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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핵잠수함·농축·재처리는 국가안보인가, ‘원자력 쿠데타’인가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것과 핵잠수함을 만드는 것은 같은 원자력 기술의 연장선처럼 보인다. 우라늄을 농축하고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것도 기술적으로는 핵연료주기의 한 과정이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종종 이런 주장이 나온다.
“우리는 세계적인 원전 기술을 가진 나라다. 그런데 왜 우라늄 농축도 마음대로 못 하고,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도 마음대로 못 하는가?”
여기에 ‘원자력 주권’이라는 말이 붙는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다. 자동차도 만들고 반도체도 만들고 세계에 원전까지 수출하는 나라가 핵연료를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기술주권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원자력에서 농축과 재처리는 자동차 엔진이나 반도체 제조기술과 전혀 다르다. 고농축우라늄과 플루토늄은 핵무기의 핵심 물질이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가 이 능력에 가까이 갈수록 국제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IAEA 안전조치 역시 기본적으로 핵물질이 핵무기나 다른 핵폭발장치로 전용되지 않는지를 검증하기 위한 국제체제다. 따라서 농축과 재처리 문제는 “우리 기술인데 왜 우리가 마음대로 못 하는가”라고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핵잠수함도 마찬가지다. 원자로를 작게 만들 수 있다고 해서 핵잠수함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핵연료를 사용할 것인가, 그 연료를 누가 공급할 것인가, 군사용 핵물질을 어떤 방법으로 관리할 것인가, 한미 간 원자력 협력체제와 미국의 핵물질·핵기술 통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훨씬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전제조건 수준의 문제 해결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하기도 전에 기술개발과 사업계획부터 앞으로 달려가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국가의 안보 필요성이 먼저 있고 그 필요성을 충족하기 위해 원자력 기술을 선택하는 것인가. 아니면 원자력산업이 새로운 시장과 사업을 만들기 위해 ‘안보’와 ‘주권’이라는 훨씬 강력한 명분을 필요로 하는 것인가.
두 경우는 전혀 다르다.
이 장에서는 핵잠수함, 농축, 재처리, 고속로를 기술적 가능성만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군사적 필요성, 외교적 실현 가능성, 핵비확산, 경제성, 환경오염, 핵폐기물 그리고 무엇보다 기회비용을 함께 살펴보려 한다.
국가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핵잠수함에 들어간 돈은 다른 국방 분야에 사용할 수 없고, 재처리와 고속로에 들어간 돈은 다른 에너지·과학기술 분야에 사용할 수 없다. 사업이 실패했을 때 산업계는 물러날 수 있지만 국가는 그 시설과 폐기물, 외교적 갈등과 비용에서 물러날 수 없다.
결국 이 장이 묻는 질문은 하나다.
국가가 원자력산업을 필요로 하는 것인가, 아니면 원자력산업이 자신의 확장을 위해 국가의 안보정책까지 필요로 하는 것인가.
1절. ‘원자력 주권’이라는 위험한 착각
― 기술자립과 핵연료주기 권한은 같은 것이 아니다
1. 우리가 원전을 만들 수 있다는 것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르다
한국 원자력산업의 역사를 보면 ‘국산화’는 매우 중요한 단어였다.
초기 원전은 해외 기술에 크게 의존했지만 원전 건설을 반복하면서 설계·제작·시공·운영기술을 축적했다. 한국형 표준원전과 APR1400을 개발했고 UAE 바라카 원전도 건설했다. 원자력계가 이를 기술자립의 성과라고 평가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논리가 한 단계 더 나갈 때 발생한다.
“원전도 우리가 만들었으니 핵연료도 우리 마음대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농축도 하고 재처리도 해야 진정한 원자력 주권을 가진 국가다.”
과연 그럴까?
여기에는 원전 설계·제작기술과 핵연료주기의 민감기술을 같은 종류의 산업기술로 바라보는 근본적인 착각이 있다.
농축과 재처리는 국제사회에서 특별하게 취급된다. 농축기술은 발전용 저농축우라늄 생산에도 사용되지만 기술적으로 더 높은 농축도로 나아갈 수 있다. 재처리는 사용후핵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 등을 분리하는 기술이다. 따라서 이 두 기술을 얼마나 자유롭게 확보할 수 있는가는 단순한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핵비확산 체제와 직결된다.
이 때문에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도 한국의 농축·재처리에 아무 제한 없이 포괄적 사전동의를 부여한 협정이 아니다. 미국 국무부가 당시 협정의 특징으로 특정 연구활동 등에 대한 동의를 설명하면서도 농축·재처리 문제를 별도의 협의와 절차 속에 둔 이유가 그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가 드러난다.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 기술을 국제사회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권한을 갖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원자력에서는 특히 그렇다.
2. 농축과 재처리는 왜 ‘보통 기술’이 아닌가
NPT 체제에는 근본적인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핵무기 보유국과 비핵무기국의 지위가 동일하지 않다. 그리고 농축·재처리 기술은 핵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물질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 이른바 핵무기 잠재력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
따라서 필자가 보기에 농축과 재처리는 반도체나 자동차처럼 “기술을 개발했으니 우리 것”이라는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조금 거칠게 표현한다면 이것은 자유로운 공유자산이라기보다 국제 핵질서의 핵심 통제대상이다.
미국 역시 원자력 협력을 단순한 산업협력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미국의 민수 원자력협정이 핵물질·설비의 이전과 사용 조건을 규정하는 법적 틀로 기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정부 스스로 민간 핵 협력정책을 국가안보 및 핵비확산 정책과 연결해서 설명해 왔다.
그렇다면 한국이 농축·재처리의 확대를 추진할 때는 “우리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다음 질문부터 해야 한다.
왜 반드시 해야 하는가?
기존 국제 핵연료 시장을 이용하는 것보다 경제적인가?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정말 해결할 수 있는가?
그로 인해 얻는 편익이 환경문제와 핵비확산과 외교적 비용보다 큰가?
그리고 실패했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원자력 주권’이라는 말부터 앞세우는 것은 국가전략이라기보다 감미로운 언어와 과학이라는 가면을 쓴 무책임한 정치적 파시즘으로 현실을 덮어버리고, 국비를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하려는 선동에 가까울 수 있다.
3. 더욱 위험한 모순 ― 평화적 이용과 핵무장 욕구
한국 원자력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중요한 토대 가운데 하나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었다. 한국은 비핵무기국으로서 국제 핵비확산 체제 안에서 원전을 도입하고 기술을 축적했다. 원전 수출국으로 성장한 지금도 국제사회의 비확산 신뢰는 중요한 국가자산이다.
그런데 최근의 담론에서는 묘한 충돌이 발생한다.
한편에서는 원전 수출을 확대해야 한다며 한국 원자력기술의 평화성과 신뢰성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독자 핵무장, 농축·재처리 권한, 핵잠수함 확보를 공개적으로 주장한다.
물론 핵잠수함과 핵무기는 같은 것이 아니다. 농축·재처리 기술을 보유한다고 곧바로 핵무장을 한다는 뜻도 아니다. 이 둘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상대국이 바라보는 전략적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외교와 안보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의도한다고 말하는지만큼 상대가 우리의 능력과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평화적 이용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잠재적인 핵무장 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계속 이동한다면 국제사회는 당연히 그 두 움직임의 관계를 바라보게 된다.
이것이 ‘원자력 주권’ 담론의 또 하나의 모순이다.
4. 주권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는 능력이 아니다
주권이라는 단어에는 강력한 정치적 힘이 있다.
“왜 다른 나라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이에 반대 의견은 마치 국가의 기술개발과 자립을 통한 원자력 주권확보를 반대하는 주장처럼 들리기 쉽다.
하지만 현대 국가에서 진정한 전략적 자율성은 하고 싶은 모든 기술을 갖는 데 있지 않다. 국가에 필요한 기술과 필요하지 않은 기술을 구별하고, 제한된 자원을 가장 중요한 분야에 집중하며, 국제관계에서 국가의 행동 공간을 최대화하는 것도 주권의 중요한 부분이다.
농축공장을 갖는 것이 주권인가, 안정적으로 핵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는 국제 공급망을 갖는 것이 주권인가.
재처리공장을 갖는 것이 주권인가, 수십 년 뒤까지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할 능력을 갖는 것이 주권인가.
핵잠수함을 보유하는 것이 주권인가, 주변국이 감히 공격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종합적인 군사·경제·외교 능력을 갖는 것이 주권인가.
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원자력 주권’이라는 말의 의미는 상당히 달라진다.
5. 국가의 필요인가, 산업의 필요인가
여기서부터 이 장의 본질적인 질문이 시작된다.
원전 건설에서 SMR로, 다시 핵융합으로, 핵잠수함으로, 농축과 재처리로, 그리고 고속로와 새로운 핵연료주기로 원자력의 사업 영역이 계속 넓어지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 국가가 필요로 해서 이루어지는 확장인지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특히 안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경제성 검증은 약해지기 쉽다.
“국가안보에는 돈을 따질 수 없다.”
이 한마디가 등장하면 사업의 필요성과 대안, 비용과 실패 가능성을 묻는 사람은 국가안보에 소극적인 사람처럼 취급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십조 원을 사용하는 사업일수록 오히려 더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 그 돈 자체가 국가안보 자원이기 때문이다.
