난한 피난민에 대해 미군의 기관총 사격으로 다수의 피난민 사망
노근리 쌍굴다리 앞 입구와 뒤 입구 양쪽 바로 옆의 축대에는 미군의 폭격과 총탄 흔적을 흰 페인트로 동그라미를 친 부분을 상당수 볼 수 있다.
쌍굴다리 왼쪽 굴로는 도로가 지나가고 오른쪽 굴로는 하천이 지나가고 있다. 도로가 지나가는 부분은 리클라이닝을 많이 한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리클라이닝이 벗겨지거나 벗겨지려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오른쪽 굴은 쌍굴다리 원형을 볼 수 있었는데 물이 많이 흘러내려 벽이 검게 된 부분이 많았고 대체로 원형이 보존되어 있으되 다소 훼손된 모습이었다.
뒤 입구로 나오면 망이 쳐진 부분이 있고 망에 희생자분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들이 여러 개 달려 있다. 그리고 입구 왼쪽 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조금만 올라가면 희생자 위령비가 있다. 위령비에는 '노근리사건희생자영위(老根里事件犧生者靈位)'라 새겨져 있다.
노근리 쌍굴다리가 많이 훼손되어 조만간 영동군에서는 보수공사를 할 계획에 있다. 그리고 쌍굴다리 뒤 공터에 노근리사건 추모공원과 위령탑이 들어설 예정이다.
다음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있는 설명이다.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KS_01_02_01&VdkVgwKey=79,00590000,33,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RegCulresult_Db_View.jsp?&mc=KS_01_02_03&VdkVgwKey=5)
황간 방면 시내버스를 타시고 15분 정도 가시면 노근리입니다.
기사님께 노근리 간다고 말씀드리면 노근리 쌍굴다리 지나 있는 정류장 건너편에 내려줄 것입니다.
노근리 쌍굴다리 입구입니다. 입구에는 노근리 사건 표지판이 있습니다. (맨 첫 번째 사진,
시내버스를 타시면 되고 10~40분 간격 정도로 다닙니다. (아침 08~09시대에 50분 간격 하나 있기는
합니다.) 운임은 대략 1,500원 정도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첫댓글 그 당시 끔찍했던 사건들을 영구 현장보존하기 위해 만들었군요..
앞으론 이런 일들이 나타나지 않길 바라면서요... 근데.. 저는
동대구 가면서..이곳을 지나쳤을텐데.. 왜 못봤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KTX가 영동역 통과하면 전용선로로 올라가서 경부선 철로랑
잠시동안 헤어지기에..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요...
얼마 전에 KTX를 타서 기억이 나네요. 경부고속선은 노근리에서 더 남쪽으로 떨어진 상촌면으로 가서 볼 수가 없고, 경부기존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동대구 방향 기준 오른쪽을 잘 보시면 사진 속 노근리 상황을 그린 벽화가 작게 보이는 곳을 지난다면 노근리 쌍굴다리 위를 지나고 있는 것일 겁니다.
저의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당시 1950년 7월은 미군이 아직 북한군에게 밀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딘 소장 고립과 김재현 기관사 순직이 노근리 학살사건과 시기가 가까운 편입니다.) 대전을 내주고 낙동강 방면으로 본격 후퇴하고 있던 시기이였죠. 미군은 민간인들이 북한군에 협조할까봐 불안해했고, 게다가 당시 미군의 한국인에 대한 미개한 시각까지 합쳐져 일부러 유도를 해서 학살한 것이 아니었는가 싶습니다. 계획적이었고 지시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떠나서 의도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