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찬미 예수님
원래 제가 서품 받는 날이 1983년도 1월 26일이에요.
83년도 1월 26일.
병원에 가서 한달 있었고, 주교좌 성당에 일을 하다가 5월 달이 들어섰는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려니 전신마비가 와서... 너무너무 서러워가지고, 사람 사는 게.......
그냥 드러누워서.... 눈물만 하염없이 나와요.
‘아, 이러다 내가 죽겠다. 나 집에 갈래. 엄마 아빠한테 갈래...나 최선을 다했어. ...내 쪽에서
내가 성소 포기한 거 아니야..하느님 약속 지키려고 기를 쓰고 애를 썼지만 몸뚱아리가 이런 걸
어떻게 해요... 주님 , 저 이제 집에 갈래요.’
보따리를 다 싸놓고 주교님한테 ‘나 가겠습니다.’
인사를 하러 갈려고 하는데 거기 내덕동 주교좌성당 신자들이꽃가마에다 뭐를 이고 오는 거야.
뭔가 봤더니 김대건 신부님 유해를 모시고 오더니 제대 앞에다 이렇게 모셔놓는 거예요.
주교님한테 집에 간다고 얘길 하려다가 김대건 신부님 유해를 보니까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
‘저 양반이랑 나랑 같은 종씨잖아? 주교님한테 간다고 하기 전에 먼저 대건이 형한테 먼저
부탁이나 해보자!’
그래서 밤 11시에 몰래 성당 문 열고 혼자 들어갔죠.
그 주교좌성당도 이렇게 난간이 있고 오래된 성당이라....여기와 비슷해요.
그 마룻바닥에 담요하나 뚤뚤 말고 그 앞에서 내 나름대로 삼일동안 철야기도를 하면서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를 쳐다보고 허리 낫게 해달라는 말은 차마 안 나옵디다.
남사스러워 가지고..... 그러니까 그냥 푸념만 얘기한 거 같아요.
'아이고 형님, 형님은 그래도 나보다 나아 ....비록 서품 받고 일 년 만에 돌아가셨지만
미사를 해 봤잖어.,,,나는 꿈이 미사 한대드리고 그 다음날 죽어도 원이 없을 텐데 이 허리가
이러니... 그래도 형님이 나보다 나아.'
내가 담요를 똘똘 말고 새우잠을 자고 있었는데
셋째 날 새벽에 눈을 떠보니 이상하게 몸이 개운해요.
디스크 환자는 환자분들은 아시겠지만 바로 못 일어나요.
너무너무 아프기 때문에....한 바퀴 빙그르 굴러서 손으로 딛어야 일어나요.
그날은 기분에 바로 일어나질 것 같아서 일어나보니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지더라구요.
그 다음에 오른쪽이 항상 감각이 없었는데 꼬집어 봐도
오른쪽 다리를 꼬집어보니까 감각이 살아났어요.
일어나서 빈 성당 한가운데를 왔다갔다 해봤죠.
디스크 환자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지만 디스크 판이 튀어나와서 걸을 때마다 신경을 꾹꾹
눌러주니까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몰라요.
치과에 가서 조그만 신경하나 건들어도 자지러지죠?
디스크는 큰 신경을 꾹꾹 눌러대니까 걸을 때마다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어요.
그날 아침에는 왔다갔다 걸어도 허리가 안 아픈 거예요.
껑충껑충 뛰어도 허리가 안 아파.
일주일 동안을 아무한테 아무 말도 못했어요.
왜냐하면 의학 쪽에서도 보면 왜 상상임신, 상상으로 최면이 되잖아요.
너무 애기가 갖고 싶으면 ‘우웩... 우웩....’ 그렇듯이
나도 너무 낫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내가 통증을 못 느끼는구나!
내가 얼마나 낫고 싶었으면 통증을 못 느낄 정도가 될까?
진통제를 끊어봤어요.
진통제를 하루 종일 안 먹어도 허리가 안 아퍼.
그래서 일 년 반 동안 차던 쇠로된 코르셋, 허리복대라 그럽니까?
저는 잘 때도 그걸 차고 잤어요.
전 그걸 안차면 일어나지도 못했어요.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코르셋을 풀어봤는데도 허리가 꺾이지 않는 거야.
‘내 몸에 분명히 이상이 생겼다!’
청주에 있는 신경외과를 찾아가서 정밀검사를 좀 하게 해 달라.
