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재에서 '실직(悉直)의 영웅들'을 기리다
20240204
입춘날 강원도 삼척의 환선봉, 황장산, 댓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줄기를 산행했다. 지난번까지의 백두대간 산행에서 매번 풍성한 눈꽃과 상고대 풍경에 도취하여 넋을 잃었다. 겨울산행의 백미는 설경과 상고대 풍경이 아닌가. 이번에도 예외없이 풍성한 설경과 상고대 풍경을 만끽한 축복 받은 산행이 되었다. 올겨울은 눈의 축복으로 백두대간 산행을 즐겨 행복감이 가득하다.
앞선 일행이 개척한 눈길을 따라 쌓인 눈에 푹푹 빠지며 뒤뚱거렸다. 비탈길에서는 미끄러져 엉덩방아로 눈썰매도 즐겼다. 짙은 운무가 그려내는 몽환적 수묵화 풍경은 산행 내내 길손을 환각으로 이끌었다. 환각 속에 산행의 목적지인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댓재에 내려섰다. 13.4km, 6시간 23분이 걸렸다.
해발 810m 댓재에는 2008년에 세운 백두대간 댓재 표석이 서 있고, 댓재 표석 뒷면에는 정일남의 詩 '댓재'가 임규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詩는 댓재의 옛 사연을 읊은 뒤 오늘 댓재에 온 사람을 구름과 함께 쉬었다 가라고 한다. 댓재에서는 삼척시가지와 동해 바다를 멋지게 조망할 수 있는데 짙은 운무에 오리무중이니, 조망을 즐길 수 없다. 댓재에서 길손 또한 詩 작품이 알려준 대로 운무와 함께 잠시 댓재를 품었다.
소금장수 등짐 지고 넘던 고개
산새도 고개를 넘자고 울고
저 아래 구릉지로 산비 질러 가네
불 같은 진달래 무더기로 피던 능선
바위에 앉아 옷고름 날리던 님은
머슴살이 십 년을 기다려 주었네
옛날은 허기져도 칡덩굴 좋았던 것을
살아온 목숨은 산메아리 되어 숨고
오늘 이 고개를 넘는 사람아
구름도 나그네와 함께 쉬었다 가네
-정일남의 시 '댓재' 전문
댓재 공원에는 댓재공원 종합안내도와 댓재도로개통 기념비, 댓재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1984년에 세워진 댓재도로개통 기념비 몸돌 앞면에 김영기(金永琪)님이 짓고 송종관(宋鐘寬)님이 쓴 '댓재 개통송(開通頌)'이 몸돌에 새겨져 있다. 개통송에 '실직(悉直)의 영웅들'이라는 시구가 나온다. 실직(悉直)은 삼척의 옛 지명이다. 삼척은 삼한시대에 실직국(悉直國)이었는데 신라 파사왕 2년 때인 102년에 신라에 합병되었다고 한다. 그 뒤 고구려 장수왕 때 468년에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가 신라 지증왕 6년 505년에 신라가 삼척을 회복하였다고 한다. 길손은 댓재도로개통비의 '댓재 개통송(開通頌)'을 읊어 보았다. 해파랑길을 탐방할 때 삼척 지역을 걸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실직(悉直)의 영웅들'을 기린다.
두타산(頭陀山) 우뚝 솟아/ 장생(長生)벌 내린 고장/ 동해의 붉은 태양/ 첫번째로 맞이하여/ 댓재를 넘나들며/ 실직(悉直)의 영웅들/ 나라를 열었네/ 항몽(抗蒙의 대열로/ 장사진을 쳤던 준령(峻嶺)/ 항일의 의병들이/ 창검(槍劍) 휘둘리던 험로/ 숙원(宿願)의 새 도로 뚫고/ 복지(福祉)의 꿈을 펼쳤네 - 1984년 10월 19일 김영기(金永琪) 짓고 송종관(宋鐘寬) 쓰다
2019년에 세워진 댓재 조형물은 대나무, 죽순, 호랑이 형상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뜬금없이 대나무 형상이라니? 그 앞의 설명안내판을 읽어보니 이곳은 산죽이 많아서 댓재로 불리며 그래서 대나무 형상의 조형물을 조성했다고 한다. 이럴 수가? 대나무와 산죽은 다르지 않은가? 산죽은 복조리를 만드는 조릿대 종류이니, 조형물을 남쪽의 대나무로 조성하면 댓재의 조형물은 거짓된 것이 된다. 산죽 형상이나 복조리 형상의 조형물을 댓재에 새롭게 조성해야 한다고 길손은 생각한다.
*댓재(竹峴, 竹崎嶺) 이야기 안내판
■댓재의 유래(由來)
○ 대나무(山竹)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죽현(竹峴) 또는 죽치령(竹崎嶺)이라 말함.
○댓재는 과거부터 영서와 영동을 잇는 주요 관문으로 산촌민들의 애환이 서린 곳임
■댓재 조형물의 의미
○ Healing(힐링)의 뜻은 마음 혹은 몸의 치유를 뜻하는 단어임.
○ 행정구역은 삼척시 하장면 번천리로 해발 810m에 이르며 주변에는 두타산 1353m, 청옥산 1404m, 덕항산 1073m, 황장산 975m 등 명산은 물론 산자락에는 거무소, 구룡골 등 아름다운 계곡과 고려말 제왕운기를 기술한 이승훈 선생이 기거한 천은사와 조선왕조 태동의 전설과 관련된 준경묘·영경묘 등 역사·문화적인 생명이 깃든 곳이기도 하며, 금강송·단풍나무 군락지 등 울창한 숲과, 산나물축제, 등산대회, 산림생태마을 등 산림문화 스토리가 풍성한 곳이기도 함.
○ 또한 댓재 정상에 위치한 산신각은 옛날 잦은 호랑이 출몰과 산적으로부터 나그네들의 무사통행과 안전을 기원하였다.
이런 연유로 댓재가 가지고 있는 역사·인문·사회·지리적 위치를 상징하는 대나무(山竹) 형상의 조형물을 여기 세워 천년고도 삼척의 무사안녕과 풍요를 기원한다. 2019년 11월 20일 삼척시
왼쪽에 댓재 조형물, 중앙 뒤에 전망대, 오른쪽에 댓재도로개통기념비와 댓재공원종합안내도가 있다.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와 하장면 번천리를 이어주는 댓재 고개, 미로면 방향이다.
호랑이와 대나무, 죽순이 조성되어 있다. 이것은 댓재의 잘못된 조형물이다. 산죽이나 복조리 형상을 조성해야 한다.
산신각이 오른쪽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