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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셋, 둘, 하나. 아싸 내꺼!” 맞벌이 부모님이 집을 비우실 때면 나는 친구들과 아파트 놀이터에 모이곤 했다. 가장 좋아하던 놀이는 땅 따먹기. 모래 바닥에 커다란 네모를 그리고 여러 조각을 낸 뒤 땅을 선점하는 놀이다. 나는 주로 가장 크고 가운데에 위치한 땅을 노렸다.
우리 집은 2년마다 이사를 다녔다. 친구들이 한 집에 오래 살 때 나는 이리저리 집을 옮겨 다녔다. 새로운 곳으로 옮긴다는 사실이 나는 자랑스러웠다. 이집 저집이 내 집이 된다는 것이 좋았다. 나는 또 이사를 간다며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신기하게도 아무리 이사를 다녀도 항상 우리 집은 네모났다. 네모난 아파트에 다닥다닥 붙은 문을 열면 또 네모난 공간으로 이어졌다. 네모난 벽에 둥근 장식을 붙이는 것은 금지되었다. 엄마는 내가 벽에 무언가를 붙이려고 하면 나를 혼내곤 했다. 어린 나는 엄마가 동그라미를 싫어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느새 아무리 집을 옮겨 다녀도 다 비슷해 보였다. “엄마는 네모를 좋아해? 왜 항상 네모난 집들을 찾아다녀?” 엄마에게 물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나는 결심했다. 커서 절대 네모난 집에 살지 않을 것이라고.
이사가 이어지자 친구와 멀어지는 일이 잦았다. 외로워하는 나에게 엄마는 햄스터 한 마리를 선물해주었다. 햄스터도 네모난 집에 살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둥근 쳇바퀴였다. 햄스터는 네모난 집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둥근 쳇바퀴를 돌리고 돌렸다. 우리 집에 쳇바퀴가 있다면 그것조차도 네모난 모양일 것 같았다. 둥근 쳇바퀴를 가진 햄스터가 부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가도 햄스터는 좀처럼 쳇바퀴에서 나오질 못하는 것 같았다. 왠지 모를 무서움에 나는 엄마에게 햄스터를 남에게 줘버리자고 떼를 썼다.
이집 저집을 다니는 것에 익숙하던 나는, 그게 마치 운명이라도 되는 듯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루에도 열댓 곳의 집을 다닌다. 달라진 점이라면 더 이상 나는 현관을 넘을 수 없다. 살만큼 다 살아봤다는 것일까. 어느새 아파트에 사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네모는 내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어릴 적 내가 문득 두려워한 네모난 쳇바퀴는 더 이상 내가 들어올 수 없도록 쌩쌩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삼, 이, 일.’ “문이 열렸습니다.” 네모난 엘리베이터, 네모난 치킨 상자. 나는 다른 네모의 쳇바퀴에 들어오게 되었다. 수없이 네모난 상자를 배달하면 어릴 적 땅 따먹기 했던 작은 공간 정도는 진짜 내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엘리베이터 층 숫자와 땅 따먹기 판에 썼던 숫자가 겹쳐 보였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못하고 가만히 발만 내려다보았다.
평범하게 읽히는 스토리입니다. 네모라는 단어가 키워드처럼 계속 쓰이고 있는데 네모라는 단어가 물리적인 형태로서의 의미로만 읽히는 한계가 있습니다. 네모라는 공간이 어떤 상징인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녹여낼 수 있다면 통찰의 차별성이 높아질 수 있을 듯합니다. 주목도 면에서는 긴 시간의 흐름을 지나치게 간단하게 정리하는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어색함이나 부자연스러움이 플롯상에서 드러나므로 픽션 스토리로 쓸 때는 그 점을 고려해서 세련된 플롯을 짤 수 있도록 연습하면 좋겠습니다.
# 12.
이사를 했다. 새 집은 너무 좋았다. 우리가 엘레베이터 있는 집에 살다니, 아파트라니... 모두가 감격의 감격의 감격을 하며 몇 년간 정든 빌라를 산뜻하게 떠났다. 가족들의 주책은 끊이질 않았다. 모기가 극성이던 밤마다 집이 너무 넓어 모기가 안 잡힌다며 웃음 섞인 짜증을 낸다. 엄마가 불러도 대답 없다며 방문을 열고 들어오면 '집이 넓어서 잘 안 들리나봐~' 하며 깔깔 웃는다. 시간 따라 움직이는 볕이 그대로 들어오는 까닭에 창 밖만 봐도 기분이 많이 나아진다. 엄마는 바로 옆에 있는 문화센터에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고, 매일 뒷산을 오른다. 반려견에게도 넓은 운동장이 생겼다. 많은 것들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중이다. 이 아파트는 여섯 번의 이사 끝에 정착한 마지막 우리 집이다.
