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 졸업생 평판度, 아시아 20위권에도 '제로' 외3편

[달인]

#1

한국 대학 졸업생 평판度, 아시아 20위권에도 '제로'

 입력 : 2010.05.15 03:03 / 수정 : 2010.05.15 04:17

인재 '제품' 잘 만들고도 글로벌 시장에 못 파는 격

올해 조선일보·QS 아시아 대학평가에서 국내 대학들이 가장 고전한 분야가 '졸업생 평판도'(recruiter review)였다. 이번 평가에서 국내 대학들은 연구·국제화·교육여건 지표에서 모두 지난해보다 개선됐지만 졸업생 평판도는 오히려 순위가 떨어졌다.

국내 1위인 서울대의 아시아 랭킹이 23위(지난해 22위)에 불과했고, 50위 안에는 카이스트(46위)·서강대(47위) 등 3곳만 올랐다.

한국 대학들이 인재라는 '제품'을 만드는 능력은 좋아졌지만, 글로벌 인재시장에서 졸업생을 채용하는 '고객'(기업)으로부터 저(低)평가받고 있다는 얘기다.

졸업생 평판도 아시아 1위는 도쿄대였으며 싱가포르국립대가 뒤를 이었다. 한국 대학이 한 곳도 끼지 못한 졸업생 평판도 아시아 20위에는 일본이 7개, 홍콩이 4개, 중국은 3개, 싱가포르·인도가 2개씩 올렸다.

졸업생 평판도는 전 세계 기업 인사담당자에게 '유능한 사원의 출신 대학을 최대 40곳까지 뽑아달라'는 질문서를 보내 이에 응답한 1738명의 의견을 점수로 매겼다.

이 같은 상황은 국내 대학들이 '품질'(연구능력)에 비해 '제품 마케팅'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홍콩·싱가포르 등의 대학들은 기업·해외언론 등을 상대로 적극적인 홍보를 펼친다.

 

#2

[2010 아시아 대학평가] "주입식 강의만 하니… 해외기업들 한국 대학 졸업장 저평가"

입력 : 2010.05.15 03:04 / 수정 : 2010.05.15 04:16

외국기업 전문 헤드헌터들

서울 소재 명문 K대 경영학과 출신 이모(26)씨는 지난해 미국의 대형 보험사 S사와 신발유통업체 D사 등 현지 기업 2곳에 응시했다. 이씨는 평균 A학점으로 졸업했고, 1년 영국 연수에다 토익 950점대를 받는 등 '1등급 스펙(spec·외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화상(畵像)면접에 나선 현지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영어 잘하는 사람은 미국에도 많다"며 "당신의 능력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씨가 K대가 얼마나 좋은 학교이고 어떤 것을 배웠는지 유창한 영어로 설명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결국 두 곳 모두 낙방했다.

외국기업 전문 헤드헌터들은 "국내 명문대 졸업장은 국제무대에서 큰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대학의 브랜드 가치가 저평가돼 있는 데다, 대학들이 '고객(해외기업)'이 원하는 교육을 시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헤드헌팅업체 HR코리아의 최효진 대표는 "사례중심 수업을 경험하지 못한 한국 대학생들은 입사 후 문제에 부닥쳤을 때 해결하려 하기보다 안 되는 이유를 나열하는 데 익숙하다"며 "대학이 정답이냐 아니냐 식의 주입식 강의만 하니 외국계 기업이 국내 대학 졸업장에 낮은 평가를 내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싱가포르 등의 해외취업을 알선하고 있는 YNG커리어 전다니엘 팀장은 "해외 기업은 명문대 졸업생보다 어학능력과 실무경험이 많은 지원자를 선호한다"고 전했다.

종합인재컨설팅기업인 템프스텝코리아 관계자는 "최근 외국계 기업들은 영어·실습 중심 교육을 펼치는 한동대 졸업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대학이 개개인의 실전 능력을 키우도록 가르치면 기업은 그 대학 졸업생을 선호하게 된다"고 말했다.

#3

[2010 아시아 대학평가] [3·끝] '졸업생 마케팅' 열올리는 한국 대학들

입력 : 2010.05.15 03:04

기업 초청 간담회 세계석학들에 이메일 홍보
건국대, 우수학생 책자 제작
단국대, 무역전문가 양성 나서…
졸업생 평판도 높은 홍콩대, 글로벌매체에 적극 홍보 활동

'2010 조선일보·QS 아시아 대학평가'의 졸업생 평판도 분야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한국 대학들도 최근 들어 '상품(졸업생) 마케팅'의 중요성을 깨닫고, 수요자(기업·고용주)들에게 자기 졸업생들 가치를 알리기 위한 전방위적인 노력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평판도라는 것이 단시일에 높아지는 것이 아니지만 4~5년쯤 지나면 우리 대학들의 노력이 수치로 확연히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불붙은 '졸업생 마케팅'

동국대는 올해부터 주요 대기업 인사담당자를 초빙해 1년에 3~4차례 간담회를 마련하기로 했다. 김봉현 동국대 전략홍보실장은 "기업들이 동국대를 친숙하게 여기게 하고 대외 이미지를 높이려는 것"이라며 "세계 주요 학회 홈페이지에 배너 광고를 넣는 일도 함께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외대도 지난해부터 기업체 인사 담당자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고 있다.

