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거리 10㎞ 등정시간 4시간 50분 / 하산시간 3시간 30분
백무동-첫나들이폭포-가내소폭포-오련폭포-한신폭포-세석산장
폭포와 원시림이 어울어진 골짜기
백무동에서 세석고원까지 험준하면서도 아름다운 계류가 인상 깊은 10㎞ 계곡 등반 코스이다(일명 백무동 코스라고도 한다).
과거에 각 산악회의 동계 빙벽 훈련장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여 근래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등반로도 뚜렷하고 세석 북변의 경사 급한 오르막길을 제외하고는 그런 대로 완만한 편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장마철은 물론 겨울철에도 북향의 깊은 골짜기이기 때문에 위험요소가 있다. 많은 적설량과 추위에 대비할 수 있는 방한장비를 꼭 갖추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산불예방, 조난방지를 위하여 겨울철부터 이듬해 봄까지(대체로 11월 15일 경부터 이듬해 5월말까지) 입산을 통제하므로 이 점도 기억해야 한다.
토벌과 도벌의 묘한 뉘앙스
'깊고 넓다'는 의미인 한신계곡(寒新溪谷)은 일설에 의하면 6?25 당시 국군 토벌대장 한신(韓信) 장군이 이곳에 들렀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는 얘기도 있는데 신빙성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일반적으로 첫나들이폭포 위쪽부터를 한신계곡으로 지칭하고 그 아래쪽 계곡을 백무동계곡으로 부른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백무동계곡은 다음과 같은 네 갈래의 큰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덕평봉 북쪽에서 발원하는 바른재골, 칠선봉 부근 북쪽에서 발원하는 곧은재골, 장터목 방향에서 흘러 내려오는 한신지(支)계곡, 세석 북변의 한신 주(主)계곡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 중에서 바른재골, 곧은재골은 아직도 근 접하기 힘든 미지의 계곡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등반 기점인 백무동에서 매표소를 지나면 이정표가 처음 나타난다. 좌측길은 하동바위 코스이므로 곧바로 뚫린 넓은 길을 따라가야 한다. 우측에 야영장이 나타나고 평탄한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첫나들이폭포까지 약 2㎞의 이 길은 1960년대초 벌채업자들이 도벌한 목재를 용이하게 운반하기 위해 닦아놓은 길이라고 한다. 폭 3m 정도로, 계곡과 다소 멀리 떨어진 울창한 숲속을 지나가게 되므로 시원하기 그지 없다. 길가에 샘도 있지만 지저분한 느낌이 들고 첫나들이폭포 못 미쳐 사태난 곳도 있다.
삼성흥업주식회사라는 벌채업소가 서울 영림서로부터 마천면 강청리, 삼정리, 추성리 일대 국유림내의 고사목, 풍도목(風倒木)에 한해서 벌채허가를 받은 것이 1963년 9월, 그후 남선목재와 서남흥업공사로 전매되어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1964년 4월 3일까지로 잡은 벌채목 반출기간과 허가지역이 늘어나고 또 급기야는 생목(生木) 아름드리 나무까지 마구 베어내 탈법적인 도벌로 변질하게 된다. 당시 소나무나 잡목 몇 그루 베어냈다는 이유 때문에 지역 주민들을 서슴없이 구속시키던 것과 너무나 판이한 대대적 도벌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이 사건에 연루된 피고인만 하더라도 39명에 이르렀는데 해당 영림서, 군청, 면사무소, 경찰서, 지서의 공무원들과 심지어 청와대 비서까지 관련돼 있었다고 한다.
1959년 10월 국회에까지 비화되어 정치 문제화된 소위 '지리산 도벌사건'도 당시 권력 고위층의 삼촌이 바로 도벌주범이었듯이 이 사건도 해당 공직자는 물론 특권 위치에 있던 사람까지 야합한 일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의 주체인 서남흥업공업사는 과거 지리산 공비 토벌대장 출신의 지방유지들을 중심으로 하는 회사였다고. '토벌'과 '도벌' 묘한 뉘앙스다.
시원한 폭포수가 시퍼런 연못으로 곤두박질
울창한 잡목숲 터널을 빠져나올 쯤해서 점차 우렁찬 물소리가 들리며 첫나들이폭포가 반긴다. 여기서 폭포 바로 위로 가로지르는 철다리를 건너게 된다. 위에서 첫나들이폭포를 내려다보면, 높이 20여미터의 시원한 폭포수가 시퍼런 연못으로 곤두박질치면서 피어올리는 환상적인 물안개가 아주 장관이다. 계곡 우측의 숲길로 난 길을 따라 다시 얼마 안 가 계곡과 접하게 되며 이후로 출렁다리를 좌우로 세 번 건너가게 된다. 짙푸른 수해에 감싸여 있는 주위의 경관 속에 넓직하고 매끄런 암반 위로 핥듯이 흐르는 계류가 빼어난 소와 폭포를 이루는 절경이 계속된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가면 화장실 건물 한 채가 나오는데 여기가 합수지점이고 갈림길이다. 좌측길은 한신지계곡으로 가는 길이며 우측으로 계곡을 건너면 가내소폭포가 나오고 한신주계곡으로 들어서는 길이 나온다. 가내소폭포 이정표는 한신지계곡 방향으로 50m쯤 올라간 곳에 서 있는데 그쪽에서 우측으로 계곡을 건너도 무방하다.
