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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여름쯤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내가 그 녀석을 처음으로 알게 된 시점이... 차라리 몰랐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로부터 내이야기는 시작된다... 나와 같은 고향 선배였던 그 녀석은 아버지가 삼성중공업에 일하는 자녀들 중에 진주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만 따로 살 수 있게 만들어준 기숙사에서 같이 살고 있었다. 내가 그 녀석을 알게 된 것도 거기서 부터였다. 조용한 스타일에 말수가 별로 없던 그 녀석은 같은 기숙사에서 살아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런 스타일 이였다... 해마다 5월5일 어린이날이면 기숙사에서 연례행사로 체육대회를 했었다. 공을 차고 전반전이 끝나서 들어오는데 목이 말랐던 나에게 음료수를 서스름 없이 건내주던 그 녀석에게 난 완전히 반해버렸다. 사람에게 광채난다는 말이 정말로 맞는 말이라는 걸 난 그때 느꼈다.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지금도 그때 그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때부터 난 그 녀석을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싸움을 하고 다니던 시절이라 양손이 다 부러지고 깁스를 해서 친구들과 기분전환 삼아 포장마차에 가서 술을 한잔 먹어도 우연으로 가장된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되고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그 녀석과 자주 부딪쳤다. 하지만 그 녀석은 내가 어려서 동생 같다고 날 몇 번씩이나 거절했다. 그렇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2년을 따라 다녔고 결국 2년만에 사귀게 되었다. 10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더니 그 말이 정말 맞았다. 그 녀석은 공부를 잘해서 진주교대를 들어갔고 난 연암공대를 다녔다. 우린 많이 다투면서도 잘 붙어 다니는 커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할 따름이다. 사귄지 2년쯤 되었을 때 내가 그 녀석에게 같이 살자고 말했다. 둘다 집이 거제라 자취생이었기 때문에 서로 집을 왔다갔다 할 바에는 아예 한쪽으로 합치자고 했다. 그게 더 경제적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여자랑 동거 하는게 꿈같은 일이었기에 같이 살자고 꼬신 거였다. 망설이던 그 녀석을 설득시키고 또 설득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 같이 살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동거를 시작했고 난 군대를 가지 않고 그 녀석 옆에 남기로 결정하고 교수님의 추천으로 병역특례 회사에 들어갔다.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매달 벌은 돈으로 그 녀석 용돈과 우리 생활비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 날이면 투덜대긴 하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속 버린다고 아침을 항상 해장국을 끓여주고 일은 힘들지 않냐고 넌지시 걱정도 해주고 정말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 행복했었는데.... 매달 월급날이면 항상 집 앞에 나와서 퇴근하는 날 맞이하는 그 녀석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같이 살던 그 시간만큼은 정말 행복했던 순간들이었었다. 잠든 나를 간지럽히는 햇살에 눈을 뜨면 코앞까지 와있는 아침 전날 둘이 나눈 속삭임이 꿈이 아닌듯 곤하게 잠든 그 녀석 모습.... 언제나 변함없는 마음으로 내곁에 있어주던 그런 그 녀석을 깨우던 나날들이.... 이젠 그 따뜻했던 나날들이 아련한 한 장의 추억으로 변해 버렸다. 그 녀석은 졸업을 하고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난 여전히 특례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 녀석 집에선 날 좋아할리 만무 했고 그런 상황을 지켜내는 나와 그 녀석도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나 때문에 맨날 우는 그런 바보가 너무 보기 싫었다. 아니 그 녀석을 바보로 만들어 버린 내가 싫었다고 해야되지. 무능력이란 그런 순간을 두고 하는 말인거 같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남자로서 패배감을 느끼는 그 순간 아니 자기 사랑하는 여자조차 지킬 수 없다는 그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라는걸 깨닫는 순간. 그 순간이 얼마나 자기 자신이 치욕적이고 한심한지 격어보지 않고서는 결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7년을 사랑한 여자를 아무말도 못하고 보낼 수 밖에 없다는 그 더러운 기분.... 