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공항에서 자동차 운전대를 잡고 제주시청 방향으로 10분가량 달리면 나오는 제주시 연동의 어느 골목. 그곳에 숨은 맛집이 있어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제주의 대표 메뉴인 고기국수와 순대국밥으로 8년 넘게 영업을 이어 온 식당입니다. 최근 매출이 2배 이상 오르고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졌다는 소문이 난 곳이기도 합니다.
고즈넉한 제주의 골목 어귀 '신성할망식당' 건물을 마주하니 '맛있는 제주만들기 1호점'이라는 현수막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호텔신라가 제주지역 대표 재능기부형 사회공헌사업으로 추진한 1호점 식당입니다.
호텔신라는 식당의 새로운 음식메뉴 개발과 조리법 전수, 주방설비와 환경개선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리모델링을 마친 지난달 6일에는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재개장식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 지난달 6일 열렸던 '맛있는 제주만들기' 1호점 재개장식.
왼쪽부터 신성할망식당 김영철 사장, JIBS 김양수 사장, 제주도 방기성 행정부시장,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 신성할망식당 박정미 사장
많은 지원을 받아 탄생한 신성할망식당의 국밥, 과연 맛은 어떨까요?
취재팀은 호텔신라에서 전수받아 새롭게 태어났다는 할망국밥과 원조고기국수의 맛이 궁금했습니다. 국내 최고의 호텔 조리사에게 직접 전수를 받았다고 하니 우선 기대가 됐습니다.
| 메뉴판 아래에는 '맛있는 제주만들기' 1호점 재개장 행사사진이 액자에 걸려 있다.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할망국밥 순한 맛부터 먹어 봤습니다.
약간 싱거운데요. 평소 먹던 순대국밥과는 달리 심심한 맛입니다. 그런데 싱거운 만큼 마음은 편합니다. 화학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건강에도 좋을 것 같고 염도 걱정도 없습니다. 옆에 있는 겉절이는 또 어떨까요? 단맛이 나는데 설탕 맛은 아닌 듯합니다. 젓갈향도 깔끔합니다. 너무 맵지도 않아 자극이 없습니다. 겉절이 레시피도 호텔신라에서 제공했다고 하는데요, 매운 김치 싫어하시는 분들은 정말 좋아할 맛입니다.
원조국밥 매콤한 맛도 먹어봤습니다. 순한 맛과 달리 약간의 조미료 맛이 느껴지는데요, 박정미 사장은 매콤한 맛에는 어쩔 수 없이 적정량을 넣는다고 밝혔습니다. 감칠맛도 나고 얼큰한 맛이 매운 맛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제격일 것 같습니다.
돼지볶음과 김치찌개는 어떨까요? 돼지고기의 육질이 여느 제육볶음과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아주 쫄깃한데요. 젤리처럼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게 잘 씹힙니다. 싱거운 메인 메뉴와 아주 잘 어울리는 메뉴입니다. 김치찌개도 아주 얼큰합니다. 맵지만 뒷맛이 깔끔해서 거부감이 없습니다.
고기국수도 먹어 봤습니다. 국물은 역시 순한 맛과 매콤한 맛으로 나뉩니다. 순한 맛의 국물은 아주 깔끔하고 담백합니다. 역시 조미료 맛이 느껴지지 않는데 그 허전함은 부추의 향이 채워줍니다. 면이 참 쫄깃합니다. 생면의 맛이라고 할까요? 인스턴트 면이 아닌 직접 뽑은 면의 맛입니다.
사진: 머니투데이 정지은 기자
메뉴를 보니 '영철이 돼지볶음', '정미 김치찌개', '민건이 점심특선모듬'이라는 이름들이 보입니다. 모두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 가족들의 이름입니다. 하지만 이중 딸의 이름은 없습니다. 오랜 투병 끝에 지난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딸을 잃은 슬픔도 잠시, 사장 부부는 병원비로 사용된 대출금을 갚기 위해 밤낮없이 일을 해야 했습니다. 남편은 일용직으로 일을 나가고 식당 운영은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하는 막막함에 힘들어하던 어느 날 이 부부에게 지원의 손길이 찾아왔습니다.
