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과 축복 속에 복된 추석되시기를
사랑하는 회원님!
한 낮의 햇빛은 매미 울음소리의 여운을 담고 여전히 따갑지만 조석으로 부는 서늘한 바람은 벌써부터 겨울나기 걱정이 들게 합니다. 환절기에 감기로 고생하는 회원님은 없으신지요? 성가회 뒷마당에 있는 감나무의 열매가 하루가 다르게 붉은 빛을 내는 걸 보면서 시간이 참 빨리도 바람처럼 흐른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새해를 맞이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추석을 준비할 때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살아가는 매순간 순간이 은총이요 축복이기에 늘 감사하며 살지만 추석을 맞이하는 9월은 연중 어느 때보다도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족이 있음에 감사하고 그러기에 저희 성가회의 가족이신 우리 회원님들께 더욱더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추석, 은총이 넘치는 복된 날 되시기를.
명절이 돌아오면 마음이 들뜨고 분주해지기 마련이지만 저희 성가회 내의 모습은 조금 다릅니다. 저마다 다른 가슴 아픈 사연으로 가족과 집을 떠나온 분들이 함께 생활하다보니 위로의 인사조차 조심스럽습니다. 나름대로 명절 분위기를 만들어 드리지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내시는 모습에서 그분들의 아픈 상실감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올 추석도 소박하게 송편이랑 불고기랑 한두 가지 별식을 장만하고 용기와 희망을 다짐하는 시간을 함께 보낼 생각입니다.
회원님들 가정에서는 어떤 추석을 계획하고 계신지요? 가풍에 따라 추석을 지내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추석의 진정한 의미는 감사와 나눔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목을 겨냥하여 즐비하게 진열된 선물세트, 쇼핑센터들이 벌이는 판촉경쟁, 그리고 카드빚을 내어서라도 고가의 선물을 사서 여기 저기 인사를 다니는 모습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걱정하는 불황을 무색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감사와 나눔의 의미를 퇴색시킵니다.
그런데 저는 며칠 전에 너무도 감동적인 나눔을 체험하고 지금도 가슴이 뜨겁습니다. 어느 보살님의 이야기입니다.
불교 신자이신 집안 어른에게서 새벽에 전화가 왔습니다. “원장! 오늘 우리 친구들 몇 사람이 골프를 예약해 놓은 날인데 비가 와서 못 가. 그래서 내가 성가회 식당에 가서 점심을 사겠다고 했어. 점심때 갈께” 그리고는 몇 분을 모시고 오셨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 떠나시려던 참인데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골프장에 갔으면 각자 10만원씩은 썼을 텐데 비가 와서 못 갔으니, 우리 골프 간 셈치고 10만원씩 성가회에 주고가면 어때?” 그러자 다른 분들 모두가 합창하듯 좋다 하고는 각자 10만원씩을 식탁 위에 놓으셨습니다. 먼저 발의하신 어른, 좋다고 즉시 동의하시고는 서둘러 지갑을 열고 10만원씩을 즐겁게 내놓으신 다른 세분. 그리고는 나에게 명함을 주시면서 앞으로도 비가 와서 골프 못 가는 날은 찾아오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에 국민은행 여성동우회 박정희 회장님이 계셨습니다. 매월 5000명 회원에게 동우회 소식지를 보내는데 성가회 이야기를 함께 알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국민은행 여성동우회 회원들이 앞으로 우리 집을 찾아주실 것이 기대됩니다.
이렇듯이 하느님의 일하심은 참으로 오묘합니다. 집을 지으시고 식구들을 먹이시고 살리시는 아버지의 일하심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지난달에는 숙명여대가 있는 효창동의 조흥은행 이순희 지점장님이 우리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조흥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성가회 새 집을 지었으므로 지점장회의나 직원들 회식이나 친구 모임을 우리 집 식당에서 하자고 발의하시고 함께 오십니다. 아주 먼 곳에 계시는 지점장들까지도 굳이 우리 집까지 오시게 하여 회의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눔’이 무엇인가를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누구 혼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흥은행 행원들, 국민은행 동우회원들. 큰 부자도 아니면서 마음이 넉넉한 우리 집 회원님들. 여러분들이 이 집을 운영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따뜻한 인간의 가슴과 손을 빌려서만 일하실 수 있으십니다. 회원님들을 통해서만 하느님은 회비를 보내주실 수 있으십니다.
회원님들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 속에 복된 추석되시기를...
2004년 9월 10일
사회복지법인 나자렛 성가원 원장 심 미영
사회복지법인 나자렛 성가정 공동체 원장 이 인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