그 더러운 기분을 다시금 기억해 내다니 나도 한심하군... 두 번 다시는 느끼고 싶은 기분이 아닌데... 그때의 나로서는 그 녀석을 잡을 수 있는 자존심 조차도 없었다. 무력........아마 이단어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 자 돌림의 직업을 가진 능력있는 남자들과의 선자리를 내가 무슨 권리로 막을 수 가 있었을까... 아니 말릴 수 있는 능력과 권리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그 녀석과 마지막 데이트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느 주말처럼 영화도 보고 쇼핑도 그렇게 마지막 데이트를 하고 그 녀석 집에서 마지막으로 밥을 먹었다. 그 녀석이 제일 잘 만드는 떡볶이와 만두국을 먹고 잠시 정리를 하고는 그 녀석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 용서해달라고 그리고 잠시만 날 잊고 지내라고... 반드시 돌아 올 테니까 그때까지만 날 지우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리던 그 녀석을 보면서... 참을려고 참을려고 해도 멈추지 않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면서 난 이를 악물었다. 지금 헤어지는 건 헤어지는게 아니니까 참고 기다리자고... 내가 오기 전까지 다른 남잘 만나도 되고 다른 남자랑 사귀어도 되고 다른 남자랑 자도 되는데 내가 왔을 때 내가 들어갈 작은 공간만 남겨주라고... 결혼만 하지말고 있으라고... 다음번에 나타날 때는 반드시 멋진 놈이 되어 나타날테니 그때까지만 날 잊고 지내라고... 잊어도 되지만 지우지만 말고 기다려 달라고... 아무 말 않고 흐르는 눈물이 어찌나 야박하기만 하던지... 그리고는 기다려 주겠다는 그 녀석의 약속과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나의 약속을 등 뒤로 한체 난 그 녀석과 헤어졌다. 집으로 오는 한시간 반정도 남짓한 시간동안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그말... 아마 그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는 난 그 다음날부터 공부를 하기로 맘을 먹었다... 출퇴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회사 앞으로 방을 잡고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긴엔 내가 그 녀석과 동등한 입장이 되기 위해선 나도 교대에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을 했기에 정말 죽기 살기로 공부를 시작했다. 평일에는 아침5시에 일어나서 7시까지 그 전날 교육방송에서 배운 과목을 복습하고 7시에 밥을 먹고 회사를 출근하고 매 쉬는 시간 점심시간엔 그날 배울 교육방송 문제집을 예습하고 5시에 회사를 퇴근하면 5시 반부터 11시 반까지 하는 교육방송을 듣고 11시 반이 돼서야 저녁을 먹었다. 난 공부라곤 해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놀기를 좋아했고 나름대로 않좋은 일도 즐겼기에 정말 첨엔 공부를 하면서 많이 힘들었었다... 토일욜일에는 교대에 있는 친구에게 과외를 받았다. 처음 2달간은 정말 견디기 힘들정도로 피곤하고 지쳤었다. 그런데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공부를 하는 요령이 붙기 시작하고 능률도 올라갔다. 그리고는 남은 석달반을 정말 죽을 각오로 공부만 했다. 첨에 주위 사람들은 용기는 가상하지만 안될꺼라고 너무 무모하다고 괜한 오기라고 걱정반 진담반으로 나에게 말을 했었다. 하지만 난 한번 한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밀어붙이는 무식한 스타일이라서 모든지 할 수 있으니까 나중에 내가 실패했을때 그때 그런말을 해달라고 그때해도 늦는 말이 아니니까... 그리고 드디어 난 11월17일 내생에 가장 큰 선물이 될수 있는 그런 중요한 시험대에 올라가게 되었다. 떨리는 맘을 가다듬으며 주위 사람들의 응원을 등에 업은체 시험장인 대아고로 향했다. 긴장을 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정말이지 그때는 어찌나 떨리던지... 그리고 한달동안 수능성적이 나오기 만을 노심초사 기다렸다. 드디어 점수를 확인하는날... 기대를 안고 확인을 했던 난 다시 한번 울었다... 그렇게 노력 했는데 물론 안될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부딪쳐 보고 싶었기에 작은 기대는 하고 있었는데... 324점 태어나서 첨으로 공부에 목숨을 걸었고 태어나서 첨으로 후회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는데...성적을 못 받았다고 속상했던게 처음 이었다. 진주교대 정도를 가려면 370점정도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난 턱없이도 부족한 점수... 한번 더 실패라는 쓰디쓴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제서야 주위에선 한번 더 노력하면 될 수 있겠다며 날 다독거려줬다... 