핵잠수함에 30조 원을 사용한다면 중요한 것은 핵잠수함이 좋은 무기냐는 질문만이 아니다. 같은 돈을 잠수함 탐지체계, 무인수중체계, 정찰위성, 미사일방어, 사이버전력과 재래식 첨단무기에 투자했을 때 어느 쪽이 대한민국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지를 비교해야 한다.
그 비교가 없다면 ‘안보’는 사업 타당성을 검증하는 기준이 아니라 사업을 검증에서 보호하는 방패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조금 불편한 질문까지 해보려 한다.
원자력산업이 국가안보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국가안보가 원자력산업의 확장을 위해 이용되는 것은 아닌가.
아직 이를 ‘원자력 쿠데타’라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산업적 이해관계가 ‘원자력 주권’과 ‘국가안보’라는 강력한 명분을 등에 업고 국가의 정상적인 비용·위험·대안 검증을 하나씩 밀어내기 시작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끝에서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사업이 바로 핵잠수함이다.
원자로를 만들 수 있느냐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핵잠수함은 왜 필요한가?
2절. 핵잠수함은 정말 한국에 필요한 무기인가
― 군사적 필요보다 사업 일정이 먼저 정해진 것은 아닌가
1. 2030년대 중반 진수부터 정한 ‘장보고 N사업’
2026년 5월 26일 국방부는 「대한민국 핵추진잠수함 개발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핵추진잠수함 개발 방향을 공식 문서로 제시한 것은 처음이다. 계획에는 국내 개발·건조, 농축도 20% 미만의 저농축우라늄 사용, 핵비확산 의무 준수, 전 수명주기 관리라는 원칙이 담겼다.
사업 명칭은 ‘장보고 N사업’으로 정했으며, 2030년대 중반 1번함 진수, 2030년대 후반 전력화라는 일정까지 제시했다.
표면적으로는 매우 구체적인 국가계획처럼 보인다.
그러나 순서를 바꾸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핵잠수함의 군사적 임무가 무엇인지, 몇 척을 운용해야 하는지, 핵연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 총사업비와 생애주기 비용은 얼마인지, 재래식 잠수함과 무인수중체계보다 우월한지에 대한 공개적인 검증보다 진수 연도가 먼저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2025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해군참모총장은 핵추진잠수함으로 거론되던 장보고-Ⅲ 배치-Ⅲ의 착수 시기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며, 결정하더라도 건조에 10여 년이 걸릴 것이라고 답변했다. 당시 국방부 장관은 운용 규모에 대해 “4척 이상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는 적어도 당시까지 함정의 규모·척수·착수 시점이 확정된 사업계획이라기보다 정책적 구상 단계에 가까웠다는 뜻이다.
그런데 불과 몇 달 뒤 정부는 1번함 진수 시점을 국가 목표로 제시했다. 그렇다면 먼저 물어야 한다.
핵잠수함의 임무와 연료, 비용과 대안이 검증된 결과로 진수 일정이 나온 것인가. 아니면 진수 일정을 먼저 정한 뒤 사업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맞추려는 것인가.
국가안보 사업에서 일정은 정치적 의지를 보여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일정은 기술개발을 촉진하는 목표가 아니라, 모든 절차를 일정에 종속시키는 압력이 될 수도 있다.
2. 핵추진잠수함이 분명히 잘하는 일
핵추진잠수함의 군사적 장점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재래식 잠수함은 축전지로 잠항하고 디젤기관으로 충전한다. 공기불요추진체계(AIP)와 리튬이온전지를 적용하면 잠항시간과 수중 기동능력을 크게 높일 수 있지만, 결국 연료와 축전지 용량의 제약을 받는다.
반면 핵추진잠수함은 원자로에서 장기간 대량의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이론상 잠항기간을 제한하는 것은 추진연료보다 승조원의 식량과 정비·보급 문제다. 높은 수중속도를 장시간 유지할 수 있어 넓은 해역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적 잠수함을 장기간 추적하며, 먼바다에서 정보수집·대잠전·수상함 공격·순항미사일 타격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유리하다.
해군과 국방부가 핵잠수함의 주요 필요성으로 제시하는 것도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 잠수함 추적과 중국을 포함한 주변국 수중전력에 대한 대응이다. 해군참모총장도 국회에서 핵추진잠수함은 지속적으로 빠른 속력을 낼 수 있어 북한의 SLBM 잠수함에 대응하고 다양한 해양 위협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임무가 실제로 요구된다면 핵추진 방식은 중요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성능이 우수하다는 것과 한국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무기는 가장 좋은 장비를 모두 갖추는 경쟁이 아니라, 한국이 직면한 위협과 작전환경에서 제한된 국방비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3. 북한 SLBM 추적이라는 임무는 현실적인가
핵잠수함의 대표적 명분은 북한의 SLBM 잠수함을 출항 단계부터 추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임무는 말처럼 단순하지 않다.
적 잠수함을 계속 추적하려면 우리 핵잠수함 한 척만 보유해서는 안 된다. 한 척이 작전 중일 때 다른 함정은 승조원 훈련, 보급, 정비 또는 원자로 관련 검사에 들어가야 한다. 24시간 상시 감시체계를 유지하려면 복수의 함정과 교대 승조원, 정비시설, 핵연료 관리체계가 필요하다. 국방부 장관이 “4척 이상”을 거론한 것도 이러한 가용성 문제와 관련된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북한 잠수함이 반드시 원양으로 나와 오랫동안 항해해야만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 주변의 좁고 복잡한 연안 해역에서 이동식 대기, 기만작전, 동굴·지하시설 이용 등이 결합되면 잠수함 한 척이 특정 표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한다는 개념은 매우 어려워진다.
SLBM 대응은 핵잠수함 한 종류의 무기로 해결되는 임무가 아니다.
다음 전력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정찰위성과 해상초계기를 이용한 항만·기지 감시
수중고정음향탐지체계와 예인선배열소나
대잠헬기와 수상함
무인수상정·무인잠수정
출항 전 지휘통신망 감시
발사 후 미사일 탐지·요격체계
필요할 경우 발사 플랫폼과 지휘시설에 대한 정밀타격 능력
따라서 올바른 비교는 “핵잠수함이 좋은가, 나쁜가”가 아니다.
핵잠수함 함대에 투입할 동일한 비용을 수중감시망·해상초계기·무인체계·정찰위성·미사일방어에 투자할 경우 어느 쪽이 북한 SLBM을 더 안정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가를 비교해야 한다.
이 비교 없이 “북한도 핵잠수함을 개발하므로 우리도 가져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위협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상대의 무기체계를 따라가는 군비경쟁이 될 수 있다.
4. 건조비보다 더 큰 ‘보이지 않는 비용’
핵추진잠수함 사업의 비용은 함정 가격만으로 계산해서는 안 된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2025년 해외 사례 분석은 중형 핵추진잠수함의 건조비를 척당 약 1조5천억∼2조 원, 최소 3척의 직접 건조비를 5조∼6조 원 수준으로 제시했다. 다만 이 수치는 프랑스 쉬프랑급 등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한 개략적 추정이며, 한국이 검토하는 함정의 규모와 국산화 범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보고서도 운용·정비시설, 핵연료 취급, 교육훈련 등에 별도 비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이 8천 톤급 함정 4척 이상을 독자 개발한다면 비용항목은 훨씬 복잡해진다.
함정과 전투체계의 연구개발·건조비
잠수함용 원자로와 핵연료 개발비
육상 원형로와 시험·검증시설
핵연료 인수·보관·장전시설
방사선방호와 핵물질 방호시설
핵추진 전문 승조원과 규제·검사인력 양성
전용 정비창과 중정비 비용
사고대응 및 원자력손해 책임체계
사용후핵연료와 방사성폐기물 관리
수십 년 후 원자로 해체와 함정 폐기 비용
미국 회계감사원(GAO)은 군함의 생애주기 비용에 연구개발과 건조비뿐 아니라 배치·운용·인력·정비·지원 및 최종 처분비용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정부의 2026년 기본계획도 설계·건조·운용·정비·핵연료 관리·해체를 전 수명주기 관점에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원칙을 검증하려면 총사업비와 생애주기 비용, 원자로시설 비용, 운용 척수, 연간 유지비를 국민과 국회에 공개해야 한다. 현재 공개된 기본계획만으로는 이를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핵잠수함 4척에 정확히 얼마가 든다”고 단정하는 것도 부정확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가가 아직 신뢰할 수 있는 총비용을 제시하지 않은 채 사업 일정부터 확정했다는 점이다.
5. 국방사업인가, 새로운 산업의 거대 시장인가
핵잠수함 사업이 시작되면 조선업계에는 대형 함정 건조사업이, 원자력계에는 소형 군사용 원자로와 핵연료 개발사업이 열린다. 연구기관에는 육상시험시설과 장기 연구개발비가 배정되고, 대학에는 인력양성 사업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정비시설·핵연료시설·방폐물시설까지 더해지면 수십 년간 지속되는 거대한 산업생태계가 형성된다.
산업적 파급효과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군사적 필요성이 산업적 이해관계에 의해 과장될 가능성이다.
특히 핵잠수함은 일반 무기와 달리 한번 착수하면 중단하기 매우 어렵다. 원자로와 시험시설을 짓고 전문인력을 양성한 뒤에는 “이미 들어간 돈이 아깝다”는 논리가 작동한다. 한 척을 만들면 정비와 교대 운용을 위해 추가 함정이 필요하고, 함정이 늘어나면 다시 전용기지와 핵연료·폐기물 관리시설이 필요하다. 최초의 연구개발 사업이 수십 년짜리 재정사업으로 확대되는 구조다.
