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사는 재미도 없고 입맛도 도망갔을 때 소래포구를 찾아간다. 옛날에는 대중교통편이 불편했으나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수인선이 복선 전철로 부활했으니 말이다. 오이도역에서나 원인재역에서 수인선 전철을 탈 수 있다. 그렇지만 소래포구의 갯내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상인들의 생존을 위한 외침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 가을, 전어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소래포구 속으로 떠난다. 수인선을 타고 소래포구역에서 하차 후 소래포구뱃터 재래시장까지 도보로 5분이다.
한국전쟁 이후 포구로 성장
우리나라의 젓갈시장으로 이름 높은 곳은 인천의 소래포구, 충남 광천, 충남 논산, 전북 부안 곰소포구, 전남 목포, 부산 대변항 등. 이 가운데 소래포구는 수도 서울과 가까워서 김장철이 아니더라도 늘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곳이다. 최근 들어서는 서해안고속도로, 제2경인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도로 등 접근로가 다양해졌다.
소래포구가 자리한 행정지명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 인천시 남단의 소래가 포구로 성장한 시초는 한국전쟁 이후이다. 피난살이 온 사람들이 빈 개펄 한 귀퉁이에서 목선을 한 척, 두 척 만들다보니 소래포구가 됐고 젓갈이며 새우, 꽃게, 어패류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넘쳐났다. 한때는 포구에 기항하는 배가 2백50척을 넘은 시절도 있었다. 슬슬 서울에까지 새우젓의 고장, 꽃게의 고장으로 알려지면서 소래포구는 번창 일로를 걸었다.
소래포구는 크게 두 구역으로 구분된다. 협궤열차가 다니던 철로가 아직 남아있는 남쪽은 활어를 파는 가게며 횟집들이 몰려있고 젓갈가게들은 북쪽지역에 세 군데로 나뉘어있다. 소래역사관 맞은편의 소래 뱃터 재래시장 입구를 택해 횟감을 파는 구역으로 들어가면 요즘같은 가을철에는 전어 굽는 냄새로 정신을 빼앗는다. 간간이 꽁치 굽는 냄새도 섞여 있다. 일부 여행객들은 식당 안에 자리를 잡고 전어회에 활어회가 나오는 동안 새우튀김으로 막걸리 잔을 비운다.
조금 더 포구 방향으로 진행하자 간장게장을 플라스틱 통에 담아 파는 아주머니들이 연신 미소를 날린다. 그 대목에서 갑자기 ‘사람들은 왜 무한리필 간장게장집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진다. 어린 꽃게 자원들이 보호되어야 하는데 중국 어선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이다. 주꾸미, 꼴뚜기, 소라, 골뱅이, 낙지, 홍합에 조개구이용 조개, 꾸들꾸들 말린 생선…허기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간다.
화장실 앞에서 방향을 왼편으로 틀어 북쪽으로 올라간다. 꽃게가 상인과 여행객들을 포위했다. 올해는 그야말로 꽃게가 대풍인가 보다. 많은 이들이 아이스박스 포장으로 꽃게를 사간다. 수인선 전철이 있는데 무얼 걱정하랴. 중간중간 활어회 파는 집, 대하 파는 집, 매운탕거리 파는 집들이 구색을 제대로 갖춰간다. 상가와 갯벌 사이, 사람들이 오가는 시멘트 바닥은 술 한 잔 즐기려는 여행객들로 만석이다. 한 발 한 발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왜들 이리도 낯부터 술을 드시는지, 이렇게 옹색한 자리에서까지 회를 드셔야하는지.
시장 내부로 들어가 보니 젓갈집들이 많다. 짠내에 고리고리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소래포구에서 젓갈을 전문적으로 파는 점포 수는 대략 40여 개를 헤아린다. 김장철을 앞둔 가을에는 수도권은 물론이고 멀리 강원도나 충청도 등지에서까지 젓갈을 사려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소래에서 파는 젓갈은 어디에서 숙성되는가
궁금하다. 소래젓갈시장에서 파는 젓갈들은 어디에서 숙성되는가. 충남 광천만 해도 토굴에서 숙성시킨 것을 자랑삼아 ‘광천토굴새우젓’이라 하지 않던가. 젓갈이란 것이 발효과정에서는 외부 공기와의 접촉이 없게 해야 하고 섭씨 15도 내외에서 다섯 달 이상 숙성시켜야만 제 맛이 나는 법이다.