최초의 집은 신도림역에서 구불구불한 골목을 15분 정도 걸어야 나오는 반 지하였다. 유년 시절은 석관동의 한 빌라에서 보냈다.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엔 성내역에 있는 시영 아파트에서 이 년간 살았다. 재개발 될 아파트로 이사 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반에서 재개발을 반대하는 애는 나 밖에 없었다. 가장 친했던 은지는 어차피 아파트가 다시 지어지면 만나게 될 텐데 무슨 걱정이냐고 했다. 경기도로 이사를 가고서도 가끔 은지에게 친구들의 소식을 들었다. 이사 온 집은 바로 앞에 개천이 흐르는 역북동의 한 빌라였다. 하교길엔 빨래터에 들러 발을 담그고 다슬기를 잡았다. 내 키보다 큰 풀들을 헤치면서 당시 유행했던 'OO에서 살아남기' 흉내 내는 게 재밌었다. 밤엔 개구리 소리로 시끄러웠다. 그 소리를 가만 듣는 걸 좋아했다. 엄마아빠는 가로등 하나 없는 그곳의 밤이 싫다고 했다. 그 뒤로 귀신 나오던 상가, 비가 줄줄 새던 빌라 5층에 살았다.
가끔은 이게 핀 볼 게임처럼 느껴진다. 쇠구슬처럼 우리 가족은 서울과 경기도 여기저기로 튀었다. 모든 건 우리가 원하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구슬이 아무리 벽을 쳐도 견고한 게임 틀은 그대로다. 거쳐온 나의 집들은 그 자리에 다 그대로인 것처럼.
언젠가부터 내 방 큰 창문에 거미가 줄을 치기 시작했다. 몸통이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징그러운 놈이다. 침대에 누우면 거미가 바쁘게 다리를 움직이는 게 바로 보인다. 가만 놔두니 꽤 크게 집을 짓는다. 쟤는 몇 번의 이사 끝에 이곳에 온 걸까 생각한다. 서울과 용인을 전전했던 시간은 내 한 몸 편히 뉘일 곳을 찾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거미가 바쁘게 다리를 움직이는 모습이 꼭 발버둥 치는 것처럼 보인다. 25년동안 우리 가족은 일곱 개의 집에서 살았다. 그걸 떠올리면 허락 없이 남의 집에 집을 짓는 거미를 나는 쉽게 쫓아낼 수 없다.
25년동안 7개의 집에서 살았던 한 가족사를 보여주는 글입니다. 서울과 경기도로 쇠구슬처럼 여기저기로 튀었는데 구슬이 아무리 벽을 쳐도 견고한 게임 틀은 그대로라는 대목이 현재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작문이 추구하는 요소를 모두 소소하게 추구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한 요소가 강한 임팩트를 보여주면 좋겠는데 그러한 점이 부족해보입니다. 글을 설계할 때 이러저러한 구도나 흐름으로 쓰겠다는 것도 계획해야 하지만, 그에 앞서 이 글이 작문이 추구하는 어떤 요소가 강한 효과를 내는 글일 것이다, 는 점도 고려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 13.
“gōngyù 이거 ‘공유’라 발음하는 게 맞아?” “꽁위라 읽는데, 단어 빨리 외우려면 그냥 사람들이 한 건물을 공유하면서 사는 게 아파트잖아? 그렇게 외워, 단어 위에 성조 붙인다 생각해.”
내가 누구랑 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집 안팎으로야 ‘가족’이 답이 되겠지만 현관 비밀번호를 치기 전까진 낯선 사람들이랑 다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거라고 떠들어대도 나의 생존은 나에게 달려 있는 게 아니다. 무엇을 얻으려든 우린 남들과 가진 것을 교환하면서 살아간다. 목이 말라 물이 마시고 싶을 땐 생수를 파는 사람을 찾아가 값을 지불해서 얻어낸다. 우물을 파겠다며 혼자 맨손으로 땅을 파진 않는다. 사람들은 집에서 생활하는 삶을 산다. 그러니까 주거 공간이 있는, 잠은 집에서 자면서 생활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내 영역이자 옆집과 윗집 이웃이 있는 아파트 빌딩의 일부 공간이다. 양계장엔 닭장이 있고, 닭장 안에는 닭둥지가 있다. 자기 영역이지만 공동 공간의 일부이다. 나 혼자서 살고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인지하면서 사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일단 집은 내가 쉬고 싶은대로 쉴 수 있는 안식처라 내 방식대로 행복감을 만끽하고자는 욕구가 솟는다. 내가 내 아드레날린 분비를 자극하고자는 것이 곧 남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는 것이라는 것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베란다에서 흡연하지 말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엘리베이터에 새로 붙은 경고문을 읽고, 담배꽁초 때문에 아파트에 화재가 났다는 기사 링크를 공유할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닭둥지 사이에 철조망이 설치 되어있다고 옆 둥지 닭이 날개짓해서 날리는 털이 이웃 닭 둥지로 안들어갈리가 없다.
아파트가 남이랑 같이 사는 공간이라고 와닿았던 건 고등학생 때였다. 학교를 가려고 집 문을 나서면 출근하는 앞집 이웃분을 꼭 마주쳤는데, 눈 마주친 게 어색하다 느낄 틈도 없이 늘 먼저 “Hi there”라고 인사를 건네셨다. 언제든 우연히 마주칠 때면 인사를 주고 받고, 소소한 잡담도 하게 되었다. 옆 둥지에 다른 닭이 이사왔다는 것을 눈치챘다면 그 전 둥지 주인이 다른 닭이라고 알고 있어서다.
