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태백으로 와서 광산 일을 하면서 왕십리 사무실에 와서 도장 일도 했다. 매형 고종사촌 형이 사장인데 일이 많다 도장 토목 견출 코킹 작업 등 일을 배웠다. 덕분에 대한민국의 북한 빼놓고는 다 다녔다. 대한민국 아파트 붐이 일어나 일산 분당 대구 부산 해운대 신시가지 몸이 세계 라도 부족했다. 그때 술만 아니면 아파트 2채는 갖고 있었을 텐데.
우리 큰 누나 둘째 아들이름이 여자 이름이다. 윤수현 가수 이름이다. 마침 장마철이라 데 마치 휴무가 나서 태백의 한번 놀러 갔다 녀석이 잘 생겼다 키도180이넘고 덩치도 있고 애가 장성에 있는데 태백 공고를 나왔다. 휴가 나오는 자기 선배들이 특히 해병대가 군화위에서 소리가 나는 것 하고 배레모가 멋있다, 지원을 한 거다. 누나나 나는 걱정을 했다. 녀석이 국민학교 5,6 학년부터 앉으면 삼학성냥인지 누런황으로 귀를 후벼 파드라고. 너 임마 황이 얼마나 독한 데 그걸로 귀후벼 파면 안돼 시원하고 재미 있다나 나중에는 안 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팠다 그러다 고 3때 이비인후과 가니까 피고름이 나왔다 선생님에게 해병대 지원할 건데 이 귀로는 힘들 것 같다고 근데 녀석이 소금물로 소독하며 나을거라고 포항으로 입대를 했다 보름에 머리 빡빡 깎고 모자 뒤집어쓰고 왔다.방위 받아야 된다고 사연인즉 첫날부터 작은 튜브 하나주고 잠잘 때 하고 밥 먹을 때 빼고 바다에 띄어 놓는다고 했다 수영의 수자도 모르는데 덕분에 수영은 박태환이 만큼 할 것이라고.참다참다 군의무대에 가니 피고름이 줄줄 나오니 쫄다구가 중위 한명을 데려왔다고 합다 이 녀석아 진작 얘길 해야지 포항시내 직영 병원에 가서 가니 의사도 놀라고 집에 보내야 합니다 잘못하면 청각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해서 왔다고 그래서 소도에서 우회전하면 옛날 농거리자리에 미군부대가 들어섰다 거기에서 일년 방위 복무를 마치고 나왔다 내쫄다구.방위도 마치고 그 당시 중동 바람이 불어 수많은 사람들이 중동으로 모였다 삼촌 태백 공고 졸업장으로 무슨 밥이라도 더 먹겠어 중동 1번 다녀와서 서울에 집을 한채 사야겠다고 나보다는 백배 천배 사고가 옳게 박힌 녀석이다
그 무렵 리비아에서 가다피가 독재를 신나게 할 때 3000km 대수로 공사를 동아건설에 서 수주했다.조카가 절차를 밟고 4년 6개월 리비아로 떠났다 누나와 나는 마음이 좀 그랬다 돈 때문에 더운 나라가서 고생할 생각하니 마음이 좀 그랬다.하나 귀 빼고는 신체가 상당히 좋아서 크게 걱정은 안 했다.리비아로 떠난 후 나도 지방 생활을 계속했다 주로 아파트 현장 신축 현장이 내 발자국이 거의 스치고 지나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한 이 년쯤 조카와 편지를 주고받고 더운데 고생이 되더라도 인내 끝은 달다고 그래도 또 너는 해병대 기질이 있지 않니 기죽지 말고 음식 잘 먹고 엄마 말 잘 듣고 건강히 생활해라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던 중 하루는 내일은 동아건설 창립일이니 하루 휴무고 이벤트를 한다고 한다.
