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 3권은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체 7편 중 제2편이 시작되는 곳이지
제2편의 소제목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는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 3권과 4권에 해당하고,
프루스트는 이 제2부로 해서 콩쿠르 상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고 해.
1권과 2권을 읽으면서 프루스트의 문체에 어느 정도 숙달이 된 것인지,
아니면, 3권부터 조금은 쉬워지는 것인지,
내용을 파악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는 것 같아.
여전히 긴 호흡과,
생각지도 못한 묘사와
화자의 생각이 어느 지점을 흐르고 있는지 가끔, 아니 자주, 놓치기는 하지만,
그래도 뭐.... 이 정도는 봐줘야 한다고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이 책의 시작은
아버지의 초대로 집에 오게 된 외교관 노르푸아씨에 대한 이야기지
결정적으로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화자의 꿈을
아버지로부터 이해받게 되도록 만들어주는 인물이긴 한데,
왜 작가가 되어야 하는지,
왜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는 화자와 노르푸아가 서로 달라서,
정작 아버지로부터 작가가 되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놓는 순간,
어쩐지 작가가 되고 싶지 않아져 버리는 ...
노르푸아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스완과 오데뜨 사이에 난 딸,
질베르트를 사랑하는 화자.
스완과 스완부인 오데트로 부터 집에 와서 차를 마셔도 좋다는 초대를 받고
스완씨 댁으로 가는 화자,
질베르트와의 만남을 위해 초대에 응하지만,
거기서 화자가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였던 작가 베르고트를 만나게 되지.
그러나 작품에서 느꼈던 인상과, 실제 작가의 외모와의 괴리감이 엄청나게 커서,
지금까지 그렇게 감동적이었던 베르고트의 작품들이
어쩐지 가치가 하락해 버리는 상황. ㅠㅠㅠ
예나 지금이나 외모는 중요한 것이여...
(실제로 프루스트는 책과 저자를 동일시하는 19세기 실증주의 비평가에 반기를 들었다고 해)
그럼에도 스완부인이 주최하는 살롱에 찾아오는 사람들이라든지,
화류계의 여자였던 오데트가
스완부인이 되면서 신분상승으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깊이 연구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공주를 비난하는 게르망트 사람들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지...)
화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질베르트를 만나기 위해 스완씨 댁에 초대받아 갔지만,
정작 질베르트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보다
스완부인에 대한 이야기, 거기 초대되어 오는 또다른 부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그려져...
그래서 그랬을까.
결국 화자 혼자 질베르트를 좋아했던 것인지,
질베르트는 화자가 자신의 집에 오는 날에도 외출을 하려고 하고
이를 저지하는 엄마, 스완 부인에 의해 외출을 금지당하자 화를 내고,,,
결국 상젤리제 거리에서 어떤 남자하고 같이 걸어가는 질베르트를 보면서,
서서히 질베르트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지.
제3권의 대부분은
질베르트에 대한 사랑의 감정도 잘 표현되어 있지만,
스완부인에 대한 온갖 찬사와 온갖 속물근성 등이 아주 적나라 하게 그려지는데,
읽다보면 좀 화가 나기도 해.
화류계 생활을 했었다는 이유로 스완부인을 너무 몰아세운다는 느낌이 들거든.
그녀가 하는 대부분의 행동과 말들이 그녀의 허영과 속물근성에 기인한다는,
그런 여자와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스완도
결혼하기 전에 가졌던 신사적인 모습을 많이 잃었다고 평가하거든...
그럴 거면 불로뉴 숲을 산책하는 오데뜨의 모습을 그렇게 아름답게 그리지라도 말지
세상 아름다운 여자처럼 그려놓고는...
아무튼,
질베르트의 사랑을 받지 못한 화자가
또 다른 사랑을 만나기까지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
그건 다음 권에서...
영미가 사준 책갈피.
펜 한 자루 끼울 수 있는 이거, 정말 괜찮네...
"사랑하지 않을 때라야 우리는 그 사람의 움직임을 고정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움직인다. 따라서 우리에겐 언제나 실패한 사진만이 있다. 나는 질베르트가 내 눈앞에 자신의 모습을 펼져 보였던 그 성스로운 순간들을 제외하고는 그녀 모습이 정말로 어땠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질베르트를 만나지 못하는 화자의 의식
"시적 감각에 대한 기억의 상대적 수명은 평균 수명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고통으로 인한 기억보다 훨씬 더 생명이 길었으므로, 오래전 질베르트로 인한 슬픔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5월이 되어 낮 12시 15분에서 1시 사이 시각을 어느 해시계 눈금판에서 읽으려고 할 때면, 마치 등나무 넝쿨의 그늘과도 같은 스완 부인의 파라솔 아래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을 회상하는 기쁨은 그 슬픔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
불료뉴 숲을 지나던 오데뜨를 만난 화자의 기억
"내가 만약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그렇게 단호하게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당장이라도 그 일을 시작하려고 노력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결심은 단호했고 내일이라는 이십사 시간 후의 그 빈 액자에는, 내가 아직 존재하지 않은 만큼 모든 것이 그렇게도 잘 배열되어 있어 내 좋은 의도가 쉽게 실현될 듯 보였으며, 그래서 준비가 덜 된 것처럼 느껴지는 저녁에는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다음 날이라고 해서 시작하기에 더 적합한 날이라는 증거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난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몇 해를 기다려 온 사람이 단 며칠이 늦어졌다고 해서 참지 못한다는 건 어린애 같은 짓이리라. 물론 모레가 되면 난 이미 몇 페이지나 되는 글을 마쳤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결심에 대해 부모님께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몇 시간 참았다가 할머니에게 내가 쓰기 시작한 글 일부를 보여 드리고, 할머니를 위로하고 설득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열기 속에 기다렸던 내일은 광대한 외부 세계에 속하는 하루가 아니었다. 내일이라는 날이 지나가면 내 게으름과 내 내면의 방해물에 맞선 고통스러운 투쟁이 이십사 시간 더 연장될 뿐이었다. 그리하여 며칠 후에도 내 계획은 계속해서 실현되지 않았고, 곧 실현되리라는 희망도 없었으므로, 따라서 이런 실현에 모든 걸 맡기려는 용기는 더욱 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밤을 새우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실한 전망이 없었으므로 일찍 잠을 잘 필요도 없었다. 내 열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며칠간의 휴식이 필요했다. 그러고 단 한 번 할머니께서 용기를 내어 부드럽지만 실멍 섞인 말투로 "그 일은 이제 말하지 않기로 한 거냐?" 하고 비난하셨을 때, 난 할머니를 원망했다. 내 결심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확고하다는 사실도 모르는 할머니께서 내린 부당한 처사로 흥분한 탓에 작품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난 할머니가 한 번 더 내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걸 늦추었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먼 훗날로 연기하게 했다고 확신했다."
글을 쓰고자 하는 결심은 확고했으나
정작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게으름을
거대한 철학적 사고로 변명하는 화자.
암~ 충분히 이해하지,
내가 글을 못쓰는이유는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너무 좋아서,
내가 글을 쓰려고 막, 마음을 먹었는데, 누군가
너 글 안 써?
라는 말에 기분이 상해서...등등....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1저자마르셀 프루스트출판민음사발매2014.04.15.
첫댓글 와~~~아아
싸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