통찰과 주목도로 평가할 수 있는 작문으로 읽힙니다. 두 가지 요소 모두 평범한 수준이어서 평범하게 읽히는 작문입니다. 중심맥락의 차별성을 꾀하기 위해서는 다른 글들이 언급하는 중심맥락이나 소재와의 차별성도 꾀해야 합니다. ‘남과 함께 사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비롯하는 중심맥락은 다른 글들에서도 많이 언급되는 접근법이어서 같은 소재나 주제라도 차별성을 꾀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이 있을까,를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 14.
양 손바닥이 넘칠 것 같다. 음미하듯 눈을 감고 양 손에 담긴 찰랑대는 것들을 입에 털어 삼켰다. 황금빛 비린내가 입안 가득 기분좋게 헤엄친다. 한동안 기능을 하지 못했던 윗니와 아랫니가 드디어 상하작용을 재개한다. 쫀득한 식감과 터질 듯한 풍미에 굶주렸던 감각이 살아나고 감겼던 눈이 활짝 열린다. 창가에 놓아둔 볼록 거울을 본다. 두 볼 가득 부지런히 씹고 있는 내 얼굴이 반갑다.
포만감에 기운을 차리니 내 방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들의 기척이 느껴진다. 내 침대 벽 너머의 방에서 TV 소리와 여동생의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여동생은 21살 대학생으로 지금은 여름 방학 중이라 늘상 소파에 드러누워 티비만 본다. 예전에는 종종 같이 보자며 나를 찾았지만 요새는 통 저 혼자 보고 웃어댄다. 숨 넘어 가듯 웃어대는 소리에 맞춰 나도 함께 소리내어 웃는다. 같은 순간 같은 웃음을 공유하니 TV를 함께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가 큰 소리로 웃자 여동생의 기척이 뚝 끊긴다. 이젠 같이 웃기도 싫냐. 정 없긴.
식사 후에는 몸을 움직여줘야 한다. 내 방처럼 넓이가 제한된 곳에선 제자리 달리기가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회색이 된 흰 운동화를 신고 끈을 조인다. 제대한 다음 날 엄마가 백화점 1층 매대에서 사줬던 나이스한 운동화다. 두 발이 준비됐기에 두 주먹을 달걀처럼 가볍게 쥔다. 무릎을 가슴까지 올린다는 생각으로 힘차게 발돋움한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운동을 시작하자 응원가가 들리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밴드부인 남동생이 내 운동을 응원하는 소리다.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남동생은 내가 달리기 운동을 하는 내내 묵직한 연주로 내 방 전체를 울린다. 기특한 동생의 마음에 난 더 힘을 내 제자리 위를 내달린다.
오랜만에 격하게 달린 탓인지 바닥에 그대로 뻗어버렸다. 목이 마르다. 창가에 놓아둔 물병이 생각난다. 볼록한 물병에는 물이 반쯤 차 있을 거다. 두 손바닥을 바닥에 짚고 일어나 창가로 향한다. 두 손으로 물병을 들어 바짝 마른 입술 사이로 물을 들이 붓는다. 금빛 물이 쏟아진다. 아, 비리다.
지난 2일, 구천동의 한 소형 아파트에서 20대 청년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숨진 청년의 입 안에서는 부패된 금붕어 10여 마리가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자신이 기르던 금붕어를 먹고 질식사한 것입니다. 고인은 6개월 전 화재로 부모와 두 동생을 잃고, 자신도 심한 화상을 입게 되어 그 후 칩거생활을 지속해왔습니다. 같은 동 주민의 말에 따르면 그는 갑자기 크게 웃거나 큰 소리로 뛰어다니는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해 이웃들의 불만을 들어왔다고 합니다. 옆집 주민 A씨는 청년의 웃음소리에 공포를 느껴 경비원에게 민원을 수차례 넣었고, 아랫집 주민 B씨는 층간 소음에 대한 보복으로 우퍼 스피커를 설치했습니다. 이웃들의 반발에도 청년의 이상 행동은 나날이 심해졌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T대 심리학 교수는 숨진 청년의 행동이 이웃과의 소통을 원하는 몸부림이었을 거라 지적했습니다. 쓸쓸한 죽음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작은 관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외로운 청년이 다다른 그곳에서 이제는 무리와 함께 금빛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고 있길 바랍니다.
주목도 높게 읽히는 글이라는 점은 장점입니다. 소재의 특이성에서 비롯하는 점이기도 하고, 문장을 자연스럽고 몰입하도록 쓰는 점에서 비롯하기도 합니다. 외로운 청년이라는 설정은 좋은데, 보편적인 경우가 아니라는 점에서 오는 작위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 점을 극복할 수 있다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15.
민들레아파트 6동 304호에는 가수가 살았다. 그는 지독한 연습광이었다. 단지 문제는 내가 303호에 사는 것, 낡아빠진 아파트의 벽은 소리를 차단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그가 지독한 음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말이지, 나를 미치게 했다. 싸구려 자재를 쓴 벽 너머 매일같이 들려오는 노랫소리. 잘 부르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고백하건대, 그는 노래 재능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벽에 딱 달라붙어서는, “아이 참, 엄마. 진짜 옆집 완전 민폐야.”하고 험담을 늘어놓곤 했다.
