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10월 7일)
오스만 제국의 정복전쟁과 세력 팽창>
1453년 콘스타니노폴을 함락시킨 오스만은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북아프리카를 점령하며 급속히 세력을 확장시켰다다. 또한 발칸반도와 동유럽을 점령한 뒤, 유럽을 향해 서진하면서 동지중해를 장악한 후 서쪽으로 세력을 넓혀나갔다. 오스만의 정복전쟁으로 유럽과의 충돌이 진행되어가는 중에도 베네치아는 오스만과 유럽사이에 중립적 위치를 고수하며 무역을 주도하였으나, 1570년 7월 오스만이 베네치아 속령인 키프로스 섬을 침공하였다.
급조된 연합 함대>
다급해진 베네치아가 교황 비오 5세(1566-1572)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교황은 스페인 펠리페 2세에게 연합함대 구성을 거듭하여 제안하였다. 교황의 요청에 스페인 펠리페 2세는 함대를 파견하였고 스페인 해군은 베네치아 함대와 합류하였다. 급조된 연합 함대가 키프로스로 향하던 9월 중순경에 키프로스 섬의 수도 니코시아가 9월 9일에 함락되었다. 연합군은 키프로스 섬으로 가서 점령군 오스만을 공격하자는 의견과 후퇴하자는 의견으로 갈리며 연합함대는 회군하고 말았다. 그리고 급조되었던 연합함대는 제대로 된 전투 한번없이 허망하게 해체되었다.
신성동맹의 결성>
키프로스의 대부분은 오스만에게 점령당하였고 가장 방비가 잘 되어 있었던 파마구스타만이 외롭게 항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베네치아는 다시 교황청에 로비를 벌였으며 교황은 유럽의 군주들에게 신성동맹의 결성을 호소하였다. 유럽의 각국들은 오스만의 팽창이 지중해 해상 무역과 유럽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라는 점에는 공감하였으나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 최종합의에는 오랜시간이 소요되었고, 이듬해인 1571년 5월에 가서야 의견이 좁혀졌고 5월 25일에 공식적으로 동맹이 체결되었음이 선포되었다. 신성 동맹의 구성원은 베네치아, 스페인, 나폴리, 시칠리아, 사르데냐, 교황령, 제노바, 사보이, 우르비노, 투스카니, 몰타 기사단이었다.
묵주기도 봉헌>
그는 전 유럽의 그리스도교 국가들과 연합하여 교회와 영토를 수호하고자 하였다. 전투의 승리를 위해 모든 신자에게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하였다.
10월 7일 일요일 아침, 레판토 해군 기지에서 서쪽으로 출항한 오스만 함대와 메시나에서 출항한 신성 동맹의 함대가 그리스 서부의 바깥쪽에 있는 파트라스 만의 끄트머리에서 만나면서 5시간에 걸친 전투가 시작되었고, 치열한 전투 끝에 신성동맹군이 대승을 거두었다
기념일 제정>
비오 5세 교황은 이 전쟁의 승리가 묵주기도를 통한 성모님의 전구로 하느님께서 함께하신 덕분이라 여기고 이를 기억하고자 ‘승리의 성모 축일’을 제정하여 10월 첫 주일에 지내게 하였다. 이어서 그는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마리아’라는 칭호를 성모 호칭 기도에 첨가했다. 나중에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 기념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오스만제국의 술탄 셀림 2세는 “나는 모든 기독교 제왕들의 무력에는 꼼짝도 안 하지만, 다만 저 교황의 기도 힘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