닥터가 정밀검사를 하고 나오더니
‘부제님, 이거 어떻게 된 일입니까? 튀어 나왔던 디스크판이 제 자리로 들어가서
지금은 정상이 되었습니다..아니 어떻게 며칠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지...
어떻게 치유 받으신 겁니끼?
“대건이 형이 고쳐 주었어요.”
“대건이 형이 누굽니까?”
그렇게 의사로부터 치유판정을 받았어요.
일주일 있다가 교구 체육대회가 있었어요.
운동장에서 본당신자들이 쫙~~천막을 치고 각종 경기 중에 릴레이도 있었는데...
내가 나았다는 걸 주교님한테 알려야 된단 말이야.
잘 뛴다는 걸...마지막 계주할 때 바턴을 잡아가지고 주교님 앞에서 막 흔들었어~~
처음에는 주교님이 나라고는 생각을 못하셨지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내가 잘 뛰거든요...저는 원래 달리기를 잘 했어요.
“아니, 저 병신이 저렇게 잘 뛰어?”
주치의가 주교님 옆에 계시다가
“의학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데 저 부제님은 완치가 되었습니다."
그날 밤에 주교님이 저를 부릅디다.
“의사 얘기 들어보니 디스크가 다 나았다고 하니 일주일 후에 서품식을 거행하자.”
그게 바로 5월 14일 마티아 축일이지요?
마티아가 누구 대신... 유다스 대신에 ...막차 탔잖아요?
그 꼬라지가 내 꼬라지야! ^^
서품 결정이 됐고, 제의도 이미 맞춰놓은 게 있고,
서품 상본을 새로 할까하다가 약이 올라서 새로 못하겠어요.
그래서 어떻게 한줄 아세요?
전 세계에 그런 상본은 내 상본밖에 없을 거예요.
원래 1월 26일이었는데 그 1월 26일에다가 내가 자대고 다 줄을 긋고
그 밑에 5월 14일로 다 바꿔 쓰고 코팅만 했어요.
그 서품상본 수녀원마다 가서 미사 드리지 않습니까?
해마다 얼마나 많은 새 신부 상본이 수녀원으로 오겠어요.
전 그때 그 상본 갖다 줬죠.
25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수녀님들 성무일도에는 내 상본이 꽂혀있어요.
이건 특별하기 때문에 성무일도에다 끼워 넣고 기도한데요.
상본은 그렇게 해서 해결이 됐고....
집에 알리니까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넉 달 만에 앓아누우시며 지옥에 떨어져 계셨다가 .....
다시 천국으로 올라오셨는데, 문제는 나예요.
이제 서품식만 거행하면 되는데... 문제는 나예요.
왜?
주교님이 정말 미워 죽겠는 거야.
‘병신일 땐 그렇게 내치더니 이제 낫다니까 써먹어?
내가 과연 저 주교 앞에 무릎을 꿇고 그날, 당신께 한평생 순명하겠습니다.
하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못해~~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미움덩어리를 가지고 내 양심에....
어떻게 저 주교 앞에 순명서약을 어떻게 해? 나 못해!!!’
날짜는 하루하루 바득바득 다가오는데 저는 속이 새카맣게 탔어요.
부모님한테 못한다는 말을 어떻게 해?
서품받기 하루 전날, 수도원에 있는 어떤 신부님, 노사제를 만나서 면담을 했죠.
80이 넘으신 노사제가 그 아야기를 다 들으시고 내손을 꼭 잡으시더니
“부제님 내가 책임을 질 테니 일단 서품 받으세요.”
“신부님 이런 미움을 가지고 서품 받는 거, 이거 위선 아닙니까?
이렇게 안 좋은 마음을 가지고 거짓으로 마음에 우러나오지도 않는 말을 하는 거
이거 위선 아닙니까?”
“부제님, 그것까지도 내가 책임질게요.
그것까지도 내가 벌 받을 테니까 이 노사제 믿고 일단 사제가 되고 보세요.”
저는 그 노사제에게 고해성사를 보고 난 후 서품을 받기를 결심을 했어요.
1983년 5월 14일, 마티아축일
장미는 아직 만개하지 않았지만 날씨가 정말 너무너무 좋아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제 사제서품식장에 두 번 오신거야.
온가족이 또 인천에서 한 차 해가지고 앞자리에 쫙 차지하고 앉았죠.
저는 맨 뒤에서 초를 들고 새색시처럼 입장을 기다리며 이를 악물었어요.
‘내 오늘 절대로 눈물 안 흘릴 거다.