성공하면 조선·방산·원자력산업의 성과가 된다. 그러나 개발이 지연되거나 연료를 확보하지 못하고, 군사적 효용이 예상보다 낮아지더라도 투입된 비용과 시설, 전문인력과 폐기물은 국가가 떠안아야 한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핵잠수함을 곧바로 ‘국가전략사업’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먼저 공개적인 비교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 검증 항목 | 정부가 제시해야 할 내용 |
| 군사적 필요 | 북한·중국의 어떤 위협에 어떤 임무로 대응하는가 |
| 대안 비교 | 재래식 잠수함, 무인체계, 대잠감시망보다 우월한가 |
| 필요 척수 | 상시 작전을 위해 몇 척이 필요하며 가동률은 얼마인가 |
| 핵연료 | 공급국, 농축도, 장전 주기와 법적 사용권한은 확보됐는가 |
| 총비용 | 연구개발·함정·원자로·기지·정비·해체 비용은 얼마인가 |
| 안전·책임 | 사고 규제기관과 배상책임, 항만 비상계획은 마련됐는가 |
| 기회비용 | 같은 예산을 다른 국방전력에 투입할 때 효과는 어떠한가 |
이 검증이 끝난 뒤에도 핵추진잠수함이 가장 효과적인 해법으로 판정된다면 사업을 추진할 근거가 생긴다. 그러나 임무와 비용, 연료와 대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2030년대 중반 진수”를 국가 목표로 먼저 못 박는다면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핵잠수함을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핵잠수함이라는 거대 사업을 만들기 위해 국가안보의 위협을 동원하고 있는 것인가.
핵잠수함의 성능을 높게 평가하는 것과 지금의 추진 방식에 동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군사적 필요성보다 일정이 앞서고, 외교적 사용권한보다 기술개발이 앞서며, 총비용보다 산업적 기대가 앞선다면 그것은 정교한 국방전략이라기보다 일단 사업부터 벌이고 보자는 국가적 돈잔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다음 절에서 살펴보겠지만, 이 사업의 결정적인 장벽은 잠수함 선체도, 소형 원자로도 아니다.
한국이 마음대로 만들거나 구할 수 없는 핵연료와 국제적 사용권한이다.
3절. 핵잠수함의 진짜 장벽은 원자로가 아니라 핵연료다
― 20% 미만 저농축우라늄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만들거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 원자로를 설계하는 능력과 핵연료를 확보하는 권한은 다르다
한국은 상업용 원자로를 설계·건설하고 연구용 원자로를 수출한 경험이 있다. 조선업과 잠수함 건조기술도 세계적 수준이다. 따라서 충분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면 잠수함용 소형원자로와 선체를 개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핵추진잠수함은 원자로 도면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원자로에 장전할 농축우라늄과 핵연료를 실제로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는 적어도 네 개의 관문이 있다.
| 관문 | 해결해야 할 문제 |
| 연료 설계 | 농축도·연료밀도·출력밀도·노심수명 결정 |
| 농축우라늄 확보 | 국내 농축 또는 해외 공급국 동의 |
| 연료 제조 | 잠수함용 연료 제조기술과 시설 확보 |
| 국제적 사용권한 | 공급국통제, IAEA 안전조치, 핵비확산문제 해결 |
원자로는 국내 연구개발 사업으로 착수할 수 있지만, 농축우라늄과 핵연료의 공급은 한국 혼자 결정할 수 없다. 특히 미국이나 다른 국가의 우라늄·기술·설비가 관련되면 공급국의 사전동의와 수출통제가 뒤따른다.
따라서 핵잠수함 사업의 첫 질문은 “원자로를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다.
어떤 농축도의 핵연료를, 누가 생산하고, 어느 협정에 따라 한국에 공급하며, 군사용 잠수함에서 사용할 권한까지 보장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원자로 개발은 가능해도 핵잠수함은 완성할 수 없다.
2. 왜 20% 미만의 저농축우라늄을 선택했는가
우라늄은 핵분열을 일으키기 쉬운 우라늄-235의 비율에 따라 구분된다. 일반 경수로 연료는 대체로 우라늄-235를 3∼5% 수준으로 농축한다. 5%를 초과하면서 20% 미만인 우라늄은 고순도 저농축우라늄, 즉 HALEU(High-Assay Low Enriched Uranium)로 분류된다.
농축도가 20% 이상이면 고농축우라늄, 즉 HEU(High Enriched Uranium)로 분류된다. 미국과 영국의 핵잠수함은 무기급에 가까운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하여 작은 노심에서 높은 출력을 내고 함정 수명 동안 연료교체를 최소화한다. 그러나 비핵무기국인 한국이 고농축우라늄을 공급받거나 생산하는 것은 핵비확산 측면에서 현실성이 매우 낮다.
한국 정부가 농축도 20% 미만의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하겠다고 밝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 미만이면 법적·기술적 분류상 저농축우라늄이므로 고농축우라늄보다 핵비확산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20% 미만이라는 숫자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저농축우라늄은 고농축우라늄보다 단위 부피당 우라늄-235가 적다. 같은 출력과 노심수명을 얻으려면 더 많은 연료를 넣거나, 연료 내 우라늄 밀도를 높이거나, 원자로를 크게 만들거나, 연료교체 주기를 짧게 해야 한다. 미국 정부도 기존 해군 원자로에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하면 원자로 수명·크기·함정 비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는 저농축우라늄을 이용해 핵잠수함을 운용해 왔으므로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자체 농축시설과 핵연료 제조기술, 해군 원자로 운영경험, 연료교체와 정비시설을 모두 가진 핵무기국이다. 한국이 프랑스의 연료농축도만 가져온다고 같은 체계를 곧바로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농축우라늄 방식은 핵연료 확보의 문턱을 낮출 수 있지만 그 대가로 다음과 같은 기술적 부담을 떠안는다.
고밀도 핵연료 개발과 조사시험
높은 출력밀도와 급격한 출력변동에 대한 건전성 검증
피복재 손상과 핵분열생성물 누출 방지
노심 수명과 연료교체 주기의 최적화
연료교체가 가능한 전용 정비시설 건설
사용후핵연료 인출·저장·운반·처분체계 마련
핵연료는 단순히 “19.75%로 농축된 우라늄을 구해 넣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농축우라늄 원료부터 연료 분말이나 금속 제조, 연료봉·연료집합체 제작, 조사시험, 품질보증까지 하나의 독립된 국가사업이 필요하다.
3. 한미 원자력협정은 핵잠수함 연료공급 협정이 아니다
한국이 핵연료 문제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장벽은 2015년 개정 한미 원자력협정이다.
협정의 정식 명칭부터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협정」이다. 협정 제2조는 양국의 협력 범위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이 협정은 원전연료와 민수 원자력기술 협력의 법적 틀이지, 군용 잠수함의 핵연료 공급을 자동으로 허용하는 협정이 아니다.
농축도 마찬가지다. 협정과 합의의사록은 양국이 서면으로 합의한 약정이 있을 때 협정 대상 우라늄을 20% 미만으로 농축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에 20% 미만 농축의 포괄적·자동적 권리를 부여한 것이 아니다.
합의의사록 제7절의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미 고위급위원회에서 농축 방안을 협의한다.
기술성·경제성·핵비확산성·에너지안보 등을 검토한다.
양국이 농축시설과 조건을 포함한 약정을 서면으로 합의한다.
합의된 시설에서만 20% 미만 농축이 가능하다.
핵확산 위험이나 국가안보 위협이 커졌다고 판단하면 동의를 정지할 수 있다.
즉, ‘20% 미만이면 가능하다’가 아니라 ‘20% 미만이라도 양국의 서면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가 정확한 해석이다. 한미 원자력협정 제11조 제2항과 부속 합의의사록 제7절 제3항부터 제5항에 따르면, 협정 대상 우라늄의 농축은 한미 고위급위원회의 협의를 거쳐 양국이 농축방안과 시설에 관해 서면으로 합의한 경우에만 가능하며, 그 농축도도 우라늄-235 20% 미만으로 제한된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그 농축 활동이 민수·평화적 이용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한국이 상업용 원전연료의 공급망 안정을 위해 농축시설을 요구하는 것과 핵잠수함용 군사 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농축 권한을 요구하는 것은 법적·전략적 성격이 전혀 다르다.
미국 에너지부도 123협정은 핵물질·설비의 중대한 해서 특정 핵물질이나 기술의 수출이 자동 승인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 이전에는 다시 미국 정부의 개별 수출심사와 승인이 필요하다.
따라서 기존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하거나 별도의 군사용 핵추진 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이 한국 핵잠수함에 사용할 농축우라늄을 공급할 것이라고 전제해서는 안 된다.
4. 호주도 AUKUS라는 특별체제가 필요했다
호주의 사례는 한국 핵잠수함 연료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보여준다.
호주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NPT상 비핵무기국이며 독자적인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핵추진잠수함을 도입하기 위해 단순한 민간 원자력협정을 활용하지 않았다.
2021년 미국·영국·호주는 먼저 「해군 핵추진 정보교환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미국과 영국이 보유한 핵추진 관련 군사정보를 호주에 제공하기 위한 별도의 법적 기반이었다.
