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0:1-13
▣ 이스라엘의 거절-로마서 10장-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의 현재의 거절에 대해 다룬다.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왜 현재의 영적인 상태에 있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장이다.
1. 거절의 이유(10:1-13)
핵심 단어는 의(義)이다. 유대인들은 의를 원하였으나 그릇된 방법으로 얻고자하였다. 마태복음 23장 15절에서 묘사하는 바리새인들처럼, 유대인들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지위를 확보하는 데에 시간과 재물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무지함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오늘날의 “종교적인 사람들“도 그들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은 자신의 선한 행위를 보고서 하나님이 그들을 받아들이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은 두 종류의 의를 언급한다. 즉, 율법을 순종하여 얻는 행위 의와 그의 아들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 믿음 의이다. 유대인들은 믿음의 의에 순복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민족적이고 종교적인 교만은 그들로 하여금 단순한 믿음에서 맹목적인 종교로 등을 돌리게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거절하였고 율법에 매달렸으며, 율법이 바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 길을 준비한 것이라는 사실과 그가 친히 십자가에서 율법의 지배를 종식시켰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이제 모세의 율법은 더이상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세상을 위하여 죽으신 십자가로 인간을 다루신다. 율법의 의는 레위기 18장 5절에서 설명되어 있으며, 믿음의 의는 신명기 30장 12-14절에 설명되어 있다.
그 신명기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죄인들도 쉽사리 접근할 수 있는 것임과, 그리스도가 죄인들 가까이 계셔서 구원할 준비를 하고 계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인용된다. 6-8절은 바울이 신약의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구약의 구절들을 사용한 좋은 예이다. 신명기 30장 11-14절에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다. 율법이 그들에게서 멀다고 말하지 않도록, 특히 이스라엘이 나라들 가운데 흩어지게 될 때에 적용하여(신 32:1-55) 모세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찾으러 하늘에 가거나 바다를 건널 필요가 없음을 상기시킨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입술과 그들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바울은 이것을 곧 말씀(요 1:1)이신 그리스도께 적용하여,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다시 하늘에서 불러오거나 또는 지하 세계에서 끌어 올릴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구원의 말씀은 그들 가까이에 있어서, 믿어 구원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구원은 사람이 “예수님은 주님이시다“고 고백할 때,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마음에 믿을 때에 오며, 마음에 믿은 것을 입으로 고백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당대의 어떤 유대인들은 주님을 공개적으로 고백하지 않았다(요 12:42-43). 죄인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공개적으로 그를 고백할 때에 그의 믿음이 증명되며 의의 선물을 받는다.
11절에서 바울은 다시 이사야 28장 16절(롬 9:33 참조)을 인용한다. 본래는 “믿는 사람은 누구나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로 되어 있는데, 성령은 그 사람이 부끄러움을 당치 않도록 하실 것이라고 뜻을 부연하신다. 유대인들은 “누구든지“라는 말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선택된 백성“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13절에서 바울은 요엘 2장 32절을 인용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유대인만이 아닌 것이다 ! “차별이 없다.“"
롬 10:14-17
2. 거절에 대한 치료책(10:14-17)
여기서 순서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전도자가 파송을 받고 주의 말씀을 전파하며, 죄인들이 말씀을 듣는다. 그리고, 죄인이 말씀을 믿으며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리하여 그가 구원을 받는다 ! 여기서의 논점은 간단히 말해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17절).
15절에서 바울은 이사야 52장 7절을 말하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의 민족으로 설립될 때 완전히 성취될 구절이다. 그들의 메시야가 통치하신다는 소식을 듣게 될 때에 이스라엘이 누릴 기쁨을 생각해 보라 ! 바울은 평화의 복음을 오늘날 버림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파하는 것으로 적용한다. 이 평화는 하나님과의 평화,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평화이다(엡 2:13-17).
우리는 선교사들을 이방 나라들에 보내는 근거로 로마서 10장 14-15절을 자주 사용한다. 이것은 물론 잘하는 일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복음을 오늘날 이스라엘에게 전파하는 것에 적용되는 말이다. 우리가 복음을 유대인에게 전파하는 이유는 로마서 1장 16절 때문이 아니라(“첫째는 유대인에게“) 로마서 10장 14-15절 때문이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향한 바울의 부담감을 나누어 진다면 복음을 그들과 함께나누고 싶을 것이다. 이방인이건 또는 유대인이건 잃어버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증인들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아름다운 발“을 가졌을 것임이 분명하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태도는 어떠한가? 이사야 53장 1절에서 말하듯 “누가 믿었는가?“의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의 날에(요 12:37-38), 그리고 사도행전 1-7장에서 사도들이 증거하는 동안에 불신앙으로 돌아섰으며, 이로 말미암아 이 민족은 오늘날 불신앙 가운데 정착하게 되었다. 바울은 18절에서 시편 19편 4절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이(자연을 통한 말씀조차) 온 세계에 미쳤으며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핑계할 수 없음을 밝힌다."
롬 10:18-21
3. 거절의 결과(10:18-21)
이스라엘이 거절한 결과로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향하셨으며, 자기 이름을 위하여 한 백성을 그들 가운데서 불러내시게 되었다(행 15장 참조). 그러나, 이 일은 유대인들에게 놀랄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신명기 42장 21절에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책망하시며, 시기가 나게 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을 사용하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사야 65장 1-2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불순종할 것이며, 이방인들은 그를 발견하고 그의 구원을 찾게 될 것임을 알리셨다.
구약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약속하고 있음을 명심하자. 그러나,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같은 수준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한 구절은 아무 곳에도 없다. 그리고, 두 부류 출신의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한 곳도 없다. 구약에서의 계획은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흥왕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즉, 이스라엘에 왕국을 건설함으로써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계획에 실패하였다.
그러면 다음으로,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어떻게 다루실 것인가? 바울은 로마서 9-11장에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하여 자비가 이방인들에게 확장되었음을 지적한다(11:11). 하나님은 모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불신앙 가운데 있다고 판단하시며, 은혜로써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려는 방법이 갈보리의 일로 가능하게 되었다(11:32).
로마서 10장 21절은 오늘날도 해당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언급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 민족이 맹목과 불신앙 가운데 버림받았으나(고후 3:15-4:6/롬 11:25), 잃어버린 이방인들에게 그러하듯이 구원받지 못한 유대인들을 찾으신다.
오늘날 말씀을 듣고 있는 많은 유대인들이, 교회가 올리워 간 후 환란 기간이 시작되면 그리스도를 믿게 될 것이다. 우리는 유대인들의 “자기 의“를 추구하는 교만과, 영적으로 눈멀었음을 비판하는 대신, 그들이 우리에게 성경과 구세주를 주었음에 감사해야 한다. 그들의 실패를 통해서도 우리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
▣ 실천적인 교훈
구원은 차별이 없다. “누구든지...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이 잃어버린 죄인들에게 제시된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이것은 죄를 깨닫게 하는 말씀이며, 믿음을 주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말씀이다. 영화, 전도지, 노래 등 이들 모두는 각자의 위치(역할)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은 전파된 말씀이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종교“가 있다. 행위의 의와 믿음의 의의 종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