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만난 사람들 생각에
지난 밤 마신 한 잔 술에도 불구하고 쉽게 잠들지 못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찬 물 틀어 세수를 한다.
물줄기 사이 비명을 지르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생각한다.
이미 내 몸은 쇠하고 있다.
그리고
어제 만난 누군가를 생각한다.
너무나 느닷없이 '만나진'
에피파니 같은 순간.
생각한다.
이제껏 살면서 얼마나 많은 우연이 필연처럼 지나갔었던가.
혹은 얼마나 많은 필연이 우연처럼 다가왔었나.
나는 이미지에 매혹되었다.
이른 아침 에곤 실레의 몇몇 그림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한다
나는 헛것을 쫓고 있었다.
나는 헛것이 헛것인 것을 알면서도 그 헛것을 쫓는 오만
그 오만을 알면서 회개하지 않는 이중의 죄를 범했다.
그리고
어두운 극장에서 스스로의 생을 막음한 한 선배를 생각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 닫힌 어둠 속에서 마지막 그가 본 것은 어떤 종류의 이미지 였을까.
단조롭게 반복되는 피아노 선율 한 음 한 음이 빛처럼 부유하며 방안을 떠돌고 이제 나에게는 빚처럼 청산해야 하는 시간이 남아있다.
누군가 속삭인다
완벽한 문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절망이 없는 것처럼
또 누군가 속삭인다
이제껏 너의 삶은 한 줄의 문장의 값어치조차도 안되었다고.
누가 나를 위해 증언해 줄 것인가.
텅 비어 버린 삶(들)은 그 자체로 가득하다.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은 애당초 모르는 것이 나았을 것을
나는 죽은 자에게 바쳐지는 묘비석과 같이
멈추어 서성이고 기억과 추억, 위로와 잠언으로 가득차
말라비틀어진 꽃다발처럼 생명없이 영원하다.
카페 게시글
글조각
산타 페
이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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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2.0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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