호텔신라는 한 달여 기간 동안 '신성할망식당' 사장 부부와 함께 지속적으로 협의하며 메인 메뉴인 순대국밥의 업그레이드와 김치찌개, 돼지볶음 등 신메뉴의 노하우를 전수했습니다. 또 식당에 어울릴 차별화된 서비스교육을 실시하는 등 맞춤형 컨설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주방설비와 식당 내부를 대폭 개선한 것도 물론입니다. 주방의 시설도 새롭게 바뀌었고 허름했던 화장실도 깨끗해졌습니다. 식당을 돌아보면 주방 위생에 특히 신경을 쓴 게 느껴집니다.
박정미 사장은 재개장한 날이 '맛있는 제주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부진 사장님도 직접 와 주셨고 저한테 좋은 기운을 주고 가시니 아주 좋았어요. 이 사장님께 '국밥 좋아하세요?'라고 여쭤 보니 좋아한다고 하셨어요. 바쁘신 분이니까 행사 끝나면 가실 줄 알았는데 국밥까지 드시고 가시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고기국수가 인기가 좋았는데 재개장 후에는 순대국밥이 더 인기가 좋은 것 같아요. 제주도청의 높은 공무원분들도 이 조그만 가게까지 찾아오셔서 힘내라고 해주시니 감동이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어요."
박 사장은 이 프로젝트 덕분에 삶의 태도까지 바뀌었다고 전합니다.
"그전에는 지쳐서 '나만 왜 이렇게 힘들까' 부정적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일하는 것도 즐거워졌고 모든 게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의 격려와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제주도를 대표하는 맛집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재개장 후 고객층도 넓어지고 매출도 두 배 이상 올랐다는 박 사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시질 않습니다. 예전에는 근처 공무원들만 오는 식당이었지만 이제는 젊은 관광객까지 찾아옵니다. 주말에는 원래 손님이 없는 편이었지만 재개장한 후에는 아르바이트로 일하시는 분까지 두고 할 정도입니다. 음식이 업그레이드되면서부터는 자신감이 생겨 더 열심히 하게 됐다고 합니다.
식당이 더 잘되면 도움받은 만큼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 쓰고 싶다는 박 사장은 "저희 아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서 그런지 다른 아픈 아이를 후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영세자영업자들에게 재기의 발판을 제공하는 '맛있는 제주만들기' 프로젝트는 1호점 '신성할망식당'의 성공적 출발에 이어 2호, 3호점을 개점하며 제주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식당은 제주도청 주관으로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심의절차를 거쳐 선발됩니다.
| 2호점 '동동차이나'의 메뉴판에는 '자기야! 죽도록, 사랑해'라는 말이 들어있다. 서로 표현을 못 하는 식당 사장 부부가 메뉴를 말할 때마다 마음을 전하도록 호텔신라 직원들이 만들어 낸 이름이다. 대표 메뉴인 '황게 짬뽕'은 제주의 숨겨진 특산물 황게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면서도 저렴해 큰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지난 17일에는 2호점 중국요리집 '동동차이나'가 재개장했습니다. 이 식당 역시 호텔신라 임직원들에게 메뉴 조리법, 손님응대 서비스 등을 전수받고 주방 설비를 개선했습니다. '동동차이나'의 오동환 사장은 제주 출생으로 인천에서 식당을 운영하다 사업에 실패해 5년 전 제주로 돌아와 중국집을 차렸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오토바이 배달 사고를 당한 남편의 병원비와 갚아야 할 빚 때문에 힘든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이들 부부의 재기를 도와준 프로젝트가 바로 '맛있는 제주만들기'입니다.
3호점 '메로식당'도 곧 오픈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호텔신라 임직원들의 재능기부 모습은 지역방송사인 JIBS의 예능프로그램 '잘잘특공대'를 통해 매주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우리 이웃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