내 이제껏 그렇게 고통스러워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이제까지 왔는데
오늘 정말 웃으면서 사제 될 거다.’
근데 입장하면서부터 그게 깨지는데요.
교우들이 울기 시작한 거예요.
그 당시에 본당 신자들은 내가 다리 절뚝절뚝거리면서 그 몸뚱아리 해가지고 다니는 그걸 다 봤어요.
그러더니 저렇게 치유 받고 이렇게 좋은 날도 돌아오는구나!
신자들이 내가 입장하면서부터 울음이 터지기 시작하는데 아이고 세상에 감당을 못하겠는거야.
초를 들고 덜덜덜 떨면서 입장 할 때부터 통곡을 했어요.
지금도 그 비디오테이프를 일 년에 딱 한 번 봐요.
참 정말 많이 울었어요. ㅠㅠ
단체사진 찍을 때까지도 옆에서 복사들이 그 수건 갖다 주느라고..,
그냥 골이 패일정도로.....
사제서품을 받고 바로 그 주교좌성당에 보좌신부로 임명을 받았어요.
저와 주교좌성당은 참 인연이 깊어요.
거기서 보좌신부를 하면서.....고생도 엄청시리 했고 ....
그 이후 그 주교님에 대한 미움이 사라졌느냐?
안 사라져요. 점점 더 미워져요.
주교좌성당이니까 주교님이 자주 오시잖아요.
주교님 볼 때마다 나한테 등 한번 쳐주시면서
‘고생했어.’ 이 말 한마디만 해주길 저는 바랬어요.
‘아~ 안 해.’ 그러니까 속에는 분노는 더 일어나는데
‘어떻게 하면 저 주교님을 안볼 수 있을까? ’
궁리해보니 그게 바로 군종신부로 나가는 거야
군종신부로만 나가면.... 전 군종신부로 나갈 때 어떤 결심한줄 아세요?
‘내 나가서 저 주교님 죽을 때까지 절대 교구로 안 들어올 거야.
아주 말뚝 박을 거야. 군종 교구에서....’
군종신부로 있을 때 동료신부들과 술을 먹으면 저는 술이 컨트롤이 안 되는 거야.
그 미움 때문에, 그 분노 때문에....
술을 먹으면 기억도 안 나는데 내가 그렇게 주교님 욕을 한데요.
어느 날 동료 신부님이 차에 타래.
어디 가냐니까 좋은데 데려다 주겠다면서 서울 쪽으로 올라가더니 명동성당에 내려놓으면서
‘여기 회관에서 성직자 수도자 성령세미나 있는데 비싼 돈 내고 신청했으니까 너 이거 받고서는
치유 좀 받고 와.’
그리고 나를 내버리고 도망치는 거야....그때 돈으로 15만원이나 들었다는 거야.
올라가보니 말이 성직자 수도자 세미나지 신부는 나 하나밖에 없고 다 수녀님 들이여.
들으면서 뭐 귀에 들어옵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성령세미나 하면 개신교에서 하는 것이지, 천주교 망했다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에는..... 성령은 이상한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죠.
한 시간 강의 듣고 나서 거기 책임자 신부님한테 가서 돈 도로 돌려달라 그랬더니
이미 받은 것은 돌려줄 수가 없데요.
그러니 죽으나 사나 맨 뒤에 앉아가지고 강의를 들었어요.
신기한 게, 수녀님들이 시간마다 끝나고 강의 시작하기 전에 심령기도를 하면서 영가를 부르는데
심령 기도할 때는 처음엔 좀 무서웠어요. 처음 들어보는 거라....
그런데 그 심령기도가 영가로 바뀌기 시작하는데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가 다 있나!
그 수녀님들이 60명이 심령영가를 하는데..... 그냥 천상에서 울려오는 소리야.
나도 노래깨나 하거든.
그래서 아무튼 비슷하게 그 소리를 내보려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그 소리가 안 나요.
야~ 이게 사람의 소리가 아니구나.
앞에 앉아있는 뚱땡이 수녀도 얼마나 아름답게 하는지....
그래서 점심시간에 수녀님에게, 아무튼 15만원을 투자했으니 영가라도 배워갈 욕심으로
"그 영가 어떡하면 배우나? 어떡하면 나오냐?"
그 수녀님이 나를 쳐다보더니 "회개하세요....."
영가 부를 욕심에 뭘 회개할까..... 했더니 회개할 것 딱하나 예요.