이어 2024년에는 핵물질·장비·기술 이전과 원자로의 운용·정비·폐기까지 포괄하는 별도의 「AUKUS 해군 핵추진 협력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2025년 1월 발효됐다. 호주는 이전받은 핵물질을 핵추진 용도로만 사용하고, 자체적으로 농축하거나 재처리하지 않으며, 사용후핵연료와 방사성폐기물의 장기관리 책임을 부담한다.
핵연료도 호주가 직접 제조하지 않는다. 미국과 영국이 완성한 원자로 동력장치를 밀봉된 상태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호주는 원자로 내부의 고농축우라늄에 직접 접근하지 않고 농축이나 연료 제조도 하지 않는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AUKUS에는 장기간의 정부 간 협상과 미국 의회의 입법, 수출통제제도 변경, IAEA와의 별도 안전조치 협의가 필요했다. 호주처럼 미국·영국과 특별한 군사협력체제를 구축한 국가조차 이 정도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한국은 현재 이와 같은 핵추진 정보교환협정도, 핵물질 이전협정도, 잠수함 핵연료 공급계약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미국이 20% 미만 우라늄 공급에 동의하면 된다”는 설명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미국은 다음 사항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한국에 군사용 농축우라늄을 제공할 법적 근거
핵추진 기술과 제한자료의 이전 범위
한국의 독자 농축·재처리 요구와의 연계 가능성
북한·중국·일본 등 동북아 핵비확산 질서에 미칠 영향
핵무장 여론과 핵잠수함 연료의 전용 위험
IAEA 검증 공백을 최소화할 방법
미국 의회의 동의와 수출통제제도의 변경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한국 정부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5. IAEA 안전조치의 예외가 곧 자유로운 사용권은 아니다
NPT와 IAEA 안전조치 체제는 핵무기가 아닌 군사적 핵활동을 전면 금지하지 않는다. 핵추진잠수함은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더라도 군사장비이므로 이른바 ‘금지되지 않은 군사적 활동’에 해당할 수 있다.
IAEA 포괄적 안전조치협정의 모델인 INFCIRC/153 제14항은 국가가 핵물질을 해군 핵추진과 같은 비폭발성 군사활동에 사용할 경우, 일정한 조건 아래 안전조치의 비적용을 위한 별도 약정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가 일방적으로 “군사용이므로 이제부터 검사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해당 국가는 IAEA와 별도의 약정을 협의해야 하며, 핵물질이 핵무기나 핵폭발장치에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장해야 한다. 약정에는 안전조치가 적용되지 않는 기간과 조건, 핵물질의 양과 형태, 사용 종료 후 안전조치 복귀방식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IAEA도 호주의 핵잠수함 계획에 대해 포괄적 안전조치협정 제14조에 따른 별도 약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핵비확산 체제의 구조적인 딜레마가 있다. 잠수함의 원자로 설계와 운용정보는 군사기밀이므로 모든 내용을 IAEA에 공개하기 어렵다. 반대로 검증기관의 접근을 지나치게 제한하면 핵물질이 실제로 잠수함 추진에만 사용되는지 확인하기 어려워진다.
한국이 핵잠수함 연료를 추진한다면 최소한 다음 사항을 IAEA와 협의해야 한다.
안전조치에서 일시 제외되는 핵물질의 정확한 양과 농축도
핵연료 제조·운반·장전 단계의 검증방법
군사기밀을 보호하면서 핵물질 전용을 탐지하는 방법
사용후핵연료 인출 후 안전조치 재적용 시점
연료 손실·손상·사고 발생 시 보고체계
핵물질 계량의 연속성과 봉인·감시 방법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국제 핵비확산을 외교적 원칙으로 강조해 왔다. 이런 국가가 상당량의 농축우라늄을 군사용 시설로 옮기고 일정 기간 통상적인 안전조치 적용에서 제외하려 한다면 주변국과 국제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6. 연료공급을 외국에 맡기면 ‘원자력 주권’인가
핵잠수함 추진론은 종종 ‘원자력 주권’과 연결된다.
그러나 실제 사업구조를 따져보면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장기 종속이 발생할 수 있다.
한국이 자체 농축시설을 확보하지 못하면 외국에서 농축우라늄이나 완성된 핵연료를 공급받아야 한다. 공급국은 핵물질의 용도, 재이전, 재처리, 저장,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대해 통제권을 요구할 것이다.
반대로 국내 농축을 추진하면 상업용 원전연료 사업을 넘어 군사용 핵연료 생산능력을 갖추는 문제가 된다. 비록 농축도를 20% 미만으로 제한하더라도 동일한 원심분리기 시설과 기술을 이용해 더 높은 농축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우려, 이른바 농축의 잠재능력 문제가 제기된다.
결국 선택지는 어느 쪽도 간단하지 않다.
| 핵연료 확보방식 | 장점 | 결정적 문제 |
| 미국 공급 | 동맹과 기존 공급망 활용 | 별도 협정·미 의회·수출통제·사용조건 |
| 프랑스 등 제3국 공급 | 저농축 연료 경험 활용 가능성 | 공급국 승인·기술이전·미국산 기술 연계 |
| 국내 농축 | 공급 자율성 확대 | 한미합의·핵비확산·막대한 시설비·지역갈등 |
| 완성 노심 수입 | 연료 접근과 전용 위험 축소 | 장기적인 기술·정비·연료 종속 |
| 민수 연료 전용 | 기존 공급망 일부 활용 | 잠수함 성능·노심수명·군사용도 승인 문제 |
이 때문에 핵잠수함 연료 문제는 단순한 기술개발 과제가 아니다. 국방·외교·원자력협정·IAEA 안전조치·핵비확산·핵폐기물 관리가 한꺼번에 결합된 국가적 선택이다.
정부가 2030년대 중반 진수라는 일정을 제시하려면 그 전에 최소한 다음 사실을 밝혀야 한다.
첫째, 잠수함 원자로의 목표 농축도와 예상 노심수명은 얼마인가.
둘째, 농축우라늄은 어느 국가에서 어떤 협정에 따라 공급받는가.
셋째, 국내에서 연료를 제조한다면 농축·변환·가공시설의 위치와 규제체계는 무엇인가.
넷째,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할 것인가, 아니면 AUKUS와 같은 별도 군사용 핵추진 협정을 체결할 것인가.
다섯째, 미국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에도 독자적으로 사업을 완수할 현실적인 대안이 있는가.
여섯째, 사용후핵연료와 방사성폐기물은 어디에서 누가 관리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없는 상태에서 원자로 개발과 진수 일정부터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다. 핵연료 공급협상이 실패하면 개발한 원자로는 운전할 수 없고, 육상시험로와 연료시설에 투입한 비용은 회수하기 어렵다.
핵잠수함은 선체에 원자로를 넣는 사업이 아니다. 국제사회가 엄격하게 통제하는 핵물질을 군사적으로 사용할 권한까지 확보해야 비로소 성립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핵잠수함의 진짜 장벽은 조선기술도, 원자로 설계도 아니다. 핵연료를 확보할 수 있느냐는 문제이며, 더 정확하게는 그 핵연료를 군사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미국과 공급국, IAEA와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느냐는 문제다.
그 문을 열지 못한 채 첫 핵잠 진수 연도부터 정한다면, 한국은 핵연료 없는 원자로와 운항할 수 없는 잠수함을 만들기 위해 막대한 국가예산을 먼저 투입하는 셈이 된다.
4절. 재처리는 핵폐기물을 없애지 않는다
― 고속로·MOX 뒤에 남는 것은 또 다른 폐기물과 오염이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흔히 핵폐기물을 다시 자원으로 활용하는 기술로 소개된다. 사용후핵연료 속에 남아 있는 우라늄과 새로 생성된 플루토늄을 회수해 연료로 재사용하면 폐기물의 양을 줄이고 에너지 자원도 절약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고속로를 결합하면 수명이 긴 초우라늄원소까지 태워 핵폐기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뒤따른다.
그러나 재처리는 핵폐기물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다. 사용후핵연료의 일부 물질을 분리해 성질과 형태를 바꾸는 기술에 가깝다. 회수된 우라늄과 플루토늄만 강조하면 그 뒤에 남는 고준위 액체폐기물과 오염된 장비, 폐용매, 필터, 배관, 구조재가 보이지 않는다.
재처리의 정확한 이름은 ‘폐기물 제거’가 아니라 ‘핵물질 분리’다.
1. 폐기물의 양이 아니라 전체 위험을 보아야 한다
상업용 원자로에서 꺼낸 사용후핵연료에는 대부분의 우라늄과 일부 플루토늄이 남아 있다. 재처리는 이를 화학적으로 분리해 회수하고, 핵분열생성물과 일부 초우라늄원소를 고준위폐기물로 남긴다. 회수 가능한 물질이 많다는 이유로 폐기물이 크게 사라진 것처럼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질량과 부피만으로 핵폐기물 문제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고준위폐기물 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위험의 총합이다.