그와 나는 이상하리만치 생활 패턴이 겹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목소리가 나의 억울한 일상이 되어버린 순간에도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는 뜻이다. 나는 헤비한 록을 부르는 그의 생김새를 멋대로 상상했다. 멀대같은 키, 휘황찬란한 염색 머리에, 혀 피어싱 같은 것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그런 편견어린 생각들 말이다. 머릿속에서 괴물 하나를 탄생시킨 나는 지레 겁먹어 옆집을 찾아가지 못했다. 대신 언젠가 복도에서 만날 일이 있다면, ‘저기요. 당신 노래 정말 못 부르고요, 시끄러우니까 제발 그만 좀 하세요.’ 한 마디 꼭 건네겠다고 다짐하며 애꿎은 베개를 퍽퍽 쳤다.
다 늘어진 티셔츠에 슬리퍼를 질질 끌며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다가 복도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시끄러운 음악에 파묻혀있던 그는 의외로 작달만한 키에 수더분한 인상을 갖고 있었다. 매사 성실하게 살아왔을 것 같은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는 정말 외양처럼 재미없는 첫 인사를 건넸다. “네, 처음 봬요. 안녕하세요.” 나는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그를 만나면 꼭 따져 묻겠다던 포부는 쪼그라들었다. 하필 만나도 이런 타이밍이라니, 정말 이런 것마저도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었다.
면접에서 떨어졌다. 가운데 앉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머리를 싹 올린 심사관이 생각난다. 옆 사람에게 동기와 포부에 대하여 묻던 그는 나에게 물었다. “지원자는 장을 볼 때 어떤 순서로 봅니까?” 당황했다. 하지만 나는 곧, “안쪽에서부터 필요한 것들을 사고 그 다음 식료품을 사서 계산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나의 대답이 못마땅한 눈치였다. “들어가자마자 있는 것은 식료품 코너인데, 장을 본 적은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 이후로 내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흐르듯 질문을 던졌으리라. 식료품이 바깥쪽에 있으니 나오면서 사는 것이 맞지 않겠냐는 나의 주장은 그들에게 중요치 않았다. 여하튼, 나는 이 황당한 이유로 원하는 회사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나는 막상 시트콤의 주인공이 되자 엄마에게 전화할 용기조차 나질 않았다. 그냥 침대에 몸을 내던지고 엉엉 울었다.한참을 울다 지쳐 누워있는데, 옆집에서 또 분위기를 깨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오늘의 선곡은 강산애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여전히 노래는 엉망진창이었다.
‘막막한 어둠으로 별빛조차 없는 길일지라도 포기할 순 없는 거야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음도 안 맞는 주제에 오늘은 가사까지 여러 번 버벅인다.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안온한 나의 루틴을 괴롭히던 그 투박한 소음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위로하는 유일한 音이었다.
어느 날, 그의 노래가 끊겼다. 흥, 드디어 깨달았구나.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노래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집 문 앞에 포장이사 딱지와 가스점검 고지서가 쌓여갈 때쯤, 나는 그가 떠난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행선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낡은 벽을 맞대고 서로의 생존을 확인했었다. 그것은 일종의, 담배를 꼬나물고 서로의 인생을 도닥이는 동료애 같은 거였다.
그 후로 두 해가 지났고, 나는 여전히 303호에 살고 있다. 그가 떠나고 다른 이들이 몇 번 이사를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과 통성명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알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내 그 자리를 비웠다. 나의 옆집에는 다시 적막이 감돌았다. 적막을 꿰뚫는 목소리가 나에게는 들린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가수는 또 다른 아파트에서 옆집을 괴롭히고 있을까? 낡은 벽을 기대고 우두커니 앉아 그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그 엉망진창인 음 위로 나는 비스듬히 야윈 몸을 뉘었다.
주목도가 높고, 통찰의 요소도 일정 수준 이상인 잘쓴 글입니다. 픽션 스토리 형식에서 주목도가 높다는 것은 개연성과 핍진성이 높다는 뜻인데 그럴 듯한 캐릭터, 있을 법한 사건의 배경과 전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여러 가지 디테일 요소들이 잘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요소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집중하게 하고 몰입하게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목도에 더해 통찰의 요소도 있는 글입니다.
# 16.
“어디 사냐는 질문, 최고의 브랜드 네임으로 답하세요.” “2221년 SS시즌 한국 아파트쇼 개최”
일 년에 두 번, SS 시즌과 FW 시즌, 한국의 아파트쇼는 각국의 갑부들을 끌어모으는 연례행사다. 한국은 오랜 기간 아파트를 지어온 역사를 거쳐 아파트 건설 강국으로 거듭났다. 좁은 토지면적과 높은 인구밀도라는 한국의 ‘한계’를 딛고 기회를 만들어낸 것이다. 2000년대에 오랜 기간 경기 침체를 겪던 한국은 2100년대에 들어서며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다. ‘성장’ 없는 ‘분배’는 없다는 기조 아래 무한한 성장을 새로이 꿈꿨다. ‘명품 아파트 강국’으로 거듭난 덕분에 매년 GDP 증가세는 놀라울 정도다.