주교님 미워한 거, 주교님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욕한 거, 그래서 열심히 회개했어요.
근데 그 회개가 언제 일어나느냐!
안수 받는 날 있죠?
봉사한 신부님 다섯 분이서.... 그 신부님들도 내가 왜 다른 신부가 데려다 놓은 걸 알고 있어요.
수녀님들에 끼어서 안수를 받는데 신부님들이 다섯 분이 한꺼번에 달려듭디다.
다른 사람들은 다 한사람이 해주는데 내 차례가 되니까 저쪽에 있는 신부도 쫓아오고 다 쫓아와
다섯 신부가 손 열 개를 그냥 온 몸에다 대고 머리서부터 대는데 난 죽는 줄 알았어요.
다리미 있죠?
다리미. 시뻘겋게 달은 그 인두가지고 지지는 거예요.
그 신부님들의 손이 인두처럼 뜨거운데 내 죽는 느낌이야.
그 뜨거운 게 들어오면서 울음이 터졌어요.
수녀님들 그렇게 많은데 챙피한 것도 모르고 한 삼십분을 그냥 콧물 줄기가 주루룩........
온갖 추접을 다 떨면서 그냥 삼십분 동안 땅을 치면서 통곡을 했어.
나중에 울 힘도 없어 ‘꺼~이, 꺼~이’ 꺼이꺼이 했는데
그 때 그 신부님이 김대건 신부님이었던 것 같애. 그 신부님이
"신부님 미움이 아직도 있어요."
그래서 미움을 찾아보려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세상에~~ 밉지를 않는 거야.
"아~ 우리 신부님 미움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으니 우리 수녀님들 박수한번 칩시다."
그 다음날 파견미사까지 끝나고 부대로 돌아 가야되는데 부대로 갈수가 없었어요.
저는 그날 버스를 타고 청주로 날아갔죠.
내려가니 밤 한 9시 정도 돼요.
주교관에 가서 초인종을 눌렀어요.
수녀님들이 나오시더니 내가 싸우러 온줄 알고
“지금 주교님 주무십니다. 내일오세요.”
“아니에요. 주교님 깨우세요. 내 오늘 꼭 주교님 만나고 가야겠어요.”
밑에서 사람소리가 웅성웅성 나니까 정 주교님이 위에서 옷을 걸치고 내려오면서....
그 양반 말투가 이래요.
“누구 왔쩌? 아니 군종신부가 웬일이야?”
“주교님 면담하러 왔습니다.”
“올라 와.”
면담실에 앉아가지고 정말 속에 있는 말 요만큼도 안남기고 다 했어요.
“나 당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내가 군대를 가서 알콜중독자가 됐다.
지금 미움 때문에 며칠 동안 세미나 받고나서 치유된 것 같다.
오늘 찾아온 이유는 이제야말로 2년 만에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서 찾아왔다.”
그 얘기를 다 들으시더니
‘그렇게 힘들었쪄?’
우리들도 살아가면서 다 느끼는 것이지만 상처 준 사람은 그것 기억조차 못해요.
상처받은 나는 피를 흘리면서 그걸 끌어안고 살았지만 우리 주교님은 기억조차 못하고 있는 거야.
“그게 그랬었쪄?”
그 양반 그 얘기 들으니까 내가 맥이 푹 빠집디다.
같이 괴로워해야 내가 성질이 덜 나잖아!
혼자만 그 핏덩어리, 비수를 가슴에 꽂고 몇 년을 알콜중독자가 될 때까지 살았는데, 이 양반은
기억마저 없는 거야. 단 한번도....
“주교님 제가 못나서 그 상처 끌어안고 살았죠... 오늘 제가 찾아온 것, 주교님한테 강복 받고
꼭 한번만 쎄게 안아주십시오.”
“그게 어렵냐?”
김대건 신부님 얘기를 하다가 아니 그전에 아들부제 얘기를 하다가 얘기가 여기까지 흘러왔네요.
이것도 성령의 역사겠지요.
사실은 오늘 이 얘기 말고 딴 강론이 준비되어있었는데
갑자기 부제님 소개하다보니 내 옛날 부제 때 생각이 나고
또 김대건 신부님 유해를 보니까 옛날 생각나고~~
내일이 김대건 신부님 대축일이잖습니까?
그때 내가 치유된 의사의 증명이 로마 바티칸으로 가서 김대건신부님이
성인품 되시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저는 늘 그 생각을 해요.