건국대는 B+ 이상 학점을 맞은 우수 학생들을 1년에 1000명 뽑아 프로필 책자로 만드는 '건국 엘리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외 기업 인사담당자에게 발송되는 이 책자에는 학생들의 자기소개서와 학점·특기·학교생활 등을 일목요연하게 실었다. 오명 건국대 총장은 "우리 졸업생들이 '소리없이 강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 코트라(KOTRA)가 지난 3월 30일 주최한‘글로벌 채용 박람회’에서 외국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해외 취업을 원하는 한국인 구직자를 면담하고 있다. 이날 채용박람회에는 17개국 51개사와 국내 구직자 300여명이 참가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중앙대는 국제무대에서 졸업생 평판도를 좌우하는 여론 주도자를 상대로 홍보에 나섰다. 올해부터 1년에 4회 '글로벌 뉴스레터'를 만들어 세계 석학들에게 이메일로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뉴스레터에는 학교의 연구역량과 캠퍼스 현황, 행사·비전 같은 내용을 담았다. 이화여대도 지난달부터 '더 이화(The Ewha)'라는 월간 뉴스레터를 만들어 국내외 기관과 동문 등에게 8만통을 보내고 있다.

성균관대는 2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졸업생 평판도 설문 조사를 한 뒤 이들이 지적한 장단점을 교육과정에 반영했고, 해외 기업에 학교 이름을 알리기 위한 인턴 취업 사업도 벌이고 있다. 단국대는 지식경제부로부터 8억4000만원을 지원받아 '글로벌 무역 전문가 양성사업'에 나선다.

◆해외언론에 적극 홍보하는 홍콩대

홍콩과 싱가포르 등 적극적인 국제 마케팅으로 졸업생 평판도가 높은 영어권의 대학들은 이 점에서 한국 대학들이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월 말 홍콩섬 서북쪽 폭풀람 지역 대학로(University Drive) 맨 끝에 있는 홍콩대 총장 관사에 200여명의 언론인들이 모였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조선일보·QS 아시아 대학평가' 1위를 차지한 홍콩대 랍치 추이(徐立之) 총장이 홍콩·중국 언론의 교육담당 기자와 해외언론 특파원들을 초청한 바비큐 파티였다.

마이크를 잡은 추이 총장은 "평소 이메일과 전화로만 연락하던 교수와 학장, 학과장 교수들에게 면대면(面對面) 인사를 나누면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그는 마당을 돌면서 차(茶)와 비스킷이 든 붉은색 주머니를 기자들에게 건네고 "돈 많이 버세요(恭喜發材)"라는 덕담을 건넸다.

홍콩대에 따르면, 홍콩대 관련 기사가 홍콩 언론들에 보도되는 건수는 매월 평균 200개가 넘는다. 입시철이나 졸업시즌, 교수채용 등이 있을 때는 1000건이 넘을 때도 있다. 수천 개의 인터넷 미디어가 있는 중국은 이런 홍콩발 기사를 퍼 나르기 때문에 예를 들어 전국 수석 학생이 홍콩대를 선택했다는 기사의 경우엔 같은 기사가 하루 3000개 이상의 매체에 동시에 뜰 때도 있다고 한다.

#4

[2010 아시아 대학평가] "글로벌 기업 수요에 맞게 맞춤 교육"

• 싱가포르=이항수 특파원 hangs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입력 : 2010.05.15 03:04

'졸업생 평판 亞최고' 싱가포르국립대 탄 초추안 총장

졸업생 평판도 부문에서 아시아 2위(지난해 1위)를 차지한 싱가포르국립대(NUS) 탄 초추안(Tan Chorh Chuan ·50) 총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글로벌 기업 및 연구소들과의 공동 연구, 그리고 그들의 수요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한 것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해서 졸업생 평판도가 좋아졌나.

"아시아적 관점을 잃지 않으면서 세계 수준의 교육과 연구를 하기 때문이다. NUS의 3개 연구센터는 세계 최고의 대학 22개 연구시설과 16개 국가급 연구기관들과 긴밀하게 연구·협력하고 있다. 또 학생들이 기업활동에 참여하는 'NUS 엔터프라이즈'는 학교와 기업, 연구소, 정부의 노하우를 묶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학생들이 인재 수요자인 기업을 미리 경험토록 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NUS 엔터프라이즈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기업가 정신과 글로벌 마인드를 체화하고, 지적(知的) 재산의 상품화, 벤처기업 만들기, 세계 초일류 기업들과의 제휴·협력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 GE와 독일의 바이엘(BSP), 유럽연합의 에어버스 등 세계적인 기업과 최첨단 분야의 공동연구를 진행하기도 한다."

―총장 취임 18개월이 됐는데 NUS를 글로벌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가.

"우리의 모토는 '세계를 NUS로, NUS를 세계로'다. 현재 학부생의 20%, 대학원생의 60%, 교수진의 50% 이상이 세계 100여개국에서 온 외국인이다. 우리 학생의 50%는 어떤 형태로든 해외 생활에 노출시키려 하고 있다. 적어도 20% 이상의 학생들이 외국에서 6개월 이상 생활하게 만들 것이다."

―NUS는 특히 MBA(경영학석사)와 EMBA(최고경영대학원) 과정이 세계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데.

"교수진이 강한 덕분이다. 우리는 하버드와 옥스퍼드, MIT 등의 최고 교수들을 영입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