고향에서 애인 친구 엄마 가족 누구든 관계없이 온 편지를 상자를 하나씩 주며 담아라 내일 편지 콘테스트해서 일등 하면 포상이 대단하다 한국 왕복 비행기 티켓 보름 휴가 한달 봉급 서비스 한국서 보름 동안 쓸 용돈 대단한 포상이다 동아건설 직원이 500명 쯤 되는데 수현이가 있는 전기과가 50명 쯤 된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을 거나하게 차려 먹고 천막을 무지하게 큰 걸 고 그 밑에 행사 구경을 하고 있는데 날이 더우니 양옆에 대형에어컨을 2개를 가동해 시원하게 편지 콘테스트를 발표를 하는데 시작은 3등부터 토목과 홍길동 2은 배수팀 손오공 그리고 1등은…500명 노동자들이 혹시나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 녀석은 일등이고 뭐고 해당 사항 없을테니 빨리 끝내고 시원한 내무반에 들어가서 잠을 자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이녀석은 잠보다.투덜거리며 있는데 단상에서 1등은 전기과 소리에 귀가 뻥 뚫렸다고 전기과면 50:1인데 그래도 에이 설마 우리 삼촌이 유머 있게 글을 잘 쓰지만 하면서 있는데 다시 한번 전기과 1등 소리가 들렸다고.여기저기서 함성과 빨리 발표하라..장난하냐..다시한번 일등,일등 전기과..윤수현 씨 당선,앞으로 나오십시오 그때 머리에 망치로 1대 맞은 기분 이고 아무 생각도 안 났다고.옆에 있던 같은 내무반 엉아가 너 임마 부르잖아 축하한다 빨리 나가 어떻게 단상으로 걸어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상을 받고 보니 정말 푸짐하더라고 왕복 유로 티켓 15일 유급 한달치 봉급 서비스 서울에서 보름동안 소주 마실 용돈 푸짐 했다고 한다. 삼촌이 너무 고맙고 글도 참 감동적이고 재밌게 쓰지만 설마했는데 오백명을 제치고 감탄했다고 한다 한국에 왔다 누나 집에서도 난리지 호프집에서 맥주 한잔하면서 삼촌 고마워 내가 평생 삼촌 존경하며 살 거야 라고 했다.알아서 해라라고 이별주를 하고 다시 리비아로 떠나갔다 그리고 2년후 귀국했다 약속대로 상봉동에 집을 한 채 샀다. 귀국해 보니 삼촌이 술만 먹고 결혼을 안 하고 실망했다고 한다. 삼촌 옛날에는 삼촌 존경한다는거 취소하면 안 돼?니 알아서 해라 임마 조카지만 속이 깊은 녀석이다. 외아들인데 결혼해서 할아버지에게 손주도 보이고 해야 되는데 틀린 얘기는 아닌데 듣기는 싫었다
여자를 사귀려고 펜팔을 열댓번했다 그 중에 6명을 만나봤는데 완전 야마모토 무사시 같은 몸무게 최하90Kg 이런 애들만 나왔다.여복이 없는지 결혼을 포기하고 혼자 살라고 마음먹었다 그러던 중 단양에서 2년 광산 생활을 하고 태백으로 넘어갔는데 아버지 부고전보를 받았다 누나와 매형 나는 제천에 나오는 기차를 타고 제천에서 택시로 청양으로 달렸다.마음이 쓰리었다 밤 늦게 도착해 입관을 못 봤다 아버지가 사촌 형들에게 성각이 이 녀석 밥이나 잘 먹고 다니냐 고 물어보시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가슴이 아려 온다.고생 고생 하시다 불효 자식 만나서.용서를 빕니다.장례를 마치고 장위동에 조그마한 방을 얻어 현장 생활을 계속했다.허전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신 거와 돌아가신 거 정신적 지주가 안 계시니 술만 더 늘었다.그러던 중 2층인데 술이 과해 올라가다 뒤로 꺾여 척추가 전부 내려앉아 척추에 쇠를 12개 박고 장애 2급이 되었다.
자살을 2번 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사랑하는 친구 분들은 어느덧 60 훌쩍 넘었네요 행복하게 사셔야 되고 무엇보다 건강들 챙기셔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지금 컴퓨터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통기타 가수 강지민이 Sosan Jasson의 Ever Green이란 감미로운 노래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네요. Sometimes…사계절에 가사를 붙인 아주 유명한 노래 죠. 생맥주 한 잔을 생각나게 하는…
이 좁은 종이 몇 장에 나의 자랑도 아니고 창피도 아닌 추억을 그려낼 수 있게끔 멍석을 깔아준 우리 총동문회장 장영근 친구에게 서면으로나마 감사를 표합니다 가끔은 외로울 까봐 먼 인천에서 와서 떡국도 끓여 먹고 때로는 외박도 하고 이사 때마다 도와줬던 영근 친구 정말 감사해요
친구분들 올 해에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 하십시오 장성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