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밝지 못한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는데
간결하게 쓰려고 하는 것은, 글을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기위하여 쓰는 글이지만
질리지 않고 부담 없이 읽도록 하기 위함이다.
자살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고민거리이다.
한 해 통계에 따르면 12,000여명 하루 평균 약33명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정도로 자살 율이 높은 우리나라이다.
암,뇌혈관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4위로 당뇨병이나 교통사고보다
자살 수치가 높은 것이 우리나라의 불행한 현실이다.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자살한적이 있는
세계에서 찾아 보기 쉽지 않는 우리나라이다.
요지음 혼자 죽기가 두려워서
인터넷에 자살 모임까지 만들어
단체로 자살을 하려고 하지만
죽을 때는 자살 동지가 옆에서 같이 죽어도
황천길은(이방인의 표현을 빌림)
외롭고,무섭고,두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정치인 경제인 연애인
그것도 기독 연애인들의 자살로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신자의 자살을 두고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고 하는 사람들과
함부로 단언해서는 안된다,는 사람들로 갈리고 있다.
이 문제는 윤리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성경에 입각해서 구원론으로 접근해야
자살자의 영혼이 천국에 왜 못가고
지옥에 간다는 이유를 명료하게 알 수 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자살의 충동을 순간이나마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줄로 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목사인 필자도 어렸을때 어렴풋이...
또 심지어 목회하다가
하루 아침에 교회 건물과, 교회 부속 건물을
사기 경매를 당하고 거리로 내 몰렸을때
순간적이나마 자살 충동을 느끼면서
아~ 이러한 절망감이 들때에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한 바가 있다.
가룟 유다의 경우를 보자.
유다도 목을 메어 자살을 했을때
심한 자살 충동을 받았다.
그러면 누구의 충동을 받았는가?
요한복음 13:2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마귀의 1단계는생각을 집어 넣고
이것이 먹혀 들어가면 2단계 작업이 진행된다.
요한복음 13:27에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탐심과 욕심의 줄을 타고 유다의 속에 들어간 마귀는
유다가 선생인 예수님을 팔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괴로워하고 있을때
그 속에 불을 질렀다.
야!~ 이눔아 네가 사람이냐~
너를 믿고 너에게 돈괘를 맡기기 까지 했던
너의 선생을 팔다니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냐?
나무에 콱~ 목 메달아 뒈져라! 라고
충동질 하고 가슴에 불을 질러 대니
그 충동을 못 이기고 유다는 목을 메 달았다.
사실상 선생이신 예수를 팔도록 꼬인 놈도 마귀 였다.
야~ 이놈아~ 돈이 제일이여~
돈이 있어야 사람 구실하고 대접도 받는 단다,
라고 꼬이고 꼬였였다.
야!~이놈아 네 선생을 신고해서 잡히게 되어도
죄가 없으니 금방 도로 풀려나니 걱정 허덜덜 말고
신고해서 이참에 돈 한 뭉탱이 챙겨 이눔아~
라고 꾀인 놈도 마귀다.
그래 놓고 정작 유다가 머리 싸매고 고민 할때는
그 위에 올라타서 하는 말이
야!~ 이 천하에 호로자슥아!
네가 네 선생을 단돈 몇푼에 팔다니 네가 사람이냐?
살아서 뭣해 얼른 나가서 뒈져라!~
그래, 목 메다는것이 좋겠다! 고 라고 충동질을 하여
결국에는 죽어 지옥에 떨어지도록
꾀이고 속인 놈이다.
이것은 참고로 보면 좋겠다.
오래전에~ 서울 장위동 일가족 5명 살인 사건의
범인이 죽은 사람의 둘째 아들이었다.
수사관이 조사를 할때 공범을 캐기 위해서 힘쓴것은
혼자의 힘으로 다섯구의 시체를 큰 구덩이를 파고
묻는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불신자 수사관은 영적인 면을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공범에 관하여만 집중 추궁했지만
나중에 전도 했던 장로님에게 말하기를
자기를 충동질하여 살인을 하게 했던 마귀가
내가 도와줄게 하면서
구덩이를 파는 삽위에 턱~올라 타는데
모래를 파는것 보다 더 쉬웠다고 한다.
장로님에게 했던 진술에 의하면
둘째 아들이 여자와 동거생활을 하면서도
직장이 없어서 부모에게 생활비를 얻어 썼는데,
그 날도 생활비를 얻으러 갔다가
부모에게 혼만 나고 구겨진 기분으로 나오는데
갑자기 왼쪽 어깨에 무언가 올라 타는 느낌이 들더니
누군가가 귀에대고 속삭이는것 같았다.
야!~사내자식이 되가지고 얼마나 화가 나겠느냐?