특별히 전망이 좋은 곳은 해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파트 쇼’ 지역이다. 시즌마다 ‘명품 아파트’ 브랜드들은 새로운 시즌의 ‘아파트 유행’을 만들고 그에 맞춰 아파트 헐고 짓기를 반복한다. 한국은 ‘아파트 쇼’를 주최하고, ‘아파트 펀드’를 운용한다. 각국 부자들은 시즌마다 한국에 와 ‘쇼’에 참관한다. 해당 시즌 아파트에 일주일에서 한달 간 거주하며 투자 상담을 받는다. 이들의 환심을 사서 펀드에 투자하게 하고 전세계 전망 좋은 빈 땅을 개발해 삐까번쩍한 아파트를 지어내면서 한국은 수익을 올린다. 주로 저개발국가의 싼 땅을 매입해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다. 땅과 인건비가 싼만큼 펀드 수익률이 보장된다. 높은 수익률을 위해 아파트 주변에 최고급 보딩스쿨, 교통수단 등도 함께 개발한다. 덕분에 저개발국은 고용률을 높이고 경제성장이 가능해지니 서로에게 ‘윈윈’인 거래다.
한국 땅에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공간에는 모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 지역에서도 주민들의 합의를 거쳐 아파트 헐고 짓기가 반복된다. 여러 채의 아파트를 갖고 있는 이들은 자신의 아파트가 유행을 따르고 가격을 올릴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다. 비싼 집에 살 수 없는 사람들은 미개발 지역으로 고립되었다. 고층 아파트 전망에 미개발지역이 걸리면 아파트 값이 떨어지기 때문에 미개발 지역은 점점 바깥으로 밀려났다. 고급 아파트 지역에서 먼 곳에 고립되어 더 이상 개발되지 않는다. 높은 인구밀도와 오염물질, 질병 때문에 점차 슬럼화 되고 있다.
한국의 수익구조가 모두 ‘아파트 펀드’에 집중된 탓에 미개발 지역은 더이상 정부의 관심사가 아니다. 최근 문제는 미개발 지역에 유행하는 전염병이다. 고급 아파트 지역 운영의 부산물로 많은 오염 물질이 방출됐다. 정부는 그 오염 물질이 미개발 지역으로 방출된 것을 전염병의 원인으로 진단하고 있다. 다만 그 사실을 대중에 공개 하지는 않았다. 정부는 ‘고급 거주 지역’ 거주자를 대상으로 방역을 위한 세금을 걷겠다고 했다. 반발이 심했지만 ‘분배’를 이야기하는 진보 정당의 목소리에 간만에 국회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사실 아파트쇼 시즌에 맞춰 전염병이 퍼지면 좋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지만 모두 이것을 직접 언급 하지는 않는다. 이 시대 인권 의식이 한 층 더 상승했다는 흡족함이 고급 거주 지역에 퍼졌다. 다음 달 부터는 미개발 지역 상공에 소독약을 뿌리는 헬기가 하루에 두 번씩 왕복할 예정이라고 한다.
통찰의 차별성이 일정 수준으로 있고, 주목도도 일정하게 확보한 글입니다. 미래의 시점에서 쓰는 픽션 스토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어떤 특징이 미래의 시점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착목해서 상상력을 펼쳐야 하는데 그 점이 잘 이뤄졌다고 할 수 있는 글입니다. 미래의 설정이 다소간 과하다거나, 어색한 점이 일부 있는 것은 보완할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17.
구룡. 구룡의 이름은 그냥 구룡마을에서 태어나 붙여졌다. 어머니는 그를 낳자마자 집을 나갔고 알코올중독인 아버지는 가뭄에 콩 나듯 집에 들어왔다. 갓난아기였던 그를 돌본 것은 옆집 할머니였다. 2020년 현재 구룡은 언뜻 보기에 불편한 곳 없어 보이는 평범한 40대 후반의 남성이나, 그가 걷기 시작하면 왼쪽 다리를 절뚝이는 것을 누구나 쉬이 알 수 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다니기 시작한 공장이었다. 더 많은 일당을 준다는 얘기를 듣고 공사판으로 옮긴 것이 화근이었을까. 한창 팔팔할 나이 24세에 그는 고층 아파트를 짓는 공사장에서 철근을 옮기다 그만 떨어져 버렸다. 목숨은 부지했지만 더 이상 온전한 다리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구룡은 아내의 도움을 받아 둘이서 택배 기사 일을 함께 하고 있다.
“일…루미…스..테이크, 아니 일루..미스테..이트!” 요즘 아파트 작명은 누가하는지, 알 수 없는 외계어가 난무하는 걸 보면 세종대왕이 노할 일이다. 찾아 갈 배송지를 더듬더듬 네비게이션에 한 글자씩 입력하던 구룡은 생각했다. 아파트 입구에 다다라서 구룡은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입주자의 안전을 위해 택배 트럭의 출입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입주자 회의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경비원은 저 멀리 상하차 ‘전용’ 구역을 가리켰다. 오늘 들러야 할 아파트 건물이 스물 두 동... 아내와 한숨을 푹 쉬며 차에서 택배를 하나 둘씩 내리는데 구룡은 ‘전용’ 공간에서 ‘일루미스테이트’ 저 빛이 나는 높은 곳에 사시는 분들과 분리되었다는 왠지 모를 소외감과 절망을 느낀다.
