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35. 비적응증 환자에 대한 수술
G원장은 관절 내시경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정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다. 어느 날 친한 친구의 아들인 대학생 J가 찾아왔다. J는 군대 입영 영장이 나왔는데 지금의 가정 형편으로는 도저히 군대를 갈 수가 없다고 애걸하였다.
사업을 하던 J의 아버지가 부도가 나서 정신적 충격으로 쓰러져 있고 어머니도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서 학교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있다고 하였다. J에게는 고등학생인 여동생만 둘이 있는데 자신이 이 시점에서 군대를 갈 수는 없다며 G원장에게 무릎 관절의 반월상 연골판 절제술을 해 달라고 하였다.
이 수술을 받으면 군 면제 사유가 되니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G원장은 아무 병도 없는데 수술을 하면 나중에 후유증이 있을 수 있음을 설명하며 만류하였지만 J군의 태도는 완강하였다. 그는 자신의 형편으로는 수술비도 마련을 다 하지 못한다면서 아버지 친구인 G원장이 이번에 한번만 도와주면 평생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G원장은 J군의 요청을 들어주어야 하는가?
<윤리적 고찰>
이 사례에서 J군은 어려운 가정형편을 들어 G원장에게 부당한 요구를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의사는 환자가 자유의사에 의해서라도 자신에게 해로운 행위를 해 달라고 요청하였을 때 이를 들어주어야 할 의무가 없다.
자신을 죽게 해 달라는 자살 조력 요청은 물론 신체를 불구로 만들어 달라거나 병을 앓게 해 달라는 요청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 이는 환자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해악금지의 원칙에 어긋남은 물론 의사의 전문직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환자에게 무릎 관절의 반월상 연골판 절제술을 하게 되면 당연히 신체 기능의 손상이 오며, 향후 어떤 후유증을 앓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G원장이 이를 알고도 시술을해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군다나 이 사례에서 J군의 요청은 병역을 기피하겠다는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비록 가정 사정 때문에 그런 극단적인 요청을 하게 되었다고 해도 이는 사회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국민개병제를 실시하는 나라에서 병역은 전 국민이 나누어져야 할 핵심적인 의무 중 하나이다. 만약 가정형편 때문에 병역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이는 입영연기를 한다든가 하는 다른 합법적인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
이렇게 자신의 신체를 손상시키면서까지 병역을 기피하려고 하는 행위는 그 진정성이 의심스러울 가능성도 있다. 여기서 소위 “양심적 병역거부”는 논외로 하는데, 만약 양심상 군 복무를 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해도 그 방법으로 자신의 신체를 손상시키는 방법을 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의사는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의학지식을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데 활용하는 예로서는 고문이나 노동자의 노동력 착취, 혹은 운동선수의 성적을 올리기 위한 약물 투여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의사윤리지침은 제 43조 1항에서 “의사는 지역사회, 국가, 인류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생명 보전, 건강 증진,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으며 제45조 1항에서는 “의사는 고문 등 인권을 유린하거나 침해하는 행위를 자행․교사․방조하거나 그러한 행위를 묵인 또는 은폐하여서는 아니된다.”고 하여 이와 같은점을 명시하고 있다.
의사가 자신의 전문지식을 이런 곳에 사용하도록 허락하게 되면 그 행위 자체로도 비윤리적인데다가 비윤리적인 행위를 조장하게 하는 셈이 된다. 의사가 참여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이 효율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사례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의사가 금전 등 어떤 이익을 노려서 이러한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를 하였다면 더 큰 문제이다. 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사의 전문직으로서의 품위를 완전히 손상시키는 행위가 된다.
G원장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J군의 입장에 동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이 J군에게 더 큰 도움이 되는 행위인지에 대해서 여러 요인들을 고려하여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법률적 고찰>
병역법 제86조는 ‘병역의무를 기피하거나 감면받을 목적으로 도망하거나 행방을 감춘 때 또는 신체손상(신체손상)이나 사위행위(사위행위)를 한 사람은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판례에 따르면, 병역법 제86조에 정한 '사위행위'라 함은 병역의무를 감면 받을 조건에 해당하지 않거나 그러한 신체적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병무행정당국을 기망하여 병역의무를 감면 받으려고 시도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대법원 2005. 9. 28. 선고 2005도3065 판결)
그리고 사위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행위 태양인 도망·잠적 또는 신체손상에 상응할 정도로 병역의무의 이행을 면탈하고 병무행정의 적정성을 침해할 직접적인 위험이 있는 단계에 이를 것이 요구된다.
이 사례에서 J군은 아무 병도 없으나 무릎 관절의 반월상 연골판 절제 수술을 통한 신체손상 행위로 군 면제를 받으려고 하였으므로 실제로 G원장이 J군의 요청을 들어주어서 수술을 시행한다면 이는 병역법에서 금지하는 사위행위가 되어 G원장과 J군 모두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판례에 따르면 사위행위에 해당되기 위해서 반드시 실제로 그 행위로써 병역의무의기피 또는 감면의 결과가 발생하여야 하는 것도 아니므로(대법원2004.3.25. 선고 2003도8247 판결), 실제로 J군이 병역 면제를 받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병역법상의 책임을 지게 된다. 나아가 G원장은 J군에게 치료 목적이 아닌 병역면제를 위한 수술을 시행한 것은 의료법 제53조 제1항 제1호의 의료인으로서 심히 그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를 한 때에도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