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언제나 앞을 향해서만 달립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인생은 죽음을 향한 여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겐 그것이 슬픈 일만은 아닙니다.
삶이 맺어줄 열매와
천국을 향한 또 다른 씨앗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오늘 토요특집 <문화의 복음화 삶의 복음화>에서는
그런 삶의 풍성한 열매를 글로 엮어내는 분을 모셨습니다.
소설가로, 번역가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새롭게 에세이집을 발표하신 구자명 임마쿨라타...
초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일본 동경의 결핵전문병원에서 일 년 너머 입원해 있는 남편에게 막내딸이 그린 초상화를 생일선물로 보내겠다는 어머니의 참신한 기획에 의해 나는 아버지 얼굴을 그려보려 며칠간 애를 썼던 기억이 있다. (중략) 헌데 문제는 내가 그 '미남으로 호가 난' 아버지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거였다. (중략) 아무튼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아버지 얼굴을 그려보려고 눈처럼 새하얀 도화지를 여러 장 버리는 출혈을 감수했건만 그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여러 장 중에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를 닮은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중략) 무심코 창밖 하늘을 바라보니 대마침 추석을 며칠 앞둔 때라 화등잔 같은 보름달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황금색의 커다랗고 둥그렇고 따스한 달을 보니 마치 아버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순간적으로 스쳤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도화지와 크레용을 찾아 맹렬히 보름달을 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