구룡은 아파트 지하에 위치한 입주민 ‘전용’ 편의시설부터 돌기 시작했다. 입주자 전용 독서실, 헬스장, 수영장에 이르기까지 그들만의 완벽한 왕국을 건설했다. 그야말로 지상 파라다이스인 것이다. 이쯤되야 자신도 이런 공간을 ‘전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겠다 싶다. 누가 상하차 공간을 전용하고 싶겠는가, 쳇하고 구룡이 볼멘소리를 낸다. 다음으로는 각 세대의 문 앞에 택배를 돌리는 순이었다. 다리는 불편하지만 어디 가서 힘으로는 안 꿀릴 자신이 있다는 구룡은 철저한 분업시스템을 도입했다. 구룡이 수레에서 무거운 짐을 엘리베이터에 옮기는 동안 그의 아내는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는 역할을 했다. 5분이나 흘렀을까. 상자를 모두 옮기고 꼭대기층부터 배달을 할 참으로 17층을 눌렀다. 문이 열리자마자 그를 마주한 것은 짜증과 분노가 가득 찬 얼굴들이었다. 책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학생, 유모차를 끌고 나가는 아주머니, 서류철을 든 회사원까지… 엘리베이터 문 앞에 줄줄이 서 있는 모습에 구룡은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구룡과 그의 아내는 짐짓 모른 체하며 지나가고 싶었으나 자신들을 매섭게 노려보는, 무시 섞인 그 눈빛들을 견딜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하며 구룡과 아내는 몇 번이나 고개 숙여 사과하며 서둘러 박스들을 마저 옮겼다.
한 주가 지났다. ‘일루미스테이트’에 사는 주민들은 입주자 회의에서 ‘택배기사 엘리베이터 사용금지’라는 새로운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고야 말았다. 절뚝이는 다리로 끝없이 계단을 오르내리고 구룡은 결국 며칠을 앓아 누웠다. 아파트 공화국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판자촌, 구룡마을에 사는 그는 창 밖으로 보이는 도곡동 타워‘팰리스’를 바라본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아파트들과 ‘왕’처럼 군림하는 입주민을 보호하는 것은 이들 왕국의 ‘룰’이었다. ‘타워팰리스’, ‘일루미스테이트’… 너도나도 저마다의 왕국을 건설하는 가운데 두터운 성곽 밖의 이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복종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주목도가 평균보다 약간 높고, 통찰의 요소는 평범한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룡이라는 상징이 의미하는 바도 쉽게 유추되고, 택배노동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짐작도 할 수 있는데 짐작하는 대로 흘러간다는 점이 글의 약점이 될 수 있으므로 다시쓰기를 할 때는 이런 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써보기 바랍니다.
# 18.
고등학교 때였나, <사회·문화> 과목이 기억나는데, 그때 나는 시장경제라는 것을 처음 배웠다. 선생님 이름도 기억이 안 나지만 키가 조금 크고 말랐던 남교사였던 것만 대충 떠오른다. 그는 교과서에 나오는 수요·공급 그래프 얘기를 하면서 설명을 풀었다.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원하는 수요가 많아지면 물건에 대한 공급이 오르고, 그 둘이 만나는 접점에서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게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정식화한 사람이 애덤 스미스라는 경제학자이고, 이를 그럴싸한 용어로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한다는 사실도 덤으로 배웠다. 물론 중간고사에 나오는 것들이기 때문에 형광질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아야 했다.
내가 이 순간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런 고리타분한 교과서 내용 때문이 아니다. 거기에 질문했던 한 친구 때문이다. 그 아이는 아파트 얘기를 꺼냈다. 자기 아버지가 아파트 짓는 일을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아파트를 갖고 싶어 하니까 아파트 만드는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냐고 했다. 그러면 공급이 높아지기 전에 높은 가격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그렇다고 대답해주었고, 그러자 아이는 그런데 아버지가 해고됐다고 했다. 그리고 공급을 늘리려면 노동자가 필요한데, 아버지의 봉급을 늘려주는 게 아니라 왜 도리어 자르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질문을 받고 잠시 뜸들이던 선생님은, 이내 그건 공급과잉 때문이라고 대답해주었다. 이미 너무 많은 공급이 진행돼서 수요가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단가를 맞추기 위해 노동자를 해고할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졌는데, 반 아이들 몇몇이 우리 집은 아파트가 아니라는 말들을 일제히 해버렸던 것이다.
아이들의 생각에 저 <시장경제>의 말에 뭔가 받아들이기 이상한 구석들이 넘쳐났던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이지만, 나는 시장경제를 믿지 않는다. 과거에는 협소한 몇몇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적인 이유로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지금은 그냥 수치적으로 헛소리라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쟁점은 <그 체제가 헛소리임에도 왜 자꾸 유지되는가?>이다.
