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8일 수요일 고학년 나들이
우리가 오늘 일한 대가가 '통일'이었으면 좋겠어!
오늘은 북쪽 친구들에게 사과나무 보내기 운동을 하는 고양시 시민단체의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흙 속에서 뒹굴다 올 요량으로 옷차림도 편안하게 입고 오라 했지요.
늘 시내 한복판으로 나가다가 자연으로 가니까 새롭습니다.
등허리로 전해오는 햇살이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 느껴지는 초여름 날씨.
아이들이 덥다고 아우성입니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이 더위를 아이들이 못견뎌 하네요.
입고 왔던 웃옷들을 벗어서 허리춤에 묶고 반팔 차림으로 산으로 하나 둘! 하나 둘!
* 바람과 발암의 차이 - '순도 100% 환희의 순간'
고봉산 자락으로 가는 길에 아이들의 수다가 피었습니다.
유진이가 아빠에게 선물을 받았는데 그 장난감에 '발암' 물질이 들어있다고 아이들이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우리 주변에 있던 물건 중에 '발암' 물질이 들어있던 게 무엇이었나 서로서로 얘기합니다.
얘기를 나눌수록 '발암' 물질이 들어있는 게 수두룩히 나옵니다.
'발암' '발암' '발암' '발암'...
계속 얘기를 나누던 중에, 호택이가 말합니다.
"난 처음에 '바람'인 줄 알았는대, 그게 아니라 '발암'이더라"
"그래??? 그게 '바람'이 아니야???"
허걱!!! .... 다들 '바람'인 줄 알았답니다.
말 속에 의미가 다 들어있는 걸 이제야 알았다고, 야단법석입니다.
순도 100% 환희의 순간이 따로 없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게 그거였어?'하면서 깨닫는 기쁨말입니다.
* 그렇다면 '화전'은 무슨 뜻?
발암의 의미를 깨달은 기쁨을 가슴에 안고 고봉산으로 향하는데, 산자락에 진달래가 가득합니다.
아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냈습니다.
"저 꽃 이름은?"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모두 합창을 합니다.
"진달래!!!"
저는 다시 또 수수께끼를 냅니다.
"저 꽃으로 화전을 해 먹잖아. 그럼 '화전'은 무슨 뜻일까?"
이 때, 유진이가 기다렸다는 듯 씩씩하게 대답을 합니다.
"그림 '화'! "
푸하하하... 유진이와 함께 우리 모두 신나게 웃었습니다.
'꽃 화잖아.'라며 자기들끼리 바른 내용으로 수정을 해줍니다.
"그럼 '불 화'겠냐?"라며 농담도 섞어가며 말입니다.
* 나무심기는 간단한 게 아니었어!
우리가 도착하면 구덩이가 있고, 그러면 우리는 나무 집어 넣고 흙 덮어서 다독여주고...
그럴 거란 기대로 갔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경상북도 경산에서 올라온 묘목을 입양시키는 과정은 복잡하네요.
복숭어 뿌리에 접 붙여 놓은 과실수 뿌리들은 점 붙이는 과정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비닐로 꽁꽁 동여매놨더군요.
접이 붙고 나서, 자라자 그 비닐이 나무의 목을 조르는 형상이 되어서 어서 빨리 그 비닐을 풀어줘야 한다네요.
우리들은 오늘 그 일을 했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나무 묘목들이 다 그렇게 숨막힌 채 살고 있는 중이거지요.
*불쌍한 나무... 우리가 구해주자!
비닐을 뚫고 자라거나 비닐 때문에 기형으로 자라는 나무가 무척 많았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벗겨주면서, 아직도 비닐에 꽁꽁 묶여 숨막힐 묘목을 보며 안타까웠습니다.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 아이들의 대화는 이랬습니다.
"이렇게 앞에 있는 애들은 벗겨내지니까 다행이지만 끝쪽 애들은 불쌍하다..그치?"
"그럼 반대쪽 애들부터 가져다가 할까?"
"그러면 가운데 있는 나무들은 어떻게? 아! 가운데 애들은 이래저래 불쌍하다.."
*우리 영화찍는 거 같지 않아?
호택이가 음악 들으며 일 하자면서 핸드폰의 음악을 크게 틀었습니다.
캐논, 사계, 윤도현 등등 클래식부터 락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나왔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서로 히죽이 웃으면서 눈 마주치며 말하길,
"우리 이러니까 꼭 영화 찍는 거 같아"
이구동성으로 다 그러네요. ^^
음악 듣으며 작업하면서 북한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죠.
연평도 문제나 핵 문제 때문에 북에 대한 반감도 있었고,
배고파 굶는 게 너무 측은하다는 동정도 있었습니다.
* 오늘 우리 일의 대가(품삯)가 '통일'이었으면 좋겠어!
'우리 일꾼이잖아' '그러게, 우리 하루 일당 줘야 되는 거 아냐?' 하며 농담을 하다가,
한 친구가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일한 대가가 '통일'이었으면 좋겠어"
아~~~ 기특한 이 말을 담당 선생님께 전했더니 그분도 엄청 기뻐하시네요.
지금까지 다녀간 단체 중에 이런 말 남긴 단체는 아무데도 없었다고...
다음부터 올 단체에게는 '행신3동에서 온 재미있는 느티나무 도서관에서 온 친구들의 이 말을 꼭 전하겠다'고 하시네요.
* 해가는 줄 모르게 우리를 잡았던 '노동'의 기쁨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생각보다 일이 재미있다고 합니다.
처음엔 나무만 심고 얼른 가서 놀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둘러 앉아 이야기 나누며 음악 듣고 일을 하니 즐겁고 행복하다네요.
그리고 어느새 일이 손에 익어 '달인'이 되어 가기도 했구요.
그러면서 나무 묘목단을 자꾸 가져옵니다.^^
거기 담당 선생님도 이렇게 진득하니 일 할 줄을 몰랐다면서 놀라십니다.
* 어느새 수북히 쌓인 묘목 더미들
아이들도 자기 등 뒤로 작업을 마친 나무들이 수북히 쌓인 걸 보고 흐믓해 합니다.
다음 주에도 또오고 싶다네요. ^^
그래도 명색이 시험인데 시험 공부하라고 만류했습니다.
돌아오는 길...
누구는 자기 적성을 찾은 거 같다고 합니다. 일하는 내내 아주 행복했다고 합니다.
자기는 농부의 길을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고 합니다.^^
나들이를 통해 진로를 찾아가나 봅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