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뭔지
늘 아랑의 슬픈 전설이 깃들여져 있는 밀양의 영람루에 올라 곡차나 한 잔 거나하게 하고픈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밀양에 작업실이 있으신 사진 작가 백 선생님의 초대도 있었고.. 나 자신도 주체 하지 못하는 또 떠나고 싶은 나의 역마살 때문에 지난 주말 훌쩍 밀양으로 갔었다. 하긴 그래봐야 떠나면 또 내가 사는 일산으로 못 돌아와 안달이나 할 것을.. 후후! 사 먹어도 될 것을 굳이 계란 4개를 삶아 칠성사이다 한 통과 같이 배낭에다 넣었다. 애들처럼 길 떠날 설레임에 겨우 새벽이 다 되서야 깜박 잠이 들어 서울 역에서 계획했던 KTX 7시 30분차를 노치고 8시 차를 타고 밀양으로 향했다.
216. 밀양(영남루)
기차 속에서 밀양 가는 내내 “아무래도 오늘 뭔가 사단이 벌어지겠구나!” 하는 막연한 걱정이.. 그래도 생전 처음 가는 밀양이었지만, 이상 하리 만치 마음은 차분했다. "마음 쓸 ‘연’은 절대로 만들지 말아야지!"라며 속으로 굳게 다짐을 하면서.. 후후!
밀양에 대한 첫 느낌은 너무도 고요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적막함마저.. 내가 사는 시끄러운 일산과는 달리 밀양은 장날이라는데도 거리가 아주 조용했다. 좀 야한 빨간색의 스포츠카를 타고서 밀양 역에 마중까지 나와 주신 백 사진작가님을 본 순간 밀양에 꼭 있어야 될 사람 같은 느낌이 든 것은 무슨 이유였었는지?! 멋지게도 그 나이에 남자가 귀걸이에 짓어진 면바지를 입고서.. 아마도 밀양의 그 고요함을 시원하게 휘 집고 다닐 수가 있는 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도 차분한 그래서 적막하기까지 한 느낌이 드는 밀양 시가지를 지나며 “결국 술 취해 인사불성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갔다. “밀양인데 술 취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과 함께.. 후후! 차 속에서나마 지나치며 본 영남루는 역시 최고로 멋진 누각이었다. 마치 진주에 촉속루가 뭐 모르는 다리가 늘씬한 처녀라면 영남루는 궁댕이가 아주 큰 요염한 농익은 아줌마라고나 할까?! 하하!
의학적으로 자문이 필요 하시다는 미스 밀양 출신이셨으며 약초 연구가라는 채 선생님을 어느 동네에서 픽업을 하고 백작가님의 작업실 겸 까폐인 ‘검정고무신’으로 갔다.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까페에서 무조건 곡차 마시기를 시작 했다.역시 또 “이러다 큰일인데 여긴 밀양인데!” 하며 내 아이들이 기다릴 일산으로 돌아갈 걱정을 하면서도.. 후후!
자리를 바꾼 보쌈 집에서 밀양의 자랑 인간문화제이신 백중놀이 최고 고수인 하용부 선생님이 오셨고, 바이올리니스트 현식 선생님과 한옥 고택 매물이 있으시다는 친구 분이 오셨다. 실은 밀양에 고택이나 하나 구할까?! 하는 생각으로 미리 현식 선생님을 통해서 부탁을.. 난 이미 곡차 수준이 루비콘 강을 건너 고택같은 건 다 잊어버렸고 혀 꼬부라진 헛소리를 시작했었고.. 그리고 부산의 미남이자 신사이신 희준씨, 가물가물 하지만 검정 티셔츠를 입으신 우리의 '나무와 해' 교주 목일이 형이 순서대로 나타난 것까지가 그나마 내가 기억하는 나의 밀양 방문기 전부다. 뭐 나야 보고 싶었던 사람들 다 봤으니까 거기다 고대하던 영람루도 보았고 밀양에서 곡차도 한 잔 거나하게 했으니까 그 거로 된 거지만, 굳이 그 먼 곳에까지 가서 곡차에 취한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아주 고요하다는 밀양에 대한 나의 느낌이 늘 시끄럽게 그저 쿵닥 거리기만 하는 내 속내를 뒤집어놓아 일찍 대낮부터 내가 그리도 대취하게 만들었나 보다.
의식이 들었을 때는 대구 역에서 내가 헤매고 있었다. 어떻게 대구 역까지 와 있는지?! 밀양은 언제 어떻게 떠났는지 전혀 기억이 없었다. 떠나 올 때 환대 해주신 밀양 벗들께 인사나 제대로 했는지?! 거기다 손 전화와 모자는 이미 잃어버렸고.. 거의 노숙자 수준의 행태를 대구 역에서 보이다 다행히 지갑은 있어 새마을호 입석표를 구해 기차 통로에 주저앉아 졸다가 깨다가 하며 영등포 역에 도착을 했을 때는 저녁 10시가 넘었다. 그리고 영등포 역 화장실에서 한바탕 다 토했고, 아무튼 어찌어찌 해서 어제 밤 일산까지 무사히 돌아오기는 했다. 하하! 나중에 목일이 형에게서 들은 말이지만 영남루로 다들 같이 가 백중놀이 공연을 즐겼다는데 나는 반듯이 일산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공연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기여코 밀양역으로 택시를 타고 혼자 자리를 떠났다고.. 후후!
아무튼 나라는 사람! 무슨 한이 많아서 이리도 곡차에 취해 전국을 헤매고만 다니는 건지?! 아! 사는 게 도대체 뭔지?!
글. 고 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