방사능과 붕괴열이 얼마나 큰가
장수명 핵종이 얼마나 남는가
지하수로 이동하기 쉬운 핵종이 무엇인가
임계와 화재, 누설 위험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저장·운반·처분시설을 몇 세대 동안 관리해야 하는가
사고 또는 시설 해체 시 오염을 얼마나 복구해야 하는가
재처리를 하면 하나였던 사용후핵연료가 여러 물질 흐름으로 나뉜다. 회수 우라늄, 플루토늄, 고준위 액체폐기물, 피복관과 금속잔재물, 공정폐액, 오염된 용매와 필터, 방사성 슬러지, 폐수처리 잔류물 등이 각각 별도의 관리 대상이 된다. 시설을 오래 운전할수록 배관과 탱크, 환기설비, 원격조작 장비, 방사선 차폐재도 방사성폐기물이 된다.
재처리시설을 최종적으로 해체할 때는 거대한 건물과 공정설비 자체가 또 하나의 폐기물원이 된다. 폐기물의 일부를 줄이기 위해 훨씬 복잡한 오염시설과 새로운 폐기물 흐름을 만드는 셈이다.
재처리는 핵폐기물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고준위폐기물을 여러 형태의 방사성물질과 오염물로 다시 나누는 공정이다.
따라서 “재처리를 하면 처분장이 필요 없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재처리를 하더라도 고준위폐기물을 장기간 격리할 최종처분장은 여전히 필요하다. 분리되지 않은 핵종, 공정 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 재활용을 마친 사용후 MOX 연료까지 결국 처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2. MOX 연료는 값싼 재활용 연료가 아니다.
재처리에서 회수한 플루토늄은 우라늄과 혼합해 MOX(Mixed Oxide·혼합산화물) 연료로 만들 수 있다. 이를 두고 사용후핵연료를 다시 사용하는 ‘핵연료 재활용’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일반 생활폐기물의 재활용처럼 단순하고 경제적인 순환구조를 떠올려서는 안 된다.
일반 우라늄 연료는 천연우라늄을 채굴하고 변환·농축한 뒤 연료봉으로 제조한다. 반면 MOX 연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용후핵연료를 냉각·운반·저장한 후 재처리시설에서 플루토늄을 분리해야 한다. 이어 강한 방사선과 독성을 통제하는 특수시설에서 우라늄과 혼합해 연료로 가공해야 한다.
분리된 플루토늄은 핵무기 전용 가능성이 있어 더욱 엄격한 계량관리와 물리적 방호, 국제 사찰이 필요하다. 운반 과정에서도 테러와 탈취에 대비해야 한다. 재처리시설과 MOX 연료공장에서 발생하는 방사성폐기물의 처리비, 시설 해체비와 장기적인 오염관리비도 포함해야 한다.
따라서 경제성을 비교할 때 단순히 “버릴 플루토늄을 연료로 사용한다”는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다음의 전체 핵연료주기 비용을 모두 계산해야 한다.
| 일반 우라늄 연료 | 재처리·MOX 연료주기 |
| 우라늄 채굴·변환 | 사용후핵연료 냉각·저장·운반 |
| 우라늄 농축 | 화학적 재처리와 핵물질 분리 |
| 연료 제조 | 플루토늄 계량·방호·보관 |
| MOX 연료 제조와 품질관리 | |
| 사용후핵연료 저장·처분 | 공정폐기물 처리와 환경감시 |
| 사용후 MOX 연료 저장·처분 | |
| 재처리·연료시설 제염과 해체, 처분 |
재처리와 MOX 연료가 경제성을 가지려면 회수되는 핵물질의 가치가 이 모든 추가 비용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우라늄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고 농축서비스를 국제시장에서 확보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복잡한 재처리와 MOX 연료주기가 경제적으로 유리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더구나 MOX 연료는 원자로에서 한 번 사용한다고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사용후 MOX 연료에는 다시 플루토늄과 장수명 핵종이 남고, 일반 사용후핵연료보다 열적·방사선학적으로 다루기 까다로운 측면도 있다. 이를 다시 재처리하지 않는다면 결국 고준위폐기물로 저장하고 처분해야 한다. 계속 재처리한다면 비용과 오염시설, 핵물질 취급이 반복된다.
결국 재처리는 ‘닫힌 핵연료주기’라는 말과 달리 완전한 순환을 만들지 못한다. 순환할 때마다 회수할 수 없는 물질과 오염된 폐기물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손실과 폐기물을 동반한 공정이다.
3. 고속로를 결합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재처리의 한계가 지적되면 고속로가 대안으로 등장한다. 고속중성자를 이용하면 플루토늄과 일부 초우라늄원소를 연료로 사용하거나 핵변환해 장기적인 방사성 독성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론적으로는 검토할 가치가 있는 기술이다.
그러나 실험실과 계산에서 핵종을 변환할 수 있다는 사실과 국가의 핵폐기물 문제를 산업 규모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다르다. 고속로 체계를 구축하려면 먼저 사용후핵연료에서 대상 핵종을 정밀하게 분리하고, 이를 새로운 연료로 제조해 원자로에서 조사한 뒤 다시 꺼내 재처리해야 한다. 한 번의 과정으로 모든 장수명 핵종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므로 이러한 순환을 반복해야 한다.
그 과정마다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첫째, 고속로는 일반 경수로와 다른 냉각재와 운전특성을 가진다. 특히 액체나트륨을 사용하는 고속로는 나트륨이 공기나 물과 격렬하게 반응할 수 있어 누설·화재와 증기발생기 반응을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 냉각재가 불투명해 내부검사와 정비도 쉽지 않다.
둘째, 초우라늄원소를 포함한 연료는 방사선과 발열이 강해 제조와 검사를 원격·차폐시설에서 수행해야 한다. 기존 우라늄 연료보다 공정이 복잡하고 비용도 커진다.
셋째, 고속로만 건설해서는 핵변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핵종 분리시설, 연료제조시설, 재처리시설, 저장·운반시설이 하나의 체계로 함께 가동돼야 한다. 어느 한 공정이라도 경제성이나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전체 핵연료주기가 작동하지 않는다.
넷째, 핵변환을 하더라도 핵분열생성물과 공정폐기물은 남는다. 장기 방사성 독성을 일부 줄일 가능성과 별개로, 수백 년 동안 강한 방사능과 붕괴열을 내는 폐기물을 안전하게 저장·처분해야 한다. 최종처분장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처분할 폐기물의 구성과 관리기간 일부를 바꾸는 기술인 것이다.
따라서 재처리와 고속로의 경제성을 각각 떼어 평가해서도 안 된다. 재처리시설, 고속로, 원격 연료제조시설, 핵물질 운반·저장시설, 폐기물 처리시설을 모두 포함한 통합 핵연료주기의 건설비와 운전비, 해체비, 사고위험을 계산해야 한다.
고속로가 성공하려면 원자로 하나가 아니라 재처리·연료제조·운반·저장·폐기물 처분으로 이어지는 전체 시스템이 동시에 성공해야 한다.
아직 상업적 경제성과 장기적 운전 신뢰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체계를 ‘핵폐기물 해결책’으로 먼저 제시한다면, 현재의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미래의 기술 성공에 떠넘기는 일이 될 수 있다.
4. 핵물질 생산은 끝나도 오염은 끝나지 않는다
미국의 워싱턴 주 핸퍼드(Hanford)는 핵연료주기 시설이 남기는 장기적 책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므로 이를 설명하고자 한다.
핸퍼드는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기간 맨하탄 프로젝트로 군사용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해 9기의 원자로와 대규모 재처리시설을 운영했던 곳이다. 플루토늄 생산은 1980년대 말 중단됐고 1989년부터 본격적인 환경정화사업이 시작됐지만, 시설과 토양·지하수에 남은 방사성·화학적 오염을 처리하는 사업은 37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적인 정화 종료 시점과 가능성에 대해 정확한 예측도 어려운 상황이다.
핸퍼드에는 과거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핵연료 재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약 5,600만 갤런(약 2억1,200만 리터)의 방사성·화학적 혼합폐기물이 177기의 지하탱크에 저장되어 있다. 이 가운데 149기는 단일벽 탱크(SST), 28기는 이중벽 탱크(DST)다. 단일벽 탱크는 1943~1964년에 건설되었으며, 당초 약 20~25년의 설계수명을 전제로 만들어졌지만 상당량의 폐기물이 아직 남아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이 가운데 68기에서 이미 총 100만 갤런(약 380만 리터)이 넘는 폐기물이 지중으로 누출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탱크 누출만이 문제는 아니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에 따르면 DOE는 1946년부터 1966년까지 핸퍼드에서 약 1억2,100만 갤런(약 4억5,800만 리터)의 방사성 액체 탱크폐기물을 의도적으로 지중에 직접 방류했다. 이는 단순한 탱크 사고나 우발적인 누출이 아니라 당시 폐기물 처리·관리 방식의 하나였다. 일부 폐액은 액체폐기물을 토양으로 분산시키도록 만든 크립(crib)과 도랑 등을 통해 지중으로 방류됐다. 탱크에서 누출된 폐기물과 이렇게 방류된 방사성·화학물질은 토양을 오염시키고 일부는 불포화토양층(vadose zone)을 거쳐 지하수 오염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오늘날 핸퍼드 정화사업은 지하탱크에 남은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 핵물질 생산과 재처리 과정에서 오염된 토양과 지하수, 폐기물 매립지와 각종 핵시설까지 함께 정화·해체해야 하는 거대한 환경복원사업이 되었다.