3D(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업종은 매우 고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피한다. 하지만 시장의 논리대로라면 필요하기 때문에 높은 단가를 받아야하는 것이 아닐까? 재미있는 건 쥐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저런 일을 하면 훗날 병원신세를 질 수밖에 없으니, 그 위험수당으로 고임금을 받아야할 것 같은데, 내실을 따져보면 위험수당은 나발, 기본적인 4대 보험도 없이 현장에 투입되기 일쑤다. 그 잘난 수요·공급 그래프는 어디 간 것인가?
3D일을 하는 노동자가 그 일을 하는 이유는, 높은 시급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것 말고는 입에 풀칠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합리적 선택>이란 용어에 있어서, 노동자에게 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라는 형용사 자체가 올 수 없다. 경제학은 반쯤 농담이다. 현대의 시장경제학은, 이렇게 구성된 가격이 타자와의 활발한 교환행위 속에서 자연스럽게 수요·공급그래프로 이전되고, 그럼으로써 가격의 합리적 조정이 벌어진다고 본다. 순진한 생각이다.
그런데도 자본의 나팔수들은 노동유연화 운운한다. 이미 유연성으로는 국가대표 체조선수급인데, 여기서 뭘 더 유연해지란 건가? 노동자더러 인간이 아니라 문어가 되란 얘기인가? 비정규직인 우리 아버지는 작년부터 퇴사수순을 밟고 있다. 회사가 차를 뺏어가고, 물류창고 쪽으로 일을 돌렸다. 거기서 아버지가 얼마나 버틸까?
경제학 교과서의 이론이 현실의 경제현상과는 사뭇 다르게 진행되는 점을 꼬집은 글인데 그 맥락을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아파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경제적 관점이나 노동의 유연성 개념 등을 소재로 쓴 글입니다. 아이디어의 출발점이 다른 글들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눈길이 가고 통찰의 차별성도 일정 수준 이상 있는 글입니다. 주목도 면에서 조금 더 정돈되고 절제된 표현을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일 텐데 일부 표현들은 그렇지 못한 점이 보완할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19.
아침마다 택시를 손수 닦으며 인사해주었던 택시 아저씨,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던 건지 계단에 수십 개의 박스를 한가득 쌓아놓은 4층 할머니, 계단과 계단 사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오래된 갈색 장롱에 숨겨둔 비상키 그리고 작은 철장 안에 살고 있었던, 지나갈 때마다 눈과 코 사이를 한 번씩 만져주면 그렇게 좋아했던 택시 아저씨네 토끼 빵이. 초등학생 때 내가 살았던 5층짜리 아파트의 어렴풋이 남아있는 기억이다. 우리 집은 5층이었고, 엘리베이터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항상 반복되는 그림이었다. 엄마는 몇몇 이웃의 과한 관심을 부담스러워했었다. 하지만 어린 나는 이웃들에게 인사하는 것을 좋아했고, 엄마가 만든 전을 이웃과 나눠먹을 때면 내가 가서 드리겠다며 신나했다.
‘공용현관’ 비밀번호를 누른다. 현관에 들어오면 엘리베이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24층을 누르면 빠른 속도로 그곳에 데려다 준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30층짜리 아파트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른다. 간혹 같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게 된다면, 쭈뼛 쭈뼛 눈치를 보다가 인사를 놓친다. 아, 윗집은 젊은 부부와 초등학생 남자아이, 4살짜리 여자아이가 살고 있다. 층간 소음으로 몇 번 연락을 주고받은 끝에 알게 되었다. 윗집의 가족 구성은 어떤지 아는데, 얼굴은 모른다. 한 번은 관리사무소에 연락해 부탁을 했고, 두 번째는 인터폰으로 통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위층에 엘리베이터가 섰다가 내려오면 긴장한다. 혹시라도 첫 대면의 날이 될까봐.
한국인에게 아파트란 ‘내 집 마련’ 꿈의 대상이다. 그런데 꿈이라는 것에 비해, 치솟는 가격에 비해, 아파트가 주는 느낌은 좋지만은 않다. 아무리 외관상 좋은 아파트라도, 칸칸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닭장’ 같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으며, 빽빽이 들어서 있는 그것들을 보면 마음이 삭막해진다. 층간 소음으로 일어나는 범죄가 매년 발생하고, 경비 노동자의 사망 사고가 벌어지는 곳도 아파트다. 외관상으로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초등학교 때 살았던 아파트보다 더 크고, 새것이지만 나에게 더 ‘집’ 같았던 곳은 이전에 살던 곳이었다. 너무 친해지다 보니 생기는 감정적인 마찰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사람냄새’ 가득했던 곳이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같은 모양의 창문을 가지고 있고, 같은 이름의 아파트, 같은 숫자를 가진 동을 읊지만, 정작 서로는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그저 여러 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위로 쌓아둔 것 같은 괴이한 모양이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스위스에 지어진 집을 소개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스위스 어느 풍경 좋은 시골 목초지에 지어진 집인데, 건축가와 집주인은 그 집이 최대한 자연경관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설계를 기획하였고, 전통적으로 그 지역에서 쓰였던 헛간을 그대로 남겨두는 구조를 택했다. 또한 지역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현지 시공팀을 고집했으며, 집을 완공한 이후에는 하루 동안 주민들에게 집을 개방했다. 이들에게는 집이 ‘내가 절대 침해받지 않아야 하는 공간’이나, ‘투자 대상’ 혹은 ‘과시용’이 아니었다. 집을 마치 하나의 생명처럼 대했고, 그 집이 지역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은 스위스와 달리 땅은 좁고 인구는 많기에 아파트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형태의 주거공간이 되었다. 모양이 개성이 있다거나, 자연친화적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우리 집’이라는 점은 스위스의 그 집과 같다. 나는 아파트를 볼 때마다, 칸칸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각 집마다 품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상상한다. 각 가정의 삶이 가득한 이 아파트에서, 그 이야기들을 모두 들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떤 사람들이 우리 집과 벽을 맞대고 살고 있는지는 알고 싶다. 엘리베이터에서 한 두 살 되어 보이는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활짝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나에게 인사해준 적이 있다. 나도 그렇게 윗집과 인사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 아파트가, ‘우리 집’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말 뜻 그대로라는 측면에서 집의 의미에 천착하는 글인데 통찰의 차별성이 있는 글입니다. 통찰이나 주목도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약간씩 더 임팩트가 강한 요소들이 더해진다면 더 좋은 글이 될 수 있으므로 다시쓰기를 할 때 그런 점을 고려해서 글을 설계하면 좋겠습니다.
