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들의 인기직업으로 백댄서(정식 명칭은 백업댄서)가 첫손꼽
힌지도 꽤됐다. 대부분의 어른들에겐 도저히이해할 수없는 수수
께끼이다. 유명가수들이 노래부를 때 뒷쪽에서 춤이나 추고, TV
화면에 얼굴도 잘 비치지 않는 일이 무슨 직업축에나 든단 말인
가.
요즘에야 백댄서가되겠다는 자식의 꿈을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부
모들도 있다지만 그것도 ”젊어 한때 해볼 수있는 일” 정도의
양해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춤꾼 박명수. 만약 이 이름을 웃긴 목소리와 얼굴로 유명한 개그
맨 박명수로 착각한다면 당신은 분명 기성세대이다. 그녀는 춤꾼
에겐 은퇴할 나이나 다름없는 서른을 훌쩍 넘기고서도 몸매가 드
러나는 야한 의상과 화려한 화장에다 긴머리를 풀어헤친채 자기
보다 훨씬 어린 엄정화, 박미경, 클론 등 톱가수들과 함께 무대
에 오르는 백댄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적이고 섹시한 춤솜씨라면 이 방면
에서 이미 소문난 ’유명인’이란 사실이다. 아직도 박명수가 누
군지 모르겠다면 한 인터넷 쇼핑몰 TV광고에서 주문배달받은 빨
간 구두를 신고 신나게 춤추던 주인공이 바로 그 여자라고 해두
자.
한가지 일에 20년쯤 매달린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도(道)’의
경지에 오를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박명수는 춤으로 도가 튼 사
람이다. 단순히 춤을 엄청나게 잘춘다는 말이 아니다. 춤을 통
해 인생을 터득했다는 의미이다. 그의 별명을 제목으로 붙인 ’
춤에 미(美)친 여자’(디자인하우스)는 한 분야에서 ’일가견’
과 ’도’를 일군 한 전문가의 수련기라 할만하다.
앞서 밝혔듯이 박명수의 직업은 백댄서이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안무가에다 서울예대와 한양대 무용과 강사, 재즈댄스스
쿨 교수까지 병행하고 있다. 세종대 체육학과에서 리듬체조를 전
공한 한국 리듬체조선수 1호, 체육심리학 석사, 88 서울 올림픽
매스게임 안무자, 고등학교 체육교사, MBC 예술단 안무자로 7년
간 근무, 미국 유학 등 지난 십수년동안의 경력은 더 화려하다.
공부도 할만큼 하고 비록 강사이긴 하지만 남들이 존경하는 대학
교수 대접까지 받는 여자가 도대체 왜, 무엇이 모자라서 백댄서
로 나섰을까. 아마도 이 질문을 가장 많이 던진 사람은 바로 박
명수 자신이었던 모양이다. 이 책에서 그가 내놓은 대답의 논리
는 정연하고,그래서 힘이 있다.
제목의 ’미친’에 아름다울 ’미(美)’를 쓴 이유도 나름대로
수긍이 간다. ”내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굳이 가수의 백업댄
서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두터운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부수기
위해서다. 백업댄서를 전문가가 아니라 가수의 뒤를 따라다니
는 ’액세서리’쯤으로 여기는 일반인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싶
은 것이다.
백업댄서의 역할은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의 무대를 보다 완벽
하게 만드는 중요한 조력자이다...왕무시당하는 이땅의 너무도
억울한 백업댄서들을 위해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내가 백업댄서
로서 지금도 무대에 오른다.” 백댄서를 무조건 선망하는 십대들
에 대한 충고도 따끔하다.”춤에 대한 겸허한 생각을 잊게 된다
면 더 이상 춤을 추어서는 안된다...춤에는 연습의 규율이 있기
때문에 겸허한 마음가짐은 필수적이다. 겸손함은 오히려 스스로
가 강해지는 하나의 무기이다. 그것은 힘을 비축하게 한다. 자신
을 낮추면서 실력을 쌓아갈때 오래도록 그 아름다운 몸짓을 사람
들에게 보여줄 수있다.”
이만하면 주변의 기대와 칭찬에 들떠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
는 일부 정치인들이나 쓸데없는 아집에 사로잡힌 학자들보다 훨
씬 아름답고 성숙한 인생철학이 아닌가.
맨처음 이 책을 잡았을 때, 요즘 출판계에서 유행이 되고 있
는 ’여자스타 만들기’에 의한 또하나의 그럴싸한 상품이 아닐
까란 의심을 가졌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땐, 이런 여자
라면 우리 사회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격렬한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무용계에서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충분히 강하고 아름다우며 섹시한 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
을 몸으로 증명한 점이 마음에 들었고, 편견없이 열심히 사는 모
습이 아름다웠다.
”일에 몰두하는 사람은 아름답다”란 말은 너무 진부하다. 이
젠 ”편견에 도전하는 사람은아름답다”로 바꾸면 어떨까. 우리
사회에는 이러저러한 배경을 가졌거나 어떤 연령층의 사람은 이
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쓸데없는 틀이 얼마나 많은가.
백댄서면 어떻고 교수면 어떻다는말인가. 그래서 교수라는 딱지
덕분에 춤꾼 박명수를 조금은 달리보고 대접도 달라지는 세태가
아쉽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의 책을 북리뷰 대상으로 선택한
것 데에도 그런 이유가 있었는지 모른다. 우린 언제나 춤꾼 하나
만으로 인간 박명수를 온전하게 받아들 수있게 될까.
--- 문화일보 00/6/7 오애리 기자