특히 핸퍼드의 정화는 고정된 오염물질을 한 번 걷어내는 작업이 아니다. 워싱턴주 생태부에 따르면 핸퍼드에서는 1990년대부터 6개의 지하수 양수·처리시설이 운영돼 왔으며, 지금까지 누적 380억 갤런(약 1,440억 리터) 이상의 오염 지하수를 처리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380억 갤런의 오염 지하수를 핸퍼드에서 영구적으로 제거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추출정을 통해 오염 지하수를 끌어올려 방사성·화학적 오염물질을 제거한 뒤, 처리된 물을 다시 대수층에 주입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적 처리량에는 이러한 순환과정에서 반복 처리되는 물도 포함될 수 있다. 이 시스템의 목적은 오염물질의 총량과 농도를 낮추는 동시에 지하수의 흐름을 이용해 오염운의 이동과 확산을 수리학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오염이 과거의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핸퍼드의 지하수 위 불포화토양층(vadose zone)에 남아 있는 방사성·화학적 오염물질은 강수 등으로 침투하는 물과 함께 아래쪽으로 이동할 수 있으며, 지하수에 도달한 뒤에는 지하수 흐름을 따라 다시 이동한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은 2024년 보고서에서 핸퍼드 중앙고원의 지하수에 사염화탄소, 트리클로로에틸렌, 총 크롬, 6가크롬, 시안화물, 질산염, 요오드-129, 스트론튬-90, 테크네튬-99, 삼중수소, 우라늄 등 11종의 오염물질이 존재하며 이들 오염운에 대한 추가 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일부 지역에는 오염원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 오염물질이 지금도 계속 지하수로 이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한쪽에서는 오염 지하수를 퍼 올려 처리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토양과 폐기물에 남은 방사성·화학물질이 계속 지하수로 유입된다.일부 오염운은 지하수를 따라 컬럼비아강 방향으로 이동해 왔으며, 실제로 6가크롬 등 일부 물질이 강으로 유출되는 현상도 확인됐다. 컬럼비아강 인접 지역의 오염은 상당 부분 감소했지만, 중앙고원에서는 오염원의 위치와 양조차 완전히 파악되지 않았고 복합 오염운에는 기존 정화기술의 효과도 제한적이다.
따라서 핸퍼드 전체에서 오염 확산 속도가 항상 정화 속도보다 빠르다고 수치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오염원을 먼저 제거하지 못한 중앙고원지역에서는 정화시설이 이미 오염된 지하수를 처리하는 동안에도 새로운 오염이 계속 유입·이동한다. 정화가 끝을 향해 전진하기보다, 계속 움직이는 오염을 뒤쫓는 상황에 가까워서 정화 종료를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
핸퍼드의 비극은 오염이 넓다는 데만 있지 않다. 땅속의 오염원은 계속 지하수로 이동하는데, 인간의 정화사업은 그 뒤를 수십 년째 따라가고 있다는 데 있다.
정화비용의 규모는 더욱 충격적이다. 핸퍼드 정화사업에는 2022년 무렵까지 이미 약 45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전체 비용의 일부에 불과하다. 미국 에너지부가 2025년에 산정한 생애주기비용을 인용한 미국 회계감사원(GAO)의 2026년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586제곱마일에 이르는 핸퍼드 부지 전체의 정화를 완료하는 데 앞으로도 3,640억~5,890억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화로 환산하면 환율에 따라 대략 500조~800조 원에 이르는 규모다. 적극적인 정화작업의 목표 종료 예상시점도 2086년이다. 1940년대에 시작한 핵물질 생산의 환경적 책임이 21세기 말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추정액조차 최종적으로 확정된 비용은 아니다. 핸퍼드에서는 폐기물의 처리방법과 최종 처분경로가 아직 모두 결정되지 않았고, 시설 노후화와 추가 오염 발견, 기술적 난제와 공사 지연에 따라 비용이 더 늘어날 수 있다. 실제로 DOE가 2022년에 제시한 잔여 정화비용은 약 2,932억~6,336억 달러였고, 이후에도 처리전략과 비용범위가 계속 수정되고 있다.
특히 가장 큰 부담은 재처리 폐액이 들어 있는 탱크 폐기물이다. GAO에 따르면 DOE는 2019~2023년 단 5년 동안 탱크 유지관리와 처리시설 건설 등에 80억 달러 이상을 사용했다. 그런데 2022년부터 2078년까지 탱크 운영, 폐기물 회수와 탱크 폐쇄에만 추가로 약 2,000억~4,960억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핸퍼드 정화비용의 대부분이 과거 시설의 단순 철거가 아니라 재처리 과정에서 만들어진 액체폐기물의 회수·처리·고화·처분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핸퍼드가 보여주는 핵심은 핵물질 생산시설의 수명과 그 책임의 수명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은 수십 년 동안 가동됐지만, 오염 정화와 폐기물 관리는 생산 중단 후에도 한 세기 가까이 계속된다. 처음에는 국가안보를 위한 핵물질 생산비용만 계산했지만, 실제로 더 오래 지속되고 더 큰 불확실성을 가진 비용은 생산이 끝난 뒤에 나타났다.
핵시설에서 얻은 편익은 한 시대가 누리지만, 오염된 토양과 지하수의 비용은 사업을 결정하지도 않았던 미래세대가 부담한다.
5. 국토가 좁은 한국이 감당할 선택인가
한국은 국토가 좁고 인구밀도가 높다. 원전과 방사성폐기물시설 주변에는 도시와 산업시설, 농업·어업 기반이 밀집해 있다. 재처리시설과 고속로, 연료제조시설을 확대하려면 핵물질과 방사성폐기물의 저장·운반이 늘어나고, 사고와 오염에 대비한 비상계획과 장기적인 환경감시도 강화해야 한다.
사고확률이 낮다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번 발생한 오염을 시설 경계 안에만 가둘 수 있는지, 지하수와 하천·해양으로의 확산을 장기간 통제할 수 있는지, 주민 이주와 토지 이용 제한이 발생할 경우 누가 책임질 것인지까지 물어야 한다.
재처리와 고속로 연구 자체를 금지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이를 국가전략산업이나 핵폐기물의 해법으로 제시하려면 적어도 직접처분보다 안전하고 경제적이며, 전체 폐기물과 환경부담을 실제로 줄인다는 사실이 실증돼야 한다. 기술적 가능성이나 계산상의 핵종 감소만으로는 수십조 원의 시설과 수백 년의 책임을 정당화할 수 없다.
재처리는 핵폐기물을 없애지 않는다. 고속로도 최종처분장을 대신하지 못한다. 오히려 핵연료주기 시설을 확대할수록 더 많은 지역과 시설, 노동자와 미래세대가 방사성물질 관리의 책임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국토가 좁고 인구가 밀집한 한국에서, 아직 해결하지 못한 폐기물 때문에 더 많은 핵시설과 또 다른 폐기물을 만드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가.
5절. 핵으로 안보를 강화하다 안보를 잃을 수 있다
― 핵확산 시대, 진짜 억제력은 무엇인가
핵무장과 핵추진잠수함은 흔히 ‘강한 국가’의 상징으로 제시된다. 핵을 보유하거나 핵추진 능력을 갖추고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까지 할 수 있게 되면 주변국이 한국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동맹에 대한 의존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가안보는 가장 강력해 보이는 무기를 갖는다고 자동으로 강화되는 것이 아니다. 안보전략이란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어떤 위협을 어떤 수단으로 억제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한국의 안보자원도 무한하지 않다. 핵추진잠수함과 관련 핵연료 체계를 확보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면 그만큼 다른 전력을 확보할 여력은 줄어든다. 핵잠수함은 함정 몇 척의 건조비로 끝나지도 않는다. 잠수함용 원자로와 핵연료, 시험시설, 전용 정비체계, 승조원 양성, 방사선 비상대응, 사용후핵연료 관리와 최종적인 함정·원자로 해체까지 수십 년에 걸친 국가 인프라가 필요하다.
그 자원은 첨단 재래식 잠수함과 무인잠수정, 해상초계기, 수중감시망, 정찰위성, 정밀타격체계, 미사일방어, 사이버·우주전력에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
핵이라는 강력한 상징을 얻는 대신 실제 전장에서 훨씬 자주 사용되고 당장 필요한 탐지·추적·방어능력을 약화시킨다면 그것이 과연 안보 강화인지부터 물어야 한다.
1. 핵이 있어야만 억제할 수 있는가
억제력의 본질은 핵무기의 보유 여부에만 있지 않다.
상대가 공격해서 얻을 이익보다 공격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훨씬 크다고 판단하도록 만드는 것이 억제의 기본이다. 공격하려는 국가는 상대의 핵무기 숫자만 계산하지 않는다. 공격목표를 찾아낼 감시정찰 능력, 핵심시설을 타격할 능력, 미사일과 항공기를 막아낼 방어력, 지휘체계의 생존성, 장기간 전쟁을 지속할 산업기반, 동맹국의 개입 가능성, 경제제재와 외교적 고립까지 함께 계산한다.
따라서 억제력은 하나의 무기가 아니라 여러 능력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려면 감시정찰과 발사징후 탐지, 정밀타격, 미사일방어, 지휘체계 생존성, 한미 확장억제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까지 고려한다면 해양감시, 사이버·우주전력, 공급망과 경제안보, 주변국과의 외교적 협력까지 포함해야 한다.