# 20.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차 창가 너머로 보이는 기와집, 그리고 초가집들이 어우러져 있는 풍경. 엄마는 오랜만에 들린 고향이 반가운지 보이는 집마다 족족 손가락을 뻗어 보이며 ‘누구누구 댁’인지를 입에 올리며 그들의 안부를 궁금해했다. 몇십 년 전의 동네 이웃들을 기억해낸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하긴, 옛날에는 옆집의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고 지낼 정도로 그사이가 가까웠다고 하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엄마의 옛 이웃 소개가 끝나갈 때쯤, 마을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할아버지의 초가집에 도착한다. 투박하면서도 예스러움이 느껴지는 초가집 한 채는 고층 아파트가 주는 느낌과는 분명 다른, 깊고 오묘한 느낌을 준다.
엄마와 달리 나는 태어나 줄곧 아파트에서만 살아왔다. 이사도 여러 번 다녔지만, 딱히 기억에 남는 집은 없다. 서울의 집, 아파트에서의 생활은 생존에 가까웠기 때문이었을까. 벌집 같은 아파트는 이웃 간의 물리적 거리는 좁혀주었지만, 심리적 거리는 좁혀주지 못했다. 집에 숟가락 개수가 몇 개인지는 알 턱이 없고, 내 이웃이 뭐 하는 사람인지, 가족은 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괜히 물어봤다가는 오지랖 넓은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쉬우므로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편이 낫다. 그래도 내가 아주 어릴 적에는 이사하면 떡 돌리며 인사를 나누던 문화라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마저도 옛날얘기가 되어버렸다. 가끔 벽을 뚫고 들려오는 싸움 소리에 ‘사람 사는 집 다 똑같구나’하는 생각을 곱씹게 될 뿐이다.
나와는 사뭇 다른 성향을 가진 엄마는 이웃들에게 관심도, 정도 많다. ‘촌사람’이어서 그렇다나. 하지만 그간 잦은 이사 탓에 이웃들과의 관계는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한 집에 둥지를 틀게 되면서 엄마는 자연스레 앞집, 옆집, 윗집, 아랫집의 소식을 줄줄이 꿰게 되었다. 하루는 밖에서 돌아온 엄마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같은 층에 사는 아저씨 한 분 돌아가셨대” 하는 것이었다. 평소 보이던 아저씨 대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주머니가 그 자리를 대신해 의아하긴 했었다. 하지만 별스럽게 생각하진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고인이 되셨다고 한다. 늘 스포츠맨의 차림새에 건강해 보이던 분의 부고 소식은 더없이 갑작스러운 소식으로 다가왔다. 비록 그 아저씨와 나 사이에는 0.1초간의 짧은 눈 맞춤, 그리고 1초도 채 안 될 것 같은 인사, ‘안녕하세요’가 다였지만 충격은 꽤 컸다.
엄마의 ‘오지랖’이 아니었다면 나는 영영 그분의 죽음을 모를 뻔했다. 세상을 뜬 아저씨의 유품을 그의 가족들이 2~3일에 걸쳐 정리하는 걸 보았다. ‘그래도 가족이 있어서 다행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매달, 이 사회에는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이를 ‘무연고 사망’이라고 칭한다. 차갑게 식어버린 그 몸은 수개월이 지난 뒤, 코를 찌를듯한 냄새를 풍기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한 줌의 재가 될 수 있다. 인구과밀의 도시 서울, 빽빽하게 들어선 벌집 아파트들 속 누군가는 오늘도 타인의 온기를 잃어버린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예상되는 중심맥락이라는 점이 통찰의 차별성을 꾀하는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글입니다. 자연스럽게 잘 읽히는 장점이 있으므로 그런 장점은 계속 유지하고 더 인상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하고, 나머지 요소들, 즉 통찰의 차별성이나 공감/감동의 요소를 도드라지게 추구할 수 있도록 작문 쓰기를 계속 해나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