일단 소래로 들어온 젓갈 원료들은 소금에 버무려져 부평과 안양의 동굴로 옮겨진다. 부평 백운역 근처 화랑농장이라고 하는 곳에는 일제강점기 때 무기고 및 탄약저장고로 쓰였던 대형 굴이 8개나 있다. 굴 양쪽에 커다란 드럼통 두 개식을 배열하고도 가운데로 손수레가 너끈히 다닌다. 인부들이 허리를 굽힐 필요도 없이 천장 또한 높다. 연중 굴 안의 온도는 섭씨 13~14도를 유지, 광천의 15~16도에 비해 낮은 편이다. 굴 한 곳당 젓갈을 담은 드럼통이 1천~1천5백 개씩 들어간다고 하니 그 규모를 알만하다. 안양 박달동에 있는 굴은 구리를 캐내던 폐광으로 부평보다 규모가 서너 배 이상 크다.
이렇게 대형 굴에서 숙성된 젓갈들은 소비자들에게 팔리기 위해 소래포구로 이송되는데 포구에도 또한 최신식 설비를 갖춘 저온창고가 마련돼 방금 굴에서 꺼낸 것처럼 싱싱한 맛을 자랑하는 젓갈을 소비자들에게 선보이는 것이다. 소래젓갈시장에는 좋은 상품부터 하급 상품까지, 싼 것부터 비싼 것까지 소비자 취향대로 다양한 등급의 상품을 갖춰놓고 있다.
수인선 협궤열차가 다니던 길이 1백20m, 너비 2.5m의 소래철교에 오르면 포구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밀물에 맞춰 통통배들은 쉬지 않고 포구로 모여든다. 인도교로 변해버린 소래철교. 바로 옆 남쪽에는 수인선 전철이 다니는 소래철교가 놓여 있다. 소래 인도교에서 한 점의 회와 한 잔의 소주로 취한 여행객들은 수인선 전철이 지나는 순간 그 아래 갯골을 통과하는 어선을 보며 세월의 변화를 감지한다.
소래역사관에서 배우는 소래포구와 수인선의 역사
소래포구에 담긴 역사를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소래역사관(032-453-5630)을 관람해봐야 한다. 역사관 입구의 도로변에는 수인선 협궤열차를 이끌던 증기기관차 모형 한 대가 예전 시대를 대변해주고 있다. ‘이 기관차는 1927년 조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협궤용 증기 기관차이다. … 1978년까지 운행되었다.’라는 내용을 안내문은 담고 있다. 역사관 2층은 소래갯벌과 수인선에 대해 알려주는 전시실, 1층은 소래염전과 소래포구를 이해시켜주는 전시실로 꾸며졌다. 특히 2층 입구는 소래역사로 재현됐다. 대합실에는 할머니 한 분이 열차를 기다리고 매표소에는 역무원이 따스한 손길로 표를 건네줄 기세이다. 1층에는 수인선이 재현돼 있어 탑승체험이 가능하다. 듣던 대로 폭이 매우 좁다. 의자에 마주 앉아 팔을 뻗으면 상대방의 손이 잡힌다.
소래역사관 맞은편, 그러니까 소래포구 재래뱃터시장 남쪽 입구에는 문화유적지가 하나 있으니 여기도 한 번 답사하면 좋겠다. 장도포대지(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9호)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조선 말기인 1879년(고종 16)에 화도진을 축조할 당시 함께 지은 포대이다. 2개의 포는 바다를, 1개의 포는 동남쪽을 향하고 있다. 포대지 바닷가에 서면 좌측에 수인선이 다니던 소래 인도교, 우측에 신형 전철이 오가는 소래철교가 사이좋게 한 눈에 들어온다. 이 포대가 있는 장소는 ‘댕구산’이라고도 불렸다. 댕구는 대포를 뜻하는 옛날 말이다. 문화재구역이므로 이곳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다. 그런데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소래포구에서 횟감을 사와 이곳에서 술판을 벌이다가 관리원들에게 쫓겨나기도 한다.
<소래포구 맛집>
◎ 갯벌횟집 : 남동구 논현동, 활어회, 032-434-4990
◎ 대우횟집 : 남동구 논현동, 조개구이, 032-441-6738
◎ 대하 : 남동구 논현동, 활어회, 032-441-3244
◎ 소라횟집 : 남동구 논현동, 해물탕, 032-442-8847
◎ 소래화정 : 남동구 논현동, 생선백반, 032-439-8857
출처 : 리에또웹진
첫댓글 소래포구 방문한 기억이 있는데
오래 되어서
아무튼 좋은 곳 이었습니다
여행은 맛과 멋과 흥이 어우러지는 것
소래포구 좋습니다
밤 늦게 방문한 기억이 있어서
가물 가물
잘 보았습니다.^^
그 인천쪽에 있는 소래포구 거기 맞죠? &^^
네 맞아요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