나도 하면 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6개월만 공부를 했었기에 그리고 시간의 제약이 있었기에 난 핑계아닌 핑계를 안주 삼아 스스로를 위로를 했었다. 주위에선 차라리 그 성적으로 교대말고 사범대를 쓰는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지만 난 교대가 아니면 안됐기에 한번 더 공부를 하게 되었다. 내가 공부를 한다는게 날 회사에 취직 시켜주신 교수님 귀에도 들어가게 되어서 교수님이 날 한번 보자고 하셨다. 교수님을 만나서 자초지종을 말씀 드리자 교수님은 그러지 말고 학교로 다시 복학을 하라고 하셨다. 그런 정신을 무장하고 있다면 얼마든지 학교에서 더 잘 될수 있는 길이 있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렇지만 죄송하다고 거절을 드리고 다시금 공부를 하였다. 그러자 얼마 있다가 이번엔 교수님이 회사로 직접 찾아오셔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며 권유를 하셨다.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난 다시한번 교수님께 죄송하다고 거절 대신 인사를 하였다. 정말 고마운 분이시지만 내가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을 하였다. 그리고 자퇴서를 내러 학교에 왔다. 잠깐 인사를 드릴려고 교수님께 문안 전화를 드렸더니 교수님께서는 일단 방으로 오라고 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는 아예 여러가지 자료를 보여주시면서 이길이 더 빠르고 안정된 길이 될 수도 있다면서 날 설득 시키셨다.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누가 자기 잘 되자는 것도 아닌데 그정도로 나서겠는가... 그제서야 난 다른 아무말도 않하고 교수님께 복학하겠다고 말씀 드렸다. 이길로가서도 안정적이고 다시 그 녀석에게 갈 제약아닌 조건이 주어진다면 상관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나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지금 그길로 곧장 걸어가고 있다. 아직까지는 별 걸림돌이 생기지 않았고 문안하게 내 계획대로 생활하고 있다. 이로써 거짓말 같지만 진짜인 내 얘기는 막을 내린다. 남자로서 한번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나를 버린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는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 얘기를 읽은 사람들이 나같은 일을 당하기를 바란다는게 아니고 소중한 인연을 아끼고 사랑하라고 말해 주고싶다. 참고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헤어진 후 아직 난 그 녀석에게 연락을 해본 적이 없다. 전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위 측근들을 통해서 그 녀석 연락을 듣는다... 아직까지도 그 녀석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그냥 생활하고 있다고... 배신을 밥 먹듯이 때리는 나지만 그 녀석에 대한 사랑은 진심이기에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 녀석에게 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사랑은 사귀어온 기간만큼 깊이가 더해 간다고 생각한다. 이율배반적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건 다 개소리다. 맹목적인 사랑을 할 때 사랑이 순수하다고 하지만 그건 사랑을 장난감 취급하는 것 밖에 안된다. 비겁한 변명일 뿐. 가꿔가는 사랑도 아름답지만 난 지켜내는 사랑이 더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지켜낸다’ 는 말... 쉬운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어려운 말이 바로 ‘지켜낸다’ 는 말이다...
ㅡ 이승헌 ㅡ |
첫댓글 멋지다..!!
음~~
감사합니다... (- -)(_ _)
일당백.. 인사는 그만하면 되었고, (- -)(_ _) 이제는 일어나라.. (- -)(_ _)(- -)
이야~ 햄 어디서 퍼온거 아닙니까?? ㅋㅋ 저도 어서 빨리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습니다.. 햄 힘내세요~ 화링~^^*
이야.. 인생에 한번쯤은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어요.
멋지십니다아~
햄요~ 이것도 그때 술먹을때 한 얘기네요~~ㅋㅋ 많이 들었삼~!^^
술 마실때 한번 얘기한거 같은데 뭔 많이 들었삼 이고 이누무 자식이~
로맨스가이 승헌햄~~.. 나도 사랑하고 싶어요..*^^*
움야~~행님 멋진이야기 언젠가 나두~^^;
정말 뭐라고 말할수없을정도 멋지네요~^^
더 좋은 인연이 기다리고있겠지? ㅎㅎ
햄...다시봤삼...ㅎㅎ
전부 고마우이~ ♡
이거 햄 얘기 아니지예 ㅋㅋㅋ 놀랬음 ㅋㅋㅋ
위에 홍구네 ㅋㅋㅋㅋ
행님, ,,ㅋㅋㅋ 이야기 멋집니다 ,,, 화이삼 ,,,
멋찌네예... ^^
야~ 이승헌이 멋지네 화이팅!!
지금의 연인한테는 같은실수 반복하면 않된다~~~~^^
ㅎㅎ멋지네요~ㅎㅎ
역쉬~~승헌이 행님입니다..^^
행님 멋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