가내소폭포는 약 15㎞ 높이의 아름다운 폭포이다. 50평 남짓한 검푸른 소가 상당히 수심이 깊음을 단번에 알려 주는데 소 주변을 기암절벽이 감싸고 있어 아주 멋이 있다.
가내소폭포 좌측 흙비탈길을 올라가면 얼마 안 가 계곡과 만나 이곳을 건너게 된다. 계곡변 숲길을 따라가면 오층폭포 이정표가 나온다. 등반로에서 벗어나 계곡으로 내려오면 다섯 개 정도의 대소 폭포가 연이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오련(五連)폭포라고 한다. 좌측으로는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우거진 절벽이 가로막고 있어 한층 산수의 멋을 더한다. 오층폭포 이정표에서 산죽과 잡목터널을 어렵지 않게 빠져나오면 계곡을 건너게 되고 여기서부터는 다소 벅찬 경사길을 올라야 한다. 물론 아름드리 참나무와 갖가지 활엽수들이 우거진 길이지만 비가 올 때면 질퍽거리고 미끄런 길이다. 지능선 고개마루턱에 올라서면 완만한 내리막길이 나오면서 한신폭포 이정표가 서있다.
은밀한 곳에 한신폭포가
폭포는 이정표 있는 곳에서 80m 정도 우측 계곡으로 내려가야 볼 수 있으므로 얼핏 지나치기도 쉽다. 약 30여미터의 비스듬한 암반을 흘러 내린 물이 병주둥이 모양의 깊고 가느다란 연못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이 볼 만하다. 한신폭포는 지리산의 그 어느 폭포보다도 태고적 원시림이 하늘을 가린 계곡 깊숙히 숨어 있어서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으므로 한번쯤 찾아보기를 권한다.
한신폭포 이정표에서 조금 가면 덩굴숲을 뚫고 지나야 하는데 좌측에 옛 산막터 흔적이 보이고 등반로는 계곡 옆을 지나게 된다. 이제부터의 계곡은 뚜렷한 특징이 없는 단조로운 느낌 일색이다. 등반로도 계곡 좌측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완만한 오름길이 계속된다. 다만 울창한 원시림이 우거진 길이라서 시원하고 계곡과 가까워 식수 걱정은 없는 편이다. 한아름이 넘는 전나무도 간혹 보이고 야영장도 군데군데 찾아볼 수 있다. 약 1시간여쯤 이렇게 올라오면 옛 움막터가 있는 곳에서 작은 계곡을 건너게 된다. 여기가 촛대봉과 삼신봉 쪽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영신봉 방향에서 흘러온 물과 만나는 곳이다. 작은 계곡을 건너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영신봉 쪽 계류를 다시 건너면 경사가 심한 곳에 맞닥뜨린다.
노출된 나무뿌리와 모난 바윗길의 급경사를 오르게 된다. 어느덧 거대한 바위 앞을 돌아 조금 오르면 평편한 쉼터가 나온다. 우측으로 멀리 영신봉이 빤히 올려다보이고 폭포 비슷한 것이 있는 곳이다. 겨울철에는 빙벽으로 변하는 이곳에서 단단히 식수를 준비하고 약 2㎞ 남짓한 나머지 급경사 지대를 올라야 한다.
힘든 급경사 지대를 오르면 세석이 한눈에
태고의 정적이 감싸고 있는 울창한 침엽수림 지대를 오르노라면 멀리 백운산, 법화산 등 주변 야산과 백무 능선이 보이고 자주 짙은 운무가 끼기도 한다. 또한 겨울철에는 엄청난 적설량을 기록하면서 나뭇가지에 엉겨붙은 눈들로 인해 멋진 설경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큼직큼직한 야생동물의 발자국도 눈 위에 박혀있어 이곳 일대가 야생동물의 중요 서식지임을 추측케 한다.
갖가지 고사목이 쓰러져 뒹굴고 음침한 숲속에는 낙엽이 두툼하다. 서서히 휴식을 취하면서 드넓은 세석고원이 후련하게 펼쳐진다. 세석고원 중앙부에 올라온 것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200m쯤 철쭉 군락 지대를 내려오면 세석산장이 나온다.
교통과 숙박
전주에서 백무동행 직행버스가 5회, 남원에서 6회, 함양에서 1시간 간격으로 있다. 차라리 인월(引月)까지 일단 오면 두 방향에서 떠난 직행버스가 거쳐 가므로 기다리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백무동에 민박집이 다수 있고 야영장도 많은데 한신주계곡 안에는 계곡 상단부에 야영터가 얼마간 있지만 장마철에 위험함은 물론 최근에는 계곡의 오염 때문에 관리공단에서 야영과 취사지역을 정하고 그 외의 지역에서는 규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