핵무장이나 핵잠수함 하나가 이 모든 능력을 대신할 수는 없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유지해 온 핵 선제불사용(No First Use) 정책도 같은 맥락에서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선언을 절대적인 안전보장으로 믿을 수는 없다. 실제 전쟁에서 핵시설이나 지휘체계가 공격받거나 대만해협의 미·중 충돌이 한반도로 확대될 경우에도 그 원칙이 유지될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반대편 극단도 경계해야 한다. “중국이 언젠가 핵을 사용할 수 있으니 한국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으로 바로 뛰어갈 수는 없다.
한국이 비교해야 할 것은 ‘핵무장 대 무장해제’가 아니다. 독자적 핵능력과 핵잠수함에 투입할 자원을 첨단 재래식 전력, 미사일방어, 감시정찰, 확장억제와 외교에 투입했을 때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이고 지속적인 안보를 제공하는가를 비교해야 한다.
2. ‘사용할 수 있는 핵’이 많아지면 더 안전해지는가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제기되는 핵전략의 변화는 억제력에 더욱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2026년 8월 미국 NBC 방송은 엘브리지 콜비(Elbridge Colby) 미 국방부 정책차관이 중국·러시아와의 잠재적 충돌에 대비한 핵전략을 검토하고 있으며, 장거리 전략핵무기에 비해 단거리 전술핵무기의 역할을 중시하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콜비 차관은 같은 시기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미 전략사령부에서 열린 확장억제 심포지엄에 참석해 비공개 연설을 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미국에는 “신뢰할 수 있는 핵 선택지(credible nuclear options)”가 필요하며, 확장억제가 신뢰성을 가지려면 국가 정치지도부에 상식적인 수준에서 실제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핵능력을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 논리에는 군사전략상의 이유가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제한적인 저위력 핵무기를 먼저 사용했는데 미국 대통령에게 재래식 대응 아니면 대규모 전략핵 보복이라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면, 상대방은 미국이 실제 전략핵 보복을 감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있는 제한적이고 유연한 핵옵션을 갖춰야 핵억제가 신뢰성을 얻는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핵억제의 역설이 발생한다.
사용하기 어려운 핵은 억제수단으로서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사용하기 쉬운 핵은 핵전쟁의 문턱을 낮출 수 있다.
저위력이라고 핵무기가 재래식 무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번 핵무기가 사용된 뒤 상대방 역시 제한적 핵보복으로 대응하고, 다시 보복이 이어졌을 때 양측이 어느 단계에서 멈출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전술핵전쟁과 전략핵전쟁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문제는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더욱 심각하다. 북한·중국·러시아라는 핵보유국이 존재하고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확장억제를 제공하고 있다. 대만해협의 미·중 군사충돌과 한반도 위기가 서로 연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용할 수 있는 핵옵션’이 억제력을 강화한다는 주장에는 반드시 반대쪽 질문이 따라야 한다.
핵을 실제 사용할 수 있어야 억제가 신뢰성을 갖는다면, 그것은 전쟁을 막는 능력을 강화하는 것인가, 아니면 핵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선택지를 늘리는 것인가.
한국의 핵잠수함·농축·재처리 문제도 이런 변화된 동북아 핵질서 속에서 판단해야 한다.
한국 입장에서 그의 발언이 주목되지만, 실제 과거발언을 보면, 그는 올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이 GDP 3.5% 수준으로 국방비를 늘리고 자국 방위에서 더 큰 책임을 맡겠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며 한국을 “model ally”라고 불렀다. 미 국방부도 그의 방한 결과를 설명하면서 한국이 북한에 대한 재래식 억제와 방위의 주된 책임을 맡는 문제와 burden sharing을 주요 의제로 명시했다.
그래서 미국의 구상을 아주 간단히 표현하면 이런 형태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 재래식 방위비와 역할을 더 부담한다.
미국: 핵억제와 전략자산을 제공한다.
그러나 핵무기의 최종 통제권은 미국이 갖는다.
미국의 이러한 핵전략에는 동맹국 입장에서 묘한 역설이 존재한다. 미국은 중국·러시아와의 지역분쟁에서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핵옵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핵무기가 현실적인 군사적 선택지라는 의미다. 그런데 같은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독자 핵무장에는 반대하고 미국의 확장억제를 신뢰하라고 요구한다. 동시에 한국에는 재래식 방위의 더 큰 책임과 국방비 증액을 요구한다. 미국의 시각에서는 모순이 아닐 수 있다. 미국이 핵억제의 통제권을 유지하고 동맹국이 재래식 방위 부담을 더 지는 역할분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정치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미국이 ‘사용 가능한 핵’의 필요성을 강조할수록 “그렇다면 북한의 핵을 직접 마주하고 있는 한국에는 왜 핵이 없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더욱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의도된 결과인가 아닌가 보다는, 이러한 구조가 누구의 전략적 이익에 가장 잘 맞는가이다. 한국의 핵불안이 커지면 국방비와 첨단무기 투자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핵우산을 제공하면서 핵무기의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고, 동맹국은 더 많은 재래식 방위비를 부담한다. 그러나 한국이 독자 핵무장으로 넘어가면 미국 중심의 비확산체제와 동맹의 핵통제 구조 자체가 흔들린다. 따라서 미국에는 ‘불안은 충분히 크되 독자 핵무장에는 이르지 않는 상태’가 전략적으로 가장 관리하기 쉬운 균형일 수도 있으므로 한국의 핵잠재력 확보 노력은 미국과 모든 주변국에게 매우 민감하게 비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핵능력이 늘어난다고 반드시 전략적 자율성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누가 핵연료를 공급하고, 누가 기술사용을 승인하며, 누가 최종 핵사용을 결정하는지를 보면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보다 심화된 의존만 만들어질 수 있다. 따라서, ‘원자력 주권’을 얻으려다 들어갈 돈과 노력은 다 들어가도 얻은 건 미국과의 원자력·안보 관계에 더 깊게 의존하는 결과만 생기는 논-센스 구조인 것이다.
3. 우리의 방어가 상대에게는 핵확산으로 보일 수 있다
핵추진잠수함과 우라늄 농축,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각각 다른 사업처럼 보인다. 그러나 핵연료와 민감기술, 한미 원자력협정, 국제 핵비확산체제라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한국에는 핵잠수함이 북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과 주변국의 해군력 증강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적 수단일 수 있다. 농축은 안정적인 원전연료 확보를 위한 에너지안보 문제라고 주장할 수도 있고, 재처리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와 자원 재활용 문제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정치는 당사국의 의도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국이 잠수함용 핵연료를 확보하고 농축·재처리 기술과 군사용 원자로 운용능력까지 확대한다면 주변국은 이를 단순한 개별 기술개발이 아니라 한국의 핵잠재력(nuclear latency) 확대라는 관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
북한은 이를 핵전력 증강의 명분으로 사용할 수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핵전략 확대와 연결해서 받아들일 수 있다. 일본에서도 자체적인 대응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미국까지 보다 ‘사용 가능한’ 핵옵션을 강화한다면 동북아에서는 각국이 자신의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취한 행동이 상대에게 새로운 위협으로 인식되고, 그 대응이 다시 자신의 군비 증강을 정당화하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이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다.
핵확산도 핵무기를 실제 제조했는지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부족하다. 핵물질을 생산하고 처리할 능력, 핵연료주기에 대한 접근성, 군사적 핵기술과 핵사용 선택지가 동시에 확대되는 과정까지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방어수단인 능력이 주변국에는 잠재적 핵무장 능력으로 보일 수 있다. 핵잠수함 한 척의 군사적 효용만 계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4. 비확산 신뢰를 잃으면 원자력산업도 약해질 수 있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역설이 있다.
한국 원자력산업의 경쟁력은 원자로 기술과 건설능력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한국이 국제 핵비확산 규범을 준수하고 민수 원자력과 군사적 핵이용 사이의 경계를 유지한다는 국제사회의 신뢰 역시 중요한 국가자산이다.
원전 수출에는 원자로만 나가지 않는다. 핵연료 공급, 원천기술 이전과 수출통제, 금융과 정부 간 협력 등이 함께 움직인다.
따라서 군사용 핵연료 확보를 이유로 농축 권한을 확대하고 여기에 재처리 능력까지 요구하면 미국을 비롯한 공급국은 민수와 군사의 경계를 더욱 엄격하게 살펴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곧바로 국제제재나 원전 수출 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핵물질과 민감기술 이전에 대한 심사가 강화되고, 핵연료 공급과 국제 공동연구, 원전 수출 등에 추가적인 외교적·제도적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은 국가전략 차원에서 평가해야 한다.
비확산 신뢰는 회계장부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한번 훼손되면 다시 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국가자산이다.
핵잠수함과 농축·재처리를 통해 군사적 자율성을 높이려다가 민수 원자력산업의 국제협력과 수출환경을 오히려 어렵게 만든다면 그것은 원자력산업에도 모순이다.
안보란 무기를 더하는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 동맹과 외교, 산업과 경제, 국제적 신뢰까지 포함한 국가의 종합적인 생존능력이다. 핵능력을 얻는 과정에서 이 자산을 잃는다면 그 전체를 안보 강화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5. 안보라는 이름으로 검증을 생략해서는 안 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핵잠수함, 농축·재처리와 같은 사업에 ‘국가안보’, ‘원자력 주권’, ‘자주국방’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정상적인 비용·위험·대안 검증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군사 원자력 사업은 기밀성이 강하다. 원자로 성능과 핵연료 조달조건, 기술적 실패와 사업비 증가, 사고위험과 안전문제가 국가안보라는 이유로 충분히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시민과 국회가 사업 타당성을 검증하기 어려워지고 실패의 원인과 책임도 가려질 수 있다.
