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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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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계마을의 추억 산격동 본채
사월 추천 0 조회 41 04.08.28 15:35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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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4.08.28 08:05

    첫댓글 그 집에서의 생생한 기억 두 가지: 1) 펜 레터를 했던 장포형님과 4모누나 때문에 매일 대문간에는 우루루 편지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2) 그간 이산 가족으로 지냈던 모든 살림이 마침내 이곳에서 합쳐져 고헌형님의 관리하에 들어간 우리는 몇 차례나 대나무 퉁소에 종아리를 맞기도 했다.

  • 작성자 08.06.30 23:11

    부록: 장포형님은 빼어난 필체 덕에 집으로 오는 편지의 점유율을 80%나 차지했고 나머지는 4모누나의 것이었다. 장포형님은 매일 라디오의 가요프로그램을 듣고 녹취를 했는데 멋진 필체로 적어놓은 가사가 몇 권이나 되었고 보물처럼 애지중지하였다. 남진이나 나훈아 같은 유명 가수의 경우에는 잡지나 신문에 난 가로로 둥근 타원형 사진을 오려 붙이기도 했고. 우리도 시간만 나면 그것을 보고 노래를 불러보곤 하였다. 그래도 내가 기억하는 한 형이 제일 좋아한 가수는 김상진이었던 같다.

  • 작성자 08.06.30 23:06

    사모누나가 하이틴 잡지(제목은 기억 안나는데 사이즈는 요즘 《좋은 생각》만 했다)에서 공모하는 캐치프레이즈에 "귀뚜라미 울음 속에 이슬먹던 추억이"라는 가을을 주제로 한 글을 보내어 기념품을 받은 것도 이 시절이었다. 작가로서의 소질이 비로소 드러난 시기라고나 할까?

  • 04.08.28 09:40

    사월의 기억 중 잘못된 하나, 펜팔을 통한 팬 레터 중 세련 사모의 것은 대명동의 기억임, 오죽하면 "대구시 대명동 장세련"이란 것만 보고도 우리 집으로 편지가 배달되었을까?

  • 04.08.28 13:05

    대명동 집이 맞고, 참고로 내 것은 펜팔이라기보다 팬레터였다. 신문과 잡지에 투고한 글과 이름만 보고 보낸 편지들...답장을 해준 것도 더러 있었지.아마 열 통 미만이었을 걸...하이틴 잡지 이름은 '학원'.. 암튼 사월의 기억력에는 두 손 들겠다.가물거리던 것들까지 다 집어내네.정말 그립다...

  • 04.08.28 21:45

    지금도 "울산시 연암동 장세련"이면 통해.장세정이 것까지 내 이름의 오기인 줄 알고 갖다줄 정도...집 구조도 다른 거 아닌가? 왼쪽부터 방(짠오빠와 하숙생방)-쪽방(재길언니)-마루-안방(훠니랑 내방)-부엌-방(큰오빠방)이었지.순영누나,영순아지매가 맞고..

  • 작성자 04.08.28 15:47

    "학원"이었나?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매달 다른 캐치프레이즈가 잡지 표지의 상단 우측에 기재되었지. 그때 받은 선물이 뭐냐면... 탁상시계였었지 아마. 그리고 요즘은 기억력이 많이 퇴색되었는데 그래도 내가 속한 단체서는 내가 "맞다"면 그걸로 모든 논쟁 종식.

  • 04.08.28 21:13

    맞다! 사월의 기억력은 가히 수준급이다.얇은 잡지였는데 어떤 기업의 사외보였을 거다.캐치프레이즈 공모에서 받은 선물이지.아까는 수업중에 잠깐 들렀던 터라 "학원"에 시조 투고했던 건 줄 알았지.그때 시조도 귀뚜라미 우는 밤이 소재였거든.

  • 04.08.28 21:52

    산격동 집의 무화과 나무는 세진이가 댁농고서 가져온 것인데, 영해여중 사택의 큰 무화과를 보면 늘 산격동 집이 생각나지...

  • 04.08.28 21:56

    산격동서 헌이가 아침부터 무엇에 쓸 돈인가 달라는데 엄마가 내일 준다고 해도 떼쓰다가 내게 된통 맞고 혼난 적이 있지..

  • 작성자 04.08.28 22:16

    산격동 시절이 철들고 거의 처음으로 모든 식구들이 한데 모여 살던 곳이었죠 아마...

  • 04.08.28 23:56

    거기서도 난 주부였고, 그때도 우린 이산가족이었지. 아버지가 봉덕동에 계셨거든.내가 집에서 밥을 하다가 나중엔 봉덕동 가서 또 아버지 밥을 해드렸지.산격동에서는 짠오빠랑 많이 싸웠거든.밥이 질다고 잔소리, 반찬이 싱겁다고 잔소리...그 말에 대꾸하면 한 대 콱!! 아야야!

  • 04.09.02 07:51

    화단 옆 수돗가 앞에서 고헌 형님과 찍은 빛바랜 흑백 사진이 한장 있었는데. 고헌 형님이 가지고 계신가요? 형님이나 나나 홀쪽한 모습에 내가 형님앞에 서고 뒤에 서신 형님의 두팔이 나를 감싸 안고 찍은 사진 이었는데... 형님은 군에 가시기전까지는 꽤나 마른편에 속했었지요? 아마도

  • 04.09.02 16:22

    오라버니한테 디지게 맞고 북쪽 대문 있는 허허벌판으로 도망 갔던가...그랬었는데...ㅜㅜ 오라버니 방에서 수전노 등등이 들어있던 희곡집을 읽었던 기억도 잇고 오라버니를 찾아온 모동 사는 **(이름도 기억 남)이라는 아가씨가 하루 자고 간 기억도 오라버니와 사귀던 어떤 아가씨의 기억도 어린 내겐 특별햇는데...

  • 작성자 04.09.02 18:02

    아지매는 이 글을 못읽게 해야겠다. 혹시 훠니누나가 형한테 맞은 보복을... 맞아 여자 울리면 천벌을 받는다고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 분명히 인용을 하더라고.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영화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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