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날의 두 광명에 대한 묵상
요한 계시록을 묵시요 예언서라 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성경 전체가 묵시이며 비서(秘書) 이다.
한 장, 한 구절 모두가 비유와 상징으로 감추어진 비밀한 말씀이다. 왜냐하면 영이신 하나님이 영을 전하기 위해 쓰신 내용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글자인 것은 영을 영으로 표현하여 기록할 수가 없으니 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자를 다시 영으로 전환 할 수 있어야 생명이 된다. 이는 한 글자의 토시까지 아우르는 말이다. 한 획까지도 의도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고후 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문자)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무엇보다도 창 1장은 불가사이다. 쉽게 해석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구원을 이루는 도(말씀, 길)를 알지 못하고, 성경을 임의로 해석하면 종교로 변질 되어 버린다. 세상에 난무하는 종교 생성의 근원은, 사람 속에 하나님을 찾으라고 넣어두신 DNA가 잘못 작동하여 참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짝퉁을 만들어 낸 산물이다. 종교는 신을 경배하고자 하는 속성, 신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속성의 굴절된 열매다.
물론 하나님은 언제가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을 것이지만 창 1장의 내용이, 우리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창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의 물질 창조 속에는 더 깊고 오묘한 어떤 영적인 의도가 숨겨진 것이다. 그 중에서 오늘은 넷째 날의 두 광명이 과연 해와 달을 의미하는지 문제를 제기해 본다.
<창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만일 두 광명이 해와 달이라면, 너무도 이상하지 않은가?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 태양이 없이 어떻게 지구가 공전 할 수 있겠는가? 아직 미완성이기에 공전이 없었는가? 그렇다면 지구가 아무리 자전은 한다 할지라도 태양이 없는데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 주야가 어떻게 있는가? 태양의 빛이 낮을 만들지 않는가?
그런데 14절 본문은 넷째 날에서야 하늘의 궁창에 있는 광명으로 주야로 나뉘게 하라고 한다. 넷째 날에야 주야가 구분된다는 말이라면, 앞에 날들의 주야는 어떻게 된 것인가? 밤과 낮은 태양 빛의 유무에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주야가 없는데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것은 무슨 말인가?
태양 빛이 있어야 시간도 존재한다. 지구의 한 공전을 주야라 하고 이를 24등분한 것이 시간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태양과 지구의 조화에 의해 생성되고, 빛이 없으면 시간도 없다. 그러므로 24시간이라는 하루는 해가 만들어진 넷째 날부터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셋째 날까지의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하루는 무엇인가? 24시간과 다른 개념인가? 같은 개념인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니라.
저녁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둘째 날이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셋째 날이니라.
... ... ...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넷째 날이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다섯째 날이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여섯째 날이니라.
... ... ...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일곱째 날이니라.)- 없음
그런데 일곱째 날은 왜 저녁과 아침을 거치지 않고 일곱째 날이라 명시했을까? 저녁과 아침은 무슨 뜻이 있는 것일까? 똑같은 시간이라면 여섯째에서 일곱째로 넘어갈 때는 저녁과 아침이 필요가 없었다는 말인데, 균형이 깨지지 않는가? (만일 정말 필요가 없었다면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도가 내포된 일이 아닌가?...)
게다가 태양도 아직 만들지 않은 셋째 날에 풀과 채소와 과목을 먼저 만드신 이유는 무엇일까? 실수인가 아니면 의도인가? 일의 앞 뒤 순서가 바뀐 것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깨닫게 하려는 것인가?
이와 같은 여러 정황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넷째 날의 두 광명이 태양과 달이 아니라는 것이며, 저녁과 아침, 낮과 밤도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그 무엇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첫째 날... 일곱째 날도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영적인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곱 날의 진행을 통해 무엇을 만들고자 하심이었을까? (앞으로 더 깊이 알아볼 중대 사항)
따라서 우리의 바른 신앙을 위해서, 그리고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창1장의 일련의 내용들을 하나님의 의도대로 바로 파악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간의 선입관을 버리고 하나님께 지혜와 계시의 영을 달라고 기도할 일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