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명 | 위치 | 시장명 | 위치 |
고부장 | 현 고부면소재지 | 천원장 | 현 입암면소재지 |
두지장 | 현 이평면소재지 | 태인장 | 현 태인면소재지 |
신장 | 고부군관아 남쪽10리 | 용두장 | 현 산외면소재지 인근 |
난산장 | 현 고창군 부안면소재지 | 고현내장 | 현 칠보면소재지 |
평교장 | 현 부안군 백산면소재지 | 엄지장 | 현 신태인읍 화호리 |
정읍장 | 현 샘골시장 |
|
|
정읍지역에는 모두 11개의 시장이 열렸다. 시장이 서는 곳마다 찾아다니는 속칭 장돌뱅이들은 장날을 기억하여 이곳저곳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임원16지에 기록된 정읍지역의 특산품은 다음과 같다.
□ 고부군: 청옥(靑玉), 석류(石榴), 강(薑,생강), 산(蒜:달래), 다(茶:차), 죽(竹), 제호유(鵜鶘油:사다새의 기름), 부어(浮魚:물고기), 석수어(石首魚:조기), 위어(葦魚:웅어), 오적어(烏賊魚:오징어), 해(蟹:게), 미곡(米穀), 면화(棉花), 면포, 어염(魚鹽), 토기(土器), 자기(磁器)
□ 정읍현: 시(柿:감), 석류(石榴), 죽(竹), 저포(苧布:모시옷), 밀어(密魚:망둥어과), 밀(蜜:꿀), 목물(木物), 철물(鐵物), 미곡(米穀), 준시(蹲柹:곶감), 유사(珋司:옥돌?), 인석(茵席:왕골돗자리), 인초(咽草:골풀,돗자리용), 우독(牛犢:소, 송아지)
□ 태인현: 여석(礪石:숫돌), 석회(石灰), 시(柿:감), 석류, 연실(蓮實:연꽃열매), 내복(來葍:?), 저(苧:모시 or 楮:닥나무), 죽전(竹箭:대나무화살), 다(茶), 해(蟹:게), 밀(蜜:꿀), 미곡(米穀), 면포(棉布), 면화(棉花), 생마(生麻:삼), 토기, 자기, 철물
1907년에 편찬된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정읍지역에 있었던 시장은 모두 10곳으로 임원16지에 제시된 시장 중에 평교장과 신장이 빠졌고 대신에 감산장이 추가되었다. 평교장은 부안장으로 흡수되었을 것이고 신장은 고부장으로 흡수되었을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감산장은 현재 감곡면에 해당하는 곳이다. 참고로 시장마다 장이 열리는 날짜를 제시해본다.
〖1907년 정읍지역(정읍현·고부군·태인현) 시장현황〗
시장명 | 개시일 | 시장명 | 개시일 |
정읍장 | 2, 7일 | 태인장 | 5, 10일 |
천원장 | 1, 6일 | 용두장 | 1, 6일 |
고부장 | 1, 6일 | 고현내장 | 3, 8일 |
난산장 | 5, 10일 | 감산장 | 3, 8일 |
두지장 | 3, 8일 | 엄지장 | 4, 9일 |
일제강점기인 1926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의 시장경제』에는 전국의 시장을 1,311개소로 집계하였다. 당시 정읍군 관내 시장분포 상황을 표로 정리한다. 모두 10곳인데, 1907년 증보문헌비고 자료와 비교했을 때 1914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정읍군 영역에서 빠져나간 시장이 있고 없어지거나 새롭게 등장한 시장이 있다. 난산장은 고창군으로 편입된 장이며, 감산장은 사라졌다. 그리고 엄지장이 화호장으로, 두지장이 마항장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두지장과 마항장은 같은 장소인데, 두지(斗池:말못)과 마항(馬項:말목)으로 발음이 비슷하여 혼용하는 것 같다. 또한 산외면 능교리(면소재지)에 새롭게 능교장이 나타났으며, 호남선 개설로 발전한 신태인 읍내에 상삼리장이 등장하였다.
〖1926년 정읍군 시장현황〗
시장명 | 개시일 | 시장명 | 개시일 |
정읍장 | 2, 7일 | 능교장 | 4, 9일 |
천원장 | 1, 6일 | 용두장 | 1, 6일 |
고부장 | 1, 6일 | 고현장 | 3, 8일 |
마항장 | 4, 9일 | 화호장 | 1, 6일 |
태인장 | 5, 10일 | 상삼리장 | 3, 8일 |
해방이후 1968년도 정읍군 통계연보에 실린 정읍군 시장현황을 보면 모두 8개의 시장이 운영되었다. 이때는 상설시장이 정착되면서 정기시장의 전통이 이어지는 과도기(過渡期)라고 할 수 있겠다. 특기할 만한 것은 정읍에 제2시장(현 연지시장)이 들어섰는데, 이는 호남선철도와 관련하여 정읍역이 번성하면서 생겨난 시장이라 할 수 있다. 1926년 시점에 비하여 3개의 시장이 사라지고 한 개의 시장이 신설되었다. 입암면의 천원장, 신태인읍 화호리의 화호장, 이평면의 마항장(말목장터)이 사라지게 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교통의 발달과 관련이 되며 규모가 큰 시장이 작은 시장을 흡수한 결과라고 본다. 마치 요즘 대형마트가 동네 구멍가게와 소형마트를 삼키듯이 약육강식이 적용되는 경제 원리가 적용된 결과이다.
〖1968년도 정읍군 시장현황〗
시장명 | 장날 | 시장명 | 장날 |
정읍제1시장 | 2, 7일 | 태인시장 | 5, 10일 |
정읍제2시장 | 2, 7일 | 칠보시장 | 4, 9일 |
신태인시장 | 3, 8일 | 산내시장 | 2, 7일 |
고부시장 | 1, 6일 | 산외시장 | 1, 6일 |
2017년도 현재 정읍지역에 존재하는 재래시장(전통시장)은 4개로 줄어든 상태이다. 가장 큰 시장인 샘골시장을 위시하여 연지시장(정읍제2시장), 신태인읍의 신태인시장 그리고 태인면의 태인시장 등이다. 그 중에 가장 규모가 큰 시장은 정읍시내에 위치한 샘골시장이다. 샘골시장의 역사를 흔히 100년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상설시장으로서 출발한 역사를 말하는 것이고 사실은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물품교역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본다.
정읍지역의 재래시장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교통이 더욱 발달하면서 작은 시장들은 큰 시장으로 흡수될 것으로 본다. 최근 재래시장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변수가 등장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대형마트라고 하는 첨단의 시장이다. 정읍에도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재래시장은 힘겨운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재래시장은 스스로의 자생력과 행정적인 지원이 더해지면서 아직은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과연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쉽게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나는 옛날 오거리시장이라 불렸던 지금의 정읍 샘골시장 근처에 살면서 어른들을 따라 자주 저자거리를 들락거렸다. 사람과 물건이 넘쳐나며, 가격흥정을 하는 장사꾼과 손님들의 왁자지껄한 풍경이 지금도 눈앞에 그려진다. 대형마트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그 인간다움을 느껴보기 위해 나는 다소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가급적 재래시장을 이용하려고 한다. [끝]
첫댓글 오랫만에 들어오니 흥미롭고 재미난 글이 많네요.1926년 산외면 능교장은 산내면 능교장의 오기인가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