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감생심. 300Km 울트라 랠리라니? 내 체력과 그 동안의 자전거 타는 내 스타일과는 뭔가 괴리감이 있다. 하지만 1구간이거나 조계산 입구까지이거나 내키는 데까지 가려는 속셈으로 별 부담없이 새벽 3시에 페달 클릿을 장착하고 출발했다. 순천 동천은 어스름 가로등에 물안개만이 어둠 속에 아른거린다. 향림사를 벗어나 국사봉 스파지오 임도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깊은 밤이란 걸 실감할 수 있다. 일행은 점차 흩어지고 라이트 불빛이 멀리 보이기도 한다. 밤하늘에는 세시방향쯤 큰 별이 하나 떠 있고, 별보다 한참 아래에는 시가지 야간 불빛이 모아진 붉은 후광이 낮게 드리워져 뿌옇게 어둠을 사르며 나뭇가지 사이를 밝게 비춘다. 깜빡이는 다른 라이트 불빛은 보이지 않고, 혼자일 때 생각해 본다. ‘나 혼자 이 시간에 이 길에서 페달을 밟을 수 있을까?’
새벽 네 시가 지나면서 서서히 산의 윤곽이 나타난다. 문득 여명이 기다려진다. 제대로 여명을 만나고 싶어서 편광렌즈 고글을 벗었다. 4시 15분. 산속의 넓은 임도를 서서히 걸어간다면 후레쉬가 없이도 갈 수 있을 정도로 밝아져 온다. 국사봉을 벗어나자 삼거리 풍치재 입구로 들어가는 포장도로에서부터 여명을 만났다. 이제는 라이트를 끄고도 자전거를 탈 수가 있다. 4시 40분이다.
새벽길은 풍치재 지나 승주읍 쌍암기사식당 부근까지 이어졌고, 거기서부터 포장도로 857번 지방도도 한적하였고 가끔 보이는 상사호 자락도 상큼함을 보여준다. 선암사 입구에서 낙안 방면으로 지방도를 타다가 조계산 방향으로 들어서는 남정리를 지나는데 상사호 주변이어서 멀리 안개를 자주 볼 수 있었고, 동이 텄지만 해가 밖으로 나오지는 않아 여명의 분위기가 이어진 셈이다. 조계산 보리밥집에 7시 넘어서 도착하여 밥을 먹는데 선두그룹은 5:30에 통과했다고 한다. 거기서 되돌아 갈 계획이었지만 망설이다가 장군봉을 향했다. 자전거를 이고 지고 끌며 9시경에 장군봉에 도착하였고 산 길에서 헉헉대며 이 대회 명칭에 울트라를 붙인 이유를 그때서야 제대로 알 것 같다.
그래도 자전거 길 위에 꽃 길을 만들어 준 때죽나무와 산딸나무의 하얀 꽃들이 있어서 피로를 달래며 산길을 걷는데 운치가 있었다. 막막한 산길에 자전거와 나 둘뿐이다. 나뭇 잎 위에 널브러져 하늘을 보고 있는 제법 넓은 꽃잎의 산딸나무는 쳐다보면 꽃이 보이지 않고, 산 위에서 그 나무를 내려다보면 마치 나무 위에 흰 천이 덮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하나는 나뭇잎 아래에 작은 종처럼 땅을 보고 꽃이 매달려 있는 때죽나무다.
장군봉에서 접치재로 내려오는 길은 휴일을 이용한 등산객들이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어차피 자주 끌고 내려왔지만 그래도 타고 내려갈만한 곳에서 그들을 만나면 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접치재 입구 도로에서 광주 운암MTB 지원팀에게 물 한 컵 요청했더니, 음료수뿐만 아니라 찰밥에 전복죽까지 제대로 지원다운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내 엔진의 한계는 거기까지였던가? 다시 되돌아 갈 일을 생각해야한다. 월등 문유산 임도 방면으로 갈라지는 유동마을입구 미곡처리장까지 랠리코스를 탔지만 거기서부터 승주읍을 지나 서면을 거쳐 가곡동으로 순천에 진입하여 동천을 타고 하수종말처리장 주차된 곳 까지는 나의 자유코스다. 허나 남은 길도 만만치가 않다. 싸목싸목 가는 길이니 외딴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혹은 눕기도 하면서 유람길을 마쳤다.
이번 대회는 야간에 시작하여 아침까지 계속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새벽을 안장위에서 맞이했다. 이는 내 일생에 처음 경험이었다. 여명! 어둠에서 서서히 밝아지는 미세한 시간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내 몸이 우주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저 새벽의 빛처럼 내 마음도 빛나기를 염원했다. 마음이 밝아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희망>을 갖는 것이리라. 소설로도, 드라마로도 잘 알려진 “여명의 눈동자” 거기에서도 살아남은 자들, 그들이 살아야 할 이유를 <희망>이라 했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자들만이 세월을 이겨낸다고...
여명의 시각에 가장 큰 변화가 하나 있었다. 산 속에 사는 온갖 새들의 울음소리였다. 엄청난 합창을 들었다. “Early Bird\"라는 말이 실감난다. 둥지거나 나뭇가지에서거나 어둠과 함께 밤을 지센 새들이 일제히 지저귀기 시작한 것이다. 풍치마을로 들어서자 장닭들이 홰를 치며 크게 운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새벽 닭 울음소리다. 물을 가둬 모내기한 논에서는 맹꽁이도 운다. 어둠 속에서 밝아져 온 세상에 대한 확인인 셈이다. 새벽을 맞으며 온갖 미물들의 울움 소리는 ”희망의 소리“일 것이다. 희망이 줄어들고 후회가 늘어가는 셈법 보다는 후회를 줄이고 희망을 더 늘여가는 셈법이 요구된다. 그게 페달 밟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난생 처음 안장위에서 만난 여명. 그 핵심인 여명의 \'눈동자\'는 나에게도 거듭 <희망>이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제 1회 mtb 300 울트라 랠리 참가 후기 잘 읽고 갑니다.
그리고 감동적인 후기 잘읽었습니다. 저도 다음에 여명을 만나게 되면 이글이 생각날것 같습니다.
희망을 페달질로 퍼올리면서
물안개 피어오르는 상사호변에서
여명을 맞이하고 싶어 집니다요.
올려주신 후기 항시 감동적입니다.
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다음에 기회 만들어서 함께 그렇게 타보시지요 ! 회원님들의 격려 감사합니다.
기린아님... 고생은요? 저는 그냥 혼자서 즐기다만 왔습니다요~
후기 고맙습니다 가까운시일내에 함께 다시 가십시다
여명을 맞이하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