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9일 금요일 묵상
<1: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1: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1: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1: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1: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본문 해석)
2월 9일 금요일 마가복음 1:12~20
12~13절
12절 예수님이 성령의 강력한 힘에 이끌려 광야로 내몰리게 되었다고 한다. 앞서 성령강림의 주체가 하나님 아버지임을 감안할 때, 아들을 성령을 통해 광야로 몰아내시는 아버지의 의지와 목적을 강조하려는 신학적 의도가 배어 있다. 성령에 의해 광야로 보내어지는 예수님의 모습은 이스라엘의 죄를 지워 광야로 쫓아내는 속죄 염소의 모습을 기억나게 한다고 볼 수 있다(레 16:21). 13절 예수님의 광야 40일 시험은 여러 면에서 옛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을 암시한다. 당시 이스라엘에게 광야는 구원의 장소이며 동시에 시험의 무대였다. 사탄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였고 이스라엘은 그 시험에 넘어갔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험에서 이기셨다. 예수께서 사탄에게 받으신 시험의 내용은 마가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른 마가만의 독특한 묘사가 등장하는데, 들짐승과 함께 셰시니라는 표현이다. 이것은 평화의 공존을 의미하므로 구원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사야 11장과 65장의 내용을 보여준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회복하실 종말론적 통치의 모습이 사람과 짐승들 사이, 짐승과 짐승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이라는 이미지로 그려져 있는데,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 시작에 광야에서 들짐승들과 함께 평화스럽게 공존하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14~15절
14절 예수님의 본격적인 하나님 나라 사역은 세례 요한의 투옥과 함께 시작된다. 선구자의 사역은 거기까지다. 옛 시대는 저물고 새 시대가 열린다. 마치 기다린 듯, 요한이 투옥되자 예수님은 생의 무대인 갈릴리로 오셔서 복음을 선포하신다. 15절 예수님은 때가 찼다고 선포하신다. 이는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약속하시고 예정하신 때의 성취를 의미하므로, 하나님의 시간과 목적을 완성하는 메시아 선언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선언이다. 그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이미 왔고 시작되어 완성을 향해 신속하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에 명령은 그만큼 긴박성의 무게가 더해진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것은 백성들에게 합당한 반응을 강력히 요구한다. 마치 복음이 정복지를 향한 황제의 때/통치를 알리는 긴박한 메시지라고 할 때, 저항하면 멸망이고 항복하면 자비를 얻을 수 있는 것과 같다.
16~20절
16절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다가 시몬과 안드레를 보신다. 지나가다는 표현은 산책하듯 걷는 것이 아니라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길게 뻗은 해안선을 따라 그들이 있는 바로 그곳으로 오신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의 행동의 목적이었다. 시몬과 그 동생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그들이 어부라는 말은 그 다음에 사람 낚는 어부와 대조하기 위한 포석이다. 17절 그들 앞에 선 예수님은 대뜸 나를 따라오라고 부르신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은 문자적으로는 ‘내가 너희로 사람들의 어부들이 되게 하겠다’이다. 그들이 자기 뒤를 따르면 전혀 다른 어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구원을 위해 사람들의 어부가 될 것이다. 18절 베드로와 안드레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들은 생계 수단인 그물을 버려두고 즉시 예수를 따른다. 앞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명령에 합당한 반응의 모범이다. 그물을 버린다는 것은 평생 살아온 삶의 의미, 목적, 방식으로부터 돌아서는 것(회개)이며, 그들을 부르신 분을 전적으로 따르고 신뢰하겠다는 결단(믿음)이다. 19절 조금 더 가다가 야고보와 요한이라 불리는 또 다른 두 형제를 만나신다. 이들은 배 안에서 그물을 깁고 있다. 20절 그들 역시 사람들의 어부로 부름을 받고 있다. 예수님의 부름에 야고보와 요한 역시 앞선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즉시 예수를 따른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그물, 아버지, 일꾼들 모두 배에 두고 떠난다. 예수님은 이렇게 사람들을 위한 어부로서 생명을 건져 올리고 있다. 제자들은 그를 따라 그 뒤에서 동일한 사역에 동참하는 자들로 부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