물론 외국에도 수많은 유명한 성인이 있지만 우리 한국에도 얼마나 큰 성인성녀들이 많은가!
103위 성인만이 성인이겠어요?
103위 성인은 확실히 공적이 드러나서 기록이 확실하니까 수만 명 가운데서
103명이 대표로 된 거지 사실은 하느님을 위해서 목이 잘렸던 수만 명이 목이 잘리는 그 순간부터 거룩한 분, 성인성녀가 되신 거예요.
우리 한국에 김대건 신부님이 있다고 하는 거,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여러분들, 김대건신부님께 전구하세요.
저는 김대건 신부님 때문에 치유 받고 사제가 된 사람 이예요.
저 김대건 신부님 유해는 내가 개인적으로 모시고 다니고 있어요.
제가 나중에 세상 뜰 때 교회에 다시 돌려드리겠지만 저는 김대건 신부님 유해를 개인적으로
모시기 위해서 참 기도 많이 했어요.
기도한지 5년 만에.... 그 과정은 굉장히 복잡해서 설명을 다 못하지만
김대건 신부님 유해가 저한테 왔어요.
그때부터 계속 모시고 다니는 거예요.
제 방에 가면 성인분들, 또 십자가 보목 모셔놓은 유리관이 있죠.
전 늘 그 앞에서 기도를 해요.
김대건 신부님한테 기도하고,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한테도 기도하고
아들사제를 마카오로 보내고 그 아버지가 모진 매를 맞아서 맷독이 올라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한국 교회에 신학교가 각 교구마다 있고,
수녀원이 성소자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무엇일 것 같아요?
현재 우리들이 잘나서? 우리들이 열심해서?
아니죠.
우리들이 열심하지 않아요.
각 본당마다 50%가 냉담자인데 그게 어떻게 열심해요?
세례 받고 일 년 안에 60%가 냉담에 들어가요.
세례 받고 나서 어렵고 힘들 때 점집, 철학관, 무당한테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40%가 넘어요.
두 달 전에 카톨릭 신문에 아예 특집으로 나왔잖아요.
점집 갔다 와서 성사 본다 이거예요.
그리고 점집 또 가요. 그리고 또 성사 봐요.
고백성사를 이용하는 거예요. 상습적으로...
불감증에 빠져가지고 그런 현 신앙상태가 현재 우리들인데....
우리들 때문에 이렇게 신학교가 많고 사제가 많아지는 게 아닙니다.
누구 때문에 그래요?
200년 전에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해서 하느님 때문에 불순물이 조금도 없이
순도 100%짜리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충성과 순명으로 목을 내놨던
그 분들의 피가 이 땅에 스며들어서 꽃이 피고 있는 것이 우리고 그 꽃을 보고 있는 것이
우리들이지 우리들이 농사 잘 지었고 그랬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꽃이 피었고 외국으로
선교도 나가고 이런 건 아니다 이겁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피의 그 결과는 앞으로 100년 200년 후에 우리들의 후손이 볼 거예요.
200년 전에 우리 선조들이 흘린 피의 열매를 우리들이 보고 있어요.
그럼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이렇다
그러면 100년 200년 후에 우리 후손들, 천주교 후손들이 과연 우리들한테서 무얼 얻을 수 있을까?
정말 정신 차리고 신앙생활 잘 해야 되죠.
우리 다 같이 신앙인의 3대 구호,
순교자들이 감옥에 갇혀서 사탄에게 배교의 유혹을 받을 때마다
‘배교해라. 배교해라. 십자가에 침 뱉어라.
하느님은 첫째자리에 있지 않다. 저 밑으로 떨어뜨려라.’
할 때마다 우리 순교자들은 서로 손을 잡고 세 가지의 영적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서로 격려했다고 그래요.
옆에 사람과 손잡으시고 세 가지의 영적구호를 외칩니다.
오직 예수님께 대한 사랑
오직 예수님께 대한 순명
오직 예수님께 대한 충성
목에 칼이 들어와도 주님만을 섬길 것을 약속합니다.
모든 우상숭배로부터 해방될 것을 약속합니다.
하느님 외에는 다 우상숭배임을 믿습니다.
첫째자리에 하느님을 늘 모시고 살렵니다.
하느님이 첫째자리에 계시면 세상 모든 것을 다 소유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의 은혜, 또 성체의 은혜
또 위에서 내려다보시는 매괴성모님의 전구를 믿으면서
미사를 거룩하게 봉헌합시다. 아멘~
(김웅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