처음에는 연구개발비와 함정 건조비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업이 진행되면 원자로와 핵연료 시험시설, 전용기지와 정비시설, 방사선 비상대응체계, 사용후핵연료 저장과 해체시설까지 필요해진다.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 뒤에는 사업의 문제점이 드러나도 이미 투자한 돈 때문에 중단하지 못하는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또한 신속 추진이라는 명분으로 이해를 앞세워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추진하다 사고가 발생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정권과 정권 책임자만 최종 책임지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필자가 이러한 상황을 ‘원자력 쿠데타’라고까지 경고하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총을 들고 권력을 빼앗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특정 산업과 연구개발 집단의 이해와 논리가 ‘국가안보’, ‘원자력 주권’, ‘첨단기술’이라는 이름을 타고 정상적인 비용·위험·대안 검증을 압도하고, 어느 순간 산업의 생존전략이 국가전략으로 바뀌어버리는 상황에 대한 경고다.
안보사업일수록 검증을 생략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했을 때 국가가 치러야 할 비용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엄격하게 검증해야 한다.
핵잠수함 사업도 진수 연도부터 정해놓고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최소한 다음과 같은 관문을 차례로 통과해야 한다.
| 관문 | 반드시 입증해야 할 사항 |
| 군사적 필요성 | 대응할 위협과 작전임무가 명확한가 |
| 대안 비교 | 재래식 잠수함·대잠감시망·무인체계보다 우월한가 |
| 외교적 실행 가능성 | 핵연료 확보와 필요한 국제적 합의가 가능한가 |
| 기술성숙도 | 원자로·핵연료·함정체계의 시험과 검증이 충분한가 |
| 총사업비 | 개발·건조부터 운용·해체·폐기물까지 감당 가능한가 |
| 비확산 영향 | 동맹·원전 수출·국제협력에 미칠 영향을 평가했는가 |
| 안전과 책임 | 규제·사고책임·비상대응·사용후핵연료대책이 있는가 |
어느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보완하고, 결정적인 관문을 넘지 못한다면 중단할 수도 있어야 한다. 외교적 실행 가능성과 핵연료 확보방안이 확정되지 않았는데 원자로 개발부터 시작하거나, 군사적 임무와 대안전력 비교가 끝나지 않았는데 진수 목표부터 정해서는 안 된다.
관문평가는 사업을 방해하는 절차가 아니다. 국가가 산업계의 기술적 열망이나 이해에 끌려 되돌리기 어려운 선택을 하는 것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며 이는 양도할 수 없는 국민주권에 해당한다.
한국의 선택 역시 ‘지금 핵잠수함을 만들 것인가, 영원히 포기할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일 필요가 없다. 당장 필요한 재래식 잠수함의 잠항능력과 정숙성, 해상초계기와 대잠헬기, 수중감시망, 무인수상정·무인잠수정, 위성·정보자산을 먼저 강화하면서 미래의 선택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
민수 원자력에서도 군사용 농축 권한보다 핵연료 공급망의 안정과 다변화가 우선인지 비교해야 한다. 여러 공급국과 장기계약을 확보하고 연료가공 역량과 전략적 비축을 강화하는 것이 훨씬 적은 비용과 외교적 위험으로 에너지안보를 높일 수 있다면 그것부터 해야 한다.
핵잠수함·농축·재처리를 무조건 금기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명확한 군사적 필요성, 대안보다 우월한 비용 대비 효과,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핵연료 사용조건, 비확산체제와의 양립 가능성, 안전규제와 사고책임, 사용후핵연료와 폐기물 대책이 먼저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
강한 국가는 가장 위력적인 기술을 가진 국가가 아니다. 제한된 자원을 가장 현명하게 배분하고, 잘못된 선택을 되돌릴 수 있으며, 실패의 위험과 책임까지 통제할 수 있는 국가다.
핵을 통해 안보를 강화하려다 재래식 전력과 동맹, 외교적 신뢰, 산업경쟁력과 재정건전성을 잃는다면 그것은 전략적 자율성이 아니다. 새로운 위험과 의존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리고 핵을 둘러싼 모든 선택의 마지막에는 피할 수 없는 물질이 남는다. 원자로와 핵잠수함을 운용해도,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도 방사성폐기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핵연료주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관리해야 할 폐기물의 종류와 책임은 더욱 복잡해진다.
오늘의 안보를 위해 선택한 핵기술의 책임을 수십 년, 수백 년 뒤의 세대에게 넘겨도 되는가.
이제 원자력산업의 입구가 아니라 마지막 출구를 살펴볼 차례다. 핵폐기물 문제다.
| 시기 | 분야 | 정부가 실제 추진한 조치·실적 | 규모·현재 상태 | 근거 | |
| 2020~2022 | SMR | i-SMR 국가사업 추진 결정 → 예타 통과 | 2023~2028년 3,992억 원 | 정부정책브리핑(220602) | |
| 윤석열 정부 | 2022.10 | 국가전략기술 | ‘차세대 원자력’을 12대 국가전략기술로 지정 | 반도체·AI·이차전지·양자 등과 같은 국가전략기술 체계 | 정부정책브리핑(221031) |
| 2022~2024 | 원전산업 | 신한울 3·4호기 재개, 계속운전·신규건설·해외사업 등 원전 일감 공급 | 정부 발표 기준 약 8.7 조 원 발주 | 정부정책브리핑(241030) | |
| 2023~2024 | 원전기업 금융 | 중소·중견 원전기업 유동성·특별금융 확대 | 신한울 3,4 2024년 상반기 1조 원 이상 발주 및 추가 지원 | 정부정책브리핑(241030) | |
| 2024.4 | 원자력 R&D | SMR·차세대원전·수출·운영·해체 등 R&D 확대 및 원전산업지원특별법 추진 선언 | 향후 5년간 R&D 4조 원 이상 투자방침 | 정부정책브리핑(240222) | |
| 2024~2025 | 원전 수출 | 정부·한수원 ‘팀코리아’ 체코 수주 외교 → 두코바니 2기 최종계약 | 2025.6 계약, 약 4070억 코루나·약 19조 원(overnight cost) | 체코총리공식발표(250406) | |
| 2025.2 | 발전정책 | 11차 전기본에 신규 원전 확정 | 대형원전 2기 + SMR 0.7GW 1기 | 11차전력수급기본계획(250221) | |
| 2025.3 | 핵폐기물 | 고준위방사성폐기물 특별법 제정 | 별도 관리위원회·부지선정·부지내 저장 법적 체계 구축 | 국가법령정보센터 | |
| 2025. 6 | 정부정책 | 국정기획위 「대한민국 진짜성장을 위한 전략」 발표(국정기획위원회) | 원자력 정책 내용 없음 (SMR, 재처리, 농축, 핵잠 등) | 국정기획위원회(2025.6) | |
| 2025. 10 | 외교정책 | APEC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잠재처리농축 제안 | 협의 중 | 경주 APEC정상회담(20251029) | |
| 2025~2026 | SMR 제조산업 | SMR 혁신제조 국산화 기술개발사업 | 2026~2031년 2,695억 원(기후부) | 정부정책브리핑(251111) | |
| 2026.2 | SMR 산업화 | SMR 특별법 본회의 통과 | R&D·실증·특구·인력·민관협력·국제협력까지 법적 지원 | 과기부 원자력연구개발과(260212) | |
| 2026.6 | 실제 원전 확대 | 신규원전 부지 결정 | 영덕 대형원전 2기 2.8GW, 기장 SMR 0.7GW | 한수원 신규원전부지평가위원회(260617) | |
| 2024~2026 | 핵융합 | 핵융합 R&D·인프라 신규 프로젝트와 전력생산 실증 전략 | 2024년 1.2조 원 신규 프로젝트, 2030년대 전력생산 실증 추진 | 정부정책브리핑(240722) | |
| 2026.5 | 핵융합 국가미션 | K-문샷 12대 국가미션에 한국형 핵융합 소형 실증로·전력실증포함 | 부총리 단장 범부처 추진단 출범 | 정부 정책브리핑(260527) | |
| 2026 | 원자력 추진선박 | K-문샷/NEXT 프로젝트에서 SMR 추진선박 국가미션 추진 | 해수부 참여, 민관협력 추진 | 123대 국정과제추진실적(2026) | |
| 2025~2026 | 핵추진잠수함 | 한미 합의 → 범정부 TF → ‘대한민국 핵추진잠수함 개발 기본계획’ 발표 | ‘장보고 N사업’, 2030년대 중반 1번함 진수 목표 | 정부정책브리핑(260526) 1차미래국방전략위, 국방부 | |
| 2026 | 핵잠 제도화 | 핵잠 범정부 협의체 가동 | 2027년까지 정책·제도 기반 완비 목표 | 국방부범정부TF 국방보보도자료(260610) | |
| 2025~2026 | 농축·재처리 협의 추진 | 한미 정상협의 이후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를 미국과 공식 협의 | 미국은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절차를 지지, 아직 한국에 권한이 부여된 것은 아님 | 정부정책브리핑(251114) 한미팩트시트, 외교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