네 부모가 아래층에 사는 네 형과
너무 차별을 하지않느냐?
하는 말을 듣고 보니
늘~ 차별받고 살았던 것이 생각이 났고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화가 더 났다.
그때 어깨에 올라 탄 놈이
야!~ 이놈아 남자답게 성깔 한 번 부려봐~
저기 신발장 위에 장도리(망치)가 있으니
그것 가지고 확~ 날려부러~ 라고
이글 이글 타는 가슴속에 기름을 부어대니
머리가 분노로 확~ 돌아가는 바람에
이성을 잃고 그 장도리 가지고
2층에 잠자고 있던 부모를 때려서 즉사 시키고
아래층에 내려가 잠자고 있던 형 내외와 조카를,
망치로 휘둘러 죽여 버렸다.
나중에 붙잡혀서 감옥에 있을때 살인을 충동질을 했던
그 놈이 다시 나타나서 하는 말이
야!~이눔아! 네가 부모 형제 다섯씩나 죽이고도 사람이냐?
그 말을 듣고 그래!~난 사람이 아니야 맞어~
하고 자기 속으로 맞장구를 치고 있는데
그 놈이 또 말하기를 야!~ 이눔아 살아서 뭣해 콱 뒈져라~하니
자기 속으로 그러면 내가 어떻게 죽을까? 하니
야~이눔아 아무도 없을때 목 메달아 죽어버려~ 라고
충동질하는 바람에 죽을려고 기회를 봤지만
교도소에서 도무지 죽을 기회가 없어서
죽지를 못하고 있다가 교도소 직원중에 장로님이 있었는데
그 분과 연결이 되어서 전도를 받고
그 죄를 회개하고 용서 받고
마지막 눈물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나서
사형집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마귀의 충동으로
자기 죄를 생각하여 괴로워 하고 고민을 하면서
돈을 제사장들에게 갖다가 도로 주어도 소용이 없자
그 욕심을 내었던 그 돈을 성소에 뿌려 버리고서
산에 올라가 목을 메달았는데
얼마나 고민을 했으면 사도행전에 보면
창자가 터져서 흘러 나왔더라고 했다.
가룟 유다가 목을 메서 죽은 것은
마귀의 충동을 받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선생을 판 죄 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뉘우치기만 하였지 회개하고, 믿고, 의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장위동 일가족 5명 살해 범은
자기 부모 형제를 자기 손으로 죽였으니 엄청난 죄 이지만
자기 죄 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가 더 큰것을 믿고 의지하므로
용서를 받은 것과는 너무도 대조가 된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말하면 자살한 가룟 유다는
선생을 판 죄 때문에 뉘우치고 괴로워 하다가 자살을 했는데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이 없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만좌 중에 부인하고 저주했던
베드로의 죄는 더 컸지만
베드로는 자살하지 않고
땅을 치면서 회개하고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용서를 받았다.
그러니 자살하는 사람의 공통 점이 무엇인가?
자기의 절망적인 현실과 그리고 자기의 죄!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맞기지 않고
자기가 짊어지고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다는 점이다.
아무리 짐이 무겁고 마귀의 충동이 있다고 해도
주님께 내려 놓으면 해결 받지 못하는 짐!
해결되지 못하는 죄가 이 세상에 없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희 쉬게 하리라"
다~ 오라고 했는데도
자살자들은 주를 믿고 의지하지 않고
자기 짐을 끝까지 자신이 지고
죽음을 택한다는 것이 모두 동일하다.
자살자들이 자신을 죽였다 해서
살인죄에 적용 되므로
구원 받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는
윤리적인 죄 보다는
주님을 믿지 않고
주님께 맞기지 않는 불신앙 때문에
지옥에 간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자살자들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맞기지 않고 회개하지 못하면 천국가지 못한다.
그래서 최종 결론은 자살은 주님께 맞기지 않는 불신앙이고
그 불신앙 때문에 지옥엘 간다는 사실에는
누구든지 토를 달지 말것은
요한복음 14: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자살자는 앞길이 막히고 사방이 막히므로 절망하여
자살을 생각하게 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나아갈 길이다.
예수님은 천국가는 길이 되신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살길이 보이지 않아 자살을 하는 것은
그 속에 길이 되신 예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 잘 다니고 오래 신앙생활 잘 했어도
아니, 목사 장로라 할찌라도
자살을 한다는 것은
그가 했던 믿음은 실상 주를 믿고
의지하는 믿음이 아니었다는 실상이
자살로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주를 믿는 자들은
우겨쌈을 당해도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결코
낙심하거나 자살하지 않는 것은
주를 의뢰하기 때문이다.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으면
어떤 경우에도 결코~ 결코~ 자살 하지 않는다.
아멘! 마라